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지 주위로 자리한 개성 넘치는 공간을 소개해 온 시리즈 ‘돌아가는 삼각지’의 마지막 공간으로는 초록색, 흰색, 빨간색의 조화로운 간판이 시선을 사로잡는 포카치아 전문점, 포카치아 델라 스트라다(FOCACCIA della STRADA)를 찾았다.
지난 십수 년간 운영자 반주형이 이탈리아에 푹 빠져지내며 갈고닦아온 내공은 포카치아의 폭신한 식감과는 상반되게 두텁고 단단했다.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가장 친숙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그와 나눈 대화를 함께 음미해 보자.
포카치아 델라 스트라다는 어떤 공간인가,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로마식 피자 일컫는 ‘포카치아(focaccia)’ 전문점, 포카치아 델라 스트라다를 운영하고 있는 반주형이라고 한다. 대학생 때부터 이탈리아 음식의 엄청난 팬이었기 때문에 꾸준히 이탈리아를 여행해 왔고, 그곳에서 직접 빵을 배워 이 공간을 열게 됐다.
무턱대고 타국으로 떠나 일을 배운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이탈리아까지 가게 됐나.
아무 기반도 없이 떠났다. 어학원에서 이탈리아어를 3개월간 공부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거의 20년 가까이 매년 이탈리아를 여행했기에 진짜 이탈리아가 어떤 곳인지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한국 이탈리아 음식 시장에 어떤 빈틈 같은 곳이 보이기도 했고, 그걸 누군가가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막상 그곳에 가서는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도 사람이 절실하니 다 하게 되더라. 어차피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지 않나. 눈으로 배우며 열심히 따라갔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포카치아 전문점’이다. 가장 이탈리아스러운 음식으로 대표되는 피자, 파스타 등 대신 포카치아를 택한 이유가 뭔가.
일단 훨씬 더 대중적이라 생각했다. 한국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가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하면 ‘핵심적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라는 건데, 사실 이탈리아 음식은 다양성이 핵심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화덕 피자는 굉장히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보통은 ‘피자는 화덕 피자가 진짜고 나머지는 다 가짜다’라는 식으로 줄 세우는 걸 좋아하지 않나.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게 참 이상하더라고. 이탈리아는 지역색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나폴리식 피자를 싫어하는 사람도 정말 많다.
포카치아는 요즘 들어 이탈리아에 많이 퍼지기 시작한 형태의 트렌디한 피자다. 흐름도 흐름이지만, 조각으로 팔거나 저렴하게 팔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폴리 화덕 피자집은 뭔가 장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느낌이 있으니까. 진짜 이탈리아 음식을 하려면 길거리 음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카치아 델라 스트라다를 이탈리아어로 직역하면 ‘거리의 포카치아’다. 이탈리아에서는 그만큼 친숙한 스트리트 푸드인가.
정확히 말하면 로마에서 친숙한 스트리트 푸드다. 이탈리아 전역으로 유행이 퍼지고 있기는 하지만 유행이 워낙 느린 나라니까. 로마에서는 한 블록마다 몇 군데가 있을 정도로 친숙하다.
한국에서 스트리트 푸드라고 하면 미국식 혹은 멕시코식으로 치즈가 잔뜩 들어간 음식이 대부분이지 않나. 미식적인 측면이나, 건강을 생각했을 때 거기서 조금 더 업그레이드가 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었다.
‘유럽 음식’ 하면 파인 다이닝을 많이 떠올리는데, 사실 파인 다이닝은 프랑스 문화다. 이탈리아는 좀 더 서민 음식이 발달한 편이라 방금 얘기한 것처럼 ‘진짜 이탈리아 음식을 하려면 스트리트 푸드를 해야 한다’라고 한 거지. 포카치아 델라 스트라다는 단순히 각 잡고 데이트하러 오는 이탈리아 음식점이 아니길 바랐다.
사실 국내에서는 포카치아보다 피자가 더 익숙하기에 전형적인 피자를 생각하고 도전한 이들이라면 생각과 다른 맛에 놀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에야 포카치아 델라 스트라다가 많이 알려져 보통은 그 맛을 알고 찾아오는 것 같지만,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그 부분이 걱정이었다. 사실 정확히 하자면 포카치아 또한 로마에서는 피자로 불린다. 하지만 한국에서 ‘피자’라고 하려니 선입견이 생길 것 같더라. 흔히들 생각하는 피자의 이미지가 있으니까.
정확히는 포카치아가 피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납작한 형태의 빵을 모두 포카치아라 부르고 그 위에 소스를 얹으며 발전하기 시작한 게 피자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원류의 이름을 가져다 쓰는 게 사람들의 선입견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했고, 실제로 적중했다. 그리고 실제 로마식 포카치아가 어떤 건지는 잘 몰라도 눈앞에 음식이 디스플레이돼 있으니 확인할 수 있지 않나.
삼각지에 자리한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지금처럼 삼각지가 주목받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음식을 주문 받고 그다음 조리에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다 보니 피자가 한 번에 팔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동 인구가 많은 회사원 상권을 돌아다녔는데 보통은 밤 문화가 발달한 곳이더라. 반면에 삼각지는 새롭게 떠오르는, 그리고 비교적 깔끔한 회사원 상권이었다. 삼각지가 유일한 선택지였지.
포카치아 델라 스트라다를 운영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타코 전문점을 운영했다고 들었는데, 돌연 이탈리아로 떠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렸을 때부터 언젠가는 음식 관련 일을 해야 된다고 계속 생각했고 우연히 타코 전문점을 운영했다. 하지만 워낙 이탈리아 덕후였던지라 정말 만들고 싶은 음식으로 장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탈리아로 떠났다. 갑자기 떠난 건 아니고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천생 장사꾼의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음식 혹은 경영을 전공했나.
전혀 아니다. 철학을 전공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이 이탈리아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는 좀 뒤처지는 것 같이 보이지만, 반대로 현대 사회가 누리는 모든 문화의 근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이탈리아 아니면 그리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집트다. 이탈리아는 이 근본적 요소를 모던하게 잘 정리한 나라기 때문에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거지.
‘근본’에 충실한 포카치아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자면?
재료가 지나치면 안 된다. 이탈리아 음식은 심플함이 중요하다. 재료를 3, 4개 이상 섞으면 서로의 맛을 방해한다. 그리고 토핑 간의 완벽한 조화.
포카치아 델라 스트라다는 포카치아도 포카치아지만 디아도라(Diadora), 콤팩트 레코드 바(kompakt record bar)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해 왔다. 음식점을 넘어 하나의 문화 공간을 바라고 있는 건가.
문화 공간까지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귀여운 무언가가 혹은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무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진행하게 된 거다.
문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매장 내 축구 유니폼이 눈에 띈다. 이탈리아와 축구,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가지인데 축구가 이 공간에 어떻게 녹아들길 바라나.
사실 나는 축구 팬이 아니다. 단지 이탈리아 축구 유니폼을 선물로 받아 걸어뒀는데, 처음에는 나폴리 유니폼만 걸어두니 로마 분들이 와서 화를 내는 거다. 그래서 저번 이탈리아 여행 때 토티 이름을 마킹한 AS 로마 유니폼을 사 왔다.
앞으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몇 가지 단추를 준비해 뒀다. 이걸 모두 꿰면 한 벌의 옷이 완성될 수 있게 구상 중이다. 바로 다음이라면 아마 디저트가 될 것 같다. 요즘 한국식 에스프레소 문화가 생겨나고 있지 않나. 매장을 둘러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샌드위치를 파는 곳인데도 커피가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짠 음식과 커피를 곁들이는 걸 이상한 문화로 생각한다. 커피는 항상 단 디저트와 곁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다음으로는 이탈리아식 커피와 디저트를 소개해 볼 생각이다.
또 다른 한 가지라면 이탈리아식 빵이다. 길거리 음식의 근간에는 항상 빵이 있다. 근데 이 빵도 유럽 사람들도 서로 모를 정도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래서 아직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빵들을 소개하려 한다.
FOCACCIA della STRADA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장재혁
Photographer | 전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