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EN JULIEN

[Fallen]이라는 앨범은 발표된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데, 그 이유라 한다면 명료하고도 호쾌한 사운드로 단단하게 쌓아 올린 이 앨범이 여타 내로라하는 전자음악과도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수히 쏟아지는 음악 중에서 무작위로 하나의 곡을 골라서 들었을 때 특정한 이름이 떠오른다면, 그것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뮤지션에게 큰 영예와도 다름없을 것. 그런 측면에서 스티븐 줄리엔(Steven Julien)의 음악은 마치 간장게장 골목에 수십 개의 식당이 있어도 유독 기억에 남는 곳은 몇 없는 것처럼 주변의 웬만한 전자음악은 시시하다고 느껴질 만큼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스티븐 줄리엔은 순수한 아날로그주의자다. 화학적인 조미료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을 선호하는 요리사처럼 그는 과도한 디지털 소스는 한편에 치워두고 나서 신시사이저와 드럼 머신을 가지고 견고한 균형미, 그 황금 비율을 찾아낸다. 후술할 인터뷰에서 본인이 직접 밝혔듯, 스티븐 줄리엔이라는 이름으로 블렌딩한 전자음악에는 자신의 고향인 자메이카, 위대한 아프리칸 리듬이라는 정신적인 토대에 다양한 음악적 원천이 스며들어있다.

자, 이제 작년 5월에 에이프런 레코드(Apron Records)의 깃발을 내걸고 콘트라 서울(Contra Seoul)을 방문한 스티븐 줄리엔의 이야기를 공개할 시간이다. 추가적인 질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어느새 1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렀지만, 그 시간과 무관하게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현재의 스티븐 줄리엔을 만든 서사에서 우리는 다시금 창작의 동기를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에는 에이프런 레코즈의 동료, 미스터 레들리(Mr. Redley)가 함께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보자. 음악에 처음 빠져들었던 시기는 언제인가? 그때 무엇을 들었으며, 어떤 경험이 기억에 남아있는지 궁금하다.

난 어린 시절부터 힙합과 춤을 좋아하던 힙합 가이(Hip-Hop Guy)였다. MC 해머를 안다면 하이프 댄싱(Hype Dancing)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삼촌도 하이프 댄싱을 췄고, 나 또한 그러한 춤에 영향을 받았다. 9~10살 무렵이었는데, 학교에서 친구들과 댄스 그룹을 만들어서 활동했다. 그러다 랩에 빠져서 엄청나게 연습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 뒤로 마이크를 내려놓고 비트를 찍었다.

음악과 관련이 없는 직업을 구한 적도 있나?

그렇다. 나는 10년간 이발사로 일하면서 혼자 음악 작업을 이어왔다. 이발소에서 일하던 마지막 2~3년 동안 실제 음반 작업에 착수했다. 내가 일하던 이발소에 온 고객은 마약상, 살인자, 약사 등 다양했다. 사람들은 내가 이발사에 전념하길 바랐지만, 나는 원치 않았다.

다시 음악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인가.

음악을 안 하니 기쁘지 않았다. 이발사로 살던 어느 날, 지인 한 명이 스튜디오에서 내 비트를 듣고 난 뒤 알렉산더 넛(Alexander Nut)을 소개해줬다. 그 역시 내 비트를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그걸 계기로 플라스틱 피플(Plastic People)이라는 클럽에서 내 음악이 흘러나왔고, 앨범 제작까지 이어지게 됐다.

가족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다. 가족의 배경과 당시 본인이 나고 자란 지역을 통해 스티븐 줄리엔이 주조하는 음악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아버지의 친척이 버밍엄(Bermingham)에서 사운드 시스템(Sound System) 관련한 일을 했는데, 아버지는 항상 그곳에 가곤 했다. 당시 나도 가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 경험은 음악 그 이상이었다. 사실 내 음악은 영국보다도 자메이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내 가족은 자메이카 출신이고, 이에 기반한 음악은 레게와 댄스홀, 덥까지 연결된다. 물론 자메이칸 뮤직은 영국에 많은 영향을 줬다.

현재도 사운드 시스템을 만드는 이들이 많은가?

그렇지는 않다. 70년대의 문화다. 지금 영국의 젊은 층이 사운드 시스템을 이어나가고 있지는 않다.

추후 프로듀서로 변모하면서 굉장히 다양한 장르를 소화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르는 본인에게 어떤 개념인가?

난 나를 특정한 카테고리에 넣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자유롭지 못하면, 창작도 힘들게 느껴진다. 차라리 장르를 잊는 편이 낫다. 특정한 장르를 고집하는 이들도 결국 하나에 국한해서 듣는 사람은 없다. 여기저기서 영향을 주고받은 음악을 자기도 모르게 습득하는 것처럼 나 또한 마찬가지다.

Steven Julien – [Fallen]

스티븐 줄리엔이라는 본명으로 발표한 데뷔 앨범 [Fallen]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전 활동명 ‘funkineven’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행보를 시작한 이유는? 본명을 사용하면서 의도한 변화가 있다면.

훵크(Funk)라는 장르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동시에 어느샌가부터 내 음악을 특정한 범주로 예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뭔가 시시해진 기분이었다.

2018년에 발표한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Bloodline]은 본인의 뿌리, 즉 혈통과 음악적인 유산(Heritage)에 바치는 스티븐 줄리엔식의 경의로 느껴진다. 앨범에 착수하게 된 동기에 관해 듣고 싶다. 이전 앨범 [Fallen]를 만들 때와 어떤 면에서 달랐는지?

[Fallen]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만든 앨범은 아니다. 그저 내 음악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뒀다. 난 그저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어떤 자유로움을 표현한 거지. [Fallen] 이전까지의 작업은 그저 ‘Good’ 정도였다고 해야 할까. 그 앨범은 나를 뮤지션으로 확립하는 난관 같았다. [Fallen]을 내고 난 뒤에는 그다음 레벨과 주제에 걸맞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느꼈다.

롤랜드 TR-808을 자신의 혈통(Bloodline)이라고 칭하기까지 했다. 롤랜드 사의 드럼 머신이 본인에게 준 영향이라고 한다면?

나 자신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Fallen]에서 그저 주어진 도구를 활용했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근원적인 측면에서 내 애정과 리스펙트를 드러내고 싶었다. 이건 나아가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내게 영향을 준 가족과 문화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롤랜드 패밀리’ 같은 느낌으로. 나는 어렸을 때 주로 야마하(Yamaha)와 같은 기기를 경험했고, 롤랜드 머신을 접하면서 내 음악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Steven Julien – [Bloodline]

타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 중에서 “나의 드럼 프로그래밍은 단순히 나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먼 조상의 라인에서부터 비롯된다”라는 문구를 보았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리듬을 의미한다. 부족, 종족(Tribe)에서 비롯된다. 음악의 대부분이 리듬이자 드럼이라 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아프리칸 사운드에서 시작되었다.

남양주 운길산에서 영감을 얻은 “Queen of Ungilsan”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운길산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을 어떤 사운드로 표현하려 했는지.

운길산에 진입하는 길, 다시 나오는 길에 들어보라. 그러면 그날 밤 내가 느낀 영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운길산을 경험한 나의 영감을 해석한 트랙이다. 말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케이크샵의 자매 클럽 콘트라(Contra) 오픈 파티부터 2019년 5월, 에이프런 파티까지 두 번이나 콘트라의 밤을 책임졌는데, 소감이 어떤가? 또한 한국의 클럽에서 느낀 에너지는 어떤 형태였는지 궁금하다.

난 독특한 색깔을 지닌 도시를 좋아한다. 이탈리아, 남미, 인도, 아시아 일부 국가, 미국의 일부 도시 등 강렬한 문화적인 유산과 색채를 지닌 곳. 특히 프랑스는 다른 곳과는 많이 다르다. 지난 콘트라 파티도 인상적이었다. 라인업이 대체로 흑인에 심지어 여성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전자음악 신(Scene)의 흑인 현상(Black Phenomenon)을 보는 듯했다. 인종을 들먹이려는 게 아니라 그저 보이는 부분이 새롭게 다가왔다. 영국은 주로 백인이라서. 그날 내가 춤을 추고 있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한국에 와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서울은 문화의 모든 측면이 발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재밌다. 유럽은 이미 어느 정도 ‘보장된 흥행’을 예측할 수 있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으니까.

해외 공연을 진행할 때 해당 국가에서 꽤 오랜 시간 체류하는 편인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Steven Julien: 장소가 주는 영감 때문이다. 각국의 도시 그리고 아시아에서 어떤 영감을 찾고 있다. 근래에 이집트에 간 적이 있는데, 내가 플레이하는 이집트의 모든 장소에서 사람들이 신나게 파티를 즐겼다. 제법 생경한 풍경이었다. 이처럼 내가 여행하는 지역에 실제로 거주하는 이들이 파티를 즐기는 방식을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는 사실이겠지. 나는 여행 전체를 내 음악을 위한 영감이라고 여긴다.

Mr. Redley: 이번 서울 투어에서는 을지로가 흥미로웠다. 그곳은 올드 서울이라고 하더라. 클리크 레코드(Clique Records)가 재미있었다.

에이프런 레코드는 어떤 방향성을 추구하는가? 단순 음악 레이블이 아닌 의류 및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데.

Steven Julien: 에이프런의 영감은 우탱 클랜(Wu-Tang Clan)과 팔라스 스케이트보드(Palace Skateboards) 사이의 어딘가다. 영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에토스다. 단순한 디제이, 앨범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좀 더 넓은 개념의 음악, 문화를 포괄한다. 난 모든 걸 진지하게 보는 편이다. 음악에 몰입하면, 패션까지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즉, 모든 게 뒤섞이는 걸 말한다.

Mr. Redley: 그렇게 교차되는 개념을 에이프런 레코드가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전 세계 아티스트와 교류할 수 있는 하나의 표현 방식이다.

싱글 [Heart Pound] 재킷에 그려진 수많은 아날로그 악기부터 시작해서 [Bloodline]의 808 트랙들, 에이프런 릴리즈 앨범들의 카세트테이프, 바이닐 프레스 등 오리지널을 향한 경외심(Respect)과 아날로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 같다. 이에 관련된 철학을 듣고 싶다.

Steven Julien: 촉각, 만질 수 있는 유형성(Tangibility)에 관한 문제다. 이건 매우 중요하다. 2019년도에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것들은 만질 수 없지만 볼 수는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무엇인가 유심히 보면서 느끼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보는 일의 실제 육화된 방식(Physical Way)을 의미한다.

Mr. Redley: 내가 아는 어떤 이는 그저 레코드가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구매한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마치 하나의 인테리어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근래 바이닐을 콘셉트로 한 바이닐 펍도 많이 생겼다. 바이닐을 인테리어로만 활용하고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튼다는 곳도 제법 많다.

재미있는 이야기다. 그저 인스타그램에 보여주기 위한 행위인가?

글쎄.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만들 때도 빈티지 기어 세팅으로 접근하는가?

같은 맥락이다. 이것도 일종의 만질 수 있는 방식(Tangible Way)이다. 스크림(Scream)을 사용하는 방식인데 나는 스크림의 노이즈(Noise)를 보고 음악의 느낌을 표현한다. 아날로그 음악은 뭔가 하드웨어와 비슷하다. 나는 아날로그에 기반한 프로듀싱이 더욱 자유롭게 느껴진다.

그간 꾸준히 자신들의 라디오 ‘NTS The Apron Show’를 진행해왔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에이프런 레코드, 또는 스티븐 줄리엔에게 어떤 의미인가?

Steven Julien: 라디오 한 시간을 위해 한 달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모든 에너지와 이야기를 쏟아낸다.

Mr. Redley: 나는 사람들이 라디오 쇼를 통해 여행하기를 바란다. 각자의 직업과는 무관하게 일상에서 잠시 탈출하는 방식이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 새롭게 접했으면 좋겠다.

본인이 지나온 음악 여정에서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사건, 영감이 있다면 듣고 싶다.

1. 나는 어린 시절 운이 좋게도 음악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나는 더블 베이스를 연주했다. 18살이 될 때쯤 더블 베이스를 그만뒀고, 이후로 종종 프로듀싱 작업을 이어갔다. 영감이 필요할 때면 악기를 연주했던 그때로 돌아가 내가 연주했던 다양한 곡을 떠올린다. 그러면 내가 왜 음악을 만들고, 디제이가 되고자 했는지 다시금 떠오르곤 한다.

2. 바스키아. 몇 년 전 런던에서 대규모의 장 미셸 바스키아 회고전이 열렸고, 나 역시 전시의 오프닝 행사에 초대되어서 방문했다. 스트리트 아트, 음악,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융합되는 그 장면이 강한 시각적 자극으로 다가왔다. 다양한 예술 영역의 거친 연관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언제라도 영감이 필요할 때 갤러리와 미술관이 가장 완벽한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3. 여행. 서울은 내게 굉장히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한국을 비롯한 근방의 아시아 국가를 여행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음식과 사람 그리고 도시 그 자체가 모두 훌륭했다. 굉장히 큰 영감을 준 도시다.

Apron Records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Steven Julien 인스타그램 계정


에디터│권혁인
통역│최장민
사진│유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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