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DYTHEPINK

근래 가장 독창적인 행보를 보이는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중 하나인 반디더핑크(VANDYTHEPINK). 2017년 런칭 이후 패러디 그래픽을 필두로 한 다양한 그래픽, 그리고 다채로운 콘셉트의 컬렉션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을 꾸준히 확립 중인 반디더핑크의 첫 시작은 부틀렉, 그리고 커스텀 컬처로부터 시작되었다.

문화에 대한 이해, 그리고 독특한 접근법을 통해 브랜드를 확장한 그들은 최근 콤플렉스콘(ComplexCon)에까지 참가하며,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키웠다. 우라하라 패션 신(Scene)을 동경하던 소년이 세계 유수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와 어깨를 겨누기까지. 디렉터 손정훈과 함께 지난 5년간 반디더핑크의 궤적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반디더핑크’는 지금에 와 스트리트웨어 신의 많은 이들이 알 만큼 유명하지만, 당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자신을 소개하자면?

미국 버지니아에서 브랜드 반디더핑크를 전개 중인 손정훈 A.K.A 반디다.

고등학생 때까지 한국에서 살다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미 한국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였기에 미국에서의 생활이 더욱 낯설게 느껴졌을 것 같은데.

한국에서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을 마친 뒤 미국으로 이민 와 다시 2학년부터 다녔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지. 최대한 빨리 미국 생활에 적응하려고 일부러 외국 친구와 어울렸던 기억이 난다.

이민 초기 버지니아 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녹록지 않았다. 한국에서 하던 부모님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이민을 선택했다. 새로운 터전이 필요하기도 했고, 나와 동생에게 더 좋은 교육 환경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간 거지. 첫 1~2년은 가족 네 명이 방 한 칸짜리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했다.

그 당시에도 패션이나 그 주변의 하위문화에 관심이 있었는지, 지금의 이러한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곳에서 무엇을 느꼈나.

패션에는 언제나 관심이 있었다. 중학생 때 인터넷으로 베이프(A Bathing Ape)를 처음 접한 이후로 우라하라 패션을 동경했다. 미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여유가 생기면서 관심이 열정으로 바뀌었다.

학창 시절 때부터 패션 브랜드 런칭에 대한 꿈이 있었나. 반디더핑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오래전부터 패션 브랜드 런칭을 꿈꿨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우라하라 패션을 좋아했고, 언젠가 나도 저런 브랜드를 운영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금까지도 브랜드를 전개하는 가장 큰 모티베이션이기도 하다.

브랜드 네임의 유래에 대해서 이야기해 달라.

어머니가 한국에서 작은 부티크 숍을 운영했었는데, 매장 이름이 ‘반딧불이’였다. 이민 역시 어떻게 보면, 어머니가 나와 동생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에 이런 어머니의 뜻을 따라 반딧불이라는 이름을 부활시킨 거다.

초창기에는 유명 브랜드 로고를 활용한 부틀렉, 커스텀 형태로 브랜드를 꾸려나갔다. 설립 당시 반디더핑크의 모습에 관해 이야기해줄 수 있나.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그저 하고 싶은 작업 위주로 인스타그램에 이것저것 포스팅했다. 점점 관심이 커지면서 커스텀에 필요한 도구나 재봉틀을 사서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커스텀을 하게 된 계기라면? 작업은 어떤 형태로 진행했는지.

커스텀 작업은 특정한 틀 없이 자유롭게 진행했다. 브랜드 운영이라는 개념이 아직 없었던 시기여서 닥치는 대로 해보고 싶었던 걸 다 해봤다. 말도 안 되는 커스텀도 많이 했지, 예를 들면 아디다스(adidas) 신발에 오프 화이트(Off-White) 스타일을 흉내 낸 커스텀 스니커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의 반디더핑크가 있기까지,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무엇인가?

가장 큰 영향은 아무래도 90년대 우라하라 패션에 대한 갈증과 향수다. 어렸을 적 내가 느낀 ‘멋’을 현시대에 맞춰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반디더핑크로 표출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반디더핑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햄버거를 떠올릴 것 같다. 왜 햄버거를 브랜드의 마스코트로 정했나.

커스텀 작업에 대한 흥미가 시들해졌을 무렵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내 이름을 걸고 사람들이 쉽게 떠올릴 만한, 그리고 모두가 좋아할 만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맥도날드 상하이 스파이시 버거를 좋아하기도 했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버거로 캐릭터를 선보이면, 뭔가 상징적인 의미도 더해질 것 같아 지금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이외에도 일본의 완구 제조회사 타미야(Tamiya)의 로고라든가, 디올(Dior)의 모노그램 패턴, 코스트코(Costco) 등 당신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재치 있게 변형하는 작업에 능한 것 같다.

이 역시 우라하라 패션을 아는 이들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베이프를 전개한 브랜드 디렉터 니고(NIGO)를 보면 그때 당시 나이키 에어 포스 1(Nike Air Force 1)을 레퍼런스 삼은 베이프스타(Bapesta)부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혹성탈출”을 모티브로 한 유인원 캐릭터, 롤렉스(Rolex)를 그대로 닮은 베이펙스(Bapex) 등. 니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살짝 변형시켜 자기 정체성에 맞게 재구현한 아이템이 꽤 많다. 나 역시 내가 좋아하고 주변에서 항상 보이는 것에 영향받아 재해석했고 팬 역시 이를 이해하고 좋아해 주는 것 같다.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의 ‘3%룰─원본에 3%의 변화만 주어도 독창적이고 새로운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디자인 접근법─’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브랜드 컬렉션에 평소 본인의 패션 스타일을 많이 적용하는 편인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 혹은 브랜드가 있나.

90% 이상은 개인적으로 즐겨 입는 옷을 그대로 반영하는 편이다. 90~00년대 많이 보였던 큼직하고 컬러풀한 그래픽, 배기팬츠, 바시티 재킷 등 당시의 스트리트웨어가 힙합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에 그 시대의 느낌을 지금과 잘 융합시키려 노력 중이다.

많은 패션 브랜드가 있지만, 그 대다수에게 스니커는 브랜드 최종의 숙원 사업처럼 느껴진다. 이와 반대로 반디더핑크는 브랜드 초기부터 스니커를 선보이며,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브랜드를 진행하기 훨씬 이전부터 스니커 팬이었다. 중학교 때 처음 슈퍼스타(Superstar)를 신고 학교에 갔을 때 선배한테 질투를 샀던 기억이 날 정도로. 브랜드를 런칭하면 꼭 나만의 스니커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재미로 제작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좋은 반응을 줘서 지금은 여러 가지 디자인과 스타일을 샘플링 중이다.

2017년 런칭 올해로 5년째를 맞고 있다. 브랜드를 운영하며, 위기는 없었나.

왜 없었겠나. 다른 브랜드의 로고를 사용해 부틀렉이나 커스텀을 하다 보면 여러 크고 작은 문제에 직면한다. 미국처럼 커스텀 문화가 잘 다져져 있는 나라라도 그 스케일이 커지면 이야기가 다르다. 다행히 주변의 많은 이들이 도움과 조언을 아끼지 않아 지금의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은 꽤나 탄탄해진 모양새다, 언제 처음으로 브랜드가 잘 유지되고 있다고 느꼈는지.

잘 유지된다고 느껴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지금도 내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의 10분의 1도 보여주지 못했다. 몇 년 전 홀로 브랜드를 운영할 때와 비교하면 이제는 직원도 생기고 사무실도 얻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반디더핑크의 팀은 어떤 이들로 이루어져 있나. 각자 어떤 일을 맡아 진행하는지 간략하게 이야기해준다면.

총 7명이 함께 일하는 작은 팀이다. 기본적인 아이디어와 틀은 내가 구성하고 디렉터 웬디와 디자이너 친구들이 살을 얹는다. 그 외 멘토 역할을 해주는 빌리네어 보이즈 클럽(Billionaire Boys Club) 디렉터 조셉도 많은 도움을 준다.

최근 BBC 아이스크림(BBC Icecream)과의 협업은 정말 놀라웠다. 2000년대 스트리트 패션의 느낌을 정말 잘 살렸는데, 협업 과정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협업이라는 게 정말 진부한 단어가 됐다. 적어도 패션 신 안에서는 나이키가 루이비통(Louis Vuitton)과 협업 컬렉션을 내도 그지 놀랍지 않은, 콜라보 과부하 상태라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브랜드를 운영할 때 내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열정 있게 참여할 수 있는 헙업만 진행하고 싶었다. 90년대 우라하라에 많은 영향을 받고 사랑했던 사람으로 빌리네어 보이즈 클럽 아이스크림과의 협업은 꿈만 같은 일이다. 아직까지 BBC 홍콩 스토어를 가보지 못한 게 한이 맺힐 정도니까. 협업은 빌리네어 보이즈 클럽 디렉터이자 친구인 조셉과 2년 전부터 이야기를 나눈 긴 프로젝트다. 정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했지. 물론 주제는 ‘2000년대 우라하라의 재해석’이었다.

이후 2022 콤플렉스콘(ComplexCon)에 참가했다. 인상적이거나 흥미로운 경험이 있었나.

2022년 콤플렉스콘은 그 분위기가 이전과 달랐다. 일본의 새로운 절대강자 베르디(Verdy)를 중심으로 많은 일본 브랜드가 참여했고, 미국에 소개됐다. 거기에다 90~00년대를 대표하는 브랜드 언더커버(UNDER COVER)와 휴먼 메이드(Human Made), 네이버후드(NEIGHBORHOOD), 푸추라(FUTURA) 등 올해 콤플렉스콘은 스트리트웨어의 아이비리그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 안에 함께 속했다는 건 정말 영광이었고, 내가 동경해왔던 디자이너와 설립자를 만난 건 더더욱 큰 영광이었다.

현재 한국의 패션 마켓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것 같다. 세계 주요 도시에 브랜딩을 펼치는 입장에서 한국 패션 마켓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모국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한국은 대단한 나라다. 스트리트 패션 역사의 시발점에는 없었지만, 지금에 와 한국을 빼고 스트리트 패션을 논할 수 있을까? 7~8년 전까지만 해도 전체적인 시장이 트렌드만 좇거나 옛날 스타일 그대로 멈춰서 성장하지 못했는데, 요즘에는 뉴욕이나 LA의 편집 스토어에서도 한국 브랜드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한국 브랜드나 숍이 있다면?

멋진 브랜드가 너무 많지만 개인적으로 떠그민(Thugmin) 필두로 전개하는 떠그 클럽(Thug Club)을 굉장히 재밌게 보고 있다. 패션계에서 요구하는 틀 같은 게 존재하는데 그런 걸 통째로 무시하고 하고 싶은 걸 전부 하면서 멋지게 한다. 그 와중에 정체성도 너무 강렬해서 한번 빠진 뒤로는 헤어 나올 수가 없다. 배울 점이 많은 브랜드다.

마지막 질문이다. 가까운 시일 내 서울에 방문할 계획은 없는가, 한국에 온다면 가장 가고 싶은 장소 세 군데를 꼽아 달라.

사실, 조만간 멋진 프로젝트로 한국에 방문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없으나 미국 스트리트웨어 브랜드가 한국에 문을 열 예정인데, 런칭 기념 협업으로 참여하게 되어 기획 중이다. 이와 함께 방문하고 싶은 스토어는 당연히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부산의 발란사(Balansa)와 서울의 하이츠 스토어(Heights Store), 더차일드후드홈(The Childhood Home). 위 세 곳은 모두 당일에 방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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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오욱석
Image │ VANDYTHEP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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