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이자 발행인 레이 포티스(Ray Potes)의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시작해 캘리포니아(California)주를 중심으로 하나의 사진 흐름을 일군 햄버거 아이즈(Hamburger Eyes)는 이제 도시에 얼마 남지 않은 올드스쿨 사진 랩(Lab)이자 독립 출판사다. 레이 포티스는 2001년, 베이 에리어(Bay Area) 동네 한 골목 작은 공간에서 햄버거 아이즈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약 200권의 진(Zine), 사진집을 발간했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를 흑백 사진으로 펼쳐낸다는 기치 아래 햄버거 아이즈는 전 세계의 포토그래퍼에게서 일상의 편린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다. 무엇보다도 내가 레이 포티스와 햄버거 아이즈에 매료된 이유는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한 가지 일을 이어왔다는 데서 출발한다. 짧지만 힘 있는 한 가지 사실에 무수한 이야기와 통찰이 숨어있을 터. 그 하나만을 가지고도 허황된 영감이 아닌 실재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레이 포티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주고받았다.
반갑다. 레이 포티스라는 이름은 베이 에리어,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스케이트보딩, 그래피티, 사진, 페인팅 등 독립적인 예술 영역을 만들어가는 이들이라면 모르기 힘든 이름이라고 하던데. 간단한 소개 부탁하다.
캘리포니아에서 자랐고, 사진과 진 만드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진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진에 관심이 많던 아버지는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나 역시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가지고 놀았다. 본격적으로 사진에 빠지게 된 건 고등학교 입학 후 암실에서 직접 사진을 인화하면서부터다.
햄버거 아이즈를 시작한 이유라면? 그 이름의 의미도 알 수 있을까?
나는 굉장히 오랜 시간 진을 만들어왔다. 어느 날 햄버거 아이즈라는 이름의 진을 냈더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유독 다른 것보다 더 좋았다. 그래서 한 부 한 부 계속 만들다가 지금의 햄버거 아이즈가 되었다. 이름은 오래된 만화에서 가져왔는데, 두 사람이 외딴 섬에서 오랜 시간 굶주리다 결국, 서로를 음식으로 여기게 된다는 내용이다.
가장 좋아하는 햄버거를 알려 달라.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의 사워도우 잭(Sourdough Jack).
처음 진을 만들었을 때 일화가 궁금하다. 완전한 DIY였을 것 같은데, 어디에서 누구와 진을 찍어냈나?
중학교 2학년 때 내 첫 진을 만들었다. 두어 명의 친구들과 가위, 테이프를 들고 단순하게 만들었지. 그림도 많았고, 사진도 넣었다. 세븐 일레븐(7-Eleven)에서 복사했다.
오랜 시간 스케이트보드 문화에 속한 당신에게 스케이트보딩은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그 경험이 햄버거 아이즈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
나는 꾸준히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자랐다. 스케이트 매거진, 관련 진을 모으는 일도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스케이트보딩과 스케이터들이 만드는 쿨한 것들을 사랑하고, 따라서 나도 쿨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지.
베이 에리어, 샌프란시스코라는 지역의 특성이 햄버거 아이즈에 어떤 영감을 주는가?
우선 어느 곳에 가더라도 사람들이 우글대서 찍을만한 대상도 많다. 카메라를 들고 걸어 다니기에 좋다. 재미있는 곳이다.
독립적인 사진 프레스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울 때는 언제였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한다면.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돈이다. 간혹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인쇄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 때가 있다. 그래도 언제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이 모든 일이 재미있자고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려고 하고, 그런 생각이 이 일을 계속하게끔 한다.
사진작가를 찾는 기준을 알려 달라. 그들의 사진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하는가?
나는 그저 포토그래퍼가 자신의 주변에 호기심을 느끼는지 확인할 뿐이다. 테크닉이나 기술보다는 세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햄버거 아이즈의 목차에 등장하는 문구, ‘The Continuing Story of Life on Earth’를 통해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또는 라이프 매거진(Life Magazine)이 추구한 가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들과는 다른 방향성이 느껴지는데, 도시의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기록물을 수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문화가 우리의 일상 속에 묻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에 큰 흥미를 느낀다. 내가 사진을 수집하는 이유는 아마 우리가 그 차이점을 더 많이 알아갈수록 결국 모두가 똑같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수집하는 매체로, 영상이 아닌 사진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나는 영상도 좋아하고, 더 많이 가지고 놀고 싶다. 하지만 사진을 선택한 이유는 어린 시절 내가 사진과 프린트를 만드는 일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겠지.
흑백 사진, 스트리트 포토(Street Photo)와 같은 형식은 마치 뉴 다큐멘트(New Document) 계열의 사진작가들을 연상케 한다. 왜 지금도 이와 같은 방식을 고수하는가?
단지 내가 그런 방식으로 사진을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을 흑백 암실에서 배웠거든. 물론 진을 컬러로 인쇄하는 것이 더 비싸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단순히 내가 흑백 사진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거리 사진의 묘미라면.
사람들은 매일 길거리에서 무언가를 하는데. 우리는 사물과 사람을 관찰하는 일을 종종 잊곤 한다. 그래서 포토그래퍼는 거리로 나가 사진을 찍어서 관심을 좀 가지라고 상기시켜주는 거지.
흥미로운 목격담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한 번은 차가 내 옆을 지나가는데 큰 샌드위치 하나가 포장된 채 차체 위에 놓여있더라. 차는 지나갔고, 샌드위치는 그대로 떨어져 내 앞으로 굴러왔다. 딱 봐도 신선해 보이길래 친구와 반 나눠 먹었다.
잘 알고 있는 이와 처음 맞닥뜨린 대상을 찍는 일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내가 잘 아는 사람은 사진 찍기 더 수월할 것이고, 그들 역시 좀 더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햄버거 아이즈를 이어온 원동력은?
별다른 건 없다. 그저 세상에는 찍고, 발행해야 할 사진이 아직 너무나도 많다.
축적된 경험에서 비롯된 철칙이라고 한다면? 촬영, 편집, 인화, 전시,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 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잊기 쉬운 철칙이다.
유튜브와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등장하면서 미디어 환경과 소비자 행동 양식이 급변했다. 과포화된 영상 매체, 이미지의 무질서한 데이터화, 과잉 축적된 레트로의 시대에 묵묵히 세계의 사진을 수집해 책으로 엮는 행위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하다.
나는 유튜브를 통해 더 많은 것을 해보고 싶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다. 나는 인화한 사진을 보는 걸 좋아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사진도 인쇄된 형태로 보는 걸 좋아한다. 나는 책이 앞면과 뒷면이 있는 게 좋고, 처음과 끝이 있는 게 좋다. 나는 사진을 순서대로 둬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을 즐긴다.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 인스타그램의 등장으로,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거리 사진’이 디지털 유산으로서 부유하고 있다. 그 안에서 햄버거 아이즈가 추구하는 독자성은 무엇이며, 향후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려 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가치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고, 다양한 플랫폼과 카메라가 그들에게 새로운 목소리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나 같은 사람들에게 그 목소리는 진의 형태로 가장 잘 느껴지고, 햄버거 아이즈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적합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책과 진을 더 자주 인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한 달에 한두 권 정도로.
햄버거 아이즈의 흥미로운 점은 단순 사진뿐 아니라 ‘햄버거 아이즈’라는 이름의 큐레이션 같다. 수많은 작가의 사진에 어떤 편집점을 두고 구성하는지 궁금하다.
이전에 말했듯이, 나는 단지 포토그래퍼들이 자신의 삶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삶에 호기심을 가졌는지 보고자 한다. 나는 그들의 사고 과정, 심리, 철학, 창조성, 기쁨 혹은 고통을 찾는다.
웹사이트에서 밝힌 햄버거 아이즈의 달성 목표 페이지는 아직도 한참 남았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단면을 끊임없이 수집하다 보면, 당신과 독자는 과연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차고 넘치는 양의 기록물을 통해 우리가 개개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다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길 원한다.
진행 / 글 │권혁인
번역 │김홍식
사진 │ Hamburger Eyes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Paper 1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