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bukaru: Bianco

매거진, 개중에도 로컬 문화를 중시하는 VISLA라는 집단에 소속된 한 사람으로서, 바다 건너 일본이라는 나라를 부러워할 때가 종종 있다. 패션, 음악, 애니메이션, 게임은 말할 것도 없고 제대로 된 명칭도 알지 못하는 수면 아래의 그 무언가까지도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니, 로컬 이야기만 파더라도 양질의 콘텐츠를 무한정 양산해 낼 수 있지 않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면 일본이 거대하디 거대한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다수가 빙산의 일각만을 보고 있을 뿐 그 내막을 속속들이 파헤치는 이들은 극히 소수라는 것. 언젠가부터 소위 힙스터들의 필수 덕목이 된 ‘디깅’이 보편화된 것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라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를 실행하기에는 상당한 시간과 열정 그리고 진심이 필요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최근 몇 년 새 ‘mag’을 붙이며 우후죽순 생겨난 인스타그램 매거진과 아카이빙 계정들이 이 과정을 대신 수행하며 보기 좋고 먹기 좋은 떡을 제공하고는 있다. 그러나 급하게 짜깁기되고 돌고 도는 소재를 보고 있자면 금세 신물이 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본인은 사부카루(sabukaru)를 찾는다. 도쿄를 기반으로 일본의 하위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이들은 바다 아래의 거대한 빙산 조각을 영상, 사진 등의 고퀄리티 콘텐츠를 통해 속속들이 보여준다. 사부카루의 많은 팀원이 유럽 출신이지만 일본 문화에 대한 이들의 애정은 듣도 보도 못한 만화, 게임의 내막을 새로운 시각으로 전한다. 때로는 일본 현지의 젊은 아티스트, 브랜드와도 호흡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서 듣는다. 최근에는 일본을 넘어 한국, 대만, 홍콩 등 다양한 아시아 문화를 포괄하고 있으며, 단순 웹매거진의 형태를 넘어 팝업 이벤트를 열고 있기도 하다. 5월 중순 명동의 편집숍 8DIVISION과의 패션 팝업을 위해 서울을 찾은 사부카루의 편집장 비안코(Bianco)와 이야기를 나누며 사부카루에 대한 그간의 궁금증을 풀어봤다.


간단한 자기소개 그리고 사부카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달라.

사부카루의 창립자이자 현재 편집장을 맡고 있는 비안코라고 한다. 내 모든 삶과 일은 문화와 사람 그리고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거나 흩어지게 하는 것에 집중돼 있다. 사부카루는 패션부터 서브컬처 그리고 예상치 못한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지금 세대에 대한 우리들의 해석이라 할 수 있겠다.

서울은 좀 어떤가. 오래전에도 방문했다고 들었는데, 그새 많이 바뀐 것 같나?

코로나 이전 처음 서울을 방문했을 때는 스트리트웨어와 스트리트 컬처의 시대인 것 같았는데, 지금은 디자인, 하이엔드 패션, 좋은 취향을 선도하는 도시가 된 듯하다.

독일 출신인 당신이 어떻게 현재 도쿄에 정착하게 됐고 사부카루를 시작하게 됐는지, 그 배경을 듣고 싶다.

항상 도쿄에 가고 싶었지만 그 당시에는 더 비쌌기 때문에 돈을 모으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8살이 돼서야 도쿄에 처음 가게 됐는데, 그 첫날밤에 바로 도쿄에 살아야 한다는 걸 느꼈다. 전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있었고, 도쿄가 그 해답인 것 같았지. 도쿄를 처음 방문한 지 3년 만에 완전히 옮겨가 살게 됐다.

사부카루를 시작하기 전에는 작은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도쿄에서 1년간 지내면서 블로그를 잡지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블로그는 온전히 나 자신에 관한 것이고, 잡지는 철저히 독자를 염두해 제작하는 것이니까. 이게 내 인생에서 중요한 단계이자 변화였다.

왜 일본이어야만 했나.

도쿄에서의 삶이 정말 행복했고 많은 친구와 인맥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질적으로 파고들 기회가 그들에게 많지 않지 않나. 더 깊이 파고들 기회를 잡은 거다.

서양인의 시각에서 바라봤을 때 아시아 문화, 특히 사부카루가 주로 다루고 있는 일본 문화의 전반적 매력은 무엇인가.

비주류 대한 개방성, 한 가지 주제에 깊이 파고드는 습성, 한 가지 취미에 100% 몰두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문화 등이 일본에 관심을 갖게 한 것 같다.

일본인이 만들지 않는 ‘일본’적인 콘텐츠임에도 사부카루의 콘텐츠가 컬트적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사부카루에도 일본인 멤버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일본에 있으면서도 외부인의 시선을 가지려고 하는 것도 맞다. 일본인들은 대게 너무 겸손하기 때문에 그들이 얼마나 멋진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잊을 때가 있는데, 우리는 외부인의 시각으로 그걸 쉽게 보고 독특한 관점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 같다.

사부카루의 주 타겟 층은 독특한 일본 문화를 궁금해하는 외국인들인 것 같은데, 일본 내에서의 반응은 어떠한가. 

시간이 지나며 완전히 달라진 듯하다. 사부카루는 따로 타깃 독자층을 두지 않는데, 현재 일본인이 사부카루 독자들 중에 두 번째로 많다. 사부카루는 모두를 위한 것이고, 지난 몇 년 동안 도쿄 신에서 인정받는 존재가 됐다.

과거 70년대 일본의 하위문화부터 지금 떠오르는 세대까지, 폭넓은 시야로 콘텐츠를 제작하며 일본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느꼈을 텐데, 과거와 지금,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일본 문화의 강점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지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외 한국과 대만, 태국 등 근접한 아시아 국가의 문화에 관해서도 다루고 있다. 각 국가의 하위문화를 통해 느낀 특별한 차이점이 있나?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이제 알아가는 중이니 아직 비교하기엔 너무 이른 듯하다. 어떤 나라든지, 어떤 주제든지 일본 외의 아시아 국가의 문화에 대해 다루는 것이 우리의 다음 가장 중요한 목표다. 이번 한국 방문을 비롯해 다른 나라, 도시와 관계를 만들 수 있어 기쁘다.

사부카루가 콘텐츠를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것.

사부카루 팀원들 역시 다국적 배경을 가진 이들로 구성돼 있는 것 같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멤버들을 어떻게 모으고 있나.

언제 어디서든 팀원을 모을 수 있다. 클럽, 온라인 심지어는 잠깐 나눈 대화에서 조차도. 어쩌면 나의 가장 강력한 재능이 사람을 모으는 걸지도 모르겠다.

만화, 영화, 음악 그리고 문화 전반에 걸쳐 유니크한 소재를 다루는 사부카루를 보면 당신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어떤 유년시절을 보냈나.

항상 우울하고 수줍은 아이였다. 근데 옷을 좋아하고 잘 입었다. 주변에는 귀여운 비행을 저지르는 친구들 그리고 와우(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하드코어하게 플레이하는 괴짜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 때문에 게임을 시작하게 됐는데, 나중에 보니 내가 제일 잘하고 있더라.

현재 웹미디어는 인스타그램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있다. 사부카루 같이 공을 들여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지라도 인스타그램 세상 속의 소비 속도는 훨씬 빠른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사부카루가 지향하고 있는 바는 무엇일지.

인쇄 매체를 통해 영원히 남는 것.

내년 페이퍼 매거진 출간을 예고했다.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소비가 넘쳐나는 시점에서 페이퍼를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오래된 잡지를 우연히 발견할 때마다 잡지를 만든 이들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여 이를 완성해 냈는지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정말 많은 영감을 얻고 사부카루를 통해서도 이를 이루고 싶다.

일반적인 ‘매거진’ 혹은 ‘미디어’의 영역을 넘어 일본의 패션브랜드와 함께 파리에 간다던지, 팝업 이벤트를 연다든지 하는 다양한 일을 진행하고 있는데, 미디어 매체를 넘어 사부카루가 지향하고 있는 방향이 있다면 알려달라.

사부카루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유사하다. 진지함과 즐거움, 문화와 비즈니스, 커뮤니티와 친구 등 그 어떤 것이든 될 수 있길 바란다. 사부카루가 진행하고 있는 쇼룸은 신진 디자이너를 소개하기 위한 발판이다. 이를 통해 돈을 버는 건 아닌지라 다들 내가 미쳤다고 하지만, 나는 젊은 디자이너들을 돕는 게 너무 좋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분명 좋은 일일 거다.

도쿄 혹은 여러 도시에서 최근 주목하고 있는 문화적인 흐름이 있다면?

작년까지만 해도 테크노가 꽤 붐을 일으켰는데, 올해는 잘 모르겠다. 모든 방면으로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가장 좋아하는 혹은 최근에 관심을 둔 한국 패션 브랜드가 있을까? 

사부카루도 최근 들어 한국에 관한 소식을 조금씩 다루기 시작했다. 느리지만 제대로 하고 싶었다. 우리가 원하는 한국, 서울의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들과의 연결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지. 이미 한국에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고 멋있는 브랜드들도 여럿 알게 됐다. 엑슬림(XLIM), 지용킴(JiyongKim), 컴마웨어(CMMAWEAR), 포스탈서비스(FFFPOSTALSERVICE)처럼 말이다. 현재 한국의 패션 신이 정말 흥미로운 것 같다. 패션 신을 둘러싼 열기가 정말 뜨거운데 그게 한국에 대한 사부카루의 기대치를 높인다. 정말 재밌다. 속도는 느리지만 제대로 다루고 싶다.

최근 개인적인 관심사가 있다면?

나 개인의 삶과 일이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사부카루를 통해 보이는 게 곧 나다. 사부카루의 모든 게 내 개인적인 관심사니까.

마지막으로 문화를 탐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읽고, 존중하고, 시간을 들여 자신만의 것을 찾고, 너무 심각해지지 않는 것. 인생은 이미 꽤 어둡고 진지하니 긴장을 풀고 당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물, 사람을 찾을 것!

sabukaru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Bianco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장재혁
Photographer | 전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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