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l & Eve

과거 아시아 문화 주역으로 각광받던 일본과 홍콩이 서서히 다음 주자들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듯한 지금, 태국의 서브컬처 신(Scene)은 전 세계 대형 패션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몰려드는 서울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 입지를 굳건히 다져나가고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나 쉽게 이미지를 학습하고 새로운 창작물을 전시할 수 있는 시대지만, 아티스트가 자라온 지역적 배경은 온전히 그들만의 것이기에 새로이 주목받는 태국 신의 두 인물, 툴(Tul)과 이브(Eve)는 더욱 특별하다.

동남아시아 특유의 화려한 컬러를 필두로 그래피티, 타투, 셀렉트 숍을 통해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는 두 사람이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보통 ‘태국’하면 숨이 막힐 듯한 공기와 뙤약볕이 함께하는 휴양지를 떠올리겠지만, 이국적인 땅에서 자라온 이들의 이야기와 작업물을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 지난 4월 서울을 찾은 이들과 함께한 대화를 하단에서 함께해 보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툴: ‘툴렉스(Tulrexxx)’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툴이라고 한다. 현재 셀 더 소울(Sell the Soul)이라는 숍과 틴에이지 데이드림(Teenage Daydream)이라는 의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이브: AKA ‘Lurear’, 이브라고 한다. 태국어로 ‘lur(เรอ)’가 트림을 뜻하는데 내가 친구 귀에 트림하는 걸 좋아해서 대학교 선배가 ‘Lurear(lur-ear)’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현재는 타투(@studio_rats_hole, @lur3veeeee)를 하면서 툴과 함께 셀 더 소울을 운영 중이다.

툴은 지난 4월 말부터 5월까지 성수 볼트(BOLT)에서의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소감이 어떤가.

툴: 항상 내 작업을 고대해 왔기 때문에 내가 작업하는 모든 것들에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계속해서 실험하고 변화하고 싶다. 볼트에서의 팝업이 내 두 번째 개인전이었는데 시간이 어떻게 간 줄도 모르게 정말 즐거웠다.

치앙마이와 방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의 볼트와는 어떻게 연이 닿게 되었나.

툴: 전에 치앙마이를 여행했던 준혁이라는 친구가 고맙게도 먼저 연락을 줬다. 후에 내가 속해 있는 텔레비전 갤러리(Television Gallery)와 덴 수베니어(Den Souvenir)의 협업을 통해 서울 전시를 열 수 있었지.

텔레비전 갤러리(Television Gallery)는 태국 신에서 어떤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는 팀인가.

툴: 텔레비전 갤러리 팀에는 나를 포함해 PPOW, jMM666이 속해 있는데, 독특한 개성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그들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장려하고 있다. 방콕에서 공연이나 전시를 하기 위해 방문하는 외국 아티스트들도 종종 우리와 함께한다. 작품, 아티스트, 사회, 라이프스타일 모든 게 어우러져 또 다른 무언가가 생길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지금 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국적이고 색다른 움직임인 것 같다.

화려한 컬러와 자유분방한 드로잉을 바탕으로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귀여운 작업물을 선보여 왔다. 그림을 그릴 때 특히 중요시하는 부분이 있다면?

툴: 사실 펜을 이용해 굵은 선을 그리는 걸 좋아할 뿐이다. 프레임에 그릴 때는 펜 같은 붓을 사용할 수 없어 작업이 꽤 어렵다. 그래서 그냥 내 방식대로 하고 있다. 프레임 컬러가 작품을 보완해 주기도 하고. 더 쉽게 그릴 수 있도록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 볼 참이다.

아티스트 툴렉스는 어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가.

툴: 외계인 같은 것. ‘Tultopia’라는 나만의 평행 세계가 있다. 그곳에서 지금 내 상상 속에 사는 캐릭터들이 존재하는 거지.

눈에 마스크를 한 캐릭터가 드로잉에 자주 등장한다. 캐릭터의 이름이 따로 있나? 탄생 비화가 궁금한데.

툴: 사실 아직 이름을 지어주지는 않았는데, 지어야 한다면 ‘툴렉스’일 듯하다. 정확히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모두의 기억에 남을 만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이 캐릭터를 만드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

사실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부터다. 가게 문을 닫고 고향으로 내려가야 했거든.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작업에 미숙한 부분이 많고. 그게 캐릭터를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기도 하다.

두 사람이 운영하는 셀렉트 숍, ‘셀 더 소울’ 역시 관심이 간다. 개성 넘치는 물건이 가득한 것 같은데, 간단히 소개해 줄 수 있을까.

이브: 방콕에 위치한 독립 숍이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이 가는 것들만 모아두려 하고 있다. 사람들이 와서 편안함을 느끼는 동시에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 나중에는 더 규모를 키워보고 싶다.

‘Sell the Soul’이라는 의미는 말 그대로 영혼이 담긴 취향을 판매한다는 의미인가?

이브: 맞다. 우리의 영혼이 담긴 취향과 그 결과물을 판매하고 있다. 툴이 생각해 낸 이름이다.

셀 더 소울에서는 태국의 여러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는 물론 이부키(Ibuki) 같은 해외 아티스트와의 작업물도 만나볼 수 있는데, 브랜드와 제품을 선정하는 본인만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브: 좀 전에 이야기했듯 순전히 우리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나와 툴이 좋아하고 추천하고 싶은 브랜드를 매장으로 들여온다. 해외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대부분 친구들의 추천으로 이뤄졌다.

이브 같은 경우는 숍을 운영하기 전에 어떤 일을 했나.

이브: 2016년 학교를 졸업하고 타투를 시작했다. 2020년까지는 다른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했고 그 후에 온전한 내 매장을 열게 됐지.

셀 더 소울의 입점 브랜드 중 서울의 젊은 고객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브랜드가 있다면?

이브: 당장 떠오르는 브랜드 서너 개가 있지만 ‘timewavezero3000’를 추천하고 싶다. 헌 옷을 독특한 방식의 재봉을 통해 재탄생시키는데, 이게 정말 매력적이다. 재킷, 청바지, 인형 등의 모든 제품이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두 사람 모두 이번 방문으로 볼트, 발란사 등 한국의 여러 셀렉트 숍을 방문해 봤을 텐데, 태국 신과는 다른 독특한 점을 발견했는지.

툴&이브: 사실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한국과 태국 숍 모두 고유의 독특함을 유지하며 운영하고 있다는 점은 같지 않나.

현재 셀 더 소울을 함께 운영하고 있고 종종 모델 일을 같이 하기도 한다. 두 사람의 시너지가 특별히 좋은 것 같은데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툴&이브: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니 좋은 점만 끄집어내서 일로 승화하는 거지.

태국 서브컬처 신에 몸담은 두 사람의 과거가 궁금하다.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나.

툴: 8살 때부터 20살이 될 때까지 매일 같이 태권도와 추가 수업을 들어야 했다. 물론 엄마가 시켜서.

이브: 나 또한 방과 후 수업을 듣곤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들과 문구점에 가거나 그림을 그렸다. 주말에는 친척이 하는 동네 국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그리고 나도 툴처럼 13부터 18살까지 태권도를 배웠다.

둘은 태국의 어떤 도시에서 자랐나. 그 배경이 현재의 그림 혹은 숍을 운영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 같은지.

툴&이브: 우리 둘 다 태국 중앙부의 나콘사완(Nakhon Sawan)이라는 지역 출신이다. 이곳에서 UFO를 봤다는 사람들이 있어 한때 꽤 유명했지. 나콘사완은 중국계 커뮤니티가 오랜 시간 자리 잡아 온 곳인데, 그 때문인지 중국, 태국식의 사원이 혼재했다. 사실 이곳에서의 예술적 영감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향 음식이 그립다.

현재 태국 신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라면?

툴&이브: 최근 치러진 선거가 가장 큰 화제다. 새로운 세대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변화된 태국을 보고 싶어 하는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태국 신은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일을 벌이는 데 좋은 환경인가? 아니라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툴&이브: 이제야 좀 나아지려고 하는 시기다. 계속해서 싸우고 밀고 나가야지.

아시아 서브컬처 신의 떠오르는 도시 방콕을 찾는다면 어디를 들르면 좋을까.

툴&이브: 차오엔 크룽(Charoen Krung) 그리고 아리(Ari) 근방. 거기 음식이 정말 다양하고 맛있다.

두 사람이 함께 혹은 각자의 영역에서 그리는 미래가 있다면?

툴&이브: 무언가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사실 아직은 감이 안 잡힌다. 우리의 미래를 함께 지켜봐 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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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장재혁
Photography | 유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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