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왔습니다 #3 뽈랄라 백화점

홍대의 오타쿠 문화가 눈에 띄게 부흥하고 있는 지금, 그 흐름이 본격화되기 훨씬 이전부터 주변 상점들과 차별화된 독특한 외관으로 행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공간이 있다. 바로 10여 년 넘게 홍대와 함께 시간을 쌓아온 뽈랄라 백화점이다. 다양한 연식의 물건들로 빼곡히 진열장을 채운 공간은, 한국의 역사적 배경을 반영한 잡화부터 국내외 취미를 집약한 다양한 물건들을 들여오며, 최신 애니메이션 굿즈를 주력으로 선보이는 상점들 사이에서 꿋꿋이 오타쿠 문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해 왔다.

국내 장난감 수집가 1세대로도 잘 알려진 뽈랄라 백화점의 운영자 현태준은 한때 활발한 저작활동과 매체 인터뷰로 주목받았지만 최근에는 대외적인 활동이 다소 뜸했다. 그가 홍대에서 한 자리를 지켜온 지 15년이 되어가는 지금, 공간을 찾아 운영자의 근황은 물론 그동안의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소개 부탁한다.

뽈랄라 백화점을 운영하는 현태준이다. 

처음 가게를 연 계기가 있다면?

98년도경이니 IMF 시절이었다. 당시 일이 별로 없어서 겁도 없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을 먹었다. 젊었을 때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지. 마침 우리나라의 옛 물건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고, 지금은 찾기 힘든 옛날 장난감들을 수집하기 쉬웠던 때라 전국을 돌며 문방구나 완구 가게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2007년인가 2008년에 쌈지가 문화예술 쪽으로 많은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운 좋게 후원을 받아 헤이리 아트 밸리에서 ’20세기 소년소녀관’이라는 옛날 장난감 박물관을 연 것이 시작이라 할 수 있지.

파주 헤이리 장난감 박물관의 근황은 어떤가? 아직 운영 중인가?

얼마 안 있다가 쌈지가 부도가 났다. 그래서 그곳에서 한 3년 정도 박물관을 운영하다가, 워낙 모아둔 물건이 많아서 여기 홍대에 작업실을 처음 얻었다.

뽈랄라 박물관은 줄곧 이곳 홍대에서 운영되었는지? 오래 운영한 만큼 그 역사가 궁금하다.

그렇다. 여기서 2년에 걸쳐 개인 박물관을 완성했다. 물건들 정리하는데만 꼬박 2년이 걸린 셈이다. 처음에는 작업실로 이곳을 사용하면서 개인 박물관으로 입장료를 받아 월세라도 빼보려고 했지. 이렇게 공간 구석에 카운터 자리를 마련한 것도 나도 작업에 집중하고, 손님도 자유롭게 구경하시라는 뜻을 반영한 거다. 나도 어딜 구경가도 그게 편하더라고.

2009년에 ‘뽈랄라 수집관’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전시관을 개장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입장료 수입이 얼마 안 되더라고. 처음에 3,000원으로 시작해 1,000원으로까지 입장료를 내려봤지만 방문객들에게 입장료를 받는 방식이 낯선 거 같더라. 그래서 끝내 입장료를 없애니까 사람들이 자유롭게 와서 구경하고 갔다. 월세를 벌어보려던 계획이 실패하면서 점점 적자가 쌓였다. 입장료 수입이 적고, 적자가 심해지면서, 결국 2017년쯤부터 이곳을 ‘뽈랄라 백화점’으로 바꿨다. 전시 물건을 판매 가능한 것으로 바꾸고 입장료도 없앴고. 그렇게 차츰차츰 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거의 적자에서 벗어나 4년 정도 흑자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 홍대에 오타쿠 굿즈 관련 숍들이 많이 생겼지 않나. 가게를 처음 열 때는 그렇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당시엔 거의 없었다. 주변에 자문을 얻을 사람도 딱히 없었기에 그냥 상상으로 ‘이렇게 하면 되겠다’하고 저지른 것에 가깝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안 돼서 골치 아팠다. 그나마 바로 위에 옷가게가 꽤 오래 자리를 지켰던가? 이 길에는 주로 옷가게들이 있었고, 거리도 활기를 띄려다가 메르스나 코로나 때문에 다시 사람들이 끊어졌지. 요즘엔 외국분들이 많이 오시는 것 같다. 

그래도 이 근처 가게들은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많더라.

계속 바뀐다. 6개월 하다가 나가고, 오래 하는 집이 거의 없다. 

당시엔 홍대보다 용산에 이러한 상권이 집약되어 있었나? 아키하바라처럼 용산 전자상가에 매니아틱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강남 국제전자상가에 오타쿠 굿즈 숍이 있듯이.

용산에도 한 두 개가 다였다. 예전에는 게임기나 게임 관련 물건을 파는 곳이 있었지만, 대부분 중고 거래 많았지, 오프라인 가게는 거의 없었다. 요즘에야 가게들이 많이 생기고, 예전에는 찾는 사람도 적어서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애니메이션, 만화 등 창작물의 대다수가 일본에서 파생되어, 오타쿠 문화 내에는 일본의 작품이나 제품이 우위에 있다는 인식이 있지만, 이곳에는 일본 제품뿐만 아니라 한국의 취미 문화를 담은 물건들도 시대별로 섞여 있는 게 흥미로운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한창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어린 시절의 시대상이 반영되는 것 같다. 장난감뿐만 아니라 책이나 만화책 같은 물건들도 많다. 해적판 같은 물건들도 있고. 그런데 그런 물건들을 지우고 싶어 하는 분들도 많다. 나는 그런 흔적도 대중 역사라고 생각해서 지우지 않고 찾아내고 보관하는 중이다. 98년부터 20년 넘게 그런 작업을 해왔지. 

내가 소년기를 보낸 건 70년대였는데, 그때 “마징가 제트” 같은 일본 만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동네 문방구에는 관련 짝퉁 제품들이 많았고, 특히 프라모델이 유행했다. 당시 어른들은 장난감을 사치품으로 여겨 아이들이 몰래 사다가 들키면 혼이 나곤 했다. 하지만 프라모델은 조립 과정이 교육적이라고 여겨져 어른들도 허락해 주었다. 그래서 프라모델이 크게 유행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당시엔 학용품에 장난감이 결합된 장난감 모양 지우개, 공책 뒤 종이 장난감 등이 허용되는 유일한 장난감이었다.

일본은 이미 10년 정도 앞서 프라모델을 자체 제작하고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면서 미국의 프라모델이 일본에 전파되었고, 일본은 이를 단순히 수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만들고 발전시키는 문화를 형성했다. 반면,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았던 한국에서는 일본 제품을 모방해 짝퉁 프라모델이 많이 만들어졌다. 당시 한국에서는 일본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이름만 바꿔 방영하거나, 일본 만화를 그대로 베껴 그린 만화책이 많았다.

70년대에는 일본 문화를 대놓고 수용하긴 어려웠지만,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3S 정책(SPORTS, SCREEN, SEX)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돌리고 사회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 문화는 제한적으로 수입되거나 차단되었고, 동시에 대중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일본 학용품 근절 운동도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전두환 정권에 들어서는 일본 문화에 대한 규제가 느슨해지면서 일본의 성인 만화가 많이 유입되었고, 대중 매체에서도 일본 콘텐츠가 점차 노출되기 시작했다.

한국은 초기 해적판 물건들의 역사를 지우고 싶어 한다고도 언급했는데, 그에 반해 일본은 아카이브를 정말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페미콤 게임 칩, 불량식품을 포함한 일본 과자들을 정리한 도감, 추억의 학용품 시리즈, 종이 게임 등을 모은 도감 등 아카이브의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최근 5~6년 사이에는 이러한 자료들이 번역되어 국내에 많은 책들이 출간되었고, 그중 종이 게임 책에서는 한국의 해적판 종이 게임까지 다룬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나 역시 이런 기록의 중요성을 깊이 느끼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져가는 소소한 문화적 흔적들을 정리하고 보존하는 작업이 매우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국산 플라스틱 모형 프라모델을 집대성한 ‘소년생활 대백과’를 출간한 바 있는데, 최근에는 60~70년대생들의 소녀 시절을 반영한 장난감 시리즈를 망라한 책을 준비 중이다. 직접 수집한 자료를 담을 예정이니 글뿐만 아니라 사진으로 실물 자료를 함께 볼 수 있다는 면에서 꽤 흥미로울 거다. 또 학용품 시리즈, 해적판 만화 시리즈, 문방구 시리즈 등의 자료도 꾸준히 수집하고 있다.

이곳에는 수집과는 별도의 판매용 물건들로 진열장을 채워놓았다고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아끼는 수집품들도 숍에서 만나볼 수 있나?

있긴 있다. 두 개씩 있는 물건은 하나는 보관용으로 따로 빼두고, 하나는 판매용으로 둔다. 특히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학용품 장난감들은 지금은 쉬이 찾기 어려운 귀한 물건이다.

최근에도 찾고 있는 물건이 있다면.

이제는 거의 없다. 예전에는 찾고 싶은 욕망이 많았는데, 지금은 마음을 비웠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니 가만히 있어도 물건이 계속 들어온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지 않겠냐고 가져오면,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까. 물건이 계속 쌓여서 정리하려고 해도 계속 들어와서 늘 정리하는 것이 내 일이다.

신작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챙겨보기도 하는지?

딱히 그렇진 않다.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긴 하지만 자주 보지는 않는다. 최근에 봤던 게 “귀멸의 칼날”, “리제로” 같은 것. 

방문 후기를 보면, 쉽게 찾기 힘든 오래된 물건들이 켜켜이 진열되어 있다는 평이 많아 흥미롭더라. 특정 물건을 찾으러 오는 손님들이 많은 것 같다.

나름대로 정리는 해뒀지만 오랜 시간 운영하다 보니 나조차 잊고 있던 물건들이 판매되어 재미있을 때가 있다. 가게 매상은 주로 그렇게 특정한 물건을 찾는 단골손님들이 많이 올려주고, 외국인 단골 고객들이 주기적으로 방문해오기도 한다.

오타쿠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이 이제는 취향의 다양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홍대에 오타쿠 숍들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별생각 없다. 우리 가게는 그냥 관람만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매출과는 크게 관계없더라고. 고전 물건 파는 곳은 드물어서 그래도 많이 와서 보고 가시는 것 같다. 오타쿠 문화가 젊은 분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지만, 이런 현상이 계속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의 관심이 워낙 유행처럼 빠르게 변하니까. 지금은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취미 문화가 더 많아지고 깊어져야 한다고 본다. 한국에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정말 많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야 더 다양한 창작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다.

아까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는 잠깐 나눴지만 과거에는 가게를 운영하면서 개인적인 저작 활동을 활발히 했다. 현태준 이우일의 일본 여행기를 재미있게 봤다.

그때는 책 홍보하려고 인터뷰도 많이 했다. 예전에는 재미있는 물건을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그랬는데, 요즘엔 그냥 놀러 간다. 지인들과 만나서 술을 마시거나 교외를 구경하고.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고도로 발전하기 이전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취미로 집에서 소설을 쓰거나 블로그에 글을 쓰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내 주변만 하더라도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았지. 블로그도 나중에 나왔고, 당시에는 개인 도메인의 홈페이지 같은 게 있었다. 게시판이 활성화되어서 사람들이 거기서 글을 올리고, 오프라인 모임도 하고 그랬지. 

근래 여가시간에는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요즘엔 드럼 배우고, 수영도 한다. 건강을 챙기려고.

앞으로의 사업이나 삶의 방향성에 대해 계획하고 있는 바가 있다면.

몇 년 안지나 가게도 접을 계획이 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어서 좋지만, 시행착오가 많았다. 젊은 분들에게는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형편에 맞게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아까도 언급했듯이, 현재까지 수집하고 있는 애장품들을 시대별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려 한다. 실물이 보존되어있지 않더라도 기록으로 다 남으니까. 그런 작업이 지금은 가게를 운영을 지속하는 것보다도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뽈랄라 백화점 인스타그램


Editor | 한지은
Photographer | 전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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