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화 번개장터에 숨은 수상한 빈티지
하이패션 브랜드가 누더기 스니커를 출시하고, 스니커 에이징 열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 다했다. 오래된 물건의 진정성을 떠나 ‘낡아 보이는’ 요소만이 패션의 가치로 통하는 세상이 온 거다. 물론 일각에서는 가난을 조롱하는 것이라 비판하는 시선 또한 존재하지만 이를 단지 관심을 끌어 모으기 위한 편법으로만 보기에는 설명이 부족하다. 실제로 패션을 좋아하고 따르는 팔로워일수록 품질 좋고 저렴한 양품의 ‘Mardi 티셔츠’보다는 헤지고, 하물며 못생겼더라도 길에서 흔하게 마주치지 않을 법한 자신만의 물건을 가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발렌시아가가 구태여 헤지고 때 탄 신발을 한정판으로 출시한 것을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오늘은 필자가 습관적으로 들락거리는 번개장터에서 앞서 살펴본 동향을 따라 숨겨진 보물을 만나기 위해 갈고닦아 온 전략과 그에 준하는 몇 가지 물품을 소개한다. 그 이름하여 “Treasure Hunter” 시리즈 1편, ‘번개장터에서 수상한 보물찾기’.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고른 제품들이라 ‘빈티지’와 구제의 가치를 구분하는 심마니들에게는 별 소득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모쪼록 헌 옷이 지닌 희소함에서 매력을 느끼는 이들에게 자신만의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작은 힌트나 공감의 글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1. 90s~00s Stussy Parody Collection
‘스투시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냐, 이미 아는걸 또 소개하네ㅋ’라며 콧방귀 뀐다면 딱히 반박할 말이 없지만… 좀 흔해진다 싶으면 그냥 무시하고 까불어버리는 우리네 ‘힙스터’스러운 버릇을 불시에 혼쭐내기 위해 쓰는 글 정도로 받아들여 달라. 이 티셔츠들이 멋진 근거에는 일단 무허가로 협업을 가장함으로써, 부틀렉 컬처를 선두한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브랜드 창립자 숀 스투시(Shawn Stussy)의 영감을 기반으로 만들었고, 제작 과정에서 제재를 당해 평소보다 더 한정수량으로 풀렸으며, 과거에는 막무가내로 훔쳐왔지만 지금은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거기에 합법성까지 갖췄다라는 것 등 두 말하면 입 아픈 이유들이 있다. 다 떠나서 ‘닌텐도 64(Nintendo 64), 구찌(Gucci), 플레이스테이션 2(PlayStation 2)를 숀 스투시도 좋아했다니! 우리에게 뭔가 공통점이 생긴 건가?’ 하는 느낌을 받게 하니, 그것만으로도 꽤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는가?
게임 산업의 부흥을 의식했는지, 최근 스투시 아카이브가 게임 회사 관련 부틀렉 제품들을 모아 이런 게시물을 올리기도. 번개장터에 아직 물품이 남아있으니 서두르자.
80년대 숀 스투시가 패트리샤 필즈(Patricia Fields)에서 구매한 불법 복제판 헤인즈(Hanes) 라벨의 샤넬 티셔츠, 이 사진 한 장만으로도 그가 부틀렉 티셔츠를 만들기까지의 영감이 설명된다.
2012년 스투시 트라이브 일원과 함께한 콤플렉스의 인터뷰에서는 부틀렉 의류에 관해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숀 스투시는 스투시가 샤넬처럼 보이길 원한 것이 아니었다. 남부 캘리포니아와 뉴욕 거리가 우리 본연의 자리지만, 그는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아우라를 원했다”
“나는 줄곧 페이크 구찌, 루이뷔통(Louis Vuitton) 아이템을 입었다. 초기 힙합 룩이다.”
“힙합은 항상 럭셔리를 추구했고, 스투시는 이를 리믹스하는 영리한 방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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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얘기가 나왔는데 퍽트(fuct)를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또 아쉽다. 패러디 티셔츠는 물론 티셔츠 훔치기를 조장했던 90년대 OG티셔츠들도 번개장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퍽트의 OG티셔츠가 멋있음에 대해 구구절절 설파한 글이 보고 싶다면 여기에서 확인해보자).
2. Licensed Goods (Korea)
이번엔 한국의 라이선스 굿즈로 넘어가 보자. 앞에서 이야기한 미국발 패러디 제품들을 보고 자국의 산업에 경의를 표하는 행위가 멋있다고 생각했다면, 우리 주변도 다시 한번 돌아보자는 거다. 패러디에서 라이선스로 이야기가 널뛴 것은 한국의 부틀렉 문화에서 희소성을 논하기엔 아직 그 역사가 짧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말이 좋아야 라이선스지 소위 판촉물 티셔츠라 불리는 물건도 포함했다. 이런 물건들에 대한 평가는 사람 by 사람으로 갈리겠지만, 특정한 시기를 기념하기 위해, 또는 자사를 홍보하기 위해 소량 찍은 한정판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져볼 법하다. 또 아래에 소개할 미국, 일본에서 건너온 물건보다 오히려 참신하면서도 한국 제품이라 더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게 라이선스, 오피셜 출시, 기타 판촉물 티셔츠라는 키워드로 찾은 백남준 시계, 93년도 엑스포 꿈돌이 모자, 2002년 한일 월드컵 열쇠고리, 88 올림픽 시계, KT 판촉물 티셔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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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Licensed Goods (USA/Japan)
VISLA매거진에서 다룬 바 있는 애플(Apple) 라이선스 제품군을 비롯해 닌텐도, AT&T 등 이미 해외에서는 따로 이러한 굿즈만을 모아 방출하는 플랫폼만 있을 정도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는 물건들을 번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이미 수집의 가치가 인정받고 있는 영역이라 의외로 할 말이 별로 없다. 글을 쓰다 보니 안타깝게도 품절된 제품도 있다.
그 밖에도 미제 라이선스 티셔츠를 탐험하다 보면 오니타(Oneita), 프룻 오브 더 룸(FRUIT OF THE LOOM), 져지스(Jerzees), 헤인즈, 벨바 쉰(VELVA SHEEN) 등 미국발 블랭크 티셔츠의 택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러한 택들을 따라가다 보면 근본과 재미있는 그래픽을 동시에 챙기는 알찬 쇼핑이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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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erchandise T – Shirts
이미 패션에서 고전이 된 밴드 머천다이즈 티셔츠는 각 밴드를 존경한다는 존중의 의미를 넘어 나만의 취향과 멋을 표방하는 과시욕을 드러내기에 아주 적합한 물건이 되었다. 과거에는 뮤지션들이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기획한 물건이 시간이 흘러 팬들에게 이들의 음악을 듣는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뽐낼 수 있는 기회로 그 의미가 역전된 것이다.
필자는 밴드 티셔츠 관련해서는 잘 모르기에 한때 블랙 메탈 티셔츠를 착용한 이력이 있다는 VISLA의 황선웅 에디터의 도움을 얻어 몇 가지 골라보았다. 이중 본인의 취향적인 자부심을 자극하는 밴드나 뮤지션이 있는지 고민해보라. 선뜻 티셔츠를 구매할 만큼이나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 건지 스스로 의심이 간다고? 괜찮다. 그런 고민을 한다는 점에서부터, 당신은 이미 더닝 크루거 효과에서 ‘아는 게 없음’ 구간은 벗어났다. 상단 슬라이드에 소개한 이들 외에도 관심이 가는 뮤지션이 있다면 번개장터에 검색해보길 권한다.
5. 90~00s Scene
우라하라 신(Ura-Hara)과 같이 특기할 만한 시대적 배경을 지닌 제품들. 브랜드를 형성하기 훨씬 이전부터 후지와라 히로시를 중심으로 잡지에 실릴 음악과, 패션 등을 큐레이팅 해온 니고, 준 타카하시(Takahashi Jun) 등 우라하라 신의 주역들은 본인들의 브랜드를 만든 이후 잡지와 칼럼을 통해 직접 그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따라서 당시 특기할 만한 제품들을 우리는 오래된 잡지를 스캔한 기록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을 번개장터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 흠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당시의 전략 자체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소수만이 선점할 수 있는 제품을 소량만 비싸게 판매하는 것이었기에 따지고 보면 당시 정가에 비해서 리셀가가 높게 형성되지 않은 것이라고 행복 회로를 돌려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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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 스포츠
에어조던 크로스백 / 더플백 스몰 / 스우시 플리스 비니 / 롱 슬리브 / 반바지 / 스윔팬츠
일본만 짚고 넘어가긴 아쉬우니까, 우라하라와 비슷한 시기에 나이키 코리아 이전에 삼나 스포츠로 들여온 나이키 제품들도 살펴보자. 기분 탓 일진 모르겠지만 제품 실루엣이나 패턴, 색상이 구수하다. 대놓고 올드스쿨을 지향한다는 느낌이 조금은 부담스러울지라도, 89년에서 94년까지 단 5년간 출시된 한국판 나이키 제품들이라는 게 좀 특별하지 않나. 각자의 감식안을 믿고 잘 살펴보다 보면 이거다 싶은 물건을 만날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각종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며 번개장터에서 보물인 듯 보물 아닌, 누군가에게는 보물이 될지도 모를 물건들을 찾아보았다. 막상 찾은 물건들을 돌아보니 오래된 물건이면서도, 가격 또한 만만치 않아 저렴한 중고 구매를 기대하고 온 이들에게 같은 구매자 입장으로서 달갑지 않던 ‘가치를 아는 분만 연락 주세요’와 같은 얄미운 말을 써재낀 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편으로는, 좋은데 싼 건 잘 없다고 입 모아 말하는 빈티지 마니아들의 견해가 떠오르기도. 다음 회차에도 번개장터에서 보물을 찾기 위한 VISLA의 여정은 이어진다.
Editor │ 한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