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스트리트 컬처의 흐름을 좇는 이들의 시야 밖에 있었다.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록 밴드를 배출하고 서핑을 비롯한 익스트림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등 시선을 끌 만한 크고 작은 움직임은 종종 감지되었으나 그들의 행보를 끈기 있게 좇아온 이는 많지 않을 터. 하지만 근 몇 년 사이, 88 라이징(88 Rising)의 리치 브라이언(Rich Brian)을 위시한 뮤지션 및 디자이너들이 인도네시아의 이름을 달고 글로벌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 문화의 강세와 함께 떠오르는 동남아시아 언더그라운드 신의 기수 중에는 인도네시아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도메스틱(Domestik)을 빼놓을 수 없다.
불과 두 번째 컬렉션에서 도버 스트릿 마켓(Dover Street Market)에 입점하고 하이스노바이어티(Highsnobiety) 선정 2017년 가장 주목해야 할 브랜드(The Best Under-the-Radar Brand of 2017)로 뽑히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온 도메스틱은 올해 성공적인 세 번째 해를 보냈다. 지난 9월, 다섯 번째 컬렉션 D-005 ‘Relic’을 발매하며 꾸준한 행보를 보여준 도메스틱은 전 세계 트렌드와 인도네시아 전통 문화의 중간에서 여전히 탁월한 균형 감각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후발주자로서 인도네시아 스트리트 신이 세계 시장에 어떤 모습을 선보이려고 하는지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은 도메스틱의 디렉터이자 디자이너, 라이언(Ryan)이 적격이었다.
당신과 당신의 브랜드를 소개해달라.
내 이름은 라이언(Ryan)이고,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Yogyakarta)에 살고 있다. 다수의 국제적인 브랜드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16년 후반에 내 의류 브랜드 도메스틱(Domestik)을 시작했다.
어떻게 지금의 동료들을 만나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었는가?
과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함께 미국의 유스 컬처(Youth Culture)를 좋아하던 친구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 당시 내가 하던 작업과 지금 도메스틱에서 선보이는 그래픽은 전혀 다른 것인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티셔츠에 던져 넣어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기로 한 거지. 브랜드를 시작한 첫해에는 직원이 한 명뿐이었고, 지금은 두 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도메스틱은 여전히 매우 어리고 작은 브랜드이다.
도메스틱의 그래픽 대부분은 당신이 직접 만들지만, 해외의 유명 아티스트와 디자이너 또한 컬렉션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콜라보레이션은 어떻게 성사되나?
모두 굉장히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사실 콜라보레이션을 사전에 계획하고 진행하진 않는다. 그저 다양한 아티스트와 대화를 나누는 일을 즐기고, 내가 도메스틱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에 그들이 관심을 보인다면 진행되는 거지.
DOMESTIK X CNY NYC 콜라보레이션 컬렉션 룩북
(사진 : Peter Sutherland / 모델 : Alex Olson)
도메스틱의 ‘Esoteric’ 컬렉션에서는 일본 아티스트 타와라야 데츠노리(Tetsunori Tawaraya)가 이슬람 전통의 지옥에 관한 우화, ‘식사 너라카(Siksa Neraka)’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기도 했다. 해외 아티스트가 인도네시아의 전통을 재해석할 때 느끼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면?
해외 아티스트와의 작업물에서는 두 문화의 접점이 느껴진다. 데츠노리의 작업물도 마찬가지. ‘식사 너라카’가 가지고 있는 자바(Java)섬 특유의 호러 무드를 데츠노리는 일본식 괴수(Kaiju)물을 통해 표현해냈다.
도메스틱의 5번째 컬렉션(D-005), ‘Relic’을 소개해 달라. 이 컬렉션에도 해외 아티스트의 협업이 있을까?
이번 ‘Relic’ 컬렉션의 그래픽은 모두 나 스스로 만들었다. 이번 컬렉션의 주제는 도메스틱의 첫 번째 컬렉션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다.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선사시대의 유물과 고대 인도네시아에서 영감을 가져왔지. 그리고 인도네시아를 상징하는 꽃 라플레시아(Rafflesia Arnoldii)와 코모도(Komodo)를 더해 원시적인 무드를 강조했다.
당신의 그래픽에서는 인도네시아 미술의 고유한 해학과 힘이 느껴진다. 인도네시아 미술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인도네시아 미술, 특히 전통 미술은 굉장히 깊고 의미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약간의 유머를 섞어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끔 돕는다.
개인적으로 도메스틱은 인도네시아의 전통을 소개하려는 사명감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혹자는 한 가지 주제에만 몰두하는 것이 브랜드의 강점이자 약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에는 너무나 많은 부족과 문화가 있다. 아직도 발굴해낼 소재가 많다고 믿는다.
언급한 타와라야 데츠노리 이외에도 도메스틱은 일본의 잡지 스튜디오 보이스(Studio Voice)에 소개되고 다양한 편집숍에 입점하는 등 일본과의 접점이 많다. 일본 신과의 교류는 어떤 계기로 시작됐나?
일본과 전혀 접점이 없다가, 도메스틱의 두 번째 컬렉션부터 도쿄의 도버스트릿마켓 긴자(DSM Ginza)에 입점하게 됐다. 도메스틱을 만들기 전부터 나에게 연락을 해와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는데, 도메스틱의 첫 번째 컬렉션을 계기로 내가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지 설명할 기회가 생겼고 입점까지 이어지게 된 거지. 도버스트릿마켓 긴자를 시작으로 모든 도버스트릿마켓 지점에 익스클루시브 릴리즈도 진행했다. 이후 차츰차츰 다른 브랜드 및 미디어와 연결고리가 생겼다. 대개 나와 그들의 공통 지인을 통해 연락을 받고 난 후 이메일이나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소통한다.
다양한 국가의 스트리트 컬처 신에서 도메스틱을 어떻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나?
솔직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난 내가 좋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왔을 뿐이다. 그저 여러 나라에서 내 작업물을 좋아하니 감사할 뿐.
인도네시아는 1년 내내 여름이 이어지는 열대 국가다. 기후적 특성이 해외의 스트리트 브랜드와 차별점을 만든다고 생각하는지?
인도네시아에 사계절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브랜드에 ‘여름 컬렉션’이나‘겨울 컬렉션’ 같은 명칭을 붙인다는 게 너무 어색하게 다가왔다. 지금 하는 대로 D-001, D-002 같이 이름 붙이는 것이 훨씬 간편하지. 당연히 도메스틱의 컬렉션은 지금까지 대부분 티셔츠로 이루어져 있다.
당신의 브랜드는 제품 라인을 무리해서 확장하기보다는 디제이 믹스셋이나 진(Zine) 등을 만드는 데 더 힘을 쏟았다. 단순히 수익보다는 문화와 예술적인 파장을 만드는 일에 더 집중하고자 하는 듯하다. 도메스틱이 이어가는 행보의 목표는 무엇인가?
브랜드의 제품과 문화적 활동은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브랜드의 가장 큰 목표는 수익이 아닌 움직임(Movement)이고, 어차피 자연스럽고 급하지 않은 성장을 바라고 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는 인도네시아 스트리트 신의 독특한 특성이 있다면?
비교적 역사가 짧은 신이기 때문에 한창 새로운 것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것들이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있는데, 주제부터 완성도까지 흥미로운 움직임이 많이 보인다.
최근 리치 브라이언(Rich Brian)과 니키(NIKI) 등 여러 인도네시아 뮤지션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아시아 팝 음악의 새 시대를 이끌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다.
굉장히 긍정적이다. 인터넷을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해서 목적을 달성한 사례 아닐까? 팝 음악이라고 해서 멋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하지 않는다. 결국 도메스틱도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 브랜드 아닌가. 하하.
최근 인도네시아의 브랜드와 음악이 클럽과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등지에서 더욱 자주 목격된다. 인도네시아 신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 아닐까. 지금 더욱 주목받아야 할 인도네시아 뮤지션을 꼽자면?
인도네시아 음악 신은 사실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지만, 해외에서 최근에서야 알아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스냐와(Senyawa), 개버 모두스 오퍼란디(Gabber Modus Operandi), 우왈마싸(Uwalmassa), 오존 쿠스마(Ojon Kusuma)와 가장 최근 떠오르고 있는 자투아(Zatua) 등의 뮤지션을 체크해보길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도메스틱의 향후 계획에 관해 조금 얘기해줄 수 있을까?
정말 솔직히 말해서 별로 계획이랄 것이 없다 하하. 그냥 내가 당장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뿐이다. 그저 도메스틱이 많은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그릇이 되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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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글 │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