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끝자락, 한강진 부근에 있는 서점 포스트 포에틱스(Post Poetics)는 전 세계 다양한 예술 서적을 판매한다. 동네 책방은 물론, 여러 대형 문고까지 자리를 잃어가는 지금, 포스트 포에틱스는그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이태원에서 가장 조용한 그곳,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포스트 포에틱스를 찾아가 보았다. 인터뷰는 포스트 포에틱스 대표, 조완과 이메일로 진행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어떤 계기로 포스트 포에틱스의 문을 열게 되었나?
포스트 포에틱스는 2006년에 문을 연 서점이다. 미술이나 디자인, 건축, 사진, 패션, 음식에 관련된 예술 서적을 판매하고 있다. 상수동에서 시작했고, 지금은 한남동에 자리하고 있다. 낭만적인 동기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방향이 많이 바뀌어서 설득력이 없을 것 같다.
어떤 목적으로 포스트 포에틱스를 운영하고 있나.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무래도 사양 산업으로 분류되다 보니 특별해 보일 수도 있지만, 딱히 다른 재주가 없으니 기왕에 시작한 거 최선을 다하려 한다.
당시 이런 형태의 서점을 연다는 것이 금전적으로 부담되지 않았나?
임대료가 그리 비싸지 않았고, 책도 몇 종류 없어서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흔히 생각하는 카페 창업보다 더 쉬웠다. 물론 상품이 적은 만큼 매출도 적었기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서 재정에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이걸 계기로 서점 운영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기준으로 책을 들여오는가.
잘 팔릴 것 같은 책을 가져온다. 물론 잘 팔리느냐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 대중적이라고 생각한 책이 전혀 안 팔리는 경우도 많지만, 이걸 누가 사나 싶어도 금세 다 팔리는 것들도 있다. 오래 하다 보니 단골이 꽤 있는 편이라서 구매자를 염두에 두고 책을 주문하는 일도 흔하다. 물론 예상이 빗나갈 때도 있지만, 그럴 땐 강매하다시피 한다.
들여오는 책을 본인이 직접 다 읽나?
읽는다고 하기는 어렵고, 되도록 모두 훑어보려고 한다. 하지만 책은 어차피 사서 책장에 꽂는 거로 제값을 했다고 생각한다.
포스트 포에틱스 책장에 꽂힌 책 중에서 개인적인 관심사가 반영된 것들이라면?
동시대 미술 관련 서적이 비교적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주로 디자이너, 디자인 학부생들이 이곳에서 일한다고 알고 있다. 이들과 함께 재미난 일을 꾸민 적은 없는가?
파트타이머는 없다. 재미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의뢰받은 디자인 작업을 한다.
희한한 서적이 많이 보인다. 갈기갈기 찢어진 책에는 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소개 부탁한다.
싱가폴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워크(Work)에서 출판하는 베르크(Werk)라는 정기간행물이다.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cons)의 게릴라 스토어(Guerrilla Store) 프로젝트에 관련된 내용을 다룬다. 갈기갈기 찢어진 건 다 만들어진 책을 불에 달군 철조망으로 지져서 그렇다. 다른 이슈는 사격장에서 책을 세워두고 총을 쏘기도 했다.
이런 책은 하나의 작품으로 봐도 무방할까?
책의 어떤 성질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출판된 책을 예술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 세계 다양한 서적을 입고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유통이 쉽지 않았을 텐데.
쉽지 않다. 그래서 작은 출판사의 책을 모아 유통하는 디스트리뷰터와 거래하기도 한다.
특정한 구매층이 있나.
뚜렷한 공통점은 없다. 고객이 엄청나게 많은 건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고객이라면?
자주 들르던 손님과 일까지 함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포스트 포에틱스를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은.
유난히 불만스러운 부분이나 보람찬 순간은 없었다. 대개 만족하고 있다.
소규모 서점의 생존전략에 관해 말하고 싶은 것들이 있나. 지금 상황이 어떤가?
글쎄, 생존이란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비장하지는 않다. 물론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있다. 당장에는 운영에 큰 무리가 없다.
포스트 포에틱스에서 취급하는 책들을 보면, 굉장히 독특해서 “이런 책이 잘도 한국까지 들어왔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책을 내는 전 세계 독립출판의 생태계에 관해 알고 있는 것들이 있나?
매장에서 취급하는 책은 비교적 대중적인 게 많다. 그밖에는 보통 1,000부 안팎을 발행하는 출판사의 경우인데, 이 정도 규모를 두고 잘 팔리느냐 아니냐를 얘기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다.
지금은 자취를 감춘 수많은 한국 잡지처럼 이들도 수명이 짧은 편인지?
그렇다.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하면 보통 3년에서 5년 사이에 폐간되는 것 같다.
판매 활동 외에도 다른 클라이언트와 연계해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나?
특별히 없다. 매장에서 책을 판매하고, 편집 매장이나 도서관에 서적을 공급하는 일 정도를 하고 있다. 더 넓은 공간으로 이사할 계획인데, 가능하면 전시 공간을 함께 운영하고 싶다.
근래 본(혹은 최근에 생긴) 잡지 중에서 눈에 띄는 것들 몇 가지만 소개해 줄 수 있나?
사실 잡지는 거의 보지 않는다. 매장에서도 당분간 잡지는 들여오지 않을 생각이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잡지 중에는 시스템이나 스페이스 매거진의 콘텐츠가 흥미로워 보이지만, 정독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한국 독립출판 서적도 판매할 계획인가.
물론이다. 다만 아직은 국내 서적을 다루지 않는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인력이나 자본, 공간 등 물리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서다.
포스트 포에틱스의 취향이 반영된 국내 서적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지금 책을 고르는 기준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다.
서울 아트 북 페어, 언리미티드에디션(UNLIMITED EDITION)이 성황리에 끝나고 예술 서적, 독립출판, 그래픽디자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이런 묘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긍정적으로 본다. 자세히 알고 있지는 않아서 더는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직접 프레스로서 책, 잡지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 법도 한데.
당분간은 서점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때가 되면 출판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진행 / 텍스트 ㅣ 오욱석 권혁인
사진 ㅣ 권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