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복싱 대결을 유쾌하게 그린 단편 “Rocky VI”

굳이 복싱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이 OST, “Gonna Fly Now”를 들어본 이라면 한 번쯤 살며시 주먹을 쥐어보거나 스텝을 밟아봤을 테다.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Sylvester Stallone)은 영화 “록키(Rocky)”를 통해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성공을 이뤘다. 이후 그의 무명 시절이 조명되며 그의 이야기는 더욱 드라마틱한 전개를 지니게 되었고, 그렇게 실베스터 스탤론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복서’가 됐다. 성공의 맛이 너무 달콤했던 탓일까, 실베스터 스탤론은 1980년부터 직접 메가폰을 잡으며 “록키 2″를 시작으로 2006년 개봉한 여섯 번째 록키 시리즈 “록키 발보아(Rocky Balboa)”까지 장대한 우려먹기 여정에 돌입한다.

물론, 속편은 전편보다 못하다는 통념을 깨고 나름 의외의 흥행 성적을 계속해서 거두던 “록키”지만, ‘나락으로 떨어졌다 재기’하는 불변의 레퍼토리에 불만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를 보기 좋게 비꼰 단편 영화가 바로 핀란드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Aki Kaurismäki)의 “Rocky VI”다(혼돈을 피하기 위해 실베스터 스탤론의 영화를 한글로,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를 영어로 표기한다). 해당 영화는 1985년 개봉한 실베스터 스탤론의 “록키 4″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4를 뜻하는 로마 숫자 ‘IV’를 뒤집어 영화 타이틀 “Rocky VI”를 완성했다. 실제 여섯 번째 록키 시리즈는 앞서 언급한 “록키 발보아”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타이틀 뿐 아니라 영화의 내용도 뒤집어 그만의 블랙 코미디식 유머를 녹여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두 국가의 대결 구도를 그린 “록키 4″의 플롯을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맥도날드 화장실에서 태어난 미국인이 시베리아 대초원에서 절인 양배추를 먹고 자란 거인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유쾌한 물음을 던진다. 그로 인해 록키가 시베리아 설원, 러시아의 이반 드라고가 최첨단 시설을 기반으로 훈련했던 “록키 4″와는 반대로, “Rocky VI”에서는 거대한 송충이 눈썹의 복서 ‘이고르’가 눈썰매를, 비쩍 고른 미국 복서 록이(Rock’y)를 사이클 머신을 타며 대결을 준비한다.

또한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스타의 삶을 즐기는 록이와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사진 앞에 얌전히 앉은 이고르를 연달아 보여줌으로써 두 국가의 상징적 이미지를 재치 있게 대변했다. 링 위에서 역시 패러디는 이어진다. 록이는 록키의 성조기 패턴 쇼츠를 그대로 따라 입었으며, 이고르는 소련의 낫과 망치를 질펀한 엉덩이 위로 걸쳤다. 마치 슬랩스틱을 연상케 하는 엉성한 몸짓이 웃음을 자아내는 가운데, 카우리스마키의 단편 속 경기는 원작과는 다르게 일방적으로 흘러간다. 족히 30kg 이상은 차이가 나 보이는 두 배우의 체형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반전 없이 록이가 이고르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실려나가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담아냈다. 한 인터뷰에서 카우리스마키는 “자본주의는 범죄다”라고 언급한 걸로 미루어 보아,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국가 미국을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면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이야기는 아니니 안심하자.

이는 영화의 제작 배경에서 알 수 있다. 사실 “Rocky VI”는 카우리스마키의 단편인 동시에 핀란드 괴짜 록 밴드 레닌그라드 카우보이(Leningrad Cowboys)의 뮤직 비디오이기도 하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는 또 다른 핀란드 코미디 록 밴드 슬리피 슬리퍼스(Sleepy Sleepers)의 멤버 사케 야르벤파(Sakke Järvenpää), 마토 발토넨(Mato Valtonen)과 카우리스마키가 기획한 밴드로, 세 사람이 술집에 모여 소련의 세력이 약화되는 실정을 농담 삼아 이야기하던 중, 영화를 찍던 카우리스마키가 졸지에 뮤직비디오 감독이 된 것이다. 카우리스마키는 이를 통해 냉전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냄과 동시에 (짐작컨대) 평소 아니꼽게 보던 ‘감독’ 실베스터 스탤론을 골려주려던 게 아닐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후에 레닌그라드 카우보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그의 1989년작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Leningrad Cowboys Go America)”의 관련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실베스터 스탤론 영화 이후에 최악의 영화다”라며 스스로를 깎아내림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밑에는 실베스터 스탤론이 버티고 있다는 식의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Leningrad Cowboys로 이름을 바꾸기 전에 발매한 세 사람의 “Rocky VI” 사운드트랙.

어쨌거나 저쨌거나, 레닌그라드 카우보이를 등에 업은 “Rocky VI”는 경쾌한 글램 록 사운드를 탑재한 음악 영화로도 손색이 없는 듯하다. 흥겨운 리듬에 맞춰 맥 빠지게 두들겨 맞는 록이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하단 영상을 통해 아키 카우리스마키식 유머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이미지 출처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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