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ater Spotlight EP. 03-1 유지웅 & 연경호

사계절이 특히나 뚜렷한 한국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좋은 계절은 단연 봄과 가을이라 말하고 싶다. 어느 완연한 가을날 각자 나름의 한 해를 보내고 있는 네 명의 동갑내기 스케이터 유지웅, 연경호, 박해상 그리고 이찬희를 만났다.

십 대부터 신(scene)의 여러 곳에서 두각을 보이며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지웅,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고향 청주를 떠나 서울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인생을 즐기고 있는 연경호. 첫 성년을 맞은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교복을 벗고 트랙 바깥에서 선 이들이 각자 어떤 길을 향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


유지웅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서울에서 스케이트보드 타는 유지웅이다. 현재 성수동 세이버스케이트숍에서 스폰서를 받고 있다. 가끔 프리랜서 모델로도 활동 중이다.

벌써 겨울이 왔다. 스무 살을 어떻게 보냈나.

여러모로 바쁘게 지낸 것 같다. 스무 살이 되어 즐길 수 있는 건 원 없이 해본 것 같은데, 진짜 정말 많이 놀았다. 술도 엄청 마시고 파티도 가고 한 해가 정신없이 지났다. 뭐든 적당한 게 좋지 않나. 여름이 지나고는 그런 방탕한 삶에 너무 중독된 게 아닐까 싶어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런 와중에 보드도 타고 스케이트보드 비디오 촬영도 하고, 모델 일도 했다.

국가대표팀으로 활동 이후, 다시 일본에도 방문했고, 최근엔 컨버스 코리아의 도움으로 블록 파티에 참여해 이벤트 기획을 도왔다. 그리고 ‘PUSH FEST’라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했다가 돌아왔다.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먼저 최근 다녀온 상하이에서 ‘PUSH FEST’ 행사에 대해 알려달라.

상하이에서 개최된 스케이트 비디오 영화제 같은 느낌이다, 컨버스의 후원으로 진행된 행사인데, 아시아 여러 나라의 친구들이 만든 스케이트보드 비디오를 상영하는 행사였다. 다 같이 스팟에 모여서 보드도 타고 다양한 지역과 국가에서 모인 개인 필르머들의 비디오와 함께 10년 동안 아카이브 된 중국 스케이트보딩 신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필름의 시사회도 열었다. 한국에서는 필르머 김동희가 제작한 비디오를 상영했고 나를 포함해서 최호진, 살몬, 문찬모가 참여했다.

개인적으로는 비디오 파트나 참여한 영상이 많지 않은데, 3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만들어서 조금 아쉽지만, 상하이까지 가서 상영회를 참여하니 오랜만에 꽤 큰 성취감을 느꼈달까. 우리의 비디오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서 기뻤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촬영하는 일에 진심인 것 같아서 큰 자극을 받았다.

중국을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인가?

따지자면 두 번째다. 예전에 난징에 스케이트보드 대회 참가를 위해 중국에 다녀왔지만 그땐 어리기도 했고 다른 도시니까 느낌도 달랐다. 상하이는 서울과 비교했을 때 스트릿 스케이트보딩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좋은 스팟들도 많고 낮에 거리에서 보드를 타도 심드렁하게 굴거나 관심 있게 보는 정도지 별로 큰 트러블은 없었다. 조금 충격적인 건 담배에 되게 관대한 문화라는 거?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흡연문화에 조금 놀랐다. 예를 들자면 백화점 안에서 전자담배를 공공연히 피운다거나.

지난 9월 23일에 진행되었던 컨버스 블록 파티는 많은 사람이 찾은 이벤트였다.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나?

기억하기론 컨버스가 최근에 했던 이벤트 중에 가장 큰 행사가 아니었나 싶다.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다. 행사 준비를 위해 컨버스 코리아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이런 이벤트가 있으니, 관심이 있냐고 묻길래 함께 하게 되었다. 문찬모가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맡아 중간에서 소통을 해주고 나와 최호진, 김현빈이 스케이터로 참여했다 그리고 이하빈과 심우빈인 사진 촬영을, 그리고 정재현과 김동희가 비디오 기록을 맡았다. 그 후 여러 번의 미팅을 가지고 스케이트보드 기물을 제작, 테스트하는 영상과 사진을 찍었다. 기물 제작과 디자인에 대해서 스케이터들의 의견을 많이 수용해 줘서 고마운 마음이 매우 컸다.

벌써 두 달이 더 넘게 지났다. 이벤트 기획에 참여해 본 경험은 어땠나?

개인적으로는 예전엔 다른 행사를 가서 타보면 기물의 완성도 혹은 형태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많은 형태의 스케이트보드 기물을 타봤지만, 제작에 참여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원하는 대로 무언갈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다. 그래도 이벤트가 잘 끝나서 다행이다. 이벤트 현장엔 과정을 담은 사진과 영상도 전시됐는데 많은 사람이 오니 묘하게 설레었다.

세이버 스케이트숍에서도 스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가?

숍에서 비디오를 만들고 있다. 촬영한 지 2, 3년 정도 되었는데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는 중이다. 촬영을 시작할 때부터 발목에 부상이 있어서 많이 찍지는 못했다. 원래 발목이 약했는데 중간에 종종 부상이 재발해서 준비한 기간에 비해 만족스럽지 않은 만큼의 클립을 촬영했다. 몸과 컨디션 관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운동이든 마찬가지지만 유독 스케이터들은 항상 부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듯하다. 스케이트보딩과 관련된 본인의 부상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수 있나.

그렇다. 대부분 스케이트보드 타다가 다친 거다. 나의 경우는 핸드레일에서 프론트사이드 피블 그라인드를 하다가 넘어져 한번 크게 다쳤고, 최근에는 계단에서 페이키 트레플립을 하다가 한쪽 발이 반만 보드에 올라오면서 바닥에 닿는 순간 발목이 꺾이며 씹혔다. 자주 다쳤지만 부상에 익숙해지는 게 싫다. 다치면 보드를 못 타니까 거지 같다. 보드 못 탈 때 공허한 느낌이 너무 싫다, 쉽게 우울해지고.

광고, 모델 같은 대외적인 활동을 지속해서 해나가고 있다. 심지어 얼굴이 걸린 광고판도 본 적이 있는데, 알아보는 사람도 있나?

스케이트보드만 타던 애였는데, 2019년이었나, ‘게스 x 바빌론’ 브랜드 이벤트에 참여해 보드를 탔다. 그런데 그 행사 관계자가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에 촬영하자고 제안했고, 얼마 후에 관련 룩북 촬영을 진행했다. 그게 첫 광고 일이다.

그 이후로는 스케이트보드 웹진 ‘데일리그라인드’에서도 촬영 제안이 들어왔고, 종종 같이 일했다. 진짜 직업이라기엔 수입이 일정치 않지만 일이 있을 때 열심히 하려고 한다.

이런 대외적인 활동인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데도 영향을 준다고 느끼나?

아마도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지, 대외적인 활동이 아니라 반대로 스케이트보드가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이런 부분이 다시 스케이트보드 타는 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난 그냥 잘 타고 싶어서 탄다. 하지만 내 이미지가 소비되는 시기는 정해져 있으니 언젠가는 이런 일도 끊기게 되겠지. 그러니 내게 오는 기회들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스케이트보드 브랜드의 이벤트와 스케이트 비디오를 찍는 활동, 그리고 스케이트보드 대회에서도 열심히 활동했다. 그 부분은 무엇이 다른가?

대회를 나가게 되면, 현장에서 오는 긴장감이나 대회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연습을 오랫동안 하기 때문에 끝나고 나면 한 단계 성장했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거기서 보여 줄 수 있는 최선의 트릭들을 1분이라는 시간 동안 성공시켜야 하니까 집중도 많이 하게 되고 좋은 성과를 얻었을 때 성장하는 느낌이 좋다.

여담이지만 내년에는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어서, 수시입학을 준비 중이었는데 상하이에서 돌아오자마자 수시 합격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회에서 얻은 성적이 입학에 도움이 된 게 크다.

스케이트보드와 대학교라… 흥미롭지만,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닌 것 같다. 대학 진학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스케이트보드만 타서 내 생활이 유지되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스케이트보드만 계속 탈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것만 가지고 생활을 유지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사실 부모님의 압박도 조금 있어서 아마 대학에 가면 좀 더 그런 압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도. 어머니께서 이 인터뷰를 읽으시면 좀 곤란해지려나.

보드 타면서 생긴 흥미로운 에피소드 같은 건 없나?

재밌는 일들은 너무 많아서 모두 말하기 어렵다. 보드 타는 건 항상 즐겁지. 스트릿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일이겠지만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반응에서 흥미로운 일들이 생기는 것 같다. 보드를 내려놓자마자 킥 아웃을 당하거나, 기껏 도착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못 타거나.

그렇다면 별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있었나.

오히려 최악의 경험은 거리가 아니라 스케이트 파크에서 벌어졌다. 벌써 몇 년 전 일인데, 먼저 스케이트보드는 트릭을 위해 디자인되었고 스케이트보드 파크는 그런 보드를 위해 설계되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반대로 말하자면 어떤 것들은 스케이트 파크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앞서 말한 그런 보드를 타는 분이 기물 위를 지나다니다 멈춰 있길래 정중히 이건 파크 규정에도 맞지 않고 위험하니 플랫트릭 구간으로 이동하시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분이 처음엔 알겠다고 하더니 그 위에 계속 서 있더라. 처음엔 내 얘기를 이해한 줄 알았지. 그리고 트릭을 연습하는데, 자기 보드를 발로 차서 내 발목을 맞췄다. 내 보드는 멈췄고 나는 기물 아래로 떨어졌다. 화가 너무 나서 따지니 그 사람이 내 멱살을 잡았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주변에서 사람이 말려서 끝나는가 싶었는데 나중에는 친구를 데려와 패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다행히 상황을 지켜보던 지인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지만 거기서 마무리되지 못하고 경찰까지 왔다.

스케이트파크, 경찰. 절대 유쾌한 조합은 아닌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어린 나이였을 텐데, 이후 어떻게 대처했나?

현장에서는 끝까지 잘못이 없다고 하다가 마지막에 경찰관 입회하에 대면하는 시간에서야 마지못해 고의적이었다고 인정했다. 결국엔 당사자와 그 친구 둘 다 형사처벌받았다. 불리해지니까 태도를 바꾸는 모습이 괘씸해서 합의는 못 하겠더라.

가끔씩 돈보다 감정이 중요할 때가 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는가?

친구들이랑 당구도 치러 가고, 영어 공부도 한다. 그리고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는 친구가 있는데 나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어서 관련해서 이야기하거나 한다. 같은 관심사로 얘기하는 건 항상 즐겁다. 좋은 영향을 받는다.

만약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않았다면 무엇을 할 거 같은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다만 확실한 건 만약 보드를 안 탔어도 학업엔 충실하지 않았을 텐데, 이제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학업에도 충실해야 한다니 좀 아이러니하다. 아마도 다른 것에 꽂혀서 그걸 열심히 하진 않았을까? 아마 의류 관련 공부나 일을 했을 거다. 그런데 이것도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고등학교에 다닐 된 거라 정확히 답하기 어렵다.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조금 더 단순한 질문을 하자면,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이유가 있는지 말해 줄 수 있나?

너무 많은 이유가 있지만 굳이 뽑자면, 여러 친구와 함께 스케이트보드를 같이 타는 것만으로도 하나가 되는 기분이고, 개인적으로는 트릭을 랜딩하거나 클립을 남겼을 때 성취감이 다른 일을 해냈을 때보다 짜릿하기 때문이랄까.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얘기해 달라.

스케이트보드를 내가 생각하는 목표만큼 이루며 계속 타는 거지, 동시에 개인으로서도 꾸준히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삶을 위해 보드를 계속 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그게 일과 돈이 될 수도 있고 몸을 좀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고.


살몬(연경호)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서울에 사는 스무 살 연경호이다. 보드 타고 춤추고 랩도 한다. 현재 압구정에 있는 라브로스 소속으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이번 인터뷰이 중 유일하게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다. 왜 살몬인가?

그건 어릴 때 별명인데 그냥 내 성이 연씨이기도 하고. 연어라고 쉽게 연상되니까 어느 순간 살몬으로 불리게 된 거지. 이렇게 읽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유치한 발상으로 시작됐는데, 맘에 드는 별명이다.

스무 살 라이프는 어떤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바쁘게 지나간 것 같다. 놀기도 많이 놀고, 대학에 입학하고 또 휴학도 했다. 그리고 술도 엄청 마셨다. 최근에는 상하이에서 열린 ‘PUSH FEST’에 가기 위해 비디오 촬영도 하고, 친구들과 보드를 타러 처음 해외에도 가봤다. 또한 개인 파트를 제작하기 위해서 열심히 촬영했다. 썸머트레인(Summer Train)이라는 조그만 행사에서 이제 곧 공개했다. 여러모로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썸머 트레인은 무엇인가?

필르머 김동희와 최호진, 이하빈과 함께 비디오를 촬영하면서 준비한 상영회의 이름이다. 라브로스의 폴 형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이름인데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도 썸머 트레인이란 이름을 더 써볼까 한다. 3~4개월 정도 촬영했고 얼마 전 시사회를 마쳤다. 촬영이 끝나서 후련하기도 하지만 하던 게 사라지니 조금 공허하기도 하다.

촬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없었나?

사실 잘 모르겠다. 3개월 좀 넘는 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촬영했다는 거? 밤낮 가리지 않고 했는데 어느 날 새벽 촬영을 위해 빌딩의 시큐리티 가드들과 숨바꼭질을 한 게 기억에 남네.

어떻게 스케이트보딩을 시작하게 되었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중학교에 입학 전까지 거의 히키코모리처럼 집에만 있었던 적이 있다. 그땐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도 있었고, 스스로가 너무 작아 보였다. 불안도 컸고 누구와도 어울리기도 싫어서 하루 종일 누워서 폰이나 보는 시기였지. 지금 돌아보면 어린 인생의 짧은 암흑기였달까. 지금 생각하면 귀엽다고도 느끼지만, 그땐 모든 것에 대해 의욕도 없었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스케이트보드 트릭을 담은 어떤 비디오를 보고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제대로 된 스케이트 비디오는 아니고 여러 장면들을 짜깁기 한 비디오였는데 아마 ‘위험천만 스케이트보드 모음집’ 같은 제목으로 기억한다.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우연히도 신발장에 생일선물로 받은 싸구려 스케이트보드가 처박혀 있었고 밖에 가지고 나가게 되었다. 무려 3개월 만에 집 밖에 나가 알리 연습을 시작했다.

위험천만이라는 단어에 끌리다니, 언젠가 결국 스케이트보드를 탈 운명이을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시작했는데 심심하진 않았나.

집 근처 공터나 지하 주차장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유튜브에 올려두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누가 댓글로 “청주 청소년 광장으로 오세요”라고 댓글을 남겼다. 그땐 어린애라 혼자 시내를 나가본 적도 없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댓글로 나오라고 하니 사실 좀 무섭기도 했다. 그래도 나오라니까 나오긴 했는데 당시엔 그것도 나름 도전이었지. 아무튼, 스팟 구석에서 킥플립을 연습 중이었는데 형들이 갑자기 “거기에만 있지 말고 일로 와서 같이 타요”라고 하지 않나. 솔직히 좀 많이 무서웠고 현기증까지 났다. 그래서 그날은 좀만 있다가 도망갔다.

그래도 같이 탈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게 좋았다. 그날 이후로 매일 스팟에 나가서 보드를 탔다. 사실 무서운 사람들도 아니었고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알고 보니 유튜브에 댓글 단 사람은 문선우 스케이터였다. 지금은 둘 다 서울에 살고 있지만 그 당시엔 선우형이 슈프림에서 일하게 될 줄, 슈프림 인스타그램에 피드에서 볼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지.

지금은 청주가 아닌 서울에서 스케이트보딩을 하고 있는데 이유가 있나?

현재 대학에서 실용댄스를 배우고 있다. 어릴 적부터 종종 서울에 와서 보드를 탔는데, 서울에는 스케이터들도 훨씬 많은 데다 화려한 대도시에서의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그땐 서울에 보드 타면서 사는 게 꿈이었는데 서울에 있는 학교에 지원하게 되면서 현실이 되었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대체로 만족스럽다.

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원래는 취미였다. 그냥 비보잉이 멋있어 보여서 시작했다. 이걸로 정말 대학까지 갈 줄은 몰랐지.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물론 좋지만 스케이트보딩이 주는 즐거움이랑 비교 자체가 어렵다. 둘 다 좋지만, 진심의 차이가 있달까. 그래서 그런가 얼마 전 휴학하고 빡세게 보드를 타고 있네.

청주와 서울에 두 지역에서의 느끼는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나?

청주 출신의 입장에서는, 서울 사람들은 매일 보드도 타고 정해진 스팟이 아닌 스트릿에서 스케이트보딩을 하는 모습이 자유로워 보였다. 청주에는 서울에 비해 보드 탈 만한 장소가 많지 않다고 느꼈거든. 친근한 스팟에서 크루들과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는 건 좋지만 무언가 살짝 갇혀 있는 느낌이다. 그런 게 조금 답답했다. 막상 서울로 오니 자취 생활이라는 게 만만하진 않아도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이 그런 불편함을 잊게 한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단지 서울에서 생활하기 때문인가?

아무래도 혼자 사니까, 간섭 없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게 크다. 또 반면에,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자유분방함과 책임감을 함께 느낀다. 예를 들자면, 술을 진탕 마셔서 밤을 새우거나… 돈을 막 써서 생활비가 모자라거나 하는 것들처럼 말이지. 내 행동에 책임지면서 배우는 게 많다.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있는 만큼 걱정도 덜 끼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그런 책임감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데 영향을 주고 있나?

글쎄, 딱히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은데… 스케이트보딩 자체에 제한을 두고 싶지는 않으니까. 타고 싶을 때 타고 싶고 외부 요소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다. 굳이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필르머와 함께 촬영할 때 스스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한다는 것 정도?

보드를 타지 않을 때는 보통 무엇을 하나?

일, 학교룰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드 타는데 보내곤 한다. 다른 활동들이 있나 싶은데 가끔 비가 오거나 하면 보드 타던 친구들과 당구를 치러 가거나, 홀덤을 하러 가기도 하지. 촬영할 때 대기하거나 혼자 있을 때는 랩 하는 걸 좋아해서 비트 위에 랩을 얹어보기도 하고.

스케이트보드 외에도 관심 있는 게 상당히 많다. 춤도 추고 랩도 하는데 이게 스케이트보딩에 영향을 주는가?

음 글쎄, 아직까진 내가 하는 것들이 서로 영향을 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댄서나 뮤지션이나 스케이트보드 문화 대한 관심이 많다고 느낀다. 나도 다른 문화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가끔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스케이트보드라는 접점이 생기면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 좋은 바이브와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오는 게 좋다. 나에겐 스케이트보드가 그 중심을 잡아주는 것 같다.

독특한 헤어스타일이 눈에 띈다. 스타일이 자주 변하는 것 같은데 이유가 있나.

뭐 머리 바꾸는 데 이유는 없다. 그냥 해보고 싶어서 한 거긴 한데 좀 더 생각해 보면. 중학교 때 모히칸 머리를 처음 해봤는데 기분이 좋았다. 그땐 스스로 자신감도 넘쳤고 하고 싶으면 하는 노빠꾸의 시절이었지. 그때와 비교해 내가 좀 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대로 머리를 바꿔봤다. 그러니 조금이나마 그때의 마음가짐이 되새겨졌다.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겉모습을 바꾸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거침없이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않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삶을 살았을 거 같은가?

전혀, 보드를 타지 않았다면 초등학교 6학년의 불행한 삶을 이어가고 있지 않을까? 그때 당시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 느껴서 외부에 기대려는 심리가 컸다. 스케이트보딩을 시작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성장한 부분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걸 빼놓고는 현재의 내 모습을 말하기가 어렵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이유가 있을까?

처음엔 재밌어서, 지금은 삶의 일부분이다. 좋든 싫든 타는 거지. 연경호라는 사람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연경호라는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의 목표나 비전이 있다면 한번 이야기해 달라.

일단은 지금 하는 일들을 잘 마무리하고 싶고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난 이상 군대를 다녀와야 하겠지. 일도 해야 하고. 그리고 외국에 나가 넓은 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다. 아직은 먼 일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는 좀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이 시작된 캘리포니아, LA로 가서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은 생각이다. 돌아와서는 고향 청주에서 내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고. 스케이트보드, 춤, 음악들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목표다. 그러기 위해선 원하는 것들을 제대로 배우고 경험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니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는데 올해 좋은 분들을 알게 되었고 많은 도움으로 재밌는 경험을 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끝.

이찬희와 박해상의 이야기는 Skater Spotlight EP.03-2에서.


Credit

Editor │이훈, 강진욱
Photographer │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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