2018년 12월 이태원의 어느 클럽. 휘황찬란한 빔 조명과 테크노가 한창이던 플로어에 난데없이 디제이가 노이즈를 휘갈긴다. 그는 관객 모두를 귀가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플로어가 급작스럽게 메말랐다. 생경함에 클럽을 채우던 관객들은 디제이 부스와 멀찍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결국은 오직 나와 디제이 둘만이 드넓은 클럽에서 고개만 까딱였다.
이건 내가 디제이 예스예스(DJ YESYES), 박다함의 디제이 셋을 처음으로 목격했던 순간의 장면. 그리고 관객 모두를 귀가시킨 그날의 강렬했던 소리는 내 귀에서 아직 팔딱이고 있다. 그 여운을 쫓아 이번에는 을지로의 만물상 우주만물로 향했고, 이번 기회에 박다함의 라이브러리를 ‘디거의 노래’로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시리즈는 암묵적인 ‘바이닐 디거’라는 기존의 룰을 탈피한다. 그날 내가 경험했던 음악을 쫓기 위해선 바이닐이 아닌 레코드로 범위를 넓혀야 했다. 그리고 헬리콥터 레코드(Helicopter Records)로 공연기획자, 음반기획자로 활동하는 박다함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선 기존의 룰을 탈피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사항이었다.
박다함은 일본 국적의 디제이 일곱 명이 제작한 믹스셋을 소개했다. 또한 박다함은 그들을 두고 ‘이상한 디제이’라고 일일이 사족을 붙이기도. 과연 서울에서 괴짜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박다함에게 이상한 디제이란 뭘까? 이는 그가 추천한 믹스 CD와 음악들을 따라가다 보면 얼핏 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단에서 직접 만나보자.
이번 디거의 노래 주제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공통적으로 믹스 CD를 기반으로 디제이를 소개할 것이니 믹스 CD가 알맞을 것 같다. 인터뷰 섭외 요청을 받은 후 디거의 노래 시리즈를 쭉 읽어봤는데, 과연 내 라이브러리에서 바이닐을 소개할 수 있을까 싶었다. 사실 난 바이닐을 100장도 안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바이닐에서 주제를 꼽아 이야기를 풀려니 어려울 것 같았고, 또 내용도 부실할 것 같았다. 근데 믹스테잎과 디제이들의 믹스 CD는 많이 모았다. 그래서 리스너, 한편으로 디제이로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일곱 명의 일본 디제이 믹스 CD를 꼽아봤다.
음반 소개에 앞서 박다함이 막 디제이를 하던 시기가 궁금하다. VISLA 인터뷰에 따르면 ‘피자 파티’라는 파티를 열어서 놀았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어떤 음악을 들으며 디제잉을 시작하게 됐는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잡식이었다. 그냥 유튜브로 듣다가 좋아하게 됐던 음악들을 틀었지. 오마르 슐리만(Omar Souleyman)이나 그 당시 유행하던 M.I.A 등의 힙합, 차브 등의 음악, 혹은 아시아 디스코, 부기 아카이브 채널에서 들었던 민혜경 등을 틀었다. 사실 그 당시에 믹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유튜브 창 두 개를 켜놓고 한쪽 음악이 끝나갈 때쯤 볼륨을 내리고 한쪽 유튜브 창 볼륨을 올리는 정도의 믹싱을 했었다. 하하.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것 같다. ‘피자 파티’에는 누가 있었나?
당시 콩부(CONG VU), 민(MIIIN), 씨씨(SEESEA), 쾅프로그램(Kuang Program)의 최태현 등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뮤지션이고 디제이지만, 당시에는 디제이가 아니었다. 그냥 공간이 있고, 각자 좋아하던 음악이 있었으니까, 피자 먹으면서 음악 듣고 놀자가 됐지. 그게 내 파티의 시작이었다.
오늘 소개할 일본인 디제이들은 어떤 루트로 알게 됐나? 온라인 상에서 확인할 수 없는 믹스 CD가 다수였는데.
2013년 6월에 헬리콥터 레코드(Helicopter Records) 소속 밴드 404의 앨범이 발매되고 나서 일본을 투어했다. 그때 일본 투어에 협력해준 레이블을 통해 많은 일본인을 만나게 됐지. 그들에게 일본의 이상한 공간도 많이 소개받았는데, 그중 로스엡손(Losapson)이라는 이상하고 희귀한 레코드를 취급하는 레코드 숍을 추천받았다. 레코드 숍 한 쪽에 일본인 디제이들의 믹스 CD가 빼곡히 꽂혀있었다. 호기심에 믹스를 구매해서 들었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리고 2013년 투어를 마치고 돌아가기 전날에 내가 묶었던 숙소 2층에서 환송 파티를 펼쳤다. 그때 디제이 소이 48(Soi 48), 키시노 유이치(Yuichi Kishino)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이제 음반을 소개받고자 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음반은?
콤푸마(COMPUMA)의 믹스 CD [Gold Damage COMPUMA]다. 내가 콤푸마라는 디제이를 알게 된 것은 이 믹스 CD 덕분이다. 2004년 히가시코엔지 역 근처에 바이자 클럽인 공간 글라스루츠(Grassroots)에서 열린 파티에서의 플레이를 녹음한 믹스 CD인데, 러프하게 녹음되어 관객들 환호소리가 그대로 담겨있다. 그리고 ‘찹드 앤 스크류드(Chopped N Screwed)━음악을 느리게 플레이하는 리믹스 기술━’가 뭔지도 모르고 들을 당시에는 한참을 충격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동안 내가 알던 디제이의 맥락에서 아예 벗어난 디제이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Gold Damage COMPUMA]는 아까 언급된 로스엡손의 20주년을 기념해서 나온 믹스 CD다.
미리 확인한 바로는 오사카의 EM 레코드(EM Records)에서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던데? 지난 2월, 나에게 소개시켜줬던 잭슨 베일리(Jackson Bailey, TAPES)도 EM 레코드로 한국을 찾지 않았나?
맞다. 사실 콤푸마 덕분에 EM 레코드를 알게 됐다. EM 레코드는 일본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계속 끌어내는 레이블이다. 그러나 내가 이들을 흥미롭게 보는 것은 단순 재발매가 아니라 리믹스 등을 거쳐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려는 맥락을 포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콤푸마가 리믹서로 참여한 [The Reconstruction Of “Na Mele A Ka Haku”] 역시 그러한 앨범이다. “Compuma Re-edit”을 듣는다면 전자음악이나 우주를 키워드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겠구나 생각될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과거엔 힙합 신(Scene)에도 몸을 담은 적이 있다. 또 사람들은 펑크 음악을 들으면 우스갯소리로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다고 하지 않나? 난 반대로 저 음악을 들으면 피가 차갑게 삭 식어버리는 느낌을 받는다.
다음으로 소개할 앨범은?
찹드 앤 스크류드를 매개로 아이와비츠(AIWABEATZ)의 믹스 CD [Slow Madness 3]를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을 로보토미(LOBOTOME)가 느리게 플레이한 것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찹드 앤 스크류드인지는 전혀 몰랐다. 그리고 나에게 찹드 앤 스크류드를 다시금 알게 해준 디제이가 바로 아이와비츠다. 일본에서 아이와비츠의 디제잉을 직접 본 적이 있는데 그는 45rpm의 레코드를 33rpm에 피치페이더를 -8까지 내려 플레이하는 디제이였다. 특히 텐텐코(TENTENKO)의 “Good bye, Good girl”을 느리게 플레이하는 것을 직접보고 자신만의 속도로 플레이를 즐기는 뮤지션이라 확신했다. 한편으로는 베이퍼웨이브(Vaporwave)같이 들린다고 하는데, 찹드 앤 스크류드가 그런 음악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이와비츠는 천천히 느리게 듣다 보면 음악을 좀 더 집중해서 듣게 된다고 말을 하기도 하더라. 그래서 나도 따라 해봤고, 디제이 플레이에서도 느리게 플레이한 적이 있는데 진짜로 잘 맞아들 때가 있어서 놀라기도 한다.
클럽, 행사를 왔다 갔다 하며 박다함의 플레잉을 자주 봤다. 근데 아이와비츠, 콤푸마와 반대로 언제나 코어한 스타일로 텐션이 올라가 있는 듯 했다.
최근엔 빠르게 틀었던 편이지. 그래도 가끔 BPM을 확 내려서 플레이하기도 했다. 그런데 느린 음악을 억지로 빠르게 트는 편은 아니다. 왜냐면 억지스러움에서 매력이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찹드 앤 스크류드 스타일로 엿가락처럼 늘어난 타임 스트레치 음악에 어떤 매력을 느끼나?
다양한 속도로 듣다 보면 또 다른 음악과 새로운 그루브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새로운 음악을 찾아가는 디깅의 재미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이와비츠에게 정말 많은 영감을 얻었다. 한번은 일본 클럽에서 아이와비츠의 디제잉을 본 적이 있었다. 새벽 2시에 BPM 70으로 플레이하는 모습이었는데, 이를 보며 한국 클럽에서 그와 같이 틀었다면 플로어는 텅 비게 될 지도 모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일본 관객은 모두 자리를 지키고 끝까지 들어주더라. 그들도 대단하다 싶었다.
다음으로 소개할 믹스 CD는?
지금은 데이터가 전무한 인터넷 기반의 디제이 집단 베이컨(BACON)의 믹스 CD [KOREARIC VINYL RIP 2]를 소개한다. 이들은 영화배우 케빈 베이컨(Kevin Bacon)에서 모티브를 얻어 텀블러(Tumblr)에서 활동했다. 난 이들 덕분에 발레아릭(balearic)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고. 그전까지는 발레아릭이란 단어를 전혀 몰랐는데, 그들이 ‘코레아릭’이란 말을 쓰면서 알게 됐지. 그들에 따르면 코레아릭은 한국의 70, 80년대 뮤지션이 지닌 감수성이라고 한다. 그 당시의 한국의 감수성이 발레아릭 감수성과 비슷한 것 같아서 코레아릭이란 합성어를 사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근데 이게 일본에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더라. 그리고 난 DJ YESYES로 활동하기 전에 페퍼로니 피자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믹스도 녹음했는데, 그때 베이컨의 멤버인 DJ Stttr이 장필순의 노래를 45RPM으로 믹스한 것을 따라서 똑같이 믹스셋에 섞어보기도 했다. 그런 그들이 어느샌가 활동을 멈췄다. 효력을 다했다고 인지한 순간에 활동을 멈춘 것이 아닐까 싶다.
베이퍼웨이브는 일본 언더그라운드 디제이 신에서 태동한 무브먼트가 아니지만 콤푸마, 아이와비츠에 이어, 디제이 베이컨까지 베이퍼웨이브와의 유사성을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이 활동한 시기가 베이퍼웨이브가 한창 붐이 일던 시기와 동시대이기도 하며 베이컨은 텀블러를 기반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일본 디제이들은 베이퍼웨이브를 의식하며 믹스셋을 전개했을까?
베이퍼웨이브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콤푸마는 베이퍼웨이브 태동 한참 전에 찹드 앤 스크류드 스타일로 BPM을 자유롭게 오갔다. 또 베이컨의 경우에는 텀블러를 기반으로 활동했지만, 인터넷 문화 밖으로 나와 CD, 테이프, VJING 파티 등으로 실물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 역시 베이퍼웨이브로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콤푸마, 아이와비츠, 베이컨 등의 일본 디제이 모두를 내가 실제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종의 안정감을 얻기도 했지.
앞서 발레아릭이란 단어가 언급되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고등학생 때 씨케인(Chicane)의 “Saltwater”가 발레아릭 트랜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실을 알고 발레아릭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다. 그 후로 줄곧 발레아릭이 지평선과 노을로 설명하기 어딘가 모호한 음악 장르라 생각해왔는데, 최근 모자이크(Mosaic)의 주인장 커티스 캄부(Curtis Cambou)와 대화에서 발레아릭은 장르가 아니라 태도라는 말에 큰 감명을 받기도 했다. 코레아릭으로 발레아릭을 처음 접한 박다함의 견해 역시 궁금하다.
인터뷰를 읽어봤는데, 나 역시 커티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사실 요즘 발레아릭에 대하여 정말 많은 질문을 받고 있다. 언제나 단순히 장르로 설명할 수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음악들이 한데 어우러지고, 발레아릭은 그 방대한 장르의 소리를 모두 환영하고 받아들인다. 그야말로 올 카인드(All Kind)라 설명할 수 있는데, 이게 커티스가 말한 발레아릭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다음으로 소개할 앨범은?
릴 모포(Lil Mofo)의 믹스 테잎 [THE TRILOGY TAPES]와 CD [NO STRANGER TO DARKNESS]다. 릴 모포는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영국 체류 경험도 있는 디제이다. 그러한 이력에 레게와 덥(DUB), 정글, 개러지를 잘 소화할 디제이로 소개되곤 한다. 그러나 그는 레게와 덥을 틀지만, 테크노를 듣는 사람들에게도 접근하고 싶고, 또 그런 실험을 좋아한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또 그라인드 코어와 노이즈까지 다양하고 넓게 듣는 편을 좋아하는 디제이다. 게로게리게게게(GEROGERIGEGEGE)라는 일본의 전설적인 노이즈 밴드의 앨범 크레딧에 릴 모포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이는 릴 모포가 노이즈에 계속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릴 모포가 내한 왔을 때 그를 서포트했다고 들었다. 그가 한국을 찾기 전부터 인연이 있었나?
사실 [NO STRANGER TO DARKNESS]가 처음 발매됐을 때 테이프를 구하고자 그에게 트위터로 직접 연락을 한 적이 있다. 그는 테이프가 다 팔려서 못 보내주는 대신에 믹스테잎의 데이터를 보내주겠다고 했지. 그 후로도 그의 믹스를 쭉 찾아 듣곤 했다.
그런 릴 모포를 실제로 만났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릴 모포가 서울에서 플레이한 날, 그는 바이닐을 두 가방에 가득 채워서 한국을 방문했다. 플레이 시간은 1시간으로 그리 길진 않았음에도 자신이 경험한 영국 레이브 음악과 방대한 라이브러리와 레코드를 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또한 그날 레게와 테크노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디제이라 확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릴 모포의 믹스셋을 듣고 난 후 제페니스 스윙걸스(Japanese Swingers)의 “GING SING FEELING”을 샀다. 이 역시 어디서 시작됐는지 맥락이 모호한, 이상한 음반이라고 생각했다. 한번 들어보길 권한다.
과거 VISLA와 인터뷰에서 이상한 음악에 대한 질문에 릴 모포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앞서 언급된 공간들과 디제이들 역시 이상하다고 사족을 붙이기도 했는데, 어떠한 부분이 이상함의 주안점이 됐나?
독특한 센스를 지닌 디제이, 혹은 독특한 공간이라는 맥락에서 이상하다는 표현을 쓴다. 좋은 의미를 부여한 거다.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면 모두 확실한 주관과 그들만의 레이더로 색다른 음악을 포착하는 디거들이다. 릴 모포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상한 음악이라 소개했다.
다음으로 소개할 믹스는?
릴 모포와 비슷하다면 비슷하고,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을 디제이 유키마츠 유스케(¥ØU$UK€ ¥UK1MAT$U)의 믹스 [Remember Your Dream]을 소개하고 싶다. 릴 모포가 전통적인 믹싱 방법을 따르고 있다면, 유키마츠 유스케는 말도 안 되는 플레이 방식으로 허를 찌르곤 한다. 이제는 세계적인 디제이가 되어 최근 보일러 룸(Boiler Room)에서 소개되기도 했는데, 그 믹스를 반드시 확인해봤으면 한다.
소개된 믹스셋의 제목만 놓고 보면 센티멘털한 음악만 선곡됐을 것 같다. 그런 유키마츠 유스케는 어떤 플레이로 허를 찌르나?
댄스플로어에서 춤추기 어렵거나, 변박의 음악을 많이 트는 편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곡이 충격적이다. 로렌조 세니(Lorenzo Senni), 게버 모토스 오페란디(Gabber Modus Operandi), 녜게 녜게 테입스(Nyege Nyege Tapes) 같은 말도 안 되는 음악을 틀다가도 갑자기 뉴 오더(New Order) 등의 팝 음악을 섞기도 한다. 이번 보일러룸 믹스에서도 난데없이 위켄드(The Weeknd)의 “I Feel It Coming”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선곡과 곡 배치 스타일 능력이 신선해서 ‘서울 인기 페스티벌’에도 섭외를 했는데, 그가 플레이할 당시 사람이 모두 빠진 탓에 내심 아쉬웠다. 난 그가 혼자 남아 음악을 트는 모습을 봤다. 그의 믹스를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MUSIC FOR SLEEP]이라는 수면을 위한 믹스 CD도 흥미롭다. 이에 대한 코멘트는?
[MUSIC FOR SLEEP]는 오사카 책방을 들렸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레코드다. 듣기론 유키마츠 유스케의 친구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믹스 CD를 만들었다고 들었다.
다음으로 소개할 믹스는?
키시노 유이치라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디제이의 믹스 [A Night In Taipei Vol.1]다. 2013년, 404와 일본 투어를 갔을 당시 환송 파티에 찾아온 일본인 디제이 중 한 명이다. 그는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 노고지리의 바이닐을 직접 들고 와 플레이해 주기도 했다.
키시노 유이치를 교수님이라고 일컫기도 하던데 이유가 있나?
실제로 오래전부터 활동해왔고, 끊임없이 연구하며 공부하는 스터디스트라고 직접 소개하기도 하신다. 또 어느 교육 기관의 선생님으로 재직 중인 디제이기도 하고. 사카모토 류이치(Ryuichi Sakamoto), 호소노 하루오미(Haruomi Hosono)가 일본 팝의 기반을 다지던 한편, 딥한 곳에선 한국의 감춰진 거리 문화와 관광버스 문화 등을 일찍이 아카이브한 해방의 음반 동맹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키시노 유이치는 그들과 같은 시기에 자신만의 서브컬처를 깊게 파면서 활동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와 환송 파티 이후에도 연락을 하고 지내나?
그 후로 연락을 종종 하곤 했지. 대만 음반을 소개하는 믹스 CD [A Night In Taipei Vol.1]는 오사카에서 실제 열린 파티 ‘A Night In Taipei’ 행사에서 찾은 믹스 CD였다. 그리고 당시 이 믹스를 듣고 당장에 대만으로 떠나고 싶었다. 대만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 역시 그날 이후다.
그렇게 선셋 롤러코스터(Sunset Rollercoaster)를 만났나?
그건 조금 별개인 것 같다. 키시노 유이치의 영향은 대만의 숨겨진 음반과 레코드 숍을 찾도록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믹스 CD는?
마지막 믹스 CD는 디제이 위력(DJ 威力)의 [Grandpapa]다. 위력은 키시노 유이치의 행사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디제이 덱 4개를 모두 쓰는 디제이다. 믹서의 크로스페이더가 모두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와..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였다. 음악과 동시에 내레이션, CF 등의 출처 모를 비음악까지 플레이하는 모습에 ‘소리를 가로지르는 기관차’라 수식하는 사람도 있더라. 그렇게 충격을 받은 후 우주 만물에서 그의 CD를 팔게 됐다. 사실 그의 플레이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 제한적이다. 그래서 그의 믹스 CD가 인터넷에 있다면 반드시 구매하는 것을 권장한다.
아까 ‘피자 파티’를 언급했을 때 유튜브로도 디깅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 소개한 디제이들만큼은 직접 몸으로 체험한 믹스 CD들인데 이런 믹스 CD는 오로지 레코드 숍을 방문해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인가? 알려지지 않은 믹스 CD는 어떻게 찾는 편인가?
사실 잘 모르겠다. [Remember Your Dream]는 오사카에 있는 나미노하나 레코드라는 전자 음악 레코드 숍에서 듣게 된 경우인 반면, 콤푸마나 릴 모포는 인터넷에서 꾸준히 많이 찾아 듣다가 알게 된 경우니까. 온, 오프라인 둘 중 어디다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 결국은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잡식으로 음악을 많이 듣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다. 나는 일본의 이상한 가게를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가게에서 음반을 찾는 일이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음반을 하나하나 찾아 듣는 것보다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직접 방문했던 편이다. 덕분에 오프라인 레코드 숍에서 디깅하다 온라인 너머의 무언가를 찾아 들을 수 있기도 했지. 그리고 믹스CD라는 것은 해외 유통보다는 로컬에서 소비되는 편이라서, 해외에 나가면 바로 사서 들어보는 편이다. 또 지금은 지갑이 여유가 없다 보니까 할인코너를 더욱 샅샅이 살핀다. 진짜 좋은 레코드는 할인 판매대에서 자주 발견되는 것 같기도 하다.
클럽에서 직접 체험하는 믹스셋과 피지컬로 제작된 믹스 CD를 들으며 느낀 차이가 있나?
아무래도 믹스 CD, 혹은 인터넷 믹스셋의 경우는 플로어를 신경 쓰지 않고 선곡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정말 자기가 듣고 싶었던, 좋아하는 음악을 플레이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딥리스닝의 의미로 특정 주제를 잡고 한 분위기를 쭉 밀어붙이는 경우도 있다. 근데 이런 믹스 CD들이 잘 팔리는 편은 아니다. 또한 믹스 CD는 일본의 문화라고 생각했다. 몇몇 레이블에서는 테잎의 형태로 발매하기도 하지만 일본과 같이 미친 듯이 CD-R로 내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 그리고 이것들을 집중적으로 듣는 사람들 역시 많이 사라졌다. 그 반면에 믹스를 만드는 디제이들의 의도는 확실한 편이다. 그리고 내가 앞서 소개한 디제이들의 믹스셋은 귀를 사로잡는 것이 분명 있었다.
에디터 │ 황선웅
포토그래퍼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