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삼각지 #2 Dragonhill Printshop

삼각지에 터를 잡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이들을 조명하는 시리즈 ‘돌아가는 삼각지’. 그 두 번째 주인공은 쿤스타시(Kunstash)에서 고작 몇 계단 위에 자리한 삼각지 2번 출구 바로 앞의 노란 가게, 드래곤힐 프린트샵(Dragonhill Printshop)이다.

‘프린트샵’이라는 이름답게 진(Zine)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이지만, 미국의 한적한 시골 카페를 연상케하는 비주얼에 동네 어르신들마저 발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보는 모습이 꽤 정겹다. 이 미스터리한 공간을 찾아 운영자와 담담한 대화를 나눴으니 함께 음미해 보자.


드래곤힐 프린트샵은 어떤 공간인가, 간단한 본인 소개도 부탁한다.

드래곤힐 프린트샵을 운영하고 있는 임재호라고 한다. 드래곤힐 프린트샵은 삼각지 2번 출구 앞의 노란 가게, ‘진’과 ‘DIY 문화’를 지향하는 카페 겸 커뮤니티 공간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프린트’ 즉 어떤 출판물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일 것 같은데 외부에서 보기에는 미국 어느 골목에 자리한 카페 같다. 어떤 의도에서 기획된 인테리어인가.

‘프린트샵’은 진 관련 제작과 유통 업무를 주(主)로 하기 때문에 정한 이름이다. 원래는 ‘Zine 프린트샵’이어야 하지만, 간편하게 하려다 보니 ‘Zine’이라는 중요 단어를 빼버렸고, 그 때문에 평범한 인쇄소 겸 카페로 오해받는 일이 자주 있다.

인테리어의 경우 어떤 문화적 연결점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개인 취향 중 하나를 따랐다(물론 길고 긴 DIY 공사였다). 여러 요소가 중구난방으로 배치된 것처럼 보이지만 한 사람이 만들어낸 만큼 부딪치는 부분 없이 잘 섞어내었다고 생각한다.

숍에서의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이벤트나 진 제작 등에 관한 기획, 그에 필요한 디자인 업무, 카페 영업과 관련한 끊임없는 노동, 주어지는 관심에(아직은 조금이지만) 대응하기, 잠시 짬이 나면 이베이나 일옥(일본 옥션) 구경하기.

특별히 삼각지, 그것도 역 바로 코앞의 위치를 택한 이유가 있나.

‘멋진 동네’를 조금이라도 벗어나 보려 했다. 한남동에 처박혀서 몇 년을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지냈는데, 그러다 보니 ‘이렇게나 좁은 세계에 서서히 가라앉고 있구나’ 하는 공포가 느껴졌다. 그래서 가깝지만 아주 다른 동네, 바로 옆 삼각지로 시선을 돌렸다.

지인들은 알겠지만 오랜 시간 방구석 놈팡이처럼 살아온 내게는 이조차도 크고 장대한 모험 같은 일이었다. 그래도 기왕 하는 김에 역 앞에 문을 열어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위치도 아주 무리해서 좋은 곳으로 골랐지.

동네 어르신도 드래곤힐 프린트샵을 궁금해하시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실제 이곳을 찾는 이들은 어떤 부류인가.

어떠한 부류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아직은 가게를 서포트해 주기 위해 일부러 들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세상엔 이렇게나 다양한 분들이 많았구나’ 싶을 정도다. 대뜸 자신의 정치 성향부터 들이밀며 커피 가져오라는 노인들부터, 근처 표구사에 들렀다 이곳에서 그림을 팔 수 있을지 묻는 화가, 역 앞의 다양하고 다양한 시위 참가자, 그들을 통제하는 경찰, SNS나 블로그를 보고 찾아와서는 감동하거나 실망하는 젊은이, 무언가에 감탄하고 즐거워하거나 큰 소리로 트집을 잡는 회사원, “여기 들어가도 되나요?”라며 겸언쩍게 묻는 행인까지.

드래곤힐 프린트샵을 운영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나크 프로덕션’이라는 커뮤니티에서 티셔츠, 진 등을 만들어 팔았고 이벤트 기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헬리콥터 레코즈(Helicopter Records)의 박다함과 함께 ‘용산 브로드캐스팅 시스템(YBS)’라는 영상 프로덕션에서 영상을 기획, 제작하기도 했고. 디자인, 기획 같은 일을 했다고 하면 멋져 보일까나.

미국에서도 쇠퇴해 가는 진 문화를 굳이 한국으로 가져왔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 이유가 궁금한다.

쇠퇴한다기보다는 유행의 최고점을 이미 한참 전에 찍었다고 할까. 진을 만들거나 DIY 문화를 지향하는 게 더 이상 “와, 존나 쿨해 보인다”라는 건 아니라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 문화 속에 자리하려고 노력하는 건 스스로가 뿌듯하게 느껴지는 일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유행을 좇거나 유행에 좇기며 다양한 모습을 판단해왔고, 여전히 그런 습관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것을 벗어나고 있구나, 내가 있고자 하는 장소를 찾아냈구나’하는 기분이 든다.

본인이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첫째는 DIY 프로젝트로써 얻을 수 있는 순수한 창작의 기쁨. 둘째는 검열 없는 자유.

최근 서울 내에도 진을 취급하는 편집숍, 서점이 늘고 있다. 한국에서 진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보는지.

아니라고 생각해서 가게를 열었다.

드래곤힐 프린트샵 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진 하나를 소개해 줄 수 있을까.

묘카하라(Myokahara)의 진. 최근 아티스트 김윤기와 함께 ‘Synthesizer’라는 이름의 진을 만들었다. 김윤기의 그림과 사진, 시 가 뒤섞인 멋진 진이었는데, 그것을 읽은 묘카하라가 다음날인가 그에게 주고 싶은 답시라며 진 몇 개를 들고 왔다. 그녀의 오래된 작업물과 최신 작업 그리고 휘갈긴 여러 개의 시들을 엉망으로 엮은 진이었다. 김윤기도 나도 그것들을 즐겁게 탐독했고, 그 둘은 친구가 됐다.

최근 몇 차례 이곳에서 열린 로컬 아티스트들의 공연으로 미루어 보아, 단순 진 소개 외에도 현재 다양한 일을 벌이려는 듯한데, 드래곤힐 프린트샵이 복합적인 문화 공간 또는 일종의 대안 공간으로써 자리하길 바라고 있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또는 그러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통해 소통하며 관계를 맺거나, 싸우거나, 영감을 주고받았으면 한다. 그런 공간이 되길 바란다.

드래곤힐 프린트샵을 통해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료(에 가까운) ‘진 만들기’ 워크샵!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쁨을 공유하고 싶다.

Dragonhill Printshop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장재혁
Photographer | 전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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