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발표된 맥도날드의 신선한 협업 소식이 아직까지 패션계에 여운을 남기고 있다. 트래비스 스콧(Tracis Scott)도, 예(Ye)도, 캑터스 플랜트 플리마켓(Cactus Plant Flea Market)도 아닌 핀란드의 한 신생 브랜드가 전해온 컬렉션 소식은 전 세계의 이목을 핀란드 패션 신(Scene)으로 돌리기에 충분했다.
패션, 음악, 시각 예술을 비롯해 다채로운 영역에서 그 빛을 발하기 시작한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눈 덮인 흰색 도시라는 편견을 전복하며 그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는 브랜드로 가득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아티스트 지미 베인(Jimi Vain)과 루프 레이놀라(Roope Reinola)가 전개하는 패션 레이블 VAIN. 브랜드의 두 운영자와 VAIN과 맥도날드 컬렉션 그리고 핀란드의 예술 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하단에 첨부한 대화를 찬찬히 음미해 보자.
본인 그리고 브랜드 VAIN에 관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VAIN을 운영하고 있는 지미 베인과 루프 레이놀라다. VAIN은 핀란드를 기반으로 하는 패션 레이블이다.
VAIN에서 각자 어떤 일을 맡고 있나.
디자인과 비즈니스 업무를 균형 있게 분배했다. 지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레이놀라가 CEO를 맡아서 운영 중이다. 우리 둘 다 크리에이티브라는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 마케팅이 공통 전문 분야이기도 하다. 이미지를 편집할 때면 서로가 잘하는 포토샵 영역이 달라서 셀 수 없이 수정본을 주고받는데, 그럴 때마다 어쩜 이렇게 상호보완적일 수 있냐며 농담조 칭찬을 건네곤 한다. 좀 바보 같기도 하지만 이게 우리가 팀워크를 이뤄내는 과정이다.
최근 맥도날드 직원들이 실제 착용했던 유니폼을 활용해 완성한 컬렉션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컬렉션 공개 후 주위 반응이 어땠나.
컬렉션 공개 후 처음 하루 동안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그런데 모두 주변으로부터의 피드백이었지. 하지만 컬렉션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우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흥미롭더라. 전반적으로 긍정적이긴 했지만, 맥도날드와 진행한 컬렉션이다 보니 반발도 생겼다. 최근에 공개된 컬렉션이기 때문에 몇 달, 몇 년이 지나고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여태껏 맥도날드는 주로 대형 패션 브랜드와의 작업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VAIN의 이번 컬렉션은 상당히 의외였다. 이번 맥도날드 컬렉션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놀랍게도 맥도날드에서 먼저 연락해 왔다. 핀란드의 맥도날드는 로컬 신인 아티스트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우리에게 먼저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비췄다.
맥도날드와의 회의 끝에 “낡은 유니폼에 새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도달했다. 그렇게 맥도날드 직원들의 유니폼을 업사이클링한 13가지 룩이 탄생한 거다. 컬렉션은 전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것,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것의 활용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여전히 모두에게 친숙하기도 했지.
알다시피 맥도날드 유니폼은 색상이나 패턴 면에서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디테일을 포함하고 있다. 그걸 가지고 장난치는 게 정말 즐거웠다. 업사이클링이라는 콘셉트가 처음부터 명확했기 때문에 여러 맥도날드 매장에 연락해 직원들의 낡은 유니폼을 수집했다. 컬렉션에 사용된 오래된 천 플래카드도 그렇게 얻은 거다.
맥도날드라는 기업을 컬렉션에 끌어들인다는 것이 모두의 공감을 살 수도 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까다로웠을 것 같은데 어떤 메시지를 중점적으로 전하려고 했는지.
조금 전에 언급했던 업사이클링과 맥도날드 직원 유니폼에 대한 우리의 환상을 담았다. 세상 모두가 아는 브랜드의 유니폼을 우스꽝스러우면서 풍자적이게, 그러나 아름답게 완성했다. 패션의 끝이 결국 이런 것 아니겠나. 더 즐겁고 더 아름답게 하는 것.
실제 직원들이 착용했던 유니폼을 활용해 또 다른 형태의 워크웨어를 탄생시킨 점이 인상적이다. 이를 맥도날드 직원들에게 증정했다고도 들었는데, 애초에 맥도날드 직원들을 염두에 두고 완성한 컬렉션인가?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VAIN 월드에서 맥도날드 직원은 어떤 옷을 입을까?”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실제 컬렉션 피스들은 어느 정도 인체공학적으로 최적화돼 있기는 하지만 오직 작업복의 기능만을 수행하도록 디자인되지는 않았다.
컬렉션 피스를 살펴보면 VAIN 초기부터 브랜드 정체성을 지탱해 오던 “VAIN is all about love”라는 ‘사랑’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맥도날드의 ‘m’로고와 VAIN의 ‘v’를 합쳐 하트 모양을 만든 것이 인상적이다. 사랑이 VAIN 그리고 당신들에게 어떤 영감이 되나.
지미: 난 낭만적인 사람이다. VAIN 역시 사랑에 관한 브랜드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 예술, 문화 그리고 사람들까지. 내 작업 어딘가에는 모두 사랑이 녹아있다.
알다시피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의 베트멍(Vetements) 역시 2020 봄/여름 컬렉션을 맥도날드에서 진행했다. 물론 뎀나는 다양한 브랜드 로고를 차용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의미를 담았고, VAIN은 전 세계에 침투한 맥도날드라는 브랜드를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려 했지만, 뎀나와 비교될 수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담스러웠을 것 같은데.
루프: VAIN의 모든 직원이 인터넷 키즈다. 하지만 어떠한 정보도 없이 우리 작업을 논하는 이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뎀나는 확실히 전설적 인물이다. 그렇지만 3년 전 맥도날드에서 쇼를 주최한 베트멍도 업사이클링과는 관련이 없지 않나.
지미: 뎀나가 내게 영감을 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스스로 패션 산업 전반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하지만 뎀나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패션 산업 밖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VAIN의 컬렉션이 베트멍을 연상시키지는 않지만 뎀나의 이름값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교된다는 건 이해한다.
13가지 룩 모두가 인상적이지만 빅맥을 프린팅한 장갑이 특히 눈에 들어오는데, 실제 맥도날드에서 좋아하는 메뉴가 빅맥인가?
빅맥이 클래식이긴 하지만 보통은 다른 메뉴를 먹는다. 맥도날드와의 협업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다면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다른 컬렉션 피스 설명을 조금 하자면, “Im’a take you to m for some fries and VAIN sundae”라는 문구는 영 떡(Young Thug)의 밈에서 영감을 받았다. 얼마나 흔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핀란드에는 감자튀김을 아이스크림에 찍어 먹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시골에 살았을 때 맥도날드에 가려면 항상 오토바이를 타야 했는데, 이번 컬렉션에 등장한 바이크 재킷도 거기서 영감을 얻은 거다. 내가 여행하는 어느 곳에나 맥도날드가 있을 거라는 보편성 그리고 맥도날드 특유의 폰트로 완성한 ‘m’ 로고. 그게 내가 맥도날드를 사랑하는 이유다.
컬렉션 소개를 보면 당신이 살던 오스트로보스니아(Ostrobothnia)에서 글로벌 팝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가 맥도날드였다고 하는데, 오스트로보스니아는 어떤 곳인가. 그곳에서의 유년 시절도 궁금하다.
지미: 나는 오스트로보스니아 남부 지역에서 자랐다. 느리고 차분한 핀란드의 전통적인 시골 지역이다. 맥도날드가 우리 동네에 있던 유일한 글로벌 기업이었으니 어떤 곳인지 짐작이 가지 않나. 펑크나 뉴메탈 같은 서브컬처나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오스트로보스니아가 한없이 부족한 공간이었지. 운 좋게도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공동 창업자 루프다.
맥도날드는 돈이 궁한 우리의 10대 시절을 책임져 주던 곳이기에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루프가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우리는 촬영 같은 창의적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고, 나는 내 첫 프린팅 티셔츠를 만들었다. 이걸 계기로 더 많은 프로젝트를 함께하게 됐고 몇 년 후 헬싱키로 옮겨가 2021년 VAIN을 설립했다.
한국이든 필란드든 간에 값싼 가격에 오랜 시간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맥도날드가 일종의 문화 공간 역할을 하는 건 마찬가지인 듯하다. 유년 시절 맥도날드에서 보낸 유쾌한 추억 하나를 기억해 본다면?
지미: 마티아스(Matias)라는 친구가 있다. 우리가 십 대였을 때, 여느 날처럼 맥도날드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하루는 그 친구가 너무 우울해하더라. 그래서 마티아스에게 에너지를 주고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물어보니 “이 맥도날드를 털자”라는 농을 던지는 게 아닌가.
물론 나는 실제로 맥도날드를 털 생각이 없었지만 마티아스를 웃게 해주려고 카운터에 뛰어올라 “강도다! 감자튀김 다 내놔!”라고 소리쳤다. 맥도날드 직원한테는 웃기지도 않은 일이었겠지. 당연히 그대로 쫓겨났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까지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VAIN에 관한 소개나 기사를 찾아보면 ‘Digital’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당신이 살던 지역의 영향도 있을 것 같은데, 작업 그리고 영감에 디지털 매체가 어떤 영향을 주나.
루프: 핀란드 시장이 애초에 워낙 작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글로벌을 생각해야 했다. 알다시피 핀란드는 지구 북쪽에 치우친 나라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인터넷이다. 우리는 휴대폰과 인스타그램만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이어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헬싱키에서 브랜드를 시작한 것이 패션 산업 전반에 일어나는 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해 준 것 같다. 파리나 런던 혹은 뉴욕같이 모든 것이 급변하는 속에서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구축하기가 더 힘들었을 거다. 우리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독창성을 키워나갈 수 있었던 거지.
지미: 조금 전에 이야기했듯, 오스트로보스니아에는 내가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예술, 문화 전반에서 내가 호기심을 느낄만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인터넷이었던 거지. 주로 패션 포럼, 소셜 미디어, 블로그 등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떤 식으로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
스스로 진정 원하는 것을 찾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방법을 찾아라.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하는 데 옳고 그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되 친절하게 대하면 될 것.
지미 베인 당신이 디지털 매체의 덕을 본 가장 대표적 사례가 바로 나이키 에어 조던 1(Nike Air Jordan 1)을 직접 커스텀한 하트 모양 ‘The Air VAIN Loved 1’s’일 것이다. 플레이보이 카티(Playboy Carti)로부터 페이스타임 콜을 받기까지 했다고 알고 있는데 당시에 그가 뭐라고 하던가.
지미: ‘The Air VAIN Loved 1’s’ 한 족을 갖고 싶다고 하더라. 그리고 나에 대해 일상적인 질문 몇 가지를 던졌다. 그 역시 내가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시골에서 왔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결국은 이게 장점이 된 게 아닐까?
에어 조던을 커스텀한 사례나 이번 맥도날드 컬렉션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신은 커스텀 혹은 부틀렉 컬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를 능히 다루는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가치의 창조보다 기존의 가치를 뒤트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지?
솔직히 그렇지는 않다. 처음부터 무언가를 제작하는 데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십 대의 나로서는 그걸 감당할 여력이 없었고. 만약 내게 충분한 여유 자금이 있었다면 부틀렉이 아니라 정말 내 신발을 만들었을 거다. 하지만 업사이클링 프로젝트에 관심이 큰 것도 사실이다. 내가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 같달까. 1월 남성복 페어 피티 우오모(Pitti Uomo) 103에서 공개할 데뷔 컬렉션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이번 23 가을/겨울 컬렉션이야말로 내가 정말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 그리고 VAIN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담은 작업이니까.
지금 활동하고 있는 헬싱키 패션 커뮤니티는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바라볼 때 파리, 런던, 밀라노 같은 패션의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져 보이기도 하는데 어떤 곳인가.
지미: 사람들이 핀란드 패션 신에 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헬싱키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패션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알토(Aalto)는 세계 최고의 패션 스쿨 중 하나일뿐더러 파리나 밀라노의 큰 패션 하우스에 가더라도 핀란드어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을 거다. 헬싱키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조화로움과 동유럽의 현실성이 만나는 흥미로운 도시다. 확실히 이상한 조합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곳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흥미로운 움직임을 한국에 전해줄 수 있을까?
헬싱키는 흥미로운 프로젝트, 사람들로 넘쳐난다. 라티미에르(Latimmier), 롤프 에크로스(Rolf Ekroth)를 비롯해 알토 패션 스쿨 출신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많다. 시각 예술에서는 안톤 타미(Anton Tammi), 바조(Bajo)가 두각을 나타낸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우리의 모든 프로젝트에 음악 작업을 도운 글레이든(Glayden)과 빌로우0(Below0) 레이블 그리고 펄리 드롭스(Pearly Drops) 등 정말 많은 아티스트가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헬싱키는 잠재력이 뛰어난 도시다. 동시에 나라나 도시 자체가 너무 작아서 모든 사람이 거의 같은 그룹에 소속된 점도 이곳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헬싱키가 문화적 핫스팟이 될 거라고 장담한다.
다음 작업으로는 어떤 걸 준비하고 있나.
루프: 내년 1월 피렌체에서 열릴 피티 우오모 103에서 선보일 데뷔 컬렉션을 준비 중이다. 이 컬렉션은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지미가 어떻게 그의 형제들을 통해 글로벌 팝 문화를 접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지미가 형들과 꽤 터울이 있기 때문에 그가 어렸을 때 가졌던 포스터, 음악, 비디오 게임, 영화, 스케이트보드, 패션 등의 문화적 관심은 모두 형제들로부터 기인한다. 남동생의 입장에서는 형들이 우러러보는 아티스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아니겠나.
지금의 우리는 온전히 디지털 플랫폼 위에 우리의 브랜드와 비전을 구축하는 인터넷 키즈에 불과하다. 어떻게 보면 어릴 적 지미는 그의 형제들이라는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본 셈이기도 한데, 그게 현재 지미의 미적 감각과 관심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내년에는 패션 브랜드의 전형을 따르지 않는 재미있는 시도를 많이 할 계획이다. 그게 바로 우리를 돋보이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니까.
2022년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며칠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
Editor│ 장재혁
Image │ V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