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다양한 비주얼 창작물에서 ‘3ofhell’이라는 이름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래픽 디자인부터 3D 애니메이션과 게임 제작까지, 폭 넓은 활동에 그 정체를 파악하는 일 또한 쉽지 않았는데, 미처 알기도 전 그의 작업은 디지털의 경계를 넘어 현실 세계로 나아간다.
어느새 피규어 아티스트로 그 영역을 확장해 90년대 미국 문화, 그리고 일본의 특수촬영물을 바탕으로 한 토이 제작에 새로운 불꽃을 지피는 중. 이제 막 3년 차에 접어든 짧은 경력이지만, 여러 브랜드,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물론, 해외의 토이쇼에 참가하며, 탁월한 실력을 입증했다. 그의 다음 목적지는 과연 어디일지, 지금까지의 창작 여정과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3ofhell’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방신웅이라고 한다. 이전까지 경상남도 진해에서 방구석 컴퓨터 작업만 하다가 작년에 서울로 상경해 이전부터 꿈꿔왔던 장난감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로 내 개성을 존중하고, 좋아해 주는 이들과 협업하는데, 지금은 편집 스토어이자 패션 브랜드 퍽댓너드샵(FUCKTHATNERDSHOP)에서 오브젝트 제작에 관련된 도움을 주고 있으며, 뉴웨이브 레코즈(New Wave Records)의 아트 디렉터로도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자체적인 콘텐츠의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인프피샵(infp Shop)의 현지와 미스터리존이라는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3ofhell’, 그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데, 도대체 무슨 뜻인가?
‘3 Shift of Hell’이 본래의 닉네임이었다. ‘지옥의 3교대’라는 뜻이었지. 그래픽 디자이너로 갓 활동했을 때는 본업이 따로 있었고, 그와 동시에 외주, 개인 작업을 정신없이 쳐내고 있었기에, 이런 내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3 Shift of Hell’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던 중 함께 협업을 진행했던 제이에스(Jayass)가 보기 쉽게 ‘3ofhell’로 축약하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현명한 판단인 것 같아 닉네임을 바꿨고, 그 후로는 쭉 ‘3ofhell’로 활동 중이다.
그래픽 디자인과 VFX, 게임 제작까지, 그 경계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런 비주얼 작업의 시작점은?
믿기 어렵겠지만, 첫 비주얼 작업은 군대에서 시작됐다. 어깨너머로 어도비의 영상 편집 툴인 프리미어 프로를 익히다가 이 또한 자기 계발이라 생각하고, 업무를 마친 뒤 개인적으로 영상 편집을 공부했다. 시간이 지나며 실력이 조금씩 늘었고, 혼자 보기 아까운 작업물이 나오는 것 같아 인스타그램 계정을 하나 개설한 뒤 그곳에 작업물을 하나둘씩 올렸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비프리(B-Free)의 연락을 받았다.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 이야기를 나누고 그 뒤부터 여러 아티스트의 앨범 커버를 작업했다. 어느 순간 더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었고, 벽을 한번 깨자는 생각에 21년 초 뉴웨이브 레코즈 소속 아티스트 권기백의 앨범 [보라타운]의 콘텐츠로 게임을 만들어봤다. 그때 3D 툴을 처음으로 익혔지.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겁 없이 부딪혀 배운 거라 지금 보면 조악하다. 하나의 산을 넘고 나니 그때부터 3D 모델링이나 게임 제작, 영상 편집, 그래픽 편집 툴 등 시각 관련 프로그램 대다수가 서로 그리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려운 게 아니라 익숙하지 않을 뿐이었던 거지. 스스로 작업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게끔 재미있는 요소를 넣어 해당 툴에 빠르게 적응하려 했고, 이런 생각이 작업 자세에 스며들어 더 다양하고 새로운 작업을 진행했다.
평소에도 다양한 툴을 다루는 걸 즐기나.
물론이다. 첫 활동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툴은 유튜브를 통해 독학으로 익히고 있다. 공부가 아닌 내 취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컴퓨터 프로그램 툴뿐만 아니라 직접 손으로 만드는 창작 관련 기술도 탐구 중이다.
여러 작품에서 90년대 호러, 게임, B급 문화와 같은 공통된 코드가 보이는데, 본인의 평소 취향을 반영한 건가.
그런 것 같다. 90~00년대 초반 미국의 서브컬처를 좋아한다. 물론, 여기에도 여러 스타일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미국의 진하고도 남성적인 B급 맛을 즐긴다.
뮤지션, 패션 브랜드와도 협업하며, 한국의 서브컬처 신에도 깊이 관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게 되었나.
앨범 작업은 비프리가 주변 사람을 하나둘 소개해 주며 알음알음 시작했다. 패션 브랜드는 인터내셔널(The Internatiiional)과의 협업을 시작으로 자연스레 여러 브랜드와 이어지게 됐다. 사실, 서브컬처 신에 깊이 관여한다기보다는 오랜 팬심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거지. 그러다 뭔가 함께하게 되고. 평소에 시간 여유가 있을 때마다 행사나 공연을 보러 다닌다. 거기서 오는 특유의 감동이 있거든.
최근 몰두하는 피규어 제작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처음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작년 3월 서울에 정착하면서였다. 한창 하던 컴퓨터 그래픽 관련 툴의 기량을 어느 정도 만족스러울 정도의 수준으로 익혔고, 이제 그다음 단계의 작업을 해야겠다고 느껴 직접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찾아보다가 여기까지 온 거지. 피규어보다는 커스텀 토이에 관심이 생겨서 관련 기술을 익혔다.
특히, 90년대 미국산 피규어, 일본 괴수 토이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특별히 좋아하는 특촬, 괴수물 시리즈가 있다면?
“고지라(Godzilla)” 쇼와 시리즈를 좋아한다. 고지라라고 하면 단순히 도시를 공격하는 커다랗고, 무서운 괴수 영화를 떠올리기 십상인데, 사실 꽤 감동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다. 특히, 쇼와 시절 고지라의 비주얼에서 느껴지는 귀여우면서도 멋진 미학이 매력적이다. 최근에는 VISLA 매거진의 오욱석이 “울트라맨 80”을 추천, 한창 입문 중이다.
카와이주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인가?
우선 카와이주는 일본어로 괴수를 칭하는 단어인 카이주(Kaiju)와 귀엽다는 뜻의 카와이(Kawai), 그리고 인공지능 AI(Artificial intelligence)를 하나로 담아낸 단어다. 일본의 피규어/개러지킷 동인 이벤트 원더 페스티벌(Wonder Festival)에 참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젝트다.
카와이주의 세계관까지 설정했다고 들었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카와이주는 자유를 위해 모든 걸 파괴하겠다는 본능에 사로잡힌 존재다. 여러 세계관을 넘나들며, 툭 튀어나온 큰 눈과 한 쌍의 더듬이, 네 개의 송곳니를 특징으로 하는 얼굴형을 지닌 채 카와이주가 침략한 세계관에 맞춰 다양한 생김새로 변신한다. 하지만, 파괴만을 추구해 다른 차원에 있는 카와이주까지 적으로 취급해 매번 말썽을 일으킨다.
고전적인 소프트비닐 제작 방식이 아닌 3D 프린터를 사용해 토이를 제작 중인데, 오리지널의 외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토이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전 관련 자료를 수집하며, 소프트비닐 특유의 질감과 형태감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파악했다. 덕분에 3D 프린트로도 제법 ‘소프비’ 느낌을 낼 수 있게 되었고, 아직까지 외형적인 표현 작업은 큰 어려움 없이 작업 중이다.
하나의 피규어를 제작하기까지 대략적인 프로세스라고 한다면?
내 작업의 접근 방식 자체가 순수 창작이 아닌 부틀렉 토이를 만드는 것이라 우선 어떤 걸 조합해 나만의 스타일로 변화시킬지 탐색한다. 이때 국내 레트로 장난감 숍을 돌아다니거나 이베이(eBay)에서 디깅하지. 그 대상을 찾은 뒤에는 바로 3D 조각 작업으로 지브러시와 블렌더를 활용해 작은 사이즈의 샘플 피규어를 뽑아보면서 실제 가동 범위라든지, 조형미를 체크한다. 그렇게 원형이 결정되면, 계획했던 사이즈의 피규어를 최종으로 제작해 매끄럽게 가공한 뒤 채색한다. 마지막으로 마감재를 뿌려 채색이 벗겨지지 않게끔 하면, 하나의 피규어가 완성된다. 여기에 추가로 패키징을 하고, 스토리와 어울리는 디오라마를 제작하거나, 사진 촬영을 해 상품화하는 거지.
최근 일본의 토이쇼 원더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무엇을 느끼고 돌아왔는지.
일본의 무지막지한 더위와 내가 넘어야 할 다음 단계를 느끼고 왔다(만약 원더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싶다면, 여름은 피하길 바란다). 3D 프린터가 아닌 실제 소프비 토이를 제작하는 걸 새 목표로 삼게 되었다. 안 그래도 소프비 제작에 갈증을 느끼고 있던 찰나 최근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지닌 친구들이 모인 디스코드 대화방에서 ‘집에서 소프트비닐 토이를 제작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가 나왔고, 그 방의 행동대장 격인 친구가 직접 시도해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아마 올겨울, 혹은 내년 봄쯤 카와이주의 소프비 토이를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서 어떤 아이템을 선보였나, 현장 반응 또한 궁금한데.
45cm 크기의 카와이주 피규어와 인센스 챔버로 활용 가능한 디오라마 피규어, 키홀더 등 토이쇼를 위해 준비한 몇 가지 조형물, 제품을 전시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현장의 에너지를 듬뿍 받은 덕에 앞으로 더 많은 토이쇼에 참가해 내 토이 제작 활동의 발전을 증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이쇼에 참가하려면 뭘 준비해야 하나,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되는지도 알려달라.
이번에 참가한 원더 페스티벌 같은 경우에는 우선 팀 인원 중 한 명이 일본 거주자여야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참여 접수가 끝나고 전달받는 가이드라인 문서의 양이 꽤 많아 본인이 일본어에 능숙하지 않다면, 이를 정확히 숙지할 수 있도록 일본어를 잘하는 이에게 도움받길 권한다. 다만, 판권 없이 개인 토이로 참여하는 건 그 형식이 자유로워 다소 편하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행사 참여 행정 처리를 이메일로 진행했는데, 답신이 늦어 큰일 날 뻔한 적이 있다. 조금 지체된다 싶으면 바로 유선 연락을 통해 실시간으로 체크하자. 전반적으로 시스템이 단단하게 잡힌 듯하면서도 은근히 느슨한 부분이 있어 매사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추후 카와이주 프로젝트의 협업 계획은?
많이 준비한 만큼 적극적으로 진행해 볼 요량이다. 이미 구상 또한 끝마쳤다. 다만, 카와이주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준비한 걸 먼저 보여준 뒤 전개할 것 같다. 조금 힌트를 주자면, 단순 장난감 협업 상품보다는 실용적인 오브제를 선보일 예정이다. 혹, 이 콘텐츠를 보고 협업을 제안하고 싶다면, sinww528@gmail.com으로 언제든 연락 달라.
게임, 애니메이션 등 앞으로 카와이주가 피규어 외 다른 포맷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지금 준비하고 있다. 게임은 오프라인 이벤트에서 체험할 수 있는 포맷으로 제작 중이다. 이것 역시 힌트를 좀 주자면, ‘플레이어가 카와이주가 되어 도시를 부수는 VR 게임’ 정도로 알고 있으면 될 것 같다. 영상 콘텐츠는 1954년 개봉한 첫 고지라 영화를 오마주해 그 시절의 흑백영화와 아날로그 특수효과를 현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선보일 예정이다.
Editor │ 오욱석
Photographer │전솔지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PAPER 21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로컬 판매처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