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드러머로 커리어를 시작해 지금은 시부야와 시모키타자와 사이, 미지의 동네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다소 독특한 이력의 인물 나카츠가와 고로(Goro Nakatsugawa). 그가 운영하는 스토어 역시 그 못지않게 흥미로운데, 현재 전 세계 서브컬처 신(Scene) 내 주요한 역할을 하는 패션 브랜드를 집약, 민나노(MIN-NANO)라는 이름의 숍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재빠르게 흘러가는 스트리트 패션의 물결 속, 내실 있는 브랜드로 채워진 숍 컬렉션은 오랜 시간 음악과 패션 등 다양한 문화를 즐기며 얻은 그의 통찰력과 감식안 덕일 테다. 올해로 12년 차를 맞이한 숍 오너지만, 그는 여전히 패션을 처음 접했던 청소년 시기의 천진함으로 계속해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나카츠가와 고로라고 한다. 도쿄 출신으로 올해로 43살이 되었다. 민나노와 투고(TOXGO)라는 두 편집 스토어의 오너이자, 스니즈 매거진(Sneeze Magazine)과 룩 스튜디오(LQQK Studio)라는 브랜드의 일본 유통을 돕는 일도 겸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두 딸을 키우고 있다.
민나노를 운영하기 이전 1998년부터 ‘COMEBACK MY DAUGHTERS’라는 밴드의 드러머로 활동했다. 빌보드 차트에도 오르는 등 적지 않은 인기를 모았다고 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 즈음 처음 음악을 접했다. 그 당시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드럼을 배우고 연습하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밴드 활동은 취미의 성격이 강했고, 19살이 되고 나서야 ‘COMEBACK MY DAUGHTERS’라는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다.
밴드 활동 시절 당신의 패션 스타일은?
멤버 모두가 무대 의상을 입고 활동하는 밴드는 아니었기에, 지금과 별다름 없는 스타일이라 할 수 있겠다. 슈프림(Supreme)이나 스투시(Stussy), 또는 좋아하는 뮤지션의 티셔츠를 입곤 했다.
당시의 음악 활동이 패션 업계에 종사하는 지금에까지 특별한 영향을 끼치고 있나.
현재로서는 밴드 활동에 그렇다 할 욕심이 없지만, 밴드 시절 굿즈 생산이나 디자인을 하면서 디자인 능력을 어느 정도 키울 수 있었다. D.I.Y(Do It Yourself)에 관한 훈련이랄까. A부터 B까지 혼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독창적인 활동이 되었다든지, 여러 흔치 않은 경험 덕에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행하는 가치관을 배웠다. 물론 지금도 그 소신은 굽히지 않고 있으며,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밴드를 그만두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가게 운영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때마침 밴드가 피자 오브 데스 레코드(PIZZA OF DEATH RECORDS)라는 인디펜던트 레이블에서 꽤나 메이저한 소속사로 합류할 때여서 좋은 타이밍에 밴드를 그만둘 수 있었다.
당신의 학창 시절인 90년대는 ‘우라하라’라고 불린, 일본의 스트리트웨어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어오던 시기다. 그 당시 하라주쿠의 분위기를 묘사한다면.
처음에는 미스터리와 같았다. 단어의 뜻 그대로 하라주쿠 내 중심을 빠져나온 뒷골목 문화라고 할까. 주택지 같은 지역에 수많은 가게가 즐비했고, 그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패션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전혀 구할 수 없었던 옷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왜 다들 본 적 없는 스니커즈를 신었을까, 도대체 어디서 살 수 있는 걸까, 하며 신기해할 뿐이었다. 나중에서야 그것들이 발매될 때마다 곧바로 매진되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시절 당신은 어떤 학생이었나?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쉽게 말해, 만화에 나올 법한 축구부, 농구부 학생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검도를 했는데, 운동을 하는 와중에 내가 음악과 패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학교가 끝나면 그대로 자전거를 끌고 달려가, 펑크나 하드코어 계의 바이닐을 사러 레코드숍을 돌아다녔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아르바이트에 매진하며 월급으로 바이닐과 옷만 계속 사곤 했다.
당시 도쿄의 거리에서 유행했던 브랜드, 혹은 특정 아이템은 무엇이었는지.
당시 어떤 월간 잡지에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 니고(NIGO), 언더커버(UNDERCOVER)의 타카하시 준(Jun Takahashi) 같은 인물이 최근 구매하거나 관심을 보인 것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오로지 그 페이지만 꾸준히 체크하곤 했는데, 아마 당시 ‘우라하라’ 문화에 빠진 이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아이템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디테일이 엄청났기 때문일까. 브랜드로 구분해 이야기하자면, 노스웨이브(Northwave) 운동화, 언더커버와 협업한 잭 퍼셀(Jack Purcell), 레드윙(Redwing)의 베이지 스웨이드 아이리시 세터(Irish Setter), 크롬하츠(Chrome Hearts) 체인, 굿이너프(GOODENOUGH) 바시티 재킷, 베이프(A Bathing Ape)의 로고 티셔츠 등이었다.
슈프림과 같은 미국발 스케이트보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에 이어 베이프, 헥틱(HECTIC) 등의 다양한 스트리트웨어 라벨이 일본 서브컬처 신에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을 것 같은데, 이러한 브랜드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
그 당시 헥틱 스토어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숍 내부가 농구 코트처럼 되어 있었고, 손님이 들어와도 점원들은 농구를 하고 있는 쿨한 분위기였다. 이래저래 흥미로운 브랜드가 많았지만, 사실 슈프림을 접하고 나서는, 해외 브랜드 쪽으로 관심을 두게 되어 국내 브랜드는 별로 체크하지 않았다. 점점 서브컬처의 모습을 잃어갔기 때문일까. 때로는 TV에서 개그맨이 베이프 옷을 입고 나오기도 하는 등, 브랜드 자체가 너무 대중화되었다고 느꼈다.
밴드 활동과 함께 2009년 민나노라는 편집 스토어를 열었다. 음악 활동 이후 편집 스토어를 연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밴드 활동만으로는 만족스럽게 생활하기에 너무나 큰 어려움을 느껴 투잡을 뛰었다. 평일에는 일만 하고, 금요일 밤부터 주말내내 밴드 투어를 하며 꾸준히 라이브를 하곤 했다. 그 일주일이 계속 반복되었는데, 사실 너무 힘들었다. 물론 평일의 일 자체가 음악 관련 업무였기에, 회사의 반대 같은 불상사는 없었지만, 그 둘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상당한 과제였다.
그런 생활이 이어지는 도중, 미국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겸 밴드 활동을 하는 이들이나, 일본 내에서도 ‘TOE’라는 밴드를 보면서 비슷한 꿈을 키워갔다. 특히 이 밴드는 아웃도어 브랜드의 대리점을 운영하거나, 유명 프로 드러머의 백밴드에서 연주를 하는 사람 등으로 꾸려져 있는데, 이처럼 멋진 일을 하면서도 밴드 활동까지 해내는 모습이 너무 멋있게 보였다. 그러던 때, 우리 밴드 멤버 중 한 명이 일하는 회사의 소유였던, 지금 민나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가게 매물이 나왔고, 고민 끝에 홀로 가게를 운영하기로 했다.
실제 민나노를 방문했을 때 득시글한 도쿄의 중심부와는 꽤 동떨어진 지역에 자리한 걸 보고 적잖이 놀랐다. 조용한 동네에 작은 가게의 입지를 정한 특별한 이유라면?
위와 같이 가게가 본래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나노 이전 밴드 멤버가 운영하던 가게를 꽤 찾아가긴 했는데,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이곳이 도심과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는 밴드 활동 또한 포기하고 싶지 않아 추후 밴드 사무실로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 외에도 스토어가 순조롭게 운영된다면 번화한 나카메구로 근처로 옮기겠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지금은 현 위치인 이케노우에를 떠나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이 동네에 애착이 크다.
민나노의 시작은 자전거 가게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전거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건가.
2009년 무렵 일본에서도 픽스드 기어 바이크 문화 열풍이 점점 커지고 있었고, 나도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 모두들 알겠지만, 일본 내 자전거의 역사는 매우 깊은 편이다. 자전거 제조업이 80년대까지 크게 번성했던 것은 물론, 경륜이라는 스포츠가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밴드 투어를 다녔을 때 꽤나 레어한 자전거나 부품 등을 찾아다니곤 했던 나에게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는 것은 자그마한 꿈이기도 했다.
초창기 민나노는 어떤 모습이었나.
처음에는 민나노를 옷가게로 운영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밴드의 이미지를 유지한 채로 직접 제작한 밴드 티셔츠와 좋아하는 뮤지션의 티셔츠를 판매하며, 그와 함께 자전거까지 다루는 낯선 가게로 시작했을 뿐이다. 가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브컬처 신에서 상당한 유명세를 떨친 사람이 자전거 부품을 구매하러 방문한 적이 있다. 이때부터 가게의 위치와는 무관하게, 본인이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어떻게든 찾아와 준다는 것을 깨닫고, 점점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상품을 국내외에서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러한 물건을 사주는 손님 덕분에 점점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이러한 일들이 가게를 지금 같은 모습으로 변화해 나갈 수 있었던 동기가 아닐까 싶다.
지금의 민나노는 세계 각지 유수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를 엄선해 놓은 느낌이다. 단순한 딜러숍의 역할을 넘어 브랜드 디렉터와의 끈끈한 유대가 느껴지는데, 어떻게 그들과 관계를 맺게 되었나.
지극히 운이 좋게도 브랜드, 그리고 브랜드 디렉터 측에서 선뜻 먼저 연락을 줬다. 더불어, 스트리트 컬처의 역사를 구축해 온 전 세대 선배들의 덕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연장선에서 일할 수 있음에 큰 영광을 느끼며, 앞으로도 그러한 존재가 끝까지 멋진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민나노에 들여오는 브랜드 선정의 특별한 기준이랄 게 있는지.
내가 입고 싶은 것. 그게 유일한 기준이다.
종종 민나노의 정체성이 담긴 아이템을 출시하고 있다. 그래픽부터 생산에 이르기까지 등 제품이 나오는 일련의 과정을 홀로 진행하나.
대부분 혼자 하는 편이다. 지금은 ‘SHINKNOWNSUKE’ 씨가 파트너로서 많은 일을 도와주며 함께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직접 하는 게 가장 편하고 빨라 때로는 혼자서 다 끝내버리기도 한다.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 또한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협업이 있었나.
협업은 언제나 새롭고 즐겁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업을 꼽자면 뉴욕의 굿 컴퍼니(The Good Company) 팝업 스토어가 아닐까 싶다. 그때 다양한 친구들이 티셔츠를 만들어 주었는데, 특히 해외로 갈 수 없는 현재 상황을 고려한 지금 가장 그리우면서도 좋았던 추억이다. 더불어 가장 먼저 협업을 진행한 메디콤 토이(Medicom Toy)의 와타나베 씨에게도 큰 감사를 드린다. 이 덕분에 지금까지도 빔즈(BEAMS)와 정기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많은 이들을 소개받으며 다양한 협업이 생겨난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여담으로 포터(Porter)와의 협업도. 와타나베 씨가 포터 담당자와 술 취한 채로 가게에 방문하면서 시작되었다.
투고는 초기 빈티지를 베이스로 한 스토어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민나노에서 취급하지 않는 다양한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는데, 굳이 이름과 공간을 민나노와 나눈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은 위에서 잠시나마 얘기했던 굿 컴퍼니의 팝업 스토어가 투고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민나노의 입지나 다양성에 어느 정도 한계를 느꼈다. 이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현 투고의 파트너인 타츠오(TATSUO)가 가지고 있던 몇 가지 물건을 빌려 팝업을 진행했다. 민나노에는 없는 하라주쿠의 개성 또한 느낄 수 있었기에 하라주쿠에서 가게를 열어보고 싶었고, 타츠오와 긴 상의 끝에 함께 운영하기로 결심했다. ‘TOXGO’라는 이름 자체가 TATSU‘O’ X GOR‘O’라는 뜻을 지녔다.
민나노와 투고까지 현재 취급하는 브랜드만 해도 수십 가지에 이른다. 홀로 이 모든 브랜드, 빈티지를 컨트롤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힘에 부치지 않나? 혹은, 업무를 나누는 조력자가 있는지.
그래서 투고의 타츠오가 파트너로서 같이 일하고 있다. 가게 관리도 해주고, 빈티지 물품까지 모두 다 담당하고 있다. 물론 내가 직접 좋아하는 빈티지를 찾아 팔기도 한다. 놀랍게도 우리 둘은 동갑이다. 옛날얘기지만, 타츠오도 밴드를 한 적이 있고, 실제로 같이 공연한 적도 있다. 그는 하라주쿠, 시모키타자와, 시부야 등에서 빈티지 숍을 운영하고 있는데, 때마침 빈티지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팔 공간을 찾고 있었다. 내가 하라주쿠에서 가게를 운영해보겠다는 욕심이 이와 맞물려 지금까지도 같이 일을 하고 있다. 타츠오가 선택한 브랜드로는 컴 선다운(Come Sundown), 그라인드 런던(grindlondon), 네버 슬립(Never Sleep) 등이 있다. 기본적인 가게 운영은 스태프인 나리(Nari)가 담당하고 있다. 꽤 과묵한 편이지만, 상품 촬영의 진정한 달인이다.
현재 당신이 취급하는 여러 브랜드 중 몇 가지는 한국의 ‘웝트(WARPED.)’, ‘웍스아웃(WORKSOUT)’ 등의 편집 스토어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대부분 훌륭한 디자인, 기획이 돋보이는 브랜드지만, 아직 많은 이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러한 브랜드를 취급하는 일본의 사정은 어떤가.
일본은 스토어가 직접 선택한 브랜드를 손님이 쉽게 받아들이고 거부하지 않는 좋은 문화가 있다. 물론, 상품 자체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가게 그 자체를 좋아하며 신뢰하기 때문에 이 점에서 개방적인 손님이 많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 또한 손님에게는 항상 솔직하고 성실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때로는 우리가 다루는 브랜드의 상품이나 콘셉트를 큰 회사가 교묘하게 도용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러한 회사는 새로운 트렌드가 오면 꼬리 잡듯 그쪽으로 떠나가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결국 비슷한 제품이라도 누구에게서 그리고 어디서 살 것인지는 고객이 선택하고 있다.
숍을 찾는 고객은 어떤 사람들인가?
두 가게를 구분해서 이야기하자면, 민나노는 손님의 연령층이 높은 편이다. 때로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 찾아오기도 하는데, 그러한 모습에 큰 영감을 받으며 일종의 학구열이 불타오른다. 반대로 투고는 10대의 젊은 손님이 많은 편이다. 옷가게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정말 크나큰 영광이라고 느낀다.
작년 여름 민나노의 두 번째 공간을 오픈했다. 이전과는 또 다른, 꽤 정돈된 인상이다. 새 공간의 콘셉트에 관해 이야기해 달라.
지금까지의 민나노와는 전혀 다른 콘셉트로 공간을 꾸렸다. 테마라고 말하자면, 흔히 볼 수 있는 옷가게라고 할까. 현재 민나노 1호점은 자전거 전문, 2호점은 옷가게로 완전히 분리해서 운영하고 있다.
숍에서 취급하지 않는 브랜드 중 주목하는 브랜드가 있는지.
바다에서 멀지 않은 히라츠카라는 지역이 있다. 그곳에 듀드 인(DUDE INN)이라는 브랜드가 있는데, ‘데드헤드’라는 문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해외 브랜드 중 하나를 꼽자면, LA의 퓨어 뷰티(PURE BEAUTY)라는 마리화나 브랜드. 그 굿즈가 상당히 멋지다. 실제로 작년에는 그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푹 빠져 있곤 했다.
브랜드, 패션 스토어를 제외한, 도쿄 내 추천하고 싶거나 본인이 자주 들리는 가게가 있다면.
・이케지리대교에 위치한 케이샤(鶏舎) / 기가 막히는 중국요리 가게다. 뭘 먹어도 맛있다.
・ 시부야에 위치한 유우지(ゆうじ) / 한국식 바비큐를 코스 요리로 뽐내는 가게. 입에서 녹는다.
・ 시모타카이도에 위치한 바버 사코타(BARBER SAKOTA) / 머리카락을 상당히 잘 자른다. 사전에 예약할 수 없는 것이 단점.
・ 시모키타자와에 위치한 베어폰드 에스프레소(BEAR
POND ESPRESSO) /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이곳이 감히 최고라 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스니커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스니커 모델 3개를 꼽자면?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다. 순위를 매길 순 없지만, 세 가지를 꼽아보았다.
・ ADIDAS CAMPUS(SAX BLUE) / 나에게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는 빠질 수 없는 존재다. 그들이 2cm 정도 큰 운동화를 신는다는 잡지 칼럼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 NIKE AIR FORCE 1(ALL WHITE) / 죽을 때까지 하나의 스니커즈만 신어야 한다면 무조건 에어 포스 1.
・ NEW BALANCE 990 V3(GRAY) / 현시점 가장 완성된 990이 아닐까.
현재 전 세계 패션 브랜드, 그중에서도 스트리트웨어의 동향은 전통적인 패션 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아티스트나 뮤지션 등의 인물이 계속해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흐름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나 또한 패션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으며, 옷가게에서 일한 경험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런 전문 지식이나 고정관념 등이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데 일종의 장애물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스트리트웨어에 있어서는 그러한 지식은 필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오히려 아트나 음악 등 다른 문화를 접해온 사람이 직접 만드는 것들이 외려 신선하게 비치는 게 아닐까. 그것을 본인이 입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같은 맥락으로 최근 고급 브랜드 등의 경향이나 유행을 보면 매우 지루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21년 예정된 민나노의 계획은 무엇인가.
90년대 브랜드인 게리 코스비(GERRY COSBY)의 새로운 라인, 코스비 A+C(COSBY A+C)의 디렉션을 담당하고 있으며, 올해 4월부터 빔즈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더불어, 아직 미공개라 조심스럽지만, 같은 4월에 유니온 도쿄(UNION TOKYO)와의 협업도 진행한다. 이번 호 인터뷰에 나를 선택해 주어서 대단히 고맙다. 힘든 시기가 계속되지만 모든 분들이 건강하길 바라며, 한국 친구들과 재회할 수 있는 그 날이 조만간 올 수 있길 바란다.
에디터│오욱석
어시스턴트│이인용
포토그래퍼│Shunsuke Si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