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ohead의 음악을 색다르게 즐기는 방법 3

과거의 문을 닫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간 전설적인 뮤지션, 라디오헤드(Radiohead). 전작 정규 9집 [A Moon Shaped Pool] 발매 이후 무려 7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라디오헤드를 향한 그리움으로 점철된 전 세계의 수많은 팬들과 리스너들은 그들의 컴백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아쉬워만 하지 말자. 이미 세상에 공개된 기존의 라디오헤드의 곡으로도 충분히 라디오헤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틱톡과 릴스가 일상이 된 젊은 세대들에겐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N95” 랩이 어우러진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의 리믹스 버전이 더 알려진 요즘, [Kid A]의 위대함을 믿으며 왕의 귀환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새롭게 듣는 3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1. [Kid A]를 뛰어넘는, ‘Kid 17’

라디오헤드의 4대 명반 중 하나이자 피치포크와 롤링스톤이 선정한 ‘2000년대 최고의 앨범 1위’, 라디오헤드의 정규 4집 [Kid A].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밴드의 행보에 걸맞게, 그들의 팬들 역시 굉장히 흥미로운 방식으로 음악을 재생산하고 공유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라디오헤드 팬들에게 전설처럼 내려오는 소문이 있었으니, 바로 ‘Kid 17’ 이론.

‘Kid 17’. [Kid A] 앨범을 들을 때, 원곡을 플레이하고 정확히 17초 뒤에 동일한 곡을 함께 틀어놓으면 경험해 본 적 없었던 황홀한 소리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이론. 사람들은 해당 이론의 진위여부를 파악하고자 [Kid A]의 CD, 바이닐을 틀어놓고 17초 후에 컴퓨터로 똑같은 음악을 재생해 듣기 시작했다. 현재는 ‘Kid 17’ 버전으로 가득 채워진 앨범 [Kid 17]을 직접 만들어 공유한 한 인터넷 유저의 선행으로 인해, 앨범 [Kid 17]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Kid 17’ 버전의 음악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한 트랙 내에 두 개의 똑같은 곡이 17초 차이로 반복되는 곡의 진행은 자칫하면 불협화음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나, 두 개의 선명한 목소리와 악기 구성이 절묘하게 혼합되어 독특하고도 신선한 느낌을 선사한다. 또한 17초 뒤에 다시 나올 진행이 다음 부분에서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를 궁금해하면서 노래를 듣게 된다는 점이 [Kid 17]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힌다.

“The National Anthem”나 “Optimistic”과 같은 트랙에서는 분명 혼란스러운 인상을 받을 수 있으나, “Idioteque”, “Treefingers”, “Morning Bell”과 같은 트랙에서는 기존에 트랙에서는 들어볼 수 없었던 황홀한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다. 

[Kid 17]에 대한 리스너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눠지지만, 여전히 라디오헤드의 [Kid A]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꼭 들어봐야 할 버전이라 여겨지는 [Kid 17]. 들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주의해서 듣도록 하자. [Kid 17]에 중독되는 순간, 오리지널 사운드를 가진 기존의 [Kid A]는 어딘가 비어 보여 더 이상 찾지 않게 될 테니.

idioteque (KID 17.ver)

2. 시간이 새롭게 흐르다, ‘800% Slower Ver.’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800% 느리게 재생했을 때, 시공간을 느끼는 우리의 감각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새로운 국면에 치닫는다.

2010년, 플로리다 베이스의 프로듀서 닉 피팅게(Nick Pittsinge)가 장난스럽게 올린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U Smile” 800% 슬로우 다운 버전이 시발점이 되어 해외에서는 하나의 밈으로 자리 잡은 800% 슬로우 버전. 800% 슬로우 다운으로 기존의 곡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되자, 이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다양한 음악의 800% 슬로우 버전을 듣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 수많은 팬들을 보유한 라디오헤드도 해당 밈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라디오헤드의 다양한 곡들이 800% 슬로우 다운되어 공유됐는데, 그중 [Amnesiac] 앨범에 수록된 “Pyramid Song”의 800% 슬로우 다운 버전은 놀라움을 자아낼 만큼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한다.

800% 슬로우를 거는 순간, 5분 분량의 러닝타임은 40분으로 바뀐다. 가사를 말하던 목소리는 한없이 늘어져 악기가 되고, 명료한 소리를 내던 악기들은 가늘고 기다란 선형의 사운드가 되어 축적된다. 그렇게 변화된 음악은 우리의 청각을 지배하며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미지의 세계로 깊숙이 인도한다. 특히 ‘죽음과 순환’이라는 원곡의 거대한 주제를 이어받는 독보적인 엠비언트 사운드는 원곡과는 또 다른 형태의 신비로움을 발산하며 청자에게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기관화된 감각을 해체하고 동시에 새로운 공감각을 채워 넣는 것. 절대적인 시간은 분명 변함없이 흘러갈 테지만, 800%가 느려진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통해 우리는 감각이 재탄생되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Pyramid Song (800% slower ver.)

3. 음악의 공간화, ‘Kid A MNESIA Exhibition

[Kid A]의 21주년, [Amnesiac]의 20주년을 기념하며 발매한 리마스터 합본 앨범 [KID A MNESIA].

4집과 5집을 하나의 앨범으로 엮었다는 점에서 다소 의아함을 자아낼 수 있으나, 두 앨범을 둘러싼 기묘한 인연을 파헤쳐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Kid A]와 [Amnesiac]은 사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지고 레코딩된 앨범이다. 즉, [Amnesiac]은 [Kid A]의 레코딩 세션에서 녹음된 곡들 중 [Kid A]에 수록되지 못한 곡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앨범. 그렇다고 [Amnesiac]를 버려진 노래들의 모음집이라 단정 지으면 안 된다. 라디오헤드는 이 작품을 [Kid A]와 함께 더블 앨범으로 발매하는 것을 고려했지만 이는 너무 지나치다고 판단했고, 결국 스타일에 따라 30개가 넘는 곡들을 간추리고 나누어 두 개의 앨범으로 만들었다. [Amnesiac]은 분명 [Kid A]와의 접점이 많은 앨범이지만, [Kid A]의 B-사이드 앨범이나 아웃테이크 앨범이 아니라 독립성을 가진 앨범이라고 강조할 만큼 라디오헤드와 그들의 팬들은 이 앨범에 대한 엄청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음악적 결을 공유하는 위대한 두 앨범, [Kid A]와 [Amnesiac]의 합본 앨범 발매를 기념하며, 라디오헤드는 에픽게임즈(Epic Games)와 협업해 앨범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디지털 전시 ‘Kid A MNESIA Exhibition’를 선보였다. 2021년에 진행된 플레이스테이션 쇼케이스에서 에픽 게임즈가 유명 뮤지션과 디지털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라 밝힌 발언의 실체가 드러난 것. 밴드의 리더 톰 요크(Thom Yorke)와 비주얼 디렉터 스탠리 돈우드(Stanley Donwood)가 오리지널 아트워크로, 프로듀서 나이젤 고드리치(Nigel Godrich)가 오디오 디자인으로 참여한 디지털 전시회 ‘Kid A MNESIA Exhibition’은 아트워크와 유저와의 상호 작용 경험이 강화된 디지털/아날로그 인터렉티브 전시로, 1인칭 시점으로 관람객이 직접 이동하며 전시를 체험할 수 있는 ‘워킹스루’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는 거대하고 다채로운 14가지의 공간에서 펼쳐진다. 숲길을 지나 붉은 불빛이 흘러나오는 문으로 들어서면, [KID A]의 1번 트랙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의 키보드 전주가 관람객을 반긴다. 오리지널 사운드를 들려주는 것이 아닌 공간음향을 입힌 변형된 사운드를 들려주는 것이 포인트.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라디오헤드를 상징하는 마스코트 캐릭터 ‘Modified Bear’가 각 공간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제작에 참여한 톰 요크가 이 전시를 보며 “우리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는 평을 남겼을 만큼, 미스터리함이 가득한 전시는 보는 사람마다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흥미롭다. 라디오헤드의 음악만큼 매력적인 디지털 전시 ‘Kid A MNESIA Exhibition’는 플레이스테이션, PC, 맥에서 무료로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주의사항이 있다. 게임을 플레이할 때, 길을 헤매지 않도록 하자. 정해지지 않은 다른 길로 갔을 때, 게임에서의 버그 현상으로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해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미지 출처 | Rolling Stones, Last.FM, Epic G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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