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서양음악의 혼입, 그리고 토착화는 여타 제 3세계 국가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철저하게 일본이라는 식민 종주국의 그늘서 발전해왔다. 다시 말해, 일본은 이 땅에 당대의 최신 서양 음악들이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였으며, 그 당시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현대 음악’이라 불리는 것들은 이미 모두 다 일본식의 토착화 과정이 끝난 것들뿐이었다. 재즈(Jazz)가 현대음악의 진화 그 자체를 한 단어로 축약한 기호라면,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의 ‘재즈’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 것이다.
서양의 프레임을 통해 아프리카 흑인 민속 음악을 해석하려는 시도는 곧 블루스(Blues)를 낳았고, 보싸(Bossa)는 같은 방식으로 남미에 뿌리를 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이 프로세스는 동양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동양의 선율, 아니 일본의 선율을 서양의 기보법에 따라 해석하고 녹여내는 시도 역시 필연적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과정을 간략히 한 문장으로 줄이자면, 악기 계통적 구조로도, 선율 계통적 구조로도, 이른바 ‘절충’이 이루어졌다. 서양의 것이 아닌 소리를 서양의 프레임으로 편입시키는 시도, 이 제국주의적 방식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폭력적인 시도에 절충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일본의 선율은 서구의 4음과 7음이 생략된 단음계로 절충되었고, 그 리듬은 2~30년대 2비트 스윙-폭스트롯트의 그루브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덜 역동적인 리듬으로 변모했다. 이른바 ‘엔까(えんか)’의 등장이다.
미소라 히바리(Misora Hibari) – “川の流れのように(흐르는 강물처럼)”
한국의 재즈를 논하기 위해선 일본의 ‘엔까’가 이 땅에 토착화되는 과정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 땅에서도 재즈의 토착화와 그를 위한 절충이 이루어졌다. 물론 우리의 레퍼런스가 된 ‘재즈’는 엔까였고 그 절충의 결과물, ‘뽕짝’이라는 장르는 이 땅에 이렇게 등장하게 된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한국 최초의 ‘재즈’는 뽕짝이었다.
뽕짝은 코드, 음계, 리듬의 상당 부분을 엔까와 공유하는 하위 장르에 가까웠고, 대중음악계의 레퍼런스는 수십 년간 일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 땅에서는 광복되고 나서야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본토의 음악이 직접 소개되며, 신중현과 같은 블루스 기반의 창작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미국의 영향력 아래 글로벌 ‘재즈’들이 이 땅으로 쏟아져 들어와 유재하의 등장을 기점으로 대중음악 전반에서 묻어나오던 왜색은 점점 희미해져 갔지만, 뽕짝은 아직도 한국 대중음악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인의 무의식적인 그루브와 음악적 선호도엔 아직도 ‘뽕끼’가 충만하다. 비록 시간이 흘러 본토의 ‘재즈’나 일본에서 건너온 ‘재즈’나 이 땅의 ‘뽕짝’이나 그 구분이 점점 희미해지며 현재는 한국 대중음악에 유전자를 남긴 상태로 그 본래 형태나 영향력을 상실해갔지만, 많은 사람은 이 땅의 재즈가 무엇이었는가를 아직도 간과하고 있다. DJ Soulscape가 나타나기 전까지 이 땅의 재즈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그저 ‘뽕짝’이었으니까.
김시스터즈 – “김치 깍두기”
두 가지 버전으로 들을 수 있는 김시스터즈의 “김치 깍두기”에는 서로 다른 땅에 뿌리내린 ‘재즈’가 어떤 방식으로 진화했는지, 미국의 재즈와 한국-일본의 재즈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시기는 뽕짝이 아직 엔까의 영향력 아래 있던 시기였기에 한국-일본의 재즈를 구분하는 것이 거의 무의미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엔까와는 다른 한국만의 ‘뽕끼’는 이 음악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슈프림스(The Supremes)보다 더 먼저 모타운에서 노래를 불렀던 선구자들의 DNA에도 박혀있던 그 ‘뽕끼’ 말이다. ‘뽕끼’와 일본 문화에 반감을 품은 이들이 무엇을 말하든 간에, 한국 대중음악 흐름도는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겠다. 우리에겐 쿨 재즈도, 뉴에이지도, 보사노바도 아니고 그저 ‘뽕짝’이 있을 따름이다. 이름만 들어도 촌스럽고, 경박하며, 고루하기까지 한 ‘뽕’은 이 땅의 재즈로서 수십 년의 한국 대중음악사를 관통하는 뿌리였다. 촌스러움이 빈티지가 되는 순간은 그 대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때다. 뽕은 한국 대중음악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할 만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