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의 독립 레코드 레이블 뮤직 프롬 메모리(Music From Memory)가 지난 10월, 버츄얼 드림스(Virtual Dreams) 시리즈의 두 번째 파트, [Virtual Dreams II, Ambient Explorations in the House & Techno Age, Japan 1993-1999]를 발매했다. 첫 파트를 발표한 지 4년 만에 반가운 소식이다.
시리즈는 1990년대 ‘앰비언트’의 경계를 재정립한 음악들을 탐구하며, 하우스와 테크노 프로듀서들이 만들어낸 클럽 밖의 세계를 겨냥한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첫 파트에서는 유럽의 테크노와 하우스 프로듀서들이 클럽 문화의 미래를 재창조하며, 칠-아웃 룸(Chill-out room)을 위해 제작한 새로운 사운드트랙을 탐구했지만, 두 번째 파트는 1993년부터 1999년 사이 일본이라는 독특한 시간과 장소로 초점을 좁혔다.
일본의 클럽 문화는 1990년대 초 시작되었다. 그들의 클럽 문화는 레이브 문화에서 시작되지 않았고, 오히려 독특하고 내성적인 경험으로 진화했다. 일본에서는 서구와는 달리, 앰비언트 테크노(Ambient-Techno), 혹은 IDM(Intelligent Drum Music)이 클럽 문화의 부산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리스닝 테크노/앰비언트-테크노’가 초기 클럽 문화의 태동에 중심축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되짚어보는 작업에서,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이어지는 일본 전자음악의 흐름뿐 아니라, 일본 청취자들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전자음악과 앰비언트의 결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80년대 칸쿄 온가쿠(環境音楽, 환경 음악) 흐름을 들여보아야 한다. 칸쿄 온가쿠는 1980년대 일본 앰비언트 음악 성행의 연장선에 있었고, ‘환경 음악’으로 알려진 이 스타일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에릭 사티(Erik Satie), 존 케이지(John Cage)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했다.
칸쿄 온가쿠는 브라이언 이노의 [Music for Airports] 같은 초기 앰비언트 음악과 달랐다. 이 시기의 일본 앰비언트는 소리와 환경 사이의 조화를 강조하기도 하였지만 선명한 음향과 깔끔한 사운드 디자인으로 돋보였다. 이는 배경 음악으로도, 깊이 있는 청취로도 즐길 수 있는 음악이었다.
이러한 1980년대 일본 앰비언트 음악의 흐름은 2019년, 시애틀 소재의 레코드 레이블 라이트 인 더 애틱(Lights in the Attic)에 의해 잘 짜인 컴필레이션 앨범, [Kankyō Ongaku: Japanese Ambient, Environmental & New Age Music 1980-1990]으로 제작된 바 있다. 앨범은 일본 앰비언트 음악의 대부 요시무라 히로시(Hiroshi Yoshimura)의 단순한 멜로디로 구성되었으나 심오한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Blink” 등과 같은 곡을 수록하며 당시 음악의 본질을 담아낸다.
1980년대 일본에서의 앰비언트 음악 부흥은 앰비언트를 단순히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문화적 현상으로 만들었다. 이후, 칸쿄 온가쿠의 영향을 받은 일본 앰비언트 아티스트들은 종종 물리적-감정적 공간을 보완하는 음향 풍경을 창조하려 했다. 그렇게 1990년대에 이르러 일본의 앰비언트 음악은 테크노와 IDM의 영향을 흡수하며 진화했다.
테크노와 IDM 등의 전자음악 장르가 1980년대의 앰비언트 흐름을 이어 1990년대의 길잡이가 될 수 있던 것에는 켄 이시이(Ken Ishii)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1992년,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켄 이시이는 벨기에의 대표 테크노 레코드 레이블 R&S에 자신의 데모 테이프를 보냈고, 계약이 이루어지며 이를 계기로 그의 음악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3년, 그의 데뷔 앨범 [Garden on the Palm]은 앰비언트가 가미된 테크노의 접근 방식을 보여주었고 그는 일본 테크노를 세계에 알린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는 이후 한 인터뷰에서 해외에서 먼저 유명해진 자신의 음악이 일본에 소개될 때는 역수출하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켄 이시이는 곧바로 일본의 전자음악 신(scene)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그는 당시 신생 레이블이었던 일본의 서브라임 레코드(Sublime Records)에서 2집 [Green Times]를 발표하며 이 레이블을 일본 신흥 전자 음악 신의 기둥으로 자리 잡게 한다. 이를 통해 일본 전자음악 레이블인 트랜소닉 레코드(Transonic Records), 시지지 레코드(Syzygy Records)와 같은 레이블들의 성공이 이어졌고, 많은 신인 아티스트들이 발굴되었다. 그 중, [Virtual Dreams II]는 이런 신의 부흥에 힘입어 발굴된 아이코/오키히데(Aiko/Okihide)의 “Phoenix at Desert”를 소개한다. 곡은 추진력 있는 리듬 대신, 천천히 늘어지는 톤을 통해 앰비언트와의 결합이 어떤 음악적 공통 언어를 형성할 수 있는지를 가늠케 한다.
일본 테크노 신의 독특한 정체성은 또한 글로벌 클럽 문화에 뒤늦게 참여한 것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애시드 하우스(Acid House)와 레이브(rave) 운동의 첫 물결을 놓친 일본 프로듀서들은 서구 신을 지배한 관습에서 벗어나 켄 이시이와 같은 인물이 제시한 일본 앰비언트-테크노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아닌, 신선한 귀를 가지고 접근했다. 컴필레이션을 엮은 주요 기획자며 오사카의 레코드숍 레벨레이션 타임(Revelation Time)을 운영하는 타니구치 에이지(Eiji Taniguchi)는 이 지연이 “순수한 사운드 실험”을 촉진했다고 언급하며, 아티스트들이 댄스 플로어의 기능성보다 탐험에 우선순위를 두었다고 설명했다.
이 정신은 일본 클럽 문화 자체에도 퍼져나갔다. 당대의 영향은 현재에 이르러서도 리퀴드 룸(Liquid Room)과 같은 장소와 와이어(WIRE)와 같은 테크노 페스티벌로 이어져, 테크노와 앰비언트 음악을 위한 인큐베이터가 되어, 관객들이 음악을 공동체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이는 서구 클럽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던 칠-아웃 룸이 일본에서도 독특한 공명을 찾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칠-아웃 룸은 시끄러운 음악이 고막을 때리는 댄스플로어 옆 편안한 소파와 조명이 어우러진 공간을 말한다. 이 공간에서는 앰비언트 음악이 흐르며 사람들에게 춤 사이 휴식을 제공했다. 관건은 일본에서도 이 개념이 존재했는지에 대한 여부이다. 서구에선 테크노와 앰비언트 음악이 칠-아웃 룸에서 결합하며 ‘앰비언트-테크노’의 시작을 알렸지만, 일본의 경우 클럽 내 그런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앰비언트-테크노’의 수입 이전에, 일본의 음악에 대한 문화적 태도가 내부적으로 ‘엠비언트-테크노’를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는 단서가 존재한다.
1990년대 초반은 전 세계적으로 전자 음악이 변혁을 맞이한 시기였다. 서구에서 테크노와 하우스 음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가운데, 일본은 조용히 칸쿄 온가쿠와 같은 독창적인 음악적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었다.
에이지 타니구치는 일본 프로듀서들이 음악을 “앉아서 듣는 것”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하며, 세밀한 사운드 디자인을 육체적 체험보다 중시했다고 제작 인터뷰에서 언급한다.
이는 곧 춤추는 것보다 듣는 것을 우선시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서구 레이브 신의 맥박처럼 긴박한 에너지와 달리, 일본의 전자음악은 종종 청취자가 앉아 흡수하고 성찰하도록 초대했다. 이는 유럽이나 미국 클럽 문화의 움직임 중심 에너지와 뚜렷하게 대비된다.
켄 이시이, 유지 타케노우치(Yuji Takenouchi), 유키히로 후쿠토미(Yukihiro Fukutomi)와 같은 일본 테크노 음악의 선구자들이, 1990년대 들어 테크노 클럽과 페스티벌이 증가하는 가운데서도, 앰비언트와 지적인 작곡에 대한 열망을 계속 가졌던 점은 ‘앰비언트-테크노’라는 이중적인 장르를 잘 설명한다. 바로 이 이중성이 실험, 융합, 그리고 문화적 교류가 공존했던 시대를 정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Virtual Dreams II]는 이런 1990년대 일본 전자음악계의 이중적 풍경을 반영하는 데에 집중했다.
부다스틱 트랜스페런트(Buddhastick Transparent)의 “Eras (666)”처럼 꿈결 같고 명상적인 톤부터, 미싱 프로젝트(Missing Project)의 “Poisson D’Avril (Galaxy Dub)”과 같은 유쾌하고 텍스처가 풍부한 리듬까지 다양한 음색 팔레트는, 유키히로 후쿠토미의 “5 Blind Boys” 같은 트랙에서 마림바 같은 타악기를 반짝이는 신디사이저 위에 층층이 쌓아 올린 소리와 함께 앰비언트 사운드스케이프와 리드미컬한 댄스 음악의 경계를 실험적으로 허물었다. 또한 덥 스쿼드(Dub Squad) “Blown Fruit”의 덥 스타일 앰비언스와 리오 아라이(Riow Arai)의 정교한 레이어링에 이르기까지, 이 앨범은 앰비언트와 테크노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컴필레이션의 핵심 트랙 중 하나인 히로나카 카츠야(Katsuya Hironaka)의 “Pause”는 시대의 청취, 제작 태도를 잘 보여준다. 섬세한 필드 레코딩과 반짝이는 톤을 사용해, 브라이언 이노와 같은 전통 앰비언트에 영향을 받은 칸쿄 온가쿠와 하우스 및 테크노의 리드미컬한 기초를 유려히 연결한다.
이러한 융합이 장르의 경계를 허문 “리스닝 테크노”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것이다. 일본 청취자들의 태도에 완벽히 부합하는 이 하이브리드 장르는 서구 칠-아웃 룸에서의 청취 경험과 소리의 구성 요소에서는 비슷할지언정 그 태도에서 궤를 달리한다.
이처럼 [Virtual Dreams II]와 이를 둘러싼 이야기는, 장르는 문화를 통해 변모하고 청취자의 태도와 듣기 방식으로 완성됨을 생생히 증명한다.
이미지 출처 │Music from Memory, Bandcamp, Japan Vibe, Infinity Ru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