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LA 거리를 밝히던 202개의 가로등으로 완성한 설치 작품 “Urban light”, 복잡한 도시를 미니어처로 만들어 둔 듯한 대형 키네틱 아트 “Metropolis II”, 기차선로와 그 위를 달리는 기차들을 머리처럼 뭉친 “Medusa’s Head”. 세 작품은 각각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뉴욕 현대 미술관(MoMA),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에서 전시 중인 미국의 현대미술가 크리스 버든(Chris Burden)의 설치작품이다. 2015년 세상을 떠난 크리스 버든, 그의 설치작품은 여전히 수많은 세계적 갤러리의 대표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계적 현대미술 작가 반열에 오른 크리스 버든에 대해 설명할 때 그의 현대 설치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작품활동 초기에 수행했던 퍼포먼스들에 대해 빼놓고 말할 수 없겠다. 1970년대 퍼포먼스 아트를 통해 미술계에 진출한 크리스 버든은 자신의 몸에 폭력을 가하는 마조히즘적 퍼포먼스들을 통해 관객과 평단에 충격을 안기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특히 고통에 기반한 자학적 퍼포먼스는 관객들에게 행위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을 넘어, 최종적으로 행위의 의미에 대해 사유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행위 예술 분야게서 꾸준히 회자되는 1970년대 크리스 버든의 자학적 퍼포먼스는 퍼포먼스 아트 역사와 미국 현대미술사의 주요한 작품들로 평가받는다. 크리스 버든이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하는 기틀이 된, 고통에 기반한 주요 퍼포먼스 작품 5가지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한다.
“Shoot!”(1971)
갤러리 안 크리스 버든과 소총을 든 그의 친구가 15피트의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친구가 크리스 버든에게 묻는다. “Are you ready?” 잠시 후 크리스 버든의 팔에 총을 겨누고 발사한다. 팔에 총을 맞은 크리스 버든은 신음조차 내지 않고 팔을 잡고 걸어 나간다. 퍼포먼스는 누군가 부른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끝난다. “Shoot!”은 관객도 크리스 버든 본인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의 연속으로 구성됐다. 원래 크리스 버든은 총알이 팔이 스치도록 계획했다. 하지만 발사된 총알은 크리스 버든의 팔을 강타했다. 그는 팔을 확인하고 갤러리를 나서는데 누군가의 신고로 사전에 준비하지 않은 앰뷸런스가 등장한다. 지켜보는 관중들은 모두 준비된 것으로 생각했을까? 아니면 실수로 인해 벌어진 해프닝들이라고 생각했을까? 확실한 것은 총을 맞은 크리스 버든의 고통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이다.
“Prelude to 220, or 110”(1971)
콘크리트 바닥에 구리 밴드로 목과 사지가 고정된 크리스 버든. 크리스 버든의 양쪽에는 110 볼트 전류가 흐르는 전선이 담가져 있는 물 양동이 두 개가 있다. 누군가 바닥에 물을 엎지른다면 크리스 버든은 110 볼트에 감전된다. 다행히도 관객들은 물 양동이를 건드리지 않고 크리스 버든을 지켜보거나 사진을 찍기만 했다. 크리스 버튼은 죽음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둔 상황에 놓인 자신을 전시하였다. 크리스 버든은 “prelude to 220, or 110″의 대한 빌리지 보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상황에 활력을 불어넣으라는 말을 남겼다. 자신의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에 스스로를 구속한 크리스 버든의 퍼포먼스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가 느낄 긴박한 감정을 상상하게 했다.
“TV Hijack”(1972)
크리스 버든은 필리스 루진스(Phyllis Lutjeans)의 요청으로 한 지역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인터뷰하게 되었다. 크리스 버든은 자신을 촬영해 줄 크루들과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인터뷰 녹화가 진행되던 도중 크리스 버든은 챙겨 온 칼을 꺼내 들어 루진스의 목에 갖다 대고 목숨을 위협한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외설적 행동을 시킬 계획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TV Hijack”은 끝난다. 크리스 버든의 원래 계획은 루진스와의 인터뷰를 생중계하려던 것. 하지만 방송국 생중계 시간이 아니었기에 비디오 촬영으로 대신했다.
“TV Hijack”은 크리스 버든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폭력을 가한 퍼포먼스다. “Prelude to 220, or 110″은 자신을 죽음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황 속에 넣은 반면, “TV Hijack”은 타인을 위험한 상황 속에 가두어 브라운관 너머의 관객들에게 그 긴박함을 전달하고자 했다. 이 또한 크리스 버든이 앞서 말한 상황에 활력을 불어넣는 행위일 것이다. 물론 생중계를 진행하지 못해 계획이 틀어졌지만 이 또한 “TV Hijack”을 구성하는 요소가 됐다. 훗날, 크리스 버든은 국영방송에서 광고를 내어 1973년 진행한 맨몸으로 유리 조각 위를 구르는 퍼포먼스인 “Through the Night Softly”를 촬영한 영상을 방영했다.
크리스 버든은 모방과 재현을 기반으로 한 자학적 퍼포먼스를 선보이곤 했는데, 그 대표적인 두 퍼포먼스가 “Icarus”와 “Transfixed”다. “Icarus”는 신화 ‘이카루스의 날개’에서 내러티브를 얻어 이를 표방한 퍼포먼스다. ‘이카루스의 날개’ 신화는 미궁에 갇힌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가 미궁을 탈출하는 여정을 담는다. 다이달로스가 밀랍과 깃털을 이용해 만든 날개를 만드는데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루스에게 너무 높이 날지 말라며 경고한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일이 너무도 신기했던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더욱 높이 상승하다 태양열이 날개의 밀랍을 녹이는 바람에 그대로 떨어져 죽는다. 마치 신화를 재현이라도 하듯 “Icarus” 속 크리스 버든은 어깨에 날개를 날고 바닥에 누운 뒤, 양쪽 날개에 불을 붙이고 점점 어깨 쪽으로 타들어오는 불길을 기다린다. 크리스 버든은 날개가 녹아 추락하는 이카루스의 추락의 죽음보단, 뜨거운 태양열이 주는 작열통에 집중했다. ‘이카루스의 날개’를 호기심이 불러온 죽음의 비극에서, 이카루스가 날개가 녹으며 느꼈을 고통의 진행 과정에 초점을 맞춘 퍼포먼스로 재해석했다.
“Transfixed”는 차고지 앞에서 진행됐다. 크리스 버든의 퍼포먼스를 기다리는 관객들은 굳게 닫힌 차고지 문을 바라보며 크리스 버든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차고지 문이 열리고 양손이 폭스바겐 자동차 못으로 박힌 크리스 버든이 등장한다. “Transfixed”는 예수 그리스도의 책형을 현대적 변형과 재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십자가는 자동차로 변형되었고, 예수가 있을 위치에는 크리스 버든이 대체하였다. 변하지 않은 것은 오직 손바닥에 박힌 못뿐이다. “Transfixed”를 마주한 관객들이 그리스도의 책형 재현 행위에 대해 감상할 때, 못이 박힌 손에서 비롯된 고통의 잔상은 지워지지 않고 모든 발상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을 것이다.
그로테스크한 자학 퍼포먼스들로 관객들을 계속해서 강렬한 이미지 속에서 행위가 던진 담론을 껴안고 헤엄치게 만든 크리스 버든의 1970년대 퍼포먼스 작품들. 파격적인 퍼포먼스들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은 크리스 버든이지만, 1980년대 이후로 자학적 퍼포먼스를 멈추고 조형 작업에 집중한 그는 복잡한 사회구조와 규범을 형상화한 여러 대형 키네틱 아트, 설치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의미 있는 담론을 던졌다. 2015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조형 작품들을 선보였던 크리스 버든. 그의 퍼포먼스를 경험한 이들의 기억 속에는 죽기 전 크리스 버든의 모습 못지않게 70년대 그가 전하던 고통이 더욱 선명하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ㅣthe art story, IMDb, vice, gagosian, dreammindmachine, wikiart, new york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