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GQ와의 인터뷰에서 너바나(Nirvana)의 드러머이자 푸 파이터스(Foo Fighters)의 프론트맨인 데이브 그롤 (Dave Grohl)이 매우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바로 힙합 신(Scene)의 이슈메이커인 릴 펌프(Lil Pump)의 음악이 현대의 펑크 록이라는 것. 그는 자신에게 펑크 록이란 독립적인 상태를 뜻하는 것이며, 릴 펌프의 음악이 이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면 충분히 현대의 펑크 록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데이브 그롤의 인터뷰에서도 느낄 수 있듯 몇 년 사이 세계 음악 시장의 트렌드는 완전히 변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음악계의 주도적인 트렌드는 록이었지만 현재는 힙합과 팝 음악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록을 향한 젊은 층의 관심은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 실제로 최근 미국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나의 기타 히어로’를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아티스트는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였다고 한다. 한국의 음악 시장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2018년 5월 기준 멜론의 월간 TOP 100에 국내 록 밴드의 음악은 단 한 곡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변화의 증거일까. 전자기타 명가 깁슨(Gibson)이 지난 1일(현지시각) 델라웨어주 법원에 연방 파산법 11장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무려 5억 달러 규모로 늘어난 부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 채권단들이 1억 달러 이상의 단기 대출에 동의하면서 주요 사업인 기타 제조업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오디오 액세서리 등 비주류 사업 분야는 정리될 예정이다.
세계 기타 시장을 펜더(Fender)와 양분해오던 깁슨이 파산한 가장 큰 이유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알려졌지만, 그 기저에는 달라진 음악계의 흐름 또한 존재한다. 실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악기 시장 전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던 것. 이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일 테지만, 수많은 록키드들이 느끼는 씁쓸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자 과거 전설적 기타리스트들과 록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몇 대의 깁슨 기타들을 소개한다.
슬래쉬(Slash) – ‘1987 Gibson Les Paul Standard’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잘 알려진 슬래쉬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등의 내로라하는 뮤지션과 작업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다. 깁슨의 대표적인 모델인 레스폴(Les Paul) 기타를 무릎까지 한껏 내리고 양다리를 벌린 연주 자세가 그의 트레이드마크. 그는 무려 100대가 넘는 기타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1987 Gibson Les Paul Standard’다. 슬래쉬가 건즈 앤 로지스의 ‘Appetite for Destruction’ 투어부터 벨벳 리볼버(Velvet Revolver) 시절까지 꾸준히 애용한 기타다. 원래 같은 기종의 기타를 두 대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한 대는 1990년대 후반에 도난당했다고 한다.
잭 와일드(Zakk Wylde) – ‘Gibson Zakk Wylde Les Paul Bullseye’
어마어마한 역변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블랙 레이블 소사이어티(Black Label Society)의 기타리스트 잭 와일드는 자신이 오지 오스본에 영입되기 전 밴드의 기타를 맡고 있던 랜디 로즈(Randy Rhodes)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랜디 로즈는 레스폴을 즐겨 연주했는데, 그런 그와 구분되길 원했던 잭 와일드는 불스아이 패턴의 도장으로 자신의 기타를 덮어버린다. 다만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지금의 불스아이 패턴이 잭 와일드가 원래 의도한 패턴이 아니었다는 것. 본래 잭 와일드는 영화 “현기증 (Vertigo)”에서 착안한 패턴을 원했지만, 기타 페인터가 잘못 이해하는 바람에 지금의 패턴이 완성된 것이라고.
지미 페이지(Jimmy Page) – ‘1959 Gibson Les Paul’
영국의 대표적인 밴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지미 페이지는 제프 백(Jeff Beck), 에릭 클랩튼(Eric Clapton)과 함께 록의 황금기를 이끈 기타리스트 삼인방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 역시 레스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중 한 명인데, 실제로 그의 라이브 공연을 보면 레스폴 또는 SG 더블넥을 주로 사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그가 ‘Number One’이라고 칭하며 아끼던 기타는 ‘1959 Gibson Les Paul’. 1969년, 500달러에 산 이 기타는 이후 록의 역사에 가장 상징적인 기타가 되었다.
존 사이크스(John Sykes)- ‘1959 Gibson Les Paul Sunburst’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의 존 사이크스는 일명 ‘레스폴의 귀공자”로 불릴 정도로 깁슨의 큰 팬이다. 그가 가장 애용하는 기타는 검은색의 ‘1987 Gibson Les Paul Custom’이며, 레스폴 기타와 마샬 (Marshall)의 JCM 800 앰프가 만들어내는 폭발적인 톤이 그의 매력이다. 하지만 그의 기타 중 ‘레스폴계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1959 Les Paul Sunburst’ 역시 [러브랜드(Loveland)]의 앨범 표지에 등장할 정도로 아끼던 기타였다. 실제 앨범에 수록된 곡 대부분이 이 기타로 연주되었다고.
앵거스 영(Angus Young) – ‘1968 Gibson SG’
형 말콤 영(Malcolm Young)과 함께 밴드 AC/DC의 주축을 이뤘던 앵거스 영은 독특한 스쿨룩 패션과 함께 깁슨 SG 기타와 마샬 앰프를 주로 사용했다. 그런 그가 특히 애용한 기타는 60년대 후반과 70년대의 깁슨 SG. 그는 60년대 후반의 모델들을 현재까지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앵거스 영의 광적인 팬을 자처하는 잭 블랙(Jack Black)이 영화 “스쿨 오브 락(School of Rock)”에서 연주한 기타 역시 동일 모델인 깁슨 SG다.
비비 킹(B. B. King) – ‘1995 Gibson BB King Lucille’
블루스 팬들이 프레디 킹(Freddy King), 알버트 킹(Albert King)과 함께 ‘블루스 기타 3대 킹’이라 부르는 기타리스트 비비 킹. 그는 무려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프로 기타리스트로서 쉬지 않고 활동한 블루스 음악의 대부다. 그런 그가 주로 사용한 모델은 깁슨의 루실(Lucille)로, 기존의 ES-335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타다. NPR과의 인터뷰에서 비비 킹은 기타에 루실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배경을 설명했는데, 과거 그가 공연하던 클럽에서 한 여자를 두고 싸우는 남자들 때문에 불이 난 적 있다고. 그때 그는 자신이 두고 온 30달러짜리 기타를 찾으러 갔다가 죽을 뻔했는데, 다시는 그런 바보 같은 일을 하지 말자는 뜻에서 모델명을 당시 그 여자의 이름인 루실로 정했다고 한다.
글 │ 김홍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