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가상 인물은 사실 무척 익숙하다. 소설, 시 등 문학 속 작가의 다양한 연출 안에서 연기하는 인물 그리고 만화영화나 게임 속에 존재하는 캐릭터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눈에 보이는 예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전부터 가상 인물을 경험해왔다. 강백호, 마리오, 배트맨, 어린 왕자 등 모두 가상의 인물이며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왔고 지금까지도 그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스토리를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물론 모든 창작물이 가상 인물로 기획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런 가상 인물이 이뤄낸 엄청난 성공 신화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서도 이와 같은 아이돌을 원했다. 내가 원하는 그 어떤 기획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으며, 평생 늙지도 죽지도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대중에게 끊임없이 소비되는 아이돌. 그렇게 버추얼 휴먼 아티스트는 일본의 대형기획사 ‘호리프로’의 기획을 통해 처음 데뷔한 ‘다테 쿄코’에서 시작되어 AKB48에 센터를 차지했던 ‘에구치 아이미’의 크리에이티브(그녀의 얼굴은 AKB 멤버들의 이목구비들의 장점이 모여 완성되었다고 한다)까지 현실과 가상을 오가며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 조금씩 시도되었다.
1998년, 국내에서도 사이버 가수 ‘아담’이라는 이름으로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 첫선을 보인 가상 인물은 류시아, 사이다 등 다양한 가상 인물의 데뷔로 이어졌고 2001년에 선보인 ‘나스카’처럼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이 공존하는 콘셉트의 걸그룹이 등장하는 등 나름 다양한 가상 인물 아이돌 시도가 이어졌다.
최근에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서 유사한 기획을 선보인 경우는 라이엇게임의 K/DA가 아닐까 싶다. K-POP 아이돌을 표방한 K/DA의 세계관은 온라인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Leage of Legend)’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여타 가상 인물과는 달리 실존 인물의 세계관을 별개로 설정, 개별적인 콘텐츠로도 공존함과 더불어 가상 인물과의 시너지까지 유연하게 시도하는 등 다채롭고 재미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국내 아티스트 ‘아이들’의 멤버들이 참여했다는 사실 또한 대중적으로도 흥미로운 요소였다(라이엇게임은 이런 게임 세계관을 음악과 접목하는 시도를 오래전부터 진행해왔으며 실제 음원을 발매하고 뮤직비디오를 발표하는 등 게임과 음악을 묶는 다채로운 기획을 선보이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프리BGM까지 개발해서 스트리머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도 선보였다).
최근 한 행보사의 한 광고 영상에 ‘로지’라는 가상 인물이 출연하면서 ‘버추얼 인플루언서’라는 개념이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2016년에 등장해 지금까지 300만 팔로워를 거느리며 성장한 ‘릴 미켈라’와 같이 패션과 엔터테인먼트를 오가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상 인물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기존의 캐릭터보다 훨씬 더 실존 인물에 가까운 사실감은 여러 매체가 그녀를 집중 조명할 만큼 매력적으로 어필했다. CAA(Creative Artists Agency)와 계약한 최초의 가상 인물, 유명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는 등 가상 인물이 가능한 모든 비즈니스를 혁신하고 있는 상황. 재미있는 건 그녀의 세계관에도 케이팝을 향한 애정이 담겨있다고 한다.
버추얼 엔터테이너의 계약과 관련해 최근에 중국에서 들려온 흥미로운 소식도 주목할 만하다. ‘Ha jiang’이라는 버추얼 엔터네이너가 워너뮤직 산하의 아시아 기반 댄스 레이블인 ‘Whet Records’와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최초의 음악 레이블 계약이라는 흥미로운 신호탄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콘텐츠 정보가 많이 공개되어있지는 않아서 일단은 콘텐츠를 경험해봐야 ‘Ha jiang’의 계약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언급할 수 있을 듯하다. 단, 전통적인 음악 산업을 추구하는 음악 레이블이 첨단 기술의 증거와도 같은 버추얼 휴먼과 계약했다는 이슈는 음악 산업의 다음 단계를 생각해볼 수 있는 차원에서는 눈여겨볼 만하다.
댄스 음악뿐만 아니라 힙합 신(Scene)에도 틱톡을 중심으로 왕성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는 버추얼 엔터테이너가 존재한다. 약 천만의 틱톡 팔로워를 확보한 ‘FN Meka’는 슈퍼카를 타고 다니며 명품 쇼핑 플렉스, 그리고 식스나인(6ix9ine)을 연상케 하는 괴짜다운 행동까지 여느 힙합 스타와 다름없는 라이프스타일을 공개하며 많은 팬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물론 음원도 발매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FN Meka의 음악은 AI가 제작한 ‘AI MUSIC’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손에서 나온 음악이 아니다.
AI 음악에서 하츠네 미쿠와 같은 케이스도 고도화를 거듭하고 있다. 홀로그램을 활용한 콘서트까지 펼치며 미국 최대 음악 페스티벌 ‘코첼라’에도 초대되었으나 COVID-19로 무대가 무산되었던 하츠네 미쿠는 ‘보컬로이드’라는 음성 합성 엔진의 이미지 캐릭터다. 이런 음성 합성 또한 딥러닝 기술을 통해 더욱 진화하며 버추얼 엔터테이너의 ‘음성 영역 가상화’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My name is 2021″로 소개된 이 곡은 어느 누가 들어도 에미넴(Eminem)의 “My name is”를 2021년에 다시 부른 듯 착각하게 만든다. 사실 이는 합성된 목소리로 딥페이크 음성(Deepfake Voice)이다. AI로부터 딥러닝된 에미넴 목소리의 복잡한 표현 형식을 학습, 새로운 가사에 따른 가짜 에미넴 목소리로 랩을 완성한 형태다. 만약 이런 식으로 목소리를 합성하는 AI 기술이 발전한다면 목소리까지 완전히 가상화된 버추얼 엔터테이너의 탄생을 멀지 않은 미래에 기대해볼 수도.
국내에서도 이런 버추얼 엔터테이너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아뽀키(APOKI)와 같은 경우에는 미디어와 빠르게 협업하며 엠드로메다 “It’s Live”나 M2의 “릴레이 댄스”에 출연하는 등 레거시 매니지먼트적 접근 방식도 유연하게 활용하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고, 유얼스의 경우에는 남자 버추얼 엔터테이너를 공개해 여성 중심으로 형성된 아이돌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루이의 경우에는 다른 버추얼 엔터테이너와 달리 얼굴만 딥페이크를 활용, 우리가 인식하는 가상 인간과 실제 인간의 중간 단계로 100% 가상 인간의 장점과 실제 인간의 장점을 잘 믹스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 “Her”에서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가상의 존재라는 사실을 지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와 교감을 경험하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자괴감이 들 뻔도 한 대목이다. 육체도 없는 OS와 사랑한다니… 하지만 테오도르는 그녀와 사랑하고 추억을 만들기도, 서로 싸우기도 했으며 이별 또한 그들의 페이지에 기록한다. 지금 우리 앞에 가상의 존재들이 점점 더 인격(독자적 가치가 인정되는 자격)을 갖춘 형태로 다가오고 있다.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사랑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들과 사랑에 빠질지 모르겠다. 이미 누군가는 사만다가 되어있을까?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고 만나고 싶었던 소설 속의 그, 영화 속의 그녀처럼 말이다.
버추얼 휴먼이 궁금하다면 virtualhumans.org를 찾아보길 권한다. 현존하는 다양한 버츄얼 휴먼과 그들에 관한 소식 등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