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다, 무성 영화 “GIFT”와 Eiko Ishibashi

이시바시 에이코(Eiko Ishibashi)는 뮤지션이자 피아노, 드럼, 플루트, 비브라폰 등 다악기를 연주하는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로 활동한다. 솔로 아티스트로 탄탄히 구축된 디스코그래피 한편으로 짐 오루크(Jim O’Rourke)와의 협업, 그리고 일본의 노이즈 밴드 메르츠보우(Merzbow)와 함께하며 자신의 영역을 차근히 넓힌 아티스트다.

또한, 이시바시 에이코는 영화 음악가로도 활동하며 자신의 음악 영역을 더욱 넓히기도 했다. 특히 “드라이브 마이 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감독인 하마구치 류스케(Ryusuke Hamaguchi)의 음악적 페르소나로 활동하며, 그의 영화에 깊이 스며든 음악을 선보였고 두 작품 모두 ‘아시아 필름 어워즈’에서 작곡상을 수상하는, 영화 음악가로 큰 성취를 맛보기도 했다.

지난 11월 16일, 일본 ‘파르코(PARCO)’ 주최로 서울에서도 초연된 “GIFT”는 하마구치 감독의 무성 영화에 이시바시의 즉흥 연주가 결합된 라이브 작품이다. 이시바시가 하마구치 감독에게 자신의 공연용 영상을 의뢰하면서 시작된 “GIFT”는 두 예술가의 상호작용을 통해 매 공연마다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단순히 침묵을 메우는 것을 넘어 장면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 관객들은 음악과 영상이 결합되는 그 순간에서 “GIFT”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품이다.

평소 이시바시 에이코의 음악, 특히 그녀가 제작한 영화 음악들에 관심을 가져왔던 필자에게 있어, “GIFT” 공연 전 그녀와 나눈 짧은 대화는 매우 특별했다. 스크린 속 감정과 서사를 음악으로 빚어내던 아티스트와 직접 마주하며, 영화의 장면과 더불어 음악적 깊이를 더욱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화를 하단에 상세히 기록한다. 이는 이시바시 에이코의 음악 세계를 조금 더 가까이 느끼게 해줄 것이다.

다른 직종에 있다가 뮤지션으로 전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나?

사실 음악가가 되고자 한 적은 없다. 20대 때 요양사로 일하면서 밴드를 병행했는데, 그때 사람을 많이 만났지. 그 덕분에 지금 나도 솔로 뮤지션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처음 요양사 일을 시작한 계기도 우연이었다. 대학에서 병원 목사님을 만나서 그 일을 시작하게 됐다. 요양사로 일하면서 음악가로 활동을 병행하기가 꽤 힘들다고 느꼈고, 또 내가 요양사 일에 평생을 바치면서 할 정도의 인간성은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음악에만 전업하게 되었다.

당신의 음악을 들을 때 종종 치유받는 느낌을 받는다. 과거 요양사로서의 경험이 음악을 통한 치유와 감정 표현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나?

재밌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하마구치 감독은 내 음악에 독이 들어 있다고 이야기하거든. 요양사로 일하던 과거에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의 심경에 귀 기울이고자 호스피스 병동을 케어했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죽음은 찾아오니까 그들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이 지금 나의 음악 작업에도 조금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드라이브 마이 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GIFT”에 이르기까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세 번 함께 했는데, 하마구치 감독의 시각적 요소와 당신의 음악은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한다고 생각하는가?

하마구치 감독의 영상에 내 음악이 등장하기 때문에 영상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때문에 잘 상호작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늘 가지고 있고. “드라이브 마이 카”로 시작되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GIFT”까지 다양한 작품을 통해 하마구치 감독과 좋은 우정 관계를 다질 수 있어 기쁠 뿐이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처음 “드라이브 마이 카”의 PD인 야마모토 테루히사(Teruhisa Yamamoto)가 나의 음악을 자주 듣고 있었고, 2018년에 나온 내 솔로 앨범 [The Dream My Bones Dream]을 하마구치 감독에게 추천하여 그 계기로 그의 영화에 음악으로 함께하고 있다.

“GIFT”는 무성 영화로 당신의 즉흥적인 라이브 음악이 결합하여 완전체를 이룬다. 이러한 즉흥성을 통해 관객은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가?

내가 음악을 연주하지만, 나 또한 관객의 일부로 같은 공간에서 감정을 교류하는 관계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비유하자면 극장은 큰 우주선이고, 우리는 그 우주선에 앉아서 스크린이라는 커다란 창문을 통해 새롭게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이지.

당신은 피아노를 비롯한 건반부터 비브라폰, 마림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다양한 악기 선택지가 당신의 음악 제작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나?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상에 필요한 악기들이기 때문에 그 소리를 재현하기 위해서 악기를 공부했다. 대학생 때는 나도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영화를 만들려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며 소통해야 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실력이 없었고, 음악이라면 내가 혼자 작업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악기를 다루게 되었다.

그러한 계기로 다양한 악기를 일정 수준 이상의 수준으로 다루게 된 것도 경이롭다. 악기들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어떤 악기가 가장 도전적이었나?

아날로그 신시사이저가 가장 어려웠다. 지금도 공부 중이고. 평소에는 감각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편인데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는 좀 더 논리적이게 생각을 하면서 다뤄야 하니까, 여전히 어려운 악기다.

영화 특정 장면에서 어떤 악기를 사용할지도 매우 중요할 것 같은데 특정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악기나 사운드적인 요소가 있다면?

역시나 피아노다. 스트링의 경우도 피아노로 먼저 쳐본다. 피아노를 어느 정도 쳐보면 영화에서의 감정이나 특정 장면을 표현하는 데 필요한 소리가 떠오르고, 피아노를 스트링이나 비브라폰 등으로 변형해 추가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함께 “GIFT” 프로젝트로 전 세계를 투어하는 동안, 즉흥 연주가 공연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공연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이 즉흥 연주는 관객에게도 큰 매력 포인트며 당신 또한 즉흥으로 매 순간을 연주하기란 새로운 도전이 될 것 같다. “GIFT” 투어 중 특별히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처음 공연을 할 때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몰랐기 때문에 첫 “GIFT” 공연은 나도 이러한 공연이구나라는 걸 관객들과 함께 느껴서 인상이 깊고, 또 멀티플렉스에서도 연주를 했는데, 그때는 관객분들이 음료도 마시며 관람하니까 음악이 연주될 때 관객들이 맥주 뚜껑을 따는 소리가 매우 신선하고 재밌게 들렸다.

맥주 캔 열리는 소리조차 당신의 공연 일부로 인식하였나?

그렇다. 나 자신도 공연장에서 뭘 연주할지 모르는 즉흥 연주 공연이기 때문이다. 또 연주하는 환경도 중요하다. 공연장마다 저마다의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도 모두 내 음악에 반영하고 있다.

개인의 솔로 앨범의 경우는 자신의 이야기나 내면을 담을 수 있는 반면에 영화 음악 작업에서는 개인적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장면과 캐릭터에 맞는 음악을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차이점이 당신의 여러 창작물에 어떻게 영향을 주나?

사실 두 작업은 크게 차이가 없다. 어쨌든 영화 음악도 내 작품이기 때문에 나의 개인적인 감정이 담길 수밖에 없고, 또 영화를 위한 음악이라고 일부러 내 감정을 의식적으로 표현하지 않거나 억누르지 않는다. 다만 최종 점검은 영화 음악의 경우 감독과 함께 하지만, 개인의 작업은 스스로가 모두 결정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차이를 느끼고 있다.

당신은 솔로 아티스트며 또한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로 다양한 밴드에서 멜로디를 더했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음악적 페르소나까지, 음악 내에서 다양한 분야를 아울렀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음악적으로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영역이나 관심사가 있다면?

뭔가 도전하고 싶은 분야는 딱히 없는데, 그러나 잘 모르기도 하니까 언제나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갖고 있다. 올해는 공연도 많았고 스케줄도 빡빡했다. 물론 내년에도 라이브 공연으로 스케줄이 바쁘지만, 조금 더 차분하고 천천히 악기 공부와 내가 관심 있는 나라의 역사 등을 알아가며 내 음악에 반영하고 싶다.

Eiko Ishibashi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황선웅
Photographer │전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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