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 넘치는 디자인 듀오의 놀이터, EntriPaper

어떤 분야든 독창적인 감각이 있는 이는 쉽게 눈에 띄기 마련이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자연스레 본인의 재능을 발휘하는 타입, 이 자리를 빌려 이야기하자면, 오랜 시간 하위문화 저변에서 다양한 작업을 펼치는 두 디자인 듀오 남진수와 임창우가 이에 부합하지 않을까. 그간 발란사에서 선보였던, 재치 넘치는 이미지와 영상을 인상 깊게 봤다면, 자연스레 그 작업자가 누구인지 호기심이 동할 것. 

올 초 이들은 오랜 둥지였던 발란사를 떠나 엔트리페이퍼(EntriPaper)라는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그와 동시에 파트타임(Partime)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굿즈와 이벤트 플라이어, 3D 애니메이션 등 그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발한 디자인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영동대교 초입에 자리한 디자인 하우스이자 브랜드 쇼룸, 그 위치부터 용도까지 왠지 모르게 알쏭달쏭한 그들의 공간을 찾아가 보았다.


엔트리페이퍼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남진수: 서울에 오기 전 우리 둘 모두 발란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부산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에 정착해 디자인 외주를 받기 시작했지. 그래서 이렇게 사무실까지 열고, 이 공간의 명칭을 엔트리페이퍼로 정한 거다. 엔트리페이퍼는 하나의 브랜드이기도 하지만, 공간에 더욱 가깝다. 

그럼 지금 이 공간은 디자인 사무실로 운영되고 있는 건가.

남진수: 여기서 파트타임이라는 디자인 하우스를 운영 중이다. 이곳에 진열된 의류나 굿즈는 파트타임의 판촉물, 혹은 기념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디자인 따라 하나둘 만들다 보니 이제는 제품이 너무 많아져 지금에 와서는 주객전도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하.

공간의 이름을 엔트리페이퍼라고 지은 이유도 궁금하다.

임창우: 말 그대로 입장권이라는 뜻이다. 어떤 제품이든 바깥의 그래픽과 프린트가 가장 먼저 눈에 띄지 않나. 이미지를 통해 그 사물에 ‘입장’하게 되는 거지. 여기에 디자인 결과물은 주로 종이에 인쇄되는 일이 많으니 ‘페이퍼’라는 단어를 붙였다.

로고부터 각종 굿즈까지, 문구와 사무용품의 콘셉트가 돋보인다.

남진수: 어쨌든, 이 공간은 결국 사무실이니 자연스레 사무용품에 관한 그래픽을 계속 만들게 되더라. 은연중에 사무실이라는 정체성을 표현하게 되는 것 같다.

브랜드 런칭과 동시에 오프라인 스토어까지 열었다. 요즘 브랜드의 전개 방식과는 좀 다른 행보인데.

임창우: 오히려 이곳이 브랜드 쇼룸이나 숍이 아닌 사무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픽 작업을 하고, 그걸 각종 제품에 올리고, 그 디자인을 사무실에 진열했을 뿐이다. 누군가 이곳에 와 우리의 결과물을 봤을 때 마음에 든다면, 팔리는 거고. 그래서 자리 또한 번화가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지금 문을 연 이 자리는 어떻게 찾게 되었는지.

남진수: 아는 분이 팝업 스토어를 열려고 이 공간을 봐놨었는데, 개인 사정으로 계획이 무산돼 여기를 우리에게 추천해 줬다. 처음에는 이런 곳을 사무실로 쓰게 될 거라는 상상도 못 했다. 원래는 여행사 사무실로 쓰이던 곳이라고 들었다. 둘이 쓰기 적당한 크기라 곧바로 계약 후 인테리어를 진행했다.

조금 늦은 질문이지만, 서울에는 무슨 일로 올라왔나.

남진수: 지금은 둘 다 디자인 작업으로 벌이하고 있지만, 디자인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이 친구는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고, 나는 공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발란사에서 5년 동안 그래픽 업무를 하면서 좀 더 전문적으로 디자인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상경 후 지금은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브랜드 시작까지 얼마나 걸렸나,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는지.

남진수: 브랜드를 런칭하고자 했으면, 엄청 오래 준비했을 텐데, 디자인 사무실을 여는 게 가장 큰 목표였기에 오히려 금방 문을 열 수 있었다. 기존에 작업해 두었던 그래픽을 조금 다듬고, 인테리어에 적용한 것 정도가 전부라 시작부터 오픈까지 3개월가량 걸렸다.

선보이는 제품, 그래픽에서 미국 맛 일본 브랜드의 향이 짙게 느껴지는데. 

남진수: 맞다. 우리가 좋아하거나 동경하는 것 대부분이 일본이나 미국의 산물이기에 그런 취향이 계속해 투영될 수밖에. 한국에서도 여러 일을 하지만, 일본의 브랜드, 숍과도 자주 작업하고 있어 그런 부분이 엔트리페이퍼의 작업과 제품에 계속 드러나는 것 같다.

둘은 어떻게 만났나, 의기투합하게 된 계기는?

남진수: 발란사에서 처음 만났지. 둘 다 디자인 파트에서 작업하던 중 나는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래픽에 조금 더 집중했고, 이 친구는 3D 그래픽을 공부했다. 당연히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이 많았지. 내가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도 자주 협업했다.

임창우: 이렇게 함께 사무실을 쓸 계획은 없었다. 나는 서울 소재 3D 영상 회사에 입사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서울에 온 건데, 구직 중 거처가 필요했고, 그럴 바에는 함께 디자인 회사를 운영해 보자는 얘기가 나와 이렇게 함께하게 됐다.

오랜 시간 발란사에서 일했다고 들었다. 독립한 이유라면?

남진수: 방금 이야기했던 디자인 공부에 관한 욕심이 가장 컸다. 또한, 부산에 있으면서 발란사 일 외 딱히 로컬에서의 작업 교류가 없었다. 오히려, 서울에 있는 친구들의 디자인 작업을 많이 했지. 서울에 간다면, 나와 비슷한 취향의 사람도 더 많이 만날 수 있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경험도 있을 테니까. 이런 생각에 독립을 결심했다.

임창우: 나도 비슷하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전문성을 더 키우고 싶었다. 작업 스펙트럼도 더 넓히고 싶었고. 우선 부산에는 3D 영상 회사가 서울만큼 없었으니까. 

가장 크게 체감하는 부산과 서울의 문화적 차이는 무엇인가.

남진수: 글쎄, 생각만큼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다만, 하위문화를 즐기는 이들의 폭이 한층 넓다. 부산에도 서브컬처 신(Scene)이 있지만, 그 규모가 작아 문화 형성이 어려운 것 같다. 뭘 해도 눈에 띄기 어려운 느낌이지. 규모의 차이랄까.   

두 사람이 브랜드를 전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있다면.

남진수: 지속성.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면, 그걸 제품화하고, 그게 팔리든, 안 팔리든 계속해 신선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엔트리페이퍼의 특징은 한 달에 한 번씩 새로운 그래픽과 영상을 선보인다는 거다. 요즘 말로 비주얼을 ‘드롭(Drop)’하는 거지. 언제까지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사이클을 꾸준히 이어가려 한다. 

각자 그래픽 디자인과 영상을 진행 중인데, 둘은 어떻게 비주얼 작업을 시작하게 됐나.

남진수: 어린 시절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옷을 사서 리폼하는 걸 좋아했다. 학생이니까 당장 돈이 없지 않나. 그래서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 다운 재킷을 사서 거기에 에어 조던(Air Jordan) 로고를 전사하거나, 지퍼를 바꾸는 등의 커스텀을 즐겼다. 일종의 부틀렉 같은 거지. 하하. 그러다 보니 그림도 그리게 되고, 그래픽 관련 툴을 독학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됐다.

임창우: 나도 옷을 좋아해서 이렇게 빠지게 됐지. 아까 말한 것처럼 전공도 패션 디자인을 택했다. 근데, 내가 옷을 구매하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가 그래픽이더라. 이걸 내가 직접 만들면 좋을 것 같아 부전공으로 시각디자인을 배운 게 그 시작이다.

어린 시절 주로 뭘 보고 자랐나, 지금까지도 영감을 받는 소재, 창구가 있다면?

남진수: 학창 시절에는 괜히 동네 노는 형들이 괜히 멋있어 보이지 않나. 난 착한 아이였지만, 그런 날라리, 무서운 형들을 동경했지. 하하. 그 버릇이 남아 있는지 요즘도 내 윗세대의 형들을 보고 많이 배운다. 특히, 발란사 대표 지훈이 형은 내 취향을 만들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게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임창우: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책을 많이 사주셨다. 지금도 집에 가면 책장이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아무튼, 그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었는데, 특히 만화책을 많이 봤다. 하하. 옛날 미국 애니메이션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는다. “톰과 제리”나 “보거스는 내 친구”, “딱따구리” 등. 지금 봐도 아이디어가 너무 좋고, 콘셉트도 명확해 작업에 종종 참고하고 있다. 

패션에도 관심이 많다고 이야기했는데, 각자 좋아하는 브랜드를 하나씩 소개해 줄 수 있나.

임창우: 버그섹스(Bugsex)라는 브랜드를 좋아한다. 이름처럼 곤충을 콘셉트로 한 뉴욕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다. 저기 피규어도 하나 있는데, 3D 그래픽을 의류에 적용하는 스킬도 좋고, 제품 퀄리티도 좋다. 여러모로 감각이 뛰어난 것 같아 계속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남진수: 일본의 올웨더프루프(Allweatherproof). 일본의 유명 그래픽 디자이너가 하는 브랜드로 여러 패션 레이블이나 서점 그래픽, 로고 작업을 하면서, 취미 삼아 전개하고 있다. 나도 그렇게 브랜드를 운영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 계속 눈이 간다. 

근래까지 알렘빅서비스(alembicservice)라는 브랜드도 전개하지 않았나. 

남진수: 맞다. 알렘빅서비스는 브랜드가 아닌, 내 개인 프로젝트에 가깝다. 발란사에서 일하던 때 퇴근한 뒤 집에 와서 디자인 연습 겸 만들어본 브랜드지. 정해진 시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을 때,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몇 개씩 만들어서 판매하던 브랜드다. 엔트리페이퍼 오픈 때문에 조금 미뤄졌지만, 안 그래도 지금 진(Zine)을 준비 중이다.

비주얼을 제작하는 것과 옷을 만드는 건 또 다른 일인데, 이것 역시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나?

임창우: 의류 제작의 경우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웬만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라벨 제작 같은 건 업체를 통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래픽 위치나 디테일한 후가공은 우리가 컨트롤하고 있다.

브랜드를 통해 어떤 그래픽을 선보이려고 하는지.

남진수: 디자인 하우스가 이 공간의 시초니, 계속해서 사무실에 관련한 그래픽을 선보이지 않을까. 여기에 3D 콘텐츠를 계속 가미할 예정이다. 

단일 브랜드로만 스토어를 운영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근래 독립 편집 스토어의 움직임이 계속 일고 있는데, 공간의 범위를 넓힐 생각은 없나.

남진수: 아직 편집 스토어로의 확장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다. 스토어 운영보다는 디자인 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있기에 지금은 작업에 집중하려고 한다. 

디자이너로서 올해 흥미롭게 본 작업물이 있다면?

임창우: 그린 머신(Grin Machine)이라는 2D/3D 영상 프로덕션의 작업물이 기억에 남는다. 작년 캑터스 플랜트 플리마켓(The Cactus Plant Flea Market)과 맥도날드(Mcdonald’s) 협업 영상을 제작했는데, 올해에도 유니클로(UNIQLO)와 “네모바지 스폰지밥” 협업 캠페인을 함께했더라. 매 작업이 특이하고 재미있어 인상 깊게 봤다.

남진수: 가장 최근에는 심재영과 비즐라 매거진(VISLA Magazine)이 함께 제작한 스톤 아일랜드(Stone ISland) 종이 잡지. 국내에서 이런 잡지가 나오는 게 흔하지 않기에 기억에 남는다. 내 디자인 작업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고. 하하.

다가오는 2025년, 엔트리페이퍼라는 이름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남진수: 글쎄, 뭔가 규모를 키우고 싶은 것보다는 우리의 이름을 좀 알리고 싶은 욕심이 있다. 디자인 하우스, 그리고 숍을 같이 운영하는 경우는 많이 없으니까. 여기에 이런 신선한 움직임도 있다는 걸 좀 보여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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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오욱석
Photographer │ 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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