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타운 세탁소에서 울려 퍼지는 전자음악, goyo club

한남동 삼성 세탁이 문을 닫았다. 보광동 살던 시절부터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사한 지금까지도 줄곧 이용하던 세탁소였기에 앞으로의 세탁 인생이 꽤나 막막해졌다. 미용실만큼이나 한 번 발붙이면 정을 떼기 쉽지 않은 게 세탁소 아닌가. 스타일러가 등장하고 골목 어귀마다 코인 세탁방이 들어서며 힘을 잃은 세탁소지만, 상권이 아닌 ‘동네’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단어에 세탁소만큼 적절한 게 또 있을까. 인사 한 마디 없이 퉁명스러운 삼성 세탁 주인아저씨의 대꾸에도 계속해서 그곳을 찾은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물론 아저씨의 탁월한 세탁 능력도).

그런데 최근 보기만 해도 푸근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풍기는 것 같은 세탁소를 배경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LA 한인타운의 한 세탁소를 배경으로 로컬 아티스트들과 함께 디제잉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이들의 이름은 바로 고요 클럽(goyo club). ‘고요’라는 이름처럼 이들은 영업이 끝난 적막한 세탁소를 찾는다. 그리고 그와는 정반대의 음악을 선사한다. 테크노, 브레이크비트, 하우스 등 오래된 세탁소 안에서 울려 퍼지는 LA 로컬 아티스트들의 사운드는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흥겨운 음악과 함께하는 영상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화면을 가득 메운 깔끔한 옷가지들이다. 마치 동양인을 배경으로 한 미국 시리즈의 한 편을 보는 것 같기도 한 이들의 색다른 콘텐츠, 그 내막을 들어보기 위해 고요 클럽의 두 디렉터 클리프(kliff) 그리고 나비(nvbi)와 대화를 나눴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고요 클럽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LA에서 영상 감독을 하고 있는 클리프와 나비라고 한다. 우리가 영상 일을 하면서 연출하는 작업물이 보통 뮤직비디오나 광고이다 보니 클라이언트의 개입이 없는 우리만의 영상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LA에는 꿈을 좇는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또 떠난다. 우리도 그중 하나였고. 그래서 주목받지 못하는 이 많은 아티스트들을 조명할 무대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렇게 고요클럽을 시작했다.

세탁소를 배경으로 한 디제잉 시리즈 “electric cleaners”를 꾸준히 제작 중이다. 세탁소에서 이 같은 퍼포먼스를 펼치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섭외는 어떻게 진행하게 됐나.

고요 클럽을 시작할 때 우리가 집중하고 싶었던 부분은 로컬 아티스트와 로컬 비즈니스의 융합이었다. 가까이 우리 주변에 살아가는 작은 가게들, 무심코 스쳐 지나가지만 또 가장 편안한 이 공간들이 가장 멋진 배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공간에서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아카이빙하기로 마음먹었고 “electric cleaners”가 첫 시리즈인 만큼 우리와 같은 이민자분들의 가게를 조명하고 싶었다. 한인타운에 있는 거의 모든 세탁소의 문을 두드렸고 보통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사장님들은 디제잉과 전자음악을 이야기하자 대부분 거절하셨다. 하지만 지금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세탁소의 사장님께서는 우리의 의도와 취지까지 천천히 들어주시고는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이제는 왜 더 자주 오지 않냐는 농담까지 하신다.

해당 세탁소에 대해 알고 있는 배경 혹은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면 알려 달라.

우리가 촬영하고 있는 세탁소는 같은 곳에서 100년 넘게 자리하고 있다고 들었다. 현재 사장님은 세 번째 주인이시고 30년째 운영하고 계신다. 최근 아드님이 물려받아 사모님까지 가족 모두 함께 일을 하고 계시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장님께서는 이민 오시기 전 라디오 방송국에서 성우 활동을 하셨다고 한다. 그 때문에 요즘 친구들의 디제잉은 어떤 건지 궁금해하셨고 우리의 제의를 수락해주셨다.

쇼에 등장하는 아티스트들은 모두 한인타운 주변의 인물들인가? 아티스트 선정 과정도 궁금한데.

LA는 각기 다른 문화의 색이 강한 다양한 동네들이 모여 만들어진 도시이다. 이런 다양한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엘에이 토박이부터 우리처럼 엘에이를 집으로 삼은 사람들 그리고 엘에이를 오가는 타지 아티스트들까지 다양성을 우선으로 두고 선정을 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아티스트 베이비 야나(BÉBE YANA)가 레코드샵 안에서 공연을 하는 시리즈도 공개했는데. 새 시리즈에 대한 소개도 부탁한다.

고요 클럽은 “electric cleaners” 시리즈로 시작했지만 앞으로는 디제이뿐 아닌 다양한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를 아카이빙 할 예정이다. 최근 베이비 야나와 좋은 기회를 통해 “finding records” 시리즈의 첫 에피소드를 함께 하게 됐다. “finding records”는 로컬 레코드 샵에서 가수들의 공연을 아카이빙 하는 시리즈다. 물론 세탁소 시리즈도 계속된다.

화제가 된 세탁소를 제외하더라도 고요 클럽은 ‘로컬 아티스트’라는 키워드를 핵심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두 사람이 로컬 아티스트를 꾸준히 소개하며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클릭 하나로 나와 지구 정반대에 있는 아티스트들의 작업물을 볼 수 있게 됐지만 실제 삶의 경계는 더욱 작아진 느낌이다. 동네 공연에 가서 로컬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보고, 동네 미술관에서 로컬 작가의 작품을 보고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하고, 옆에 있는 동네 술집에서 동네 친구들과 그런 하루를 이야기하는 풍경, 그것이 우리가 다시 조명하고 싶은 문화의 흐름이다.

지난 3월에는 실제 오프라인 파티를 진행하기도 했다. 고요 클럽의 파티에는 어떤 이들이 모이나.

“electric cleaners”가 아카이빙한 디제이들을 로컬 팬들이 와서 직접 보고 소통 할 수 있는 파티를 기획하고 싶었다. 인종부터 옷차림, 성향, 취향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고요 클럽의 팬들이 홈 브루잉(homage brewing)을 가득 채웠다. 핸드폰에 담기 바쁜 파티가 아니라 직접 눈과 귀로 즐기면서 온전히 음악에 몸을 맡기고 서로를 존중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 우리가 꿈꾸던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고 앞으로도 매 분기마다 “electric cleaners” 파티를 꾸준히 이어 갈 생각이다. 차차 “finding records”도 분기 별 공연을 통해 아카이빙 된 가수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를 계획할 예정이다.

고요 클럽은 영상 제작에 있어 베뉴 선정에 꽤나 공을 들이는 것 같은데, 오프라인 파티를 열고 싶은 색다른 공간도 있을지.

우리가 추구하는 아카이빙 톤은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담기는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너무 꾸며진 곳보다는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을 계속해서 찾았고 “finding records”에서 담게 된 소니도 델 발레(sonido del valle) 레코드 샵을 찾기까지도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보일 하이츠(boyle heights)라는 라틴계 커뮤니티 안에 있는 이 레코드 샵은 소울과 라틴 음악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왔기에 아카이빙하기 적합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electric cleaners” 세탁소 분위기를 이어 갈 수 있는 코인 세탁방에서의 파티도 생각하고 있다.

고요 클럽을 중심으로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같은데, 지향하는 커뮤니티의 방향성이 있을지.

세상에는 참 다양한 예술을 하는 아티스트가 많다.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 있어 서로 다른 필드의 아티스트들과 소통하고 함께 도와 창작할 수 있는 분위기 그리고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 우리는 디제이나 가수뿐만 아니라 댄서, 영상 감독, 순수 미술 작가 그리고 그래피티 태거 그 이외의 더 다양한 아티스트들도 소개하고 아카이빙 할 예정이다. 예전 유럽에서 예술가들이 살룬(saloon)에 모여 자신들의 생각과 문화를 공유하고 만들어 나아갔듯이 우리도 그런 ‘클럽(club)’이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 빨래는 자주 하는 편인가?

세탁소에서 DJ 아카이빙을 마친 다음 날엔 빨래를 하는 편이다. 카메라 뒤에서 항상 우리는 신나게 춤추고 있기에. “Always keep it fresh and clean!”

goyo club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장재혁


사진 출처 | goyo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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