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LA 에디터의 가장 사적인 크리스마스 선물 8

선물의 기쁨은 받는 이의 특권인가 아니면 주는 이의 것인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비즐라 에디터들에게 독특한 선물 추천을 요구했다.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리스트를 들고 올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죄다 본인들의 위시리스트만 들고온 그들. 역시 독특하고 자시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재미있다. 비즐라 에디터들의 가장 사적인 크리스마스 선물 추천 리스트를 함께해 보자.


“겨울 연가” 배용준 티셔츠 – 장재혁

올해가 가장 따뜻한 겨울이다 뭐다 하더니 언제부턴가 뼈가 시린 날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날에는 바깥공기에 살을 내어주어선 아니 되므로, 목도리든 장갑이든 뭐든 총동원해 노출을 최대한 숨겨야 한다. 그러다 문득 이 티셔츠가 떠올랐다. 목도리의 제왕, 욘사마 배용준. 2002년은 모두가 월드컵의 해로 기억할 테지만 그 열기가 시작되기 전, 눈 내린 겨울에는 드라마 “겨울 연가”가 있었다. “겨울 연가”의 애청자는 아니었지만서도 드라마가 방영되던 당시나 “겨울 연가”가 일본에 진출한 뒤 거둔 어마어마한 성공에 관해서는 뉴스나 여러 취재 프로그램에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댔기에 꽤나 익숙한 편이다. 욘사마를 보기 위해 끝없이 늘어선 줌마 팬들의 긴 줄과 그를 마주하자 울음을 터트리는 줌마팬. 당시에는 그게 꽤 웃기다고 생각했다. 배용준과 비슷한 스타일, 그러니까 비슷하게 애매한 염색과 기장의 헤어스타일을 한 아줌마들이 배용준에 그렇게 열광하는 장면이 퍽 인상 깊다. 아무튼 그 탓인지 일본의 온, 오프라인 빈티지 티셔츠 스토어에서는 배용준 티셔츠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도쿄 빈티지 티셔츠 전문점 ‘吊り橋ピュン’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도 얼마 전 목격되기도 했고, 야후 옥션 등에도 현재까지 매물이 존재한다. 물론 이 선물 역시 본인 마음에 든 선물이다. 선물 추천이랍시고 남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티셔츠를 골라 민망하긴 하지만, 트리에 대충 걸어놔도 썩 괜찮을 것 같지 않나?


Marie Mur Harness – 진영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기에는 다소 불경하지만 방황하는 이에게 인생의 정착감을 줄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5년 전, 베를린의 클럽에 갓 발을 들일 무렵 시작된다. 헐벗은 몸에 잘 에이지드(aged)된 두툼한 가죽 하네스를 걸치고 춤을 추는 친구를 보게 된 것이다.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산 나의 싸구려 하네스는 안타깝게도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 알량한 합성 가죽조차 술에 취해 끊어먹고 말았다. 그때부터 가죽 하네스를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하네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이커 문화를 중심으로 형성된 베를린, 암스테르담, 샌프란시스코 등의 게이 신(Scene)을 통해 등장하였고, 1980년대부터 페티시웨어의 주류가 되어 현재까지하도 하이패션에서 활용된다. 그러나 패션 아이템으로 타협하는 것이 아닌 ‘진짜’가 필요했다. 몸을 옥죄어 무겁고 불편하지만 살갗에 닿는 느낌은 부드러운 가죽 하네스. 마치 단호하고 엄격하지만 가끔씩 달콤한 칭찬으로 달래주는 양육자 같지 않은가? 자비 없는 가격조차도 말이다. 인간은 일면 적절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더욱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 어른이 되어 정박할 닻 없이 여기저기 떠도는 것 같다면 가죽 하네스의 버클을 단단히 조이고서 어느 어두운 테크노 클럽으로 향해보자. 그곳에서 속박과 자유를 동시에 느끼며 존재의 의미를 구할지도 모를 일이다.


Sangen DT-800 포켓 라디오 – 보잭

이건 뭐 연말 선물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다. 빨강,초록이 만연하지도 않고, 어딘가 차가워 보이기만 한다. 근데 선물은 모양새가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닌가? 이 산진(Sangean) 휴대용 라디오는 말 그대로 그냥 FM라디오와 AM라디오, 이게 기능의 끝인 휴대용 라디오 제품이다. 연말연시엔 많은 사람들과 보낼 수도 있지만, 나 같은 내향인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오히려 유독 많다. 그럴 때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혼자 여러 활동을 하는데, 그때마다 이 제품이 제격이다. 항상 곁에 있던 핸드폰과 인터넷을 떠나, 온전히 주파수에서 흘러나오는 타인의 목소리와 평소에 듣지 않는 음악들은 왠지 모를 아날로그의 감성으로 연말연시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해 주기에 충분하다. 작은 크기로 지하철, 집, 야외공간 어디든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남은 연말엔 파티를 가든, 여행을 가든 혼자 있는 시간엔 잠시 아날로그의 소리로 쓸쓸한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는 선물은 어떤가.


연간 구독권, 타코야끼 기계, 영감 – 한지은

모름지기 선물을 고르기 힘든 이유는 타인의 취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상을 ‘나’로 설정한다면 적어도 나에게만은 좋은 선물이 된다. 뭔들 받으면 기분이 좋겠지만 본인에게 줄 선물을 떠올리다 보니 당장 연간 구독권이 떠오른다. 너무 실용성을 고려하게 됐달까… 넷플릭스가 됐든, 왓챠가 됐든, 라프텔이 됐든, 밀리의 서재가 됐든 뭔가를 특정기간 동안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을 선물한다는 것은 내 기준 꽤 실용적이고 좋은 선물인 것 같다. 그런데 이색 선물이라면… 조금 더 취향을 고려해 프린티트 매터(Printed Matter)의 연간 회원권을 선물한다던가 아레나(Are.na)의 구독권 혹은 건축 잡지 오아서(oase)의 12개월 구독권은 어떨까? 말 그대로 영감을 선물한다며… 또 크리스마스가 지나가도 한동안 선물 받는 기분을 줄 수도 있고… 꽤 그럴듯한 말을 붙일 수 있겠다. 그 외에는 십자수 도안을 제작해 정성이 담긴 십자수를 만들어주는 것… 또는 연말에 어울리는 코타츠나 타코야끼 기계… 등을 떠올려봤다. 그 외 특별한 것을 찾고 있다면 툰데스크(toondesk) 계정에 올라온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장난감들을 디깅해 보는 것이 방법일 수도… 뭔가 괜히 ‘난 이런 거 사줘’ 하는 글을 쓴 것 같은데 선물의 선택지를 늘리는 것에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프레디의 피자가게” 포켓팝 어드벤트 캘린더 – 미허

크리스마스까지 하루 하루 날짜를 세며 한 칸씩 열어보는 어드벤트 캘린더. 초콜릿부터 뷰티 브랜드까지 다양한 어드벤트 캘린더를 내고 있는 와중, 내 선택은 단연 프레디의 피자가게 포켓팝 어드벤트 캘린더다. ‘포켓팝’은 유명 키덜트 피규어 브랜드 펀코팝(FUNKO POP)의 미니어처 라인으로 최근 실사화 영화 “프레디의 피자가게(Five Nights at Freddy’s)”가 개봉하며 FNAF 시리즈 팬들이 다시 모이고 있는 현재에 딱 맞는 선물이 아닐까 한다. 크리스마스 테마 디자인의 애니마트로닉스 피규어들을 24개나 가질 수 있다니, 구미가 당기지 않는가. 혹시 이 글을 읽는 내 친구가 있다면, 내게 선물해 주길. 프레디의 피자가게 말고도 디즈니, 스타워즈, DC코믹스 포켓팝 어드벤트 캘린더들을 펀코팝 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으니, 받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


공룡화석 초콜릿 키트 – 최희윤

크리스마스라고 별것 있는가. 소중한 이들과 먹고 웃고 즐기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심으로 돌아가 하찮고도 재밌게 시간을 허비할 수 있는 공룡 화석 발굴 초콜릿 키트를 소개하려 한다. 필자는 길을 걷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세계과자 할인점에서 이 초콜릿을 구매했다. 재고 떨이로 들어온 상품이었는지 3~4천 원 정도의 가격으로 아주 싸게 구매했는데, 원래 정가는 2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같이 있던 친구들에게 이런 걸 왜 사냐고 타박을 들었지만, 재밌잖아.

아무래도 독특한 간식이니 혼자 열어보기엔 아까워서 친구가 집에 놀러 오는 그런 특별한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렇게 냉장고 구석에 몇 달이나 방치되어서 그냥 혼자 작업실에서 키트를 열어보게 됐다. 어린이용 완구인데도 발굴에 필요한 도구들이 체계적으로 들어있다. 망치와 갈고리로 초콜릿 뚜껑을 깨고 그 속에 흙먼지를 구현한 초콜릿 파우더를 붓으로 털어내면 공룡 화석(인 척 하는 초콜릿)을 발견할 수 있다. 맛은 예상한 대로 어릴 적 사 먹던 동전 초콜릿의 맛과 똑같았다. 그래도 누가 이런 장난스러운 음식을 사며 맛까지 기대하겠나.

별다른 것 없는 날이었는데도 소소하고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이 아이템을 추천하게 됐다. 국내에서는 더 이상 생산을 안 하는 것 같지만, 잘 찾아보면 해외 직구로 비슷한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듯하다. 같은 가격이면 더 맛있는 초콜릿을 먹을 수 있지만, 본인과 선물 받을 사람이 재미를 추구하는 쪽이라면 함께 즐기기 나쁘지 않을지도. 그렇다고 해서 연인에게 이런 걸 단독선물로 줄 생각은 접어두길 바란다…


SHARP CE-152 테이프 레코더 – 장지원

80년대 초 샤프에서 발매한 테이프 레코더로, 음악뿐 아니라 디지털 데이터 역시 레코딩할 수 있는 기기다. 카세트테이프에 디지털 데이터를 기록하던 것이 금세 다른 형태의 디스크로 옮겨 갔기 때문에 디지털 데이터 기록보다는 사운드 레코딩과 재생을 많이 한 편이다. 어댑터 및 AA 건전지로 구동이 가능하며 이어폰, 마이크 등 외부 입력 단자가 있어 여러모로 사용하기 좋다. 80년대 컴퓨터가 있다면 디지털 데이터 레코딩도 가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잘 생기지 않았나?


David Lynch 스티커 – 최현수

크리스마스 하면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를 떠올려야 한다. 그만큼 가슴 따뜻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어디 있는가? 크리스마스에 사랑과 연대, 희망과 젊음을 노래하는 데이비드 린치 영화를 네 배는 더 잘 즐기기 위해선 당연히 이 스티커는 필수다. 특히 지금처럼 영하 11도에 도시가 잔뜩 얼어붙고, 폭설이 한가득 쌓이는 시기라면 효과는 배가 된다. 눈으로 뒤덮인 잿빛 풍경을 가득 품은 창문에 당장 이 스티커를 붙여보자. “트윈 픽스(Twin Peaks)”의 한 장면이 따로 없다. 기왕이면 주변 친구들에게도 배포하자. 그들의 삶이 린치 영화 같기를 바란다는 덕담도 함께 담으면 따뜻한 새해를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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