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ater Spotlight EP. 03-2 박해상 & 이찬희

사계절이 특히나 뚜렷한 한국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좋은 계절은 단연 봄과 가을이라 말하고 싶다. 어느 완연한 가을날 각자 나름의 한 해를 보내고 있는 네 명의 동갑내기 스케이터 유지웅, 연경호, 박해상 그리고 이찬희를 만났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한국 생활에 적응 중인 이찬희와 언제부턴가 서서히, 그리고 묵직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박해상. 첫 성년을 맞은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교복을 벗고 트랙 바깥에서 선 이들이 각자 어떤 길을 향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유지웅과 연경호의 이야기는 Skater Spotlight EP.03-1에서.


박해상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올 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된 박해상이다.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면서 스케이트보드도 타고 있다.

어느덧 2023년도 꽤 지나고 겨울이 왔다. 교복을 벗고 성인이 된 소감이 있다면?

솔직히 처음엔 스무 살이 된다는 게 무서웠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품을 떠나 자립해야 한다는 점에서 책임감도 느끼고 막연히 두려웠다. 그런데 막상 졸업 후에 직접 세상에 부딪혀 보니 마냥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학생일 때와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고등학생 시절엔 제때 밥도 주고 수업을 비롯한 교육도 받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만 했는데 성인이 되고 나니 그런 규칙들이 사라져 버렸다. 내 맘대로 자고 일어나고 밥을 거르더라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고. 나를 이끌어 줄 사람이 없으니 자유로움을 느끼지만, 한편으론 자유롭게 지낸다는 게 좋은 점만 있는 게 아니라 양날의 검 같기도 하다. 간섭 없이 원하는 것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잃는 것들도 있는 거지.

이런 부분들 때문에 스스로 규칙들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고 직접 루틴을 만들어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계획 없는 자유보다는 계획을 짜고 그 안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는 게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즐기고 있다.

친구들은 보통 대학에 있을 시기에 또래와 다르게 일을 바로 하게 된 계기가 있나?

고등학교 2학년 때였나… 대학교에 가기 위한 동기부여가 없었다. 주변에 나처럼 일하며 잘 지내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스스로도 ‘굳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대학을 무조건 나와야 할까?’라는 질문에 그게 어느 정도 답이 됐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직업 전문반에 신청해 교육받았고 조주기능사, 소믈리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해 호텔에서 바텐더로 일하게 됐다.

그런데 막상 호텔에서 일해보니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나는 독립적인 걸 추구하는 성향인데 거기엔 무리 지어 다니는 문화가 강했다. 나는 보드도 타야 하고, 다른 걸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 업무시간 외에는 집단에서 빠져나와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업무상 작은 실수도 뒤에서 돌고 돌아 어느새 내가 이상한 애가 돼 있더라. 존나 억울했고 그런 부분이 싫어서 그만뒀다. 그리고 쉬면서 보드 타고 놀러 다녔다.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가지는 완전한 자유시간이랄까.

누구나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걸 잔뜩 해본 경험은 어땠나?

계획이 없으니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오롯이 시간을 쓸 수 있어서 뭔가 집중하기엔 매우 좋은 시간이었다. 보드 타고 클럽 가서 놀고 술 마시고 그 당시에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재밌었지. 그런데 뒤돌아보니 어느새 통장 잔액은 점점 줄어가고 수입이 일정치 않으니 불안감도 함께 커졌다. 부모님께 용돈도 받는 또래 친구들도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적더라도 수입이 생기면 부모님께 용돈을 챙겨드리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 한 달 정도 쉬니까 일하지 않고 노는 게 부질없다고 느껴져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됐지.

삶에서 일의 비중이 꽤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다시 시작한 일은 어떤가?

현재는 성수동의 쁘띠 다이너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세이버스케이트숍의 이원준 대표의 소개로 일을 시작했는데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일하니 편한 느낌도 들고 일에서 배울 것들이 많았다. 호텔에 있을 때보다 훨씬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일하면서 얻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덕인지 일 시간 외에도 자기 계발도 하고 생산적인 생활을 하려고 한다.

일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부분이 흥미롭다. 자기 계발은 어떤 것을 하나?

3D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3D 아트웍 제작을 위한 프로그램을 배우는 중인데 프로그램이 있는데 기능도 다양하고 배워야 할 게 많다. 무엇보다 창작 활동을 한다는 게 너무 재미있다. 3D라는 분야가 그래픽, 영상, 애니메이션 등 여러 분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도 하고… 뭐 아직은 찰흙 놀이 수준이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실력이 쌓이고 좋은 기회가 올 거라고 믿는다.

일도 하고 있고 이것저것 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것 같은데 요새 보드는 자주 탈 수 있나?

물론이다. 쉬는 날에는 비만 오지 않는다면 무조건 탄다. 보통 오후 9시에 직장이 있는 성수에서 퇴근하면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는 뚝섬 스케이트보드 파크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 자정 가까이 되어서 집에 돌아오면 다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데 몸이 피곤하긴 하지만 꾸준히 느끼는 성취감이 이런 생활의 원동력이 된다. 솔직히 하루가 너무 짧다.

많은 걸 할 수 있는 체력이 부럽다. 일과 스케이트보딩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 있나?

딱히 그런 건 없는 것 같다. 체력이 남으면 보드 타러 가는 거지. 그런데 재밌는 점은 스케이트보딩에 집중하면 오히려 힘이 더 나는 것 같다는 거? 집에 돌아와서는 스트레칭을 꾸준히 해주고 있는데, 다음날 일도 하고 다시 보드도 타려면 규칙적인 컨디션 조절이 필수랄까.

컨디션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하기엔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는 것 같은데, 인터뷰 동안 몇 개비나 피웠나?

맞는 말이다. 오늘 담배를 좀 태우긴 했다. 줄이려고 노력은 하는데 잘 안된다. 그래도 일할 때와 보드 탈 때는 거의 피우지 않는다. 술도 가끔만 마시는 편이고. 종종 줄넘기도 하는데 유산소 운동을 좀 더 해야 할지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쉬는 날이 없는 것 같다. 쉬는 시간은 없나? 쉴 때는 무엇을 하나.

보드 타는 게 쉬는 거지. 물론 보드 타고 집에서 누워있는 시간도 쉬는 시간인데 이때는 보통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다. 요즘은 마이클 투히그 클라리사의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이란 심리학 서적을 읽고 있다. 평소에 항상 긴장하는 편인데 독서를 하면 생각도 정리되고 차분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일, 스케이트보드, 공부 다시 일 세 요소가 눈에 띈다. 스무 살 박해상에겐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모두 중요한 요소지만 역시 스케이트보드다. 식상한 답변이지만 스케이트보드 위에 있는 것 자체가 즐겁다. 계속 무언가 도전할 수 있는 부분에서 내면의 무언가 일깨워 주기도 하고. 트릭을 시도하고 성공할 때마다 얻는 크고 작은 성취감에서 스스로 재충전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스케이트보딩은 무엇보다 굉장히 좋은 신체활동이다. 여러 활동을 하면서 쌓였던 부정적인 에너지를 방출하는 느낌이랄까, 채 풀지 못한 에너지가 스트레스로 변하는 느낌인데 그걸 없애는데 이만한 게 있나 싶다.

바쁜 일상에서 남는 시간에 보드만 타면 사람들과 교류는 잘하고 있나?

지금까지 삶의 대부분 요소가 스케이트보드와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변엔 다들 스케이터들이지. 보드를 타지 않더라도 이런 문화에 관심을 가지거나 존중해 주는 사람들이거나. 종종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는데 내가 보드 탄다는 걸 알면 그분들이 공통으로 “넘어지면 창피하지 않아요?” 라거나, “다치면 어떡해요?”, “타고 싶은데 부끄러워서 못 하겠어요.” 등의 질문들을 하곤 한다. 내용이 한결같아서 스케이트보드를 탄다는 게 이런 이미지구나 싶다.

그런 질문들을 받으면 어떻게 하나?

모든 질문에 답변하진 않지만, 당연히 터무니없이 넘어지면 나도 창피하다. 다치면 아프기도 하고 짜증도 난다. 그래서 더 열심히 타려고 노력하는 거지. 이런 부분들은 공부나 일처럼 삶의 다른 부분들과 비슷하다고 본다. 문제를 틀리거나 일을 실수해서 깨지면 더 잘하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지. 스케이트보딩은 여기서 몸이 좀 더 다칠 수도 있다는 거? 그럼 다시 일어나서 시도하면 된다. 그러면 넘어진 것도 창피한 것도 잊히고 성공만 기억에 남겠지.

그렇다면 박해상에게 스케이트보딩은 단순히 취미인가? 아니면 일인가? 스케이트보드로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말해달라.

어린 패기일 수도 있지만, 스케이트보딩이란 나에겐 취미이자 끝까지 가져갈 삶의 요소이다. 내가 만족할 만한 비디오 파트를 만들고 싶은데 나만의 색이라고 해야 하나, 본연의 스타일이 담긴 스케이트보딩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싶다.

현재는 직장 옆 세이버스케이트숍 친구들과 같이 보드 타면서 비디오 클립을 몇 개 남겼고,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목표를 이룬 다음에는 거기서 얻은 것들로 또다시 새로운 목표가 생기겠지.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 거 같은가?

재미없는 호텔에서 바텐더 일하면서 번 돈으로 다시 술이나 마시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보다 좋은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개인으로서 원하는 목표가 있다면?

나만의 것을 만드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믿는다. 그게 스케이트보딩, 커리어, 창작물, 무엇이 되었든 거기에 박해상이라는 사람만의 무언가가 있기를 바란다. 그걸 위해서 꾸준히 나의 길을 찾는 수밖에. 억지로 다른 이들과 템포를 맞출 필요도 없고 스스로 하나씩 성취하고 느끼면서 사는 게 목표다.


이찬희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이찬희이다. 스무 살이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일본 가와사키 출신이고 작년 4월에 한국에 왔다. 현재 매뉴얼 디스트리뷰션에서 스폰서를 받고 있다.

일본에서 왔다니 그럼 재일한국인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일본 가와사키시에서 태어났다. 부모님 두 분 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셨는데 아버지께서 일본에서 일하게 되면서 가족이 일본에 오게 되고 내가 태어났다. 누군가는 나를 재일교포라고 하는데 이게 맞는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 굳이 따지자면 가와사키 토박이이긴 하다.

한국에 온 지는 얼마나 되었나?

작년 4월에 왔으니 1년 반쯤 된 것 같다. 한국 생활이 재밌다. 스케이트보드 스팟도 많고, 어릴 적부터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 영향인지 이곳의 음식도 입에 잘 맞다.

사실 예전부터 한국에서 살고 싶었다. 어릴 적에 친척댁에 방문하기 위해 몇 번 한국에 방문했는데 많은 게 맘에 들었거든. 그래서 어머니께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다니면 안 되냐고 물었는데 단칼에 거절당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한국말도 못 하는데 한국으로 가면 이지메 당할까 무섭다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이라 결국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국으로 왔다.

한국말을 못 한다고 하기엔 꽤 유창하게 인터뷰하고 있다. 어떻게 공부했나?

원래 집에서 부모님께서 서로 한국어로 소통하기에 들으면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는 있었지만, 말은 거의 못 했지, 가와사키에서는 한국어를 쓸 기회가 거의 없으니까. 그리고 한국에 와서 부산 이모 댁에서 지냈는데, 거기서 살면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입이 터졌다. 그즈음에 이모가 “너 일하고 와. 한국에서 일하면 한국어 많이 늘 거야”라고 말했다. 그래서 양양으로 가서 일하면서 한국어가 좀 더 편해진 것 같다.

부산에서 양양까지, 거기서 무엇을 했나?

양양에서 서핑 강습을 하는 일을 했다. 어릴 적 가와사키 근처에 에노시마에서 서핑을 좀 배웠는데 일에 꽤 도움이 되었다. 말도 익숙하지 않고 매일 바다에 들어가는 게 힘들긴 했지만, 초보자 위주로 가르치니 아주 어렵진 않았다. 게다가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니 말도 엄청나게 늘었다. 거기서 제일 막내였는데 형들이 잘 대해줘서 좋은 기억들이 많다. 가끔 또 가고 싶다. 일하러 가는 건 말고.

일본과 한국의 생활에서 느끼는 큰 차이점이 있다면?

일단 교통비가 싸서 좋다. 비교적 부담 없이 이동할 수 있으니 보드 타기도 좋고, 일본에서는 길에서 보드 타는 게 빡빡하다. 푸쉬오프만 해도 경찰이 와서 타지 말라고 하니까. 특히 가와사키 경찰들은 거칠어서 보드 타는 애들한테 좀 더 무섭게 굴고 그런다. 솔직히 어릴 때 좀 불량해 보이긴 했다.

올해 성인이 되었고. 어느덧 올해도 많이 저물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

스무 살이니 갑자기 뭔가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어른이 되었달까, 적어도 애기는 아니니까, 술집에도 당당히 들어갈 수 있고, 신분증의 힘을 빌려 담배도 살 수 있다. 놀러 가서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떤 여성분과 얘기하던 중에 그분이 내게 몇 살이냐고 물어보더라. 자신 있게 “스무 살이요”라고 대답했는데 “에이 아직 애기네” 라고 했다. ‘아직 애긴가? 나 스무 살인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뭐… 아무튼, 고등학생과는 다르다.

어떻게 스케이트보드를 시작하게 되었나?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전까진 아이스하키를 했다. 스케이트보드의 존재도 모르고 지내고 있었지. 고등학생 때 어느 날 친구랑 밥을 먹으러 가는데 친구가 스케이트보드를 가져왔길래 호기심에 나도 한번 타도 되느냐고 물어봤다. 푸쉬오프를 조금 해보다가 친구가 가르쳐준 대로 샤빗을 시도해 봤는데 바로 랜딩해버린 거지. 나도 놀랐고 친구도 조금 놀라더니 “뭐야 보드가 왜 다리에 붙어있어, 너 스케이트보드 한번 타봐.”라고 했다. 그날 이후로 보드를 샀고 빠져들었다. 그다음부터는 매일 세 시쯤 수업이 끝나면 가장 먼저 학교에 나와서 보드 타러 갔지. 그리고 지금까지 타고 있다.

아이스하키에서 스케이트보드라니 흥미로운 전개다, 아이스하키를 하던 시절은 어땠나?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전까진 초등학생 때부터 아이스하키를 했다. 아버지께서 국가대표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이라 아버지를 따라서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시작하게 된 거지. 그전엔 아이스스케이트 타는 것부터 배웠고. 어느 정도 스케이트에 익숙해지니까 클럽팀에 소속돼서 방과 후 아이스하키 훈련을 갔었다. 동네에 아이스링크 장이 한 곳뿐이라 일반 오픈이 끝나면 피겨 스케이팅 훈련을 하고 그다음에 아이스하키 훈련 시간이 되는데 거의 한밤중이다. 좀 힘들긴 했지만, 여전히 아이스하키는 재밌는 스포츠다. 보구를 찬 사람들이 서로 거칠게 부딪히면서도 재밌게 놀 수 있는 몇 안 되는 활동이랄까?

맞는 말이다.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면 서로 주먹다짐도 하던데.

진짜다. 내가 있던 클럽은 학생들이라 많이 싸우진 않았지만 서로 주먹질하고 치고받아도 심판이 말리지 않는다. 그것도 경기의 일부니까. 하키 스틱을 드는 건 반칙이지만 주먹은 허용되고 누군가 넘어지면 절대 폭력이 용인되지 않는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서로 깔끔하게 푸는데 이런 걸 보면 정말 경기의 일부인 거지.

그런데 갑자기 스케이트보드를 타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전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유가 있나?

아이스하키는 어릴 적부터 해 온 거니까,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했고 반복되는 일상이 조금 지겨워서다… 다른 것들도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때 스케이트보드를 타게 된 거지. 완전히 빠진 거다. 아이스하키 생각이 하나도 안 날 정도로. 트릭을 성공할 때 기분도 매우 좋고 친구들과 같이 보드를 타고, 해가 지면 재밌게 놀고, 바보짓도 하고. 이런 일들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아이스하키 훈련을 할 때는 그런 게 없었거든. 매일 뛰고 운동도 빡세게 하고 지칠 때쯤 훈련에 들어가고, 감독님이나 선배들과의 관계도 빡센 분위기였디.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선후배 위계는 꽤 엄격하다. 스케이트보드 신은 위계가 느슨하니까 편하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보드를 타는 것도 비교적 더 쉽게 느껴졌다. 여전히 아이스하키보다 스케이트보딩이 좋지만 아버지가 아쉬워하시는 모습이 기억에 남긴 한다.

편하게 얘기하지만 쉽지 않은 결정을 한 것 같다. 친구들 얘기가 나와서 든 생각인데, 스케이트보딩은 팀 활동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나, 주변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나?

그때 같이 타던 친구들은 많지만, 그중엔 쿄노스케 야마시타, 다이키 이케다, 그리고 그의 형인 다이스케 이케다 같은 스케이터들도 있었다. 예전부터 정말 잘 타고 멋있는 친구들이었고, 지금은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도 거두고 유명해져서 한국의 스케이터들도 아는 이름들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잘 되니까 새삼 놀랍기도 하고, 동기부여도 되고 좋은 영향을 받는다.

한국의 스케이트보드 신은 어떤 느낌인가?

이제 겨우 1년 정도 한국에 살게 된 입장에서 이런 말 하는 게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한국의 스케이트보드 신은 정말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일본의 스케이트보딩 신은 비교적 조금 더 대중화되어 있다. 인구가 좀 더 많아서일 수도 있지만, 어느 도시나 스케이트 파크가 있고 크고 작은 여러 커뮤니티가 촘촘히 연결된 느낌이다. 스케이트보드 대회 시스템도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한국에도 정말 멋지고 잘 타는 스케이터들이 많다고 느끼는데 그런 만큼 좋은 스케이트보드 파크가 더 많이 생기면 스케이터들이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테고 이벤트도 더 많이 생기지 않을까? 문화가 더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나.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않았다면 어떻게 지냈을 것 같나?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도 뭔가 하고 있었을 거 같긴 한데, 아마도 계속 아이스하키선수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을까? 정말 모르겠다. 뭔가 빠져들면 그것만 하는 성격이라서 어쩌면 클럽팀에 들어갔을 수도 있겠다. 난 아이돌을 정말 좋아하고, 사실 아이돌이 되고 싶어 한국에서 예고를 가려고 하기도 했다. 밥 먹고 덕질만 하는 삶도 나쁘지 않을지도?

아이돌 원탑은 누구인가?

역시 트와이스지. 요즘은 뉴진스도 좋다.

이찬희에게 스케이트보드란 무엇인가?

내 가족, 다리. 어디를 가든지 함께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보드를 종종 던지고 부수고 이런 건가?

그렇다면 한 달에 한 번씩 바뀌는 여자친구 정도로 정정하면 좋겠다. 물론 진짜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안 그러지.

이찬희라는 사람의 목표는 무엇인가?

최근에 매뉴얼 디스트리뷰션에서 스폰서를 받게 되었다. 얼마 전 부산에 가게 되어 들렀는데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이에 답하기 위해 스케이트보딩 비디오 촬영을 열심히 하고 싶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보면 스케이트보드로 먹고살기는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열심히 일도같이 하면서 언젠가 내 가게를 열고 싶다. 작은 이자카야를 열고 옆에 조그만 스케이트 파크를 만들어서 낮에 보드 타고 밤에 열심히 일하는 거지.

이자카야라니 예상 못 했다. 요리는 잘하나?

아니 전혀. 앞으로 배우면 되지 않을까? 아직 애기니까.


Credit

Editor │이훈, 강진욱
Photographer │이훈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