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닐 디거를 좇아 하나의 주제를 두고 레코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VISLA의 인터뷰 시리즈, ‘디거의 노래’. 이번 시리즈는 서울 기반의 디제이 재재(Jaezae)를 찾아 그의 수납장 일부를 들춰보기로 한다.
재재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디제이로, 현재 에디트 프로젝트 ‘투칸 디스코스(Tucan Discos)’를 운영 중이다. 이번 디거의 노래 테마인 ‘유럽 투어(Europe Tour)’는 그가 작년 9월에 파리, 바르셀로나, 암스테르담 등의 유럽 도시를 투어하며 디깅한 레코드를 소개한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레코드를 모으고 수집한 레코드로 에디트를 2년째 만들고 있는 디제이 재재라고 한다.
직접 소개한 바와 같이 투칸 디스코스라는 에디트 시리즈를 전개 중이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
처음에는 내가 소장한 레코드를 소개하고 내 에디트 트랙을 공개하려고 로고를 제작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계속 이어가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투칸 디스코스를 레이블로 전개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서부터 그 과정 속에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연습 삼아 시작했다가 욕심이 커졌다.
에디트 트랙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나?
보통 댄스 음악을 많이 고르고 있다. 에디트 곡의 판매량를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 팬과 친구가 디제이인 경우가 많아서 그들이 베뉴에서 틀기 적합한 댄스 음악을 에디트한다. 장르는 하우스, 스페니시 디스코 등의 곡을 선정하고 있다. 그러나 계획적으로 에디트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에디트 과정을 소개하자면?
내가 가진 레코드 중 음압이 좀 약하거나 먹먹한 음악의 벨런스를 조정하거나 악기를 추가하는 식으로 제작한다. 먼저 레코드를 리핑하고 에이블톤을 통해 진행된다. 디제이가 음악을 더 유용하게 틀 수 있게끔 곡의 마디를 자르고 붙이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투칸 디스코스 밴드캠프를 운영하며 디지털 음원으로도 판매하고 있다. 에디트 트랙을 모아 물리적인 레코드로 만들어 볼 계획은 없나?
당연히 제작하고 싶다. 그러나 투칸 디스코스는 나 혼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여러 가지 고려할 것이 많다. 일단 레코드를 제작하려면 돈이 많이 들고, 또 레코드를 위한 마스터링도 별도로 필요하다. 레이블이 날 도와준다면 당연히 의향이 있지만, 아쉽게도 한국에는 에디트 트랙을 위한 레이블이 아직은 없다.
해외에도 투칸 디스코스의 팬층이 꽤 있는 것 같았는데, 해외 레이블과 연락을 주고받은 적은 없나?
‘오렌지 트리 에디츠(Orange Tree Edits)’라고 네덜란드에서 에디트 트랙을 만들어 바이닐로 제작하는 친구에게 컴필레이션 참여를 부탁받아 곡을 보낸 적은 있다.
디제이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디제잉은 처음에 취미로 시작했다. ‘클리크 레코드(Clique Records)’에 자주 갔고 사람들과 친해지며 거기서 음악을 틀게 되고 이후에 클럽에서도 음악을 틀게 되었다. 거창한 계기나 포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하.
투칸 디스코스가 재재의 소장 레코드를 소개하는 창구였기에, 디제잉의 계기 역시 그러한 레코드를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 건 아니다. 20대 때 클럽에 많이 놀러 다녀서 댄스 음악을 좋아했고 거기서 이어진 자연스러운 취미였다. 패션을 전공하며 파리로 유학갔을 당시 컬렉션 음악을 찾으며 다크한 테크노, 미니멀과 트라이벌에 빠지게 되었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클럽을 다니는데, 그런 음악을 트는 디제이가 없어서 처음 디제잉을 할 때는 그런 다크한 댄스 음악과 트라이벌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오리지널을 좀 더 찾고자 아프리카 음악과 브라질, 주크(Zouk) 등 흑인 음악을 찾게 됐다.
처음 디제이를 시작할 당시 남들이 잘 틀지 않는 음악으로 스테이지에 올랐을 땐 지금의 ‘소양강(Soyang Gang)’과 같은 동료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과 취향이 비슷한 디제이들이나 동료들이 없다는 건 신(Scene) 안에서 퍽 외로운 일이다.
디제잉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외롭다는 생각도 했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반면에 지금은 아쉬움이 크다. 왜냐하면 디제이나 다른 사람들은 투칸 ‘디스코’라는 이름을 보고 내가 디스코에 집중하거나 칠한 음악을 트는 디제이로 많이 착각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보유하고 있는 레코드도 하우스, 테크노가 훨씬 더 많은데, 사람들이 날 다른 이미지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움을 느낀다.
본론으로 이번 디거의 노래 테마를 ‘유럽 투어’로 정했다. 어떤 의미인가?
주제라기보다는 작년 여름 유럽 투어 중에 구매한 판을 소개하고자 했기에 정한 제목이다. 디제이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유럽에서 음악도 틀고 친구들도 만나고 했던 작년 여름이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때 샀던 판들과 디깅하러 다닌 에피소드를 같이 얘기하면 좋을 것 같다.
어떤 투어였는지 소개해줄 수 있나.
암스테르담에서 ‘라디오 TNP(Radio TNP)’라는 라디오 스테이션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믹스셋을 전달하고 내 믹스가 소개된 게 지난 투어의 시작이자 계기였다. 믹스셋이 소개된 후에도 계속 연락하고 지냈는데, 이번에 암스테르담 도시 전체에서 큰 댄스 이벤트, 페스티벌 같은 게 열린다고 만약 내가 그때 유럽에 있다면 같이 음악을 틀어보자고 제안하더라. 그 제안을 받았을 때가 투칸 디스코스로 해외 친구들을 많이 만들고 접점이 생겼을 때다. 이 기회를 통해 SNS에서 만나 친해진 해외 디제이 친구들을 모두 직접 만날 결심이 섰다.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았지. 그래서 갔다.
유럽 여러 나라와 도시를 돌아다닌 것 같은데 투어의 루트를 알려줄 수 있을까?
한 달 동안 파리와 니스, 바르셀로나, 암스테르담을 방문했다. 로컬 라디오 스테이션에서 음악을 틀고 여러 이벤트에 참여하고 왔다. 오늘 레코드 소개 역시 내 투어 경로를 따라 소개하려 한다.
해외 디제이들의 믹스셋에 투칸 디스코스의 에디트가 많이 소개되는 거 같던데. 따라서 다른 해외 라디오 스테이션에서도 프로그램에 참여하길 원할 것 같은데.
그렇게 많이 요청받진 않는다. 사실 내 에디트 트랙은 내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 돌고 도는 것이다. 간혹 유명한 해외 디제이가 내 트랙을 클럽에서 틀었다고 제보를 받는데, 그건 그들이 디깅하다가 그냥 산 것 같다. 그런데 유명한 사람이 내 에디트 음악을 틀어주는 게 확실히 많은 도움이 된다. 판매로도 많이 이어지고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큰 계기라 고맙게 생각 중이다.
이제 판을 한 장씩 소개받고자 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음반은?
바두(Badou)의 [Zena]다. 니스의 레코드 숍에서 구매한 판이다. 사실 옛날부터 찾던 레코드로 80년대 후반에 나온 중동의 보컬이 부른 하우스 트랙이 담겼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가 과거에 프랑스 식민 지배를 당해서 아프리카에 프랑스 어권 국가들이 많다. 때문에 프랑스에는 다양한 인종이 있고 프랑스 음악에 역시 아프리카 흑인들, 혹은 아랍인 등이 자국어로 부르는 노래가 꽤 있다. “Zena” 역시 그런 곡이지. 가격은 40유로 정도에 구매했는데 12인치 싱글치고는 꽤 비싼 가격이지만, 워낙 구하고 싶었던 음반이라 가격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Zena]에서 추천할 트랙은?
“Zena (Maxi version)”을 추천하지만, 사실 클럽에서 가장 틀기 좋거나 활용성이 높은 트랙은 덥 버전이다. 3분 50초로 그렇게 길지도 짧지도 않으며 불필요한 보컬이 많이 제거되어 있는 버전이라서. 때문에 덥 버전도 들어봤으면 좋겠다.
다음으로 소개할 음반은?
JND의 [Le Style Nouveax]라는 레코드다. 이것도 니스에서 구매한 음반이다. 해외 레코드 숍을 돌아다니다 보면 아무래도 로컬 음악을 많이 찾게 되지 않나? 마찬가지로 프랑스 로컬 음악을 찾고자 디깅한 레코드가 [Le Style Nouveax]이다. 평소 즐겨 듣던 주크 장르의 레코드. 그런데 주크를 너무 좋아해서 오래 듣다 보니 어느 순간 모두 비슷비슷하고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주크를 좀 멀리하던 중에 니스의 레코드 숍 아저씨에게 추천받아 15유로에 구매하게 된 레코드다.
무슨 말을 하며 권하던가?
내가 추천을 부탁했다. 프렌치 힙합과 R&B를 찾는다고 하니까 꺼내준 몇 개의 레코드 중 하나였다. 그래서 들어봤는데 주크에 라가, 레게, 힙합 장르의 요소가 섞인 게 신기해서 구매했다. 거두절미하고 한 번 들어보는 게 좋다.
주크가 싫증났다고 했는데도 주크 레코드를 구매한 이유는?
“Faut Pas Divorcer”이라는 제목의 트랙이 전체적으로 주크의 분위기인데 스크레치, 랩 등 힙합과 라가 등의 요소가 결합된 것이 매우 독특했기 때문에.
주크에 빠진 시절이 있다고 밝혔다. 주크는 어떤 매력이 있나?
주크 러브(Zouk-love)와 같은 밝은 느낌과 그 반면의 감성적인 다운템포가 내 취향이다. 사실 베뉴에서 주크를 트는 건 딱히 좋아하진 않는다. 한국의 뽕짝처럼 좀 경박한 느낌이 나서 싫달까. 그래서 오히려 내 믹스셋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또 주크는 레코딩과 사운드 벨런스 쪽으로 거의 완벽해서 소리가 깔끔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 셀프 릴리즈 또한 소리가 깔끔하다. 거기에 큰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다음으로 소개할 레코드는?
데이브 스튜어트 & 스피리츄얼 카우보이(Dave Stewart & The Spiritual Cowboy)의 [Jack Talking]이다. ‘크로칸즈 뮤턴트(Crokan’s Mutant)’라는 바르셀로나의 작은 레코드 숍에서 구매한 레코드다. 항상 가보고 싶은 레코드 숍이었고, 심지어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으나, 랜덤하게 오픈하는 편이라 방문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 투어에서는 운이 좋게 문이 열려있어서 들어가 찾은 레코드가 바로 [Jack Talking]이다. 90년도 영국에서 제작된 레코드인데 보통의 대중적인 팝, 록이 담긴 앨범. 그러나 트랙 “Jack Talking”에 꽂혀 구매했다.
데이브 스튜어트라는 아티스트를 평소에 알고 있었나?
처음 들었다. 90년대 당시의 일반적인 팝 록 앨범에서 독특한 무드의 “Jack Talking”을 듣고 구매한 것이지. 심지어 가격이 1유로였다. 덕분에 부담 없이 구매했지. 그리고 크로칸즈 뮤턴트의 청음 방식이 독특했다. 매장의 오픈 스피커로 레코드를 들어볼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다. 내가 고른 음악을 매장을 찾은 손님들이 모두 듣는 게 처음엔 좀 부담스러웠지만, 주인아저씨가 오히려 부담 없이 들어보고 가라고 해서 편하게 디깅하다 [Jack Talking]을 찾았다.
레코드 숍에 가면 미지의 레코드가 많다. 그러한 공간에서 좋아하는 레코드를 찾기 위해 주요하게 살피는 키워드가 있다면?
보통 발매 연도랑 커버, 제목을 주로 본다. 그중에서 발매 연도를 가장 중요하게 체크하는 편. 주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후반 정도까지를 선호한다.
다음으로 소개할 레코드는?
다음은 캉테(Kante)의 [Im Ersten Licht]. 이것 역시 바르셀로나에서 구매했다. 디스코스 파라디소라는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레코드 숍에서 구매했는데 이것 또한 3유로로 싼 가격에 가져왔다. 발매년도는 2000년대. 독일 뮤지션 캉테의 애시드 재즈 같은 트랙을 담고 있는 레코드다.
애시드 재즈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 등 2000년대 초반의 사운드 자체가 힙합과 다운템포적인 느낌을 많이 갖고 있어서 2000년대의 레코드 역시 즐겨 찾는 편이다.
추천할 곡은?
“Im Ersten Licht (Sung by Frédérique of Ming)”. 지금의 일렉트로니카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게 독특한 포인트다. 무엇보다 가격이 3유로라. 이렇게 싼 레코드에서 좋은 음악을 찾을 때 기분이 너무 좋다.
다음 음반에 관한 간략한 소개 부탁한다.
샴페인(Champagn’)의 [Muffin Zouk]는 파리에서 구했다. 레코드 숍에서 구매한 것이 아니다. ‘디스코 마틴’이라는 레이블을 운영하며 집에서 프라이빗하게 사람들을 초대하여 레코드를 판매하는 아저씨가 있다고 소개받아, 거기서 구매한 레코드다. 방문하고는 깜짝 놀랐다. 집에 레코드밖에 없어서. 방에 한가득 레코드가 쌓인 것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찾는 장르를 알려주면 판을 꺼내 줬는데, [Muffin Zouk]은 그때 프렌치 힙합 레코드를 요청해서 구매했다. 주크 뮤니션 프레드릭 카라카스(Frédérick Caracas)가 참여하여 흥미를 느낀 레코드다.
어떤 트랙을 추천하나?
“I Want Your Love”. 이 트랙 하나만 듣고 구매한 거다. 앨범이 캐리비안, 카니발 느낌의 주크 트랙이라면, “I Want Your Love”에서는 힙합을 주크에 섞으려는 노력이 보였다. 프레드릭 카라카스의 레코드를 몇 장 더 갖고 있는데, 이런 힙합과 섞으려는 시도가 없어서 아주 신기했다.
주크를 평소 즐겨 듣지만, 특별히 추천할 다른 트랙은 없는가?
그렇다. 앞서 말했듯 일반적인 주크는 나에게 좀 지루하다. 그래서 “I Want Your Love”과 같은 트랙을 만났을 때 더욱 반가움이 크다.
다음으로 추천할 앨범은?
매시보(Massivo)의 [Loving You]. 추천곡은 “Loving You (Summer Breeze Mix)”이다. 좀 익숙한 음악이라 사람들이 특히나 좋아하는 것 같더라. 도입부가 비트 없이 피아노로 시작되어 클럽에서 틀었을 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하고. 인트로를 지나 ‘러빙유’라는 보컬이 등장할 때 사람들의 반응이 확실히 재밌었다. 또 ‘Summer Breeze Mix’라는 타이틀처럼 지금의 여름 날씨에 제격이다. 비트가 퍼커션을 중심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Jaezae 인스타그램 계정
Tucan Discos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황선웅
Photograpy | 김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