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AKHEE x M.E.D. 콜라보레이션 앨범 [Psychedelic We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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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Greater Fools 레코즈 소속 프로듀서, 오타키(OTAKHEE)가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레이블, 스톤즈 쓰로(Stones Throw) 소속 잔뼈 굵은 래퍼 M.E.D.와의 협업 앨범 [Psychedelic Weather]를 최근 국내 음악 채널, 피카소(Picasso)를 통해 전곡 선공개했다. 그간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M.E.D.와의 협업을 알려온 터라 대중의 입소문은 타지 못했어도 마니아들의 관심을 모은 앨범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Psychedelic Weather]을 감상하고 있자면 오래전, DJ Shadow의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 다시금 되살아난다. 폐허, 또는 제삼 세계 어딘가 존재하는 불안한 땅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곳에 당도한 것 같은, 몸의 긴장을 풀 수 없지만 그런대로 그루브를 타고 무당의 춤사위라도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오타키의 감정과 의도는 각각의 요소로 이번 작품에 개입해 기계적인 질서를 만들고 주술적 기운을 불어넣는다. 연신 때려 대는 스네어 드럼과 각종 파열음은 긴장감을 조성한다. 비트의 여진, 공간의 여백까지 치밀하게 설계된 [Psychedelic Weather]의 세계는 빛 한 줄기를 찾으려는 시도조차 무색게 한다. 소리의 파편이 응집되어 독특한 기후를 설정하고, 이것은 앨범 내에서 하나의 덩어리이자 각각의 단면으로서 작용한다. 수록곡을 하나로 이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은 이번 앨범은 마치 특정한 공간에 들어와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금속 성분의 공기가 구름을 만들어 회색 비를 내리게 하고, 보라색 천둥을 치게 만드는 광경을 청자는 두 귀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자세한 감상평은 하단에 첨부한 글을 확인하길 바란다. 불싸조 밴드의 리더이자 음악 칼럼니스트, 한상철이 작성했다.

OTAKHEE의 공식 트위터 계정

금욕적인 생동감, 그리고 낯선 기후

M.E.D. X OTAKHEE [PSYCHEDELIC WEATHER]

재즈 그리고 소울 샘플링을 기반으로 비트를 만들어 오던 프로듀서 오타키는 변칙적인 작법을 통해 별개의 위치에 도달한 아티스트다. 그는 일반적으로 힙합에서 통용되는 샘플링의 문법과는 비교적 차별점을 두는 편이었는데, 그러니까 힙합의 접근 방식보다는 오히려 뮤지끄 콘크레토(Musique Concrete: 구체 음악) 작업이라 명명할 만한 부분들이 더러 존재했다. 이를 테면 강태환 선생의 연주를 샘플링한 것 같은 대목은 이런 분류를 더욱 명확히 해내는 지점이었다. 뭐 사실 DJ 섀도우(DJ Shadow)의 몇몇 작품에서도 확인 가능하지만 현대음악/프리 재즈는 꽤나 훌륭한 샘플링 거리이긴 하다. 단, 프로듀서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마치 MPC를 든 선 라(Sun Ra)가 한국의 어느 지하실에서 레코딩한 것 같았던 첫 음반 [Smoked Jazz]로 성공적인 첫발을 내딛은 오타키는 이번에 더욱 강력한 동반자와 함께 돌아왔다. 미국 언더그라운드를 대표하는 힙합 레이블 스톤스 쓰로(Stones Throw)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MC MED(aka Medaphoar)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월드클래스 언더그라운드 MC의 보컬 트랙이 비로소 한국에서 가장 급진적인 힙합 프로듀서의 비트와 만나게 됐다. 사실 바로 앞 문장에서 언급한 ‘한국’과 ‘힙합’은 이 음반을 설명할 때 무의미한 단어다. 아무튼 이 두 인물의 조합만으로 놓고 봤을 때도 굉장히 스릴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는 예측 정도가 가능했다.

그리고 본 작(作)은 그러한 예측을 이상하게 뛰어넘는 결과물로써 돌출됐다. 약동하는 MED의 랩, 그리고 오타키의 에스닉한 비트는 상호 보완해 내면서 앨범을 듣는 이들을 잠식시켜 갔다. 이는 늦은 밤 약간은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로 들으면 꽤나 멋지게 들린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 상태가 그렇다- 선 라의 레코드들이 그렇듯 이 역시 수상한 고대의 신전에 갇혀 있는 이미지 등등을 떠올리게끔 만들기도 한다. 날카롭다기보다는 예민한 샘플링웍 그리고 프로덕션이다.

앨범의 인트로 트랙 ‘Wurrup’에서부터 앨범의 색을 확고하게 각인시켜 낸다. 무엇보다 곡에는 매드립(Madlib)의 그룹 룻팩(Lootpack)의 멤버로, 그리고 국내 DJ들 사이에서는 훌륭한 훵키 브레익들을 다수 수록하고 있는 브레익 레코드 [Hamburger Hater Breaks]로 알려진 DJ 롬스(DJ Romes)가 스크래치를 담당하면서 앨범의 퀄리티를 보증해내는 역할을 했다. 무심한 듯 치밀한 비트가 내내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Mass Hysteria’의 경우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듀서인 ‘당산대형’ DJ 소울스케이프의 스크래치를 확인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의외의 명인들이 앨범 안에 고루 포진되어 있다.

두뇌를 강타하는 스네어 연타가 불길하게 엄습하는 ‘P.E.G.A’, 그리고 ‘Through The Air’에서는 위협적이면서도 확고하게 자신만의 비트를 느리게 새겨 갔다. ‘Blank 2’의 경우엔 오히려 라디오헤드(Radiohead)의 ’15 Step’의 인트로 비트 같은 것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굳이 애써 본 작을 힙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없음이 이런 예시를 통해 확실시된다. 스크래치로 멜로디를 새겨 넣고 주술적인 스네어의 공명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Psychedelic Weather’는 앨범 자체를 특징짓는 하나의 본보기로써 완수됐다.

‘Wurrup’과 ‘Mass Hysteria’의 경우에는 인스트로멘탈 트랙까지 앨범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비트의 행간에 집중하고 싶은 이들에겐 반갑게 다가갈 것이다. 차가운 절규와도 같은 본 작의 비트들은 아인스튀어첸데 노이바우텐(Einsturzende Neubauten) 류의 초기 인더스트리얼, 혹은 안티콘(Anticon) 소속 아티스트들의 작품들과 교집합 점 또한 얼추 엿보이기도 한다. 음색은 뚜렷하지만 왠지 정확한 실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그루브들이다.

불길한 격렬함 위에 음(音)의 파편들을 파괴적으로 결합해낸 지점에 위치한 레코드다. 또 전반적으로 여백을 제대로 활용해내고 있는 드문 작품인데, 알다시피 이렇게 여백에 집중하는 경우 그 의도를 확고히 관철시키지 못하거나 혹은 정교하지 못할 경우 꽤나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본 작은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은 채 하고자 하는 것을 완벽하게 매듭지어냈다. 소란스럽지 않은 장엄함, 그리고 빛이 거의 없는 명상적 세계관이 서서히 청자를 조여 온다.

혼돈의 시대, 그리고 계절에 태어난 낯선 증류물이다. 불필요한 장식이 없고, 때문에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는 아티스트 자신의 현재 위치를 모색해나가는 어둠의 발자취이다. 흑과 백, 캘리포니아와 서울, 그리고 정(靜)과 동(動) 사이 어딘가 즈음에 존재하는 소리들이다. 모든 감각을 납치한 채, 불현듯 새로운 질서를 들이밀고 있다.

[MED aka Medaphoar]

90년대 웨스트코스트 힙합 트리오 룻팩의 걸작 [Soundpieces]로 데뷔한 이래 콰지모토(Quasimoto)의 첫 앨범, 매드립의 블루 노트 앨범 [Shades of Blue] 등 수많은 중요한 레코드에서 마이크를 잡아왔다. 2005년도에 발표한 데뷔작 [Push Comes To Shove]에는 저스트 블레이즈(Just Blaze)와 제이 딜라(J Dilla), 매드립 등 당시 미국을 대표하는 명 프로듀서들과 함께하면서 씬을 뒤흔들었고, 2011년에 공개한 [Classic] 역시 매드립은 물론 알케미스트(Alchemist), 카림 리긴스(Karriem Riggins), 탈립 콸리(Talib Kweli) 그리고 알로에 블랙(Aloe Blacc) 등의 아티스트들을 대거 참여시키면서 한 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완수했다. 차분하면서도 특징 있는 목소리 톤과 올드 스쿨 풍의 선명한 랩을 전달하는 MED는 여전히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내는 씬의 탑 클래스 아티스트로서 활약을 이어나가고 있다.

ㅡ한상철 (불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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