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領收證): 판매자가 구매자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종이 또는 전자 기록.
이 시대 유일한 공정 기록물인 영수증. ‘돈이 흐른 흔적’은 한 인물을 선정, 선정된 인물의 영수증을 통해 생활 패턴 및 소비 실태를 면밀히 살핀다. 이번 주인공은 뮤지션이자 삼각지의 앙증맞은 바 ECHO의 매니저로 일하는 송영남. 그의 소비가 어떻게 그의 정체성과 일치하며, 다양한 경험적 소비로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것에 관한 기록이다.
‘돈이 흐른 흔적’을 2회 동안 진행하며 본 에디터가 느낀 점은 영수증은 딘순한 ‘소비 내역’을 넘어 ‘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는 것. 반면에 송영남의 영수증에는 자주 방문하는 마트, 혹은 카페 등의 일정 패턴이 없어 그의 개인 삶 또한 아주 엿볼 순 없었다. 그러나 단순한 물질적 소비를 넘어 개인의 취향과 경험적 소비에서 드러나는 소비 철학이 있기에 그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영수증 7월 1일 ~ 7월 13일
한 달 설정된 용돈은 얼마인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단지 현명한 소비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
시간이 꽤 지났다. 당신의 지난 7월을 회상해 보자.
달력에 거의 모든 일정을 적어두는 편이라 달력을 따라 이야기해 보자면, 7월에 ‘박쥐단지’ 앨범 릴리즈 공연을 위한 디제잉 셋을 준비와 공연 그리고 오키나와 여행을 친구들과 다녀왔고 ‘Being 可愛い’ 동아리 활동으로 삼각지 ECHO에서 첫 음감회를 가졌다. 그리고 앨범을 만들고 있어서 이런저런 미팅과 작업을 한 것으로 적혀있다. 이렇게 다시 둘러보니 생각보다 빡빡한 일정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7월 4일 당신의 직장 ECHO에서 구매한 바이닐 영수증이 아주 흥미롭다. 무려 18장을 구매했는데, 어떤 레코드였나?
ECHO에서 바이닐 판매를 위해 정리 및 가격을 책정하는 업무를 맡아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종종 새롭게 알게 되거나 맘에 드는 판이 생기는데 그럴 때 두고두고 지켜보다 적당한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구매한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2016년에 리이슈로 제작된 시미즈 야스아키(Yasuaki Shimizu)의 [Kakashi] 그리고 타카기 카즈에(Kazue Takagi)의 [Cinematik Dub], 컬러드 뮤직(COLORED MUSIC)의 멤버이자 재즈 피아니스트로 잘 알려진 히시모토 이치코(Ichiko Hashimoto)의 [Beauty] 등이 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바이닐을 모으는 사람으로서 ECHO에서 일하는 건 행운이다.
오키나와에서의 영수증 7월 14일~17일
7월 14일부터 17일까지 일본 오키나와에서 소비한 영수증이 있다. 오키나와에서의 소비는 평소와 무엇이 달랐나?
여행답게 먹거리에 지출이 상당했다. 한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오리온 생맥주와 오키나와의 전통음식 고야 참프루, 오키나와 소바의 맛은 일품이었다 꽤 오랜 기간 1일 1식을 하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리고 매번 늦은 밤 들렸던 스낵바에서의 나폴리탄도 잊을수 없었다. 맛도 있고 무엇보다 마마의 손이 너무 커서 항상 배가 터질 뻔…
최근 엔저로 일본 여행을 비교적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다하여 난리였다. 실제로 오키나와에서 체감한 엔저 효과는 어땠나? 서울의 물가와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었나?
솔직히 크게 체감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여행이라 이번만큼은 “돈 걱정하지 말고 놀자!” 가 여행 모토였고 충분히 돈을 모아서 갔다. 그리고 본인이 총무가 아니였어서 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여행 마지막 꽤 많이 남은 돈에 모두 의아해하며 다시 나눠 가져갔다. 생각해 보면 서울 물가를 기준으로 돈을 모았고 계획대로 쓰고도 돈이 남았으니 그 만큼 물가 차이가 있었구나 싶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소비와 영수증이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소비는 오키나와 민요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음반매장에서의 바이닐 구매였다. 바이닐샵은 여러 종류의 음반들을 취급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특정 장르만 판매하는, 그것도 민요를 베이스로 판매하는 매장은 처음이었다. 여러 장의 음반을 구매했는데 아쉽게도 영수증 받는 것을 잊어버렸다. 영수증을 챙기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지 않은 행동이지만 여행지에서는 더더욱 어려운 것 같다.
오키나와 현지에서 구매한 물건 중 당신의 음악 작업이나 ECHO 매니저 활동과 관련된 것이 있다면?
ECHO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음악 세계에 눈을 떴고 그로 인해 음악 작업 그리고 취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키나와에서의 바이닐 구매 또한 그 영향이 크다고 생각되고 현재 운영하는 동아리 활동 그리고 앞으로 나올 앨범에도 그 색에 짙게 묻어 있을 것 같다. 소비 습관은 취향을 따라가고 소비는 또 한 번 취향을 더욱 깊게 만든다. 선순환!
해외로 여행할 때 주변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는 편인가? 이번 오키나와 여행에서 당신의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기념품은 어떤 것이었는지가 궁금하다.
기념품을 웬만하면 사려고 하지 않고 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한다. 어린 시절부터 받으면 돌려줘야 한다는 마음이 부담이라고 느껴서 그렇다. 물론 선물을 주시면 감사히 받는다. 하지만 선물을 받았다는 기쁨보다 부담이 더 큰 편. 성의를 거절할 용기는 없고 빛나는 해결책 또한 딱 떠오르지 않는다. 누가 현명한 방법을 좀 알려줬으면 한다.
돈이 흐른 흔적을 지난 2회 진행하면서 본 에디터가 느낀 점은 한 달의 소비 기록을 모아보면 주인공의 일정 삶과 루틴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송영남 당신의 영수증 기록을 통해서는 그러한 패턴적인 삶을 짐작할 수 없어서 오히려 신선하다. 당신의 일상에 관하여 조금 더 알려줄 수 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라 조금 당황스럽다. 왜냐하면 나의 삶과 루틴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소비로써 삶의 패턴을 바로 볼 수 없고 프리랜서로서 결과를 내야 하는 마감 패턴에 소비가 맞춰져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프로젝트가 끝이 남으로써 나의 시간이 생기고 비로소 그때야 소비를 할 수 있으니…
영수증 7월 17일 ~ 7월 31일
평소 끼니는 어떻게 해결하나.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배달을 이용하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다만 지인들과 술자리 결제 영수증만 보인다.
이것에 대한 완벽한 답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일신상의 이유로 본가에서 가족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항상 감사합니다.
‘아끼지 않는다’ 혹은 ‘절제한다’ 두 개의 부분이 있다면 당신의 소비 철학은 어디에 존재하나?
불필요한 소비를 절제하고 필요한 소비는 아끼지 않는다는 매우 뻔한 소비 철학을 가지고 있지만 필요와 불필요를 정확하게 구분하여 소비하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10만 원은 우습게 쓰면서 부모님 생일에 용돈 한번 드리지 못하는 것, 편리하다는 이유로 온갖 OTT에 구독을 누르지만 정작 작업해 준 동료의 작업비를 밀리는 것. 이런 건 하지 않으려고 한다.
보통의 영수증은 인쇄와 동시에 버려진다. 그런데 이번 돈이 흐른 흔적을 통해 당신은 의식적으로 한 달 동안 영수증을 모았다. 이를 통해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 있다면?
매우 불편했다. 나뿐만 아니라 영수증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래 보였다. 하지만 의식적인 이 행위 하나만으로 무의식적으로 카드를 내미는 나의 휘발적 소비가 조금은 가라앉은 느낌이다. 마치 너의 소비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 보라는 듯이 영수증을 챙겨주는 옷 매장처럼 불편함은 나에게 한 번 더 무엇인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Editor | 황선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