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JIYA

싱어송라이터 현지야(HUNJIYA)가 그의 세 번째 EP [KHAMAI]를 발표, 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한국 활동을 시작한다. 서울 출생, 뉴욕과 마이애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다가 1년 반 전에 서울에 정착한 현지야는 [KHAMAI]를 통해 ‘나다움’을 찾고자 한다. 한국어가 서툰 탓에 현지야의 음악은 영어가 주를 이루지만 솔직한 이야기를 대담히 읊조리고 유려한 멜로디와 화음을 장착해 언어의 장벽을 넘어 공감을 이끈다. 이하는 EP [KHAMAI]의 서사와 현지야를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대화문이다. EP와 함께 찬찬히 따라갈 것을 권한다.


아티스트 명 ‘현지야’의 의미는 어떤 의미인가? ‘현지’라는 이름이 아닌 ‘현지야’라는 활동명이 재밌는 포인트다.

어릴 때 부모님이 나를 ‘현지야’라고 불렀다. 나는 그때 내 이름이 ‘현지’가 아닌 ‘현지야’로 착각한 것에서 시작한 이름이다. 처음에는 내 영어 이름인 ‘앨리스’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미국에 현지라는 이름은 없어서 ‘현지야’로 활동명을 바꾸었다. 그러고 한국에 왔는데 한국에는 이미 수많은 현지가 있었지 하하.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클라리넷과 피아노 레슨을 받았지만, 사실 그때는 즐기지 못 했다. 음악이 좋아진 건 내가 고등학교에 가고 유튜브를 보면서부터다. 그때 우크렐레와 기타를 배우면서 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커버 송을 제작하기 시작했지. 내가 커버 영상을 제작하는 걸 아무에게도 공유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친구가 나의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되어서 반 친구들에게 알려졌고, 반응이 좋아서 기뻤다. 그 후로 고등학생 음악 프로그램에 도전하기도 하고 대학교는 아예 음악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밀릭(MILLIC)과 EOH가 주축으로 움직이는 레이블 ‘파익스퍼밀(PAIX PER MIL)’ 소속으로 [KHAMAI]를 계기로 본격적인 한국 활동을 시작한다고 들었다. 레이블과 인연은 어떻게 닿게 됐는지 궁금한데.

밀릭이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내 음악을 찾아 들었던 것이 시작이다. 그가 인스타그램 DM으로 연락했고, 후에 페이스타임으로 연락하며 파익스퍼밀의 전반적인 콘셉트와 소속 아티스트 작업물을 소개했다. 그때 레이블이 추구하는 방향이 나와 잘 맞을 것 같았다.

뉴욕에서 오래 거주하다 한국행을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으리라 예상한다. 그런데도 대담하게 결정한 데는 레이블이 어떤 확신이나 기대를 주었을 것이라 예상하는데, 현지야는 당시 파익스퍼밀 레이블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우선 밀릭이 아티스트의 오리지널리티를 서포트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또 내가 창의적인 것을 주도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레이블 파익스퍼밀이 이를 잘 수용해줄 수 있을 레이블이라 느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지난 1년 반 동안 서울을 경험한 소감을 듣고 싶다. 서울과 뉴욕의 차이점이라면? 음악 신(Scene)에 관한 이야기든 사소한 이야기든 뭐든 좋다.

나는 뉴욕 외곽의 작은 마을, 변화가 없는 곳에서 자랐다. 그러나 서울은 계속 변화하고, 사람도 많고, 빠르고, 북적거린다. 그러한 두 도시의 차이점이 나 자신 또한 성장시켰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 등 현재 현지야에 놓인 상황을 두고 봤을 때, 보다 더 업비트의 음악 또한 제작될 가능성을 예상한다.

사실 이전까지의 음악은 내 걸음 템포에 맞는 BPM으로 제작된 편이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는 처음으로 업비트의 곡을 제작해봤다 하하.

한국의 어떤 동네가 마음에 들었나?

신촌의 안산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파익스퍼밀 소속 이전에 공개된 두 장의 EP [Lineage]와 [Look after August]. 어떤 앨범이었는지 직접 설명해줄 수 있을까?

[Lineage]는 나의 첫 번째 EP다. 한동안 한국에 오지 않다가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할아버지가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상황이었다. 그때 내가 한국과 할아버지,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 제작한 EP다. 특히 [Lineage]의 마지막 곡이 할머니를 통해 듣게 된 할아버지를 투영한 곡이다. 또 내가 영어와 한국어를 직접 섞어서 처음 쓴 첫 음반이기도 하다. 그리고 [Look after August]는 사랑과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다. 그 해에 유난히 8월 이전에 안 좋은 일과 힘든 일이 많았고 8월 후에는 좋아질 거라 믿어서 그런 콘셉트의 EP를 제작하게 됐다.

[Lineage]를 제작할 때 한국어로 음악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혹은 한국어를 배우면서 어려운 점이라든가.

한국어를 발음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글을 적는 것과 대화할 때의 느낌이 달랐던 것? 어렸을 때부터 한국말은 할 줄 알았는데, 글을 읽고 쓰는 것은 19살 때부터 배웠다. 그래서 여전히 쓰기와 읽기가 어렵다 하하.

한국 활동 이전부터 EP 앨범을 제작했다. 따라서 스토리텔링으로 앨범을 구성하는 데 능숙할 것 같다. 이번 [KHAMAI] 역시 현지야의 능숙한 스토리텔링과 구성을 기대했는데, 이에 관해 직접 이야기해줄 수 있나?

[KHAMAI]는 한국에 온 뒤 느꼈던 정체성의 혼란을 담은 앨범이다. 코로나로 인한 많은 변화들로 나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한국에 적응하는 동안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각각 다른 가면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서 카멜레온이라는 콘셉트로 제작한 앨범이다. 구성은 뒤로 갈수록 감정선이 좀 더 무거워지도록 구성했다. 특히 마지막 음악이 매우 의미 깊은 곡이다. 제작하며 많이 울기도 했는데 한편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모든 여정이 자아 성찰을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주면 될 것 같다.

[KHAMAI]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 웹사이트 여기저기 검색해도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는데.

앨범의 제목인 [KHAMAI]는 땅 위(χαμαί)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다. 카멜레온이 고대 그리스어 χαμαιλέων(khamaileon)에서 비롯된 사실에서 가져왔다. 그래서 앨범의 곡마다 내가 쓰는 마스크가 달라진다. 곡마다 특정 마스크를 표현했으니 이를 잘 캐치하여 듣는 것도 추천한다.

앨범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음악이 있다면?

타이틀 곡 “OUTGROWN”이 애착이 간다. 어린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오랜 시간 떨어졌다가 먼 훗날 오랜만에 만났을 때, 그때 내가 보일 행동과 모습의 마스크를 표현한 곡이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다른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 다시 어릴 때 친구와 만난 상황에서 나 자신이 성장한다고 생각했다.

선공개된 싱글 “TALK2ME!”에 pH-1이 참여했다. 그 또한 재외동포 뮤지션이지 않나? 그와 함께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는데.

“TALK2ME!”는 한국계 외국인이 영어를 쓸 때와 한국말을 쓸 때의 캐릭터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곡이라 나와 비슷한 처지의 재외동포 뮤지션과 협업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밀릭이 pH-1을 추천했다. 원래 pH-1을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이제 막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할 뮤지션이라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가 내 음악에 함께해줄 것이라곤 생각치 못했다. 그런데 연락해보니 곡이 너무 좋다고 이야기해서 영광이었지.

함께 작업하면서 유대감을 느끼진 않았는지?

pH-1하고 작업할 때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 pH-1이 나의 노래에서 어떤 울림을 받았다고 했다. 서로 비슷한 처지로 한국에서 느끼는 문화적 장벽을 이야기하며 유대를 쌓았지. 구체적인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냥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에서 느끼는 감정이 비슷했던 것 같다.

현지야의 음악에서 가장 큰 장점은 유연함이라고 생각한다. 담담하게 읊조리는 보컬과 멜로디에서 느껴지는 유연함, 때문에 추후 타 뮤지션과 협업뿐만이 아니라 장르적으로도 얼마든지 트위스트가 가능할 듯하다.

영광이다. 지금도 역시 많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탐험하는 중이고, 그래서 어떤 뮤지션과 작업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누구와의 협업도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다.

회상, 추억에 관한 음악이 많다. 긴 제작 기간 동안 기억을 되짚다 보면 당시의 감정이 무뎌지거나 변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 이러한 변화된 감정도 현지야의 음악에서 유연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과거는 과거라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회상하는 일은 매우 좋아한다. 옛날 사진을 보면서 추억에 잠길 때도 많지만, 그래도 현재에 더 충실하고 싶고, 또 앞을 바라보고 싶다. 그래서 기억을 되짚으며 변화된 감정은 훗날 내 미래의 음악에 반영하려고 하는 편이다.

한편 앨범에서 “자신감 모자”라는 곡이 와닿았다. 앨범에서 가장 짧으며, 인터루드 정도로 짧게 지나칠 수도 있을 곡이다. 그러나 현지야 어머니의 충고와 배경으로 흐르는 앰비언트 멜로디가 탁월해 큰 울림을 받았다. 이는 어떤 의미를 지닌 곡인가?

“자신감 모자”는 한국에 처음 이사 와서 혼자 살고 있을 때, 엄마와 통화하다가 녹음된 음성으로 제작한 곡이다. 아무튼 엄마와 한국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잘 지내냐는 질문을 받았다. 평소 같으면 잘 지낸다고 말했을 텐데, 나도 모르게 진심을 이야기하게 됐다. 친구도 어떻게 사귀어야 할지 모르겠고, 또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음악 활동도 걱정되는, 그런 솔직한 이야기를 틀어놓았다. 그때 엄마가 곡 “자신감 모자”에서의 내용을 말해주었다. “뭐든지 그냥 다 자신감 있게 하면 잘 될 것이다, 자신감이 필요하다”라는 얘기. 그리고 부모님이 한국으로 이사 온 후에도 똑같은 내용의 대화를 다시 이어간 적이 있다. 엄마가 노란 모자를 직접 뜨개질해서 줬는데, 그 모자를 쓰면 자신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래서 곡의 키워드를 “자신감 모자”로 정하게 됐다.

어머니의 음성을 녹취하는 행동에 현지야의 가족애가 담긴 것 같다. 평소에도 자주 녹취하는 편인가?

그렇진 않다. 당시 녹음은 정말 우연이었다. 자신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 엄마가 너무 웃긴 말을 해서 녹음 버튼을 눌렀다.

비주얼 아티스트인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다.

엄마가 도예가여서 나도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예술을 많이 접하며 엄마를 따라 비주얼 아티스트나 디자이너가 될까 했지만, 음악이 더 좋았다.

Hunjiya – [KHAMAI] 커버아트

이번 [KHAMAI]의 앨범 커버 역시 예사롭지 않던데?

실을 구입해서 직접 복장과 마스크를 뜨개질로 만들었다. 제작 후에는 포토그래퍼만 섭외했고 나머지는 모두 내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제작한 커버아트다.

직접 뜨개질에 본인이 모델로 참여하는 등 현지야 본인의 영향이 다량 함유된 커버아트인 듯하다. 해당 이미지를 보고 주변이나 레이블에서의 피드백, 혹은 반응은 어땠나?

제작된 후 피드백은 없었다. 하하. 그냥 우리 팀은 내가 직접 뜨개질하는 방식이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이야기했지. 나도 내가 직접 뜨개질로 참여한 게 최고의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한다.

뜨개질이 취미인가?

그렇다. 평소 손을 움직이고 싶어 하는 편. 그래서 뜨개질을 좋아하고 할 때 안정감이 들기도 한다.

추후 함께하고 싶은 뮤지션이 있다면 언급해줄 수 있나?

수민(Sumin)이 매우 멋진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프로듀싱과 편/작곡을 다 해서 함께하면 멋진 협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다른 아티스트로는 새소년 소윤의 음악을 좋아하는 편. 소윤은 기타도 진짜 잘 쳐서 같이 협업하면 기타 듀오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밴드 음악에 관심이 있어서 밴드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사실 대학생 때 밴드 음악을 자주 했는데, 코로나로 공연의 기회가 많이 없어졌다. 그래서 지금 더욱 밴드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EP를 들어줄 청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많이 들어주었으면 한다. 이 앨범을 통해서 청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모두 전달되길 희망한다. 우리의 모습은 상황에 따라서 변화하는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그리고 그 모든 변화하는 내 모습 또한 결국 하나의 ‘나’이기 때문에 그 모습을 인식하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HUNJIYA 인스타그램 계정
PAIX PER MIL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황선웅
Photographer│강지훈
Stylist│Recyde
Hair, Make Up│조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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