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애매한 위치에 위치해 언어적으로 영미권에 속하지만, 아메리카와 유럽권의 음악인이 투어를 진행할 때 아시아와 함께 묶어서 성사된 경우가 흔하다. 북미에서 아이스하키를 보며 다른 스포츠와 다르게 주먹다짐하는 장면을 즐기듯, 호주 또한 툭하면 주먹질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럭비를 즐기고 주요 도시가 해변에 위치한 탓에 서핑을 많이 접하고 있다는 건 꽤 널리 알려진 사실. 해변과 서핑 또한 같은 이유에서인지 호주는 유난히 팝 펑크(Pop Punk)와 메탈코어(Metalcore) 같은 음악이 강세였는데, 2000년대 초반부터 활동한 파크웨이 드라이브(Parkway Drive)는 학교밴드로 시작해 전 세계를 아우르는 그룹으로 성장했고 이에 보답하듯이 모교로 돌아와 공연을 펼친 적이 있다.
확실히 호주 안에서 팝 펑크와 메탈코어는 언더그라운드부터 오버그라운드까지 영향을 끼치며 현재도 많은 인기를 누리지만, 좀 더 문화적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했던 하드코어 펑크(Hardcore Punk)가 호주 안에서 부재했던 건 아니다. 테러를 필두로 한 US 하드코어 사운드를 연주했던 릴렌틀러스(Relentless)는 해외 밴드의 호주 투어를 담당하면서도 직접 해외로 나가 북미 투어를 진행한 중견급 밴드였으며, 빠른 디비트(D-Beat) 스타일의 펑크 음악을 연주한 밴드 피스크라이스트(Pisschrist), 엔자임(Enzyme), 크로모솜(Kromosom)은 2010년대 전후 세계 펑크신을 휩쓸고 있는 밴드들이다.
아시아를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를 세계에 소개하는 매체 이스턴 스탠다드 타임스(Eastern Standard Times)는 최근 호주에서 가장 주목받는 하드코어 밴드 스피드(Speed)를 조명한 단편 다큐멘터리 영상을 공개했다. 5인조로 구성된 이들은 3명의 멤버가 동남아에서 건너온 이민자의 후손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아시아계 멤버가 있는 하드코어 밴드보단 오리지널 시드니 하드코어 밴드로 알려지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칼하트(Carhartt)와 아크테릭스(Arc’Teryx) 등의 하드웨어, 아웃도어 브랜드로 무장한 이들은 헤비한 기타 사운드의 연주와 더불어 아웃도어 브랜드에 영감을 받은 머천다이즈(Merchandise)로 해외 하드코어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또한 이를 반증하듯, 올해 브레인데드(Brain Dead)에 의해 열리는 LA 하드코어 페스티벌인 사운드 앤 퓨리(Sound and Fury)의 라인업에는 스피드가 이름을 올리며 첫 미국 투어의 기대감을 불어넣고 있다. 스피드의 짧은 다큐멘터리를 감상했다면 최근 그들이 발매한 [Gang Called Speed] 앨범을 들어보라.
이미지 출처 | Sp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