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지만, 결코 가깝지 않은 나라 일본. 일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도쿄는 그간 문학, 음악을 비롯한 각종 예술 분야에서도 예찬해 마지않았다. 도쿄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라면 반일 감정은 잠시 삭여두어야 한다. 호화로운 도시 경관부터 동네에서 풍기는 독특한 호젓함까지, 여행자들에게 이 도시는 그야말로 영감의 원천이 된다. 도쿄의 정취가 담긴 노래 6곡을 소개한다.
1. 하타 모토히로(Hata Motohiro) – Aliens
누구나 그러하듯 가끔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를 가볍게 위로해준 노래, “Aliens”를 소개한다. 얼마 전, 남편이 우연히 틀어준 이 노래를 들었을 때 기억은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있다. 이걸 모자란 글솜씨로 어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본어 가사지만, 속삭이듯 노래하는 이 곡은 의미를 몰라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 복잡한 시내를 가로지르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향락가의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 도쿄에서 그것들과는 구분되어 천천히 거리를 거니는 느낌. 그러나 외롭지는 않다. 내가 소개하는 ”Aliens”는 하타 모토히로 버전으로, 키린지가 원곡을 불렀다.
기타와 보컬이 전부인 단조로운 노래다. 그만큼 고요하다. 나중에는 가사까지 찾아보았는데, 상당히 시적이었다. 그 날, 나는 6시간을 이 노래만 반복해서 들었다. 음악이 주는 감동이란 이런 거겠지. ‘大好きです。エイリアン’.
2. 동경사변((Tokyo Incidents) – “Marunouchi Sadystic – 丸の内サディスティック”
https://www.youtube.com/watch?v=AV569XhaANM
동경이라면 역시 동경사변(東京事変)의 “Marunouchi Sadystic – 丸の内サディスティック”을 얘기하고 싶네요. 여러 가지 악기가 어우러지는 경쾌한 멜로디와 시이나 링고(椎名林檎)의 시원한 보컬이 겹쳐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사실 동경보다도 지금과 같은 봄 날씨에 더욱 어울리는 노래지만, 밴드 이름과 가사에 동경이 들어가니 대충 욱여넣었습니다.
꽤 오래전에 나온 노래이니만큼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는데요. 제가 추천하고 싶은 버전은 위의 라이브 버전입니다. 멜로디언을 불며 등장하는 시이나 링고의 모습은 ‘여자가 이렇게 멋있을 수 있나’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인상적입니다. 난해한 가사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렇기에 질리지 않고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아닐까 싶네요.
글 / 오욱석, VISLA Magazine 패션 에디터
3. 야마자키 마사요시(Yamazaki Masayoshi) –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첫사랑의 쓰라림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나는 “초속 5센티미터”를 보며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애니메이션 속 배경에 빠져들어 ‘다음에 도쿄로 여행 갈 때는 ntt 도코모 건물 앞에서 꼭 커피를 마셔야지’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이걸 계기로 바로 도쿄행 티켓을 끊었다.
나 홀로 여행은 처음이라 많이 긴장했지만, 친절한 일본인들 덕에 편안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 뒤로 다시 도쿄에 갔을 땐 바쁘게 다니기보다는 천천히 걷고, 카페에 온종일 앉아 있었다. “초속 5센티미터”를 보고 나면 청량한 분위기, 바쁜 도쿄가 느껴지지만, 나에게 이 분주한 도시는 또 하나의 휴식처가 된다.
4. 키미도리(Kimidori) – O.WA.RA.NA.I – オ・ワ・ラ・ナ・イ
일본의 전설적인 힙합 그룹, KIMIDORI의 “O.WA.RA.NA.I”를 소개한다. ”O.WA.RA.NA.I“야말로 도쿄의 향수가 짙게 밴 곡이 아닐까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사랑하는 트랙이다. 나는 언제나 바이닐로 이 곡을 듣는다. 영원하여라.
5. 쿠루리(Quruli) – Tokyo-東京
https://www.youtube.com/watch?v=tE11p7uYljg
도쿄는 다양한 얼굴을 가진 도시다. 화려함으로 가득 찬 신주쿠 거리, 북적이는 사람들, 고급스러운 다이칸야마의 가게들이 늘어선 반면, 한적하고 잘 정돈된 주택가 역시 도쿄를 에워싸고 있다. 그래서 도쿄에 어울리는 한 곡을 정하는 일은 쉽지 않아서 그냥 단순하게 제목이 ‘동경’인 노래로 정했다. 데뷔 앨범에 수록된 이 노래는 동경을 배경으로 옛사랑의 추억을 그리는 노래다. 가사가 참 보석 같은데, ‘오늘 밤 너에게 전화하고 싶어. 네가 있을까-네가 받을까-. 너와 제대로 얘기할 수 있을까’, ‘네가 멋졌다는 걸 잠시 떠올려볼까’ 같은 가사는 굳이 동경과 연관이 없더라도 당신의 옛사랑을 물 위로 떠오르게 하기 충분하다. 게다가 술 한 잔 걸쳤다면 조금 위험할 수도 있다. 하하.
제목이 동경이라는 측면에서 오는 울림도 적지 않다. 단어가 주는 이미지 자체가 듣는 사람을 그 도시로 끌어들이는 느낌이랄까. 이 노래가 당신 또한 그런 식으로 도쿄로 이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만약 당신이 잠시의 환상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한다면, 모든 사랑과 멋진 여행은 대상을 향한 일종의 환상처럼 이유 없는 끌림, 치기 어린 호기심에서 시작되지 않느냐고 은근슬쩍 부추기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Tokyo No.1 Soulset의 멤버, 와타나베 토시미가 커버한 버전을 좋아하지만, 여기서는 원곡을 듣기로 하자. 시간이 된다면 커버 곡을 한번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6. Fantastic Plastic Machine – Beautiful days
2006년, 당시 군인이던 내가 아마도 일병에서 상병쯤 됐을 때다. 요리를 전공한 나는 입대 후 사단장 공관 조리병이라는 임무를 맡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장군님 집에 들어가 아침, 저녁 식사를 만들고, 집 안 청소와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파출부였다. 그곳에 병사라고는 나와 운전병 둘밖에 없어서 부대생활은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항상 장군님 집과 앞마당에서 시간을 보낸 나는 내 동기 임규민이 있는 영외 PX를 자주 다녔다. 그 시절 영외 PX에는 한 대의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이 친구 역시 다양한 음악을 즐겨 들어서 나도 가끔 그곳에서 음악을 듣곤 했다. 어느 날, 이 친구가 Fantastic Plastic Machine의 “Beautiful Days”라는 노래를 들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군대 오기 전에 새벽까지 술 마시고 집에 갈 때 항상 듣던 노래야. 새벽공기와 함께 이 노래를 들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들어보니 정말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알고 보니 FPM은 토모유키 타나카의 개인 프로젝트였다-이 노래의 주인이 일본 뮤지션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나중 일이지만-. 또한 이 시기는 시부야케이라는 장르의 음악이 한국에서 슬슬 시동을 걸 때였고, 나는 그 뒤로 Pizzicato Five, Towa Tei-시부야케이라 정의하긴 좀 무리가 있지만,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와 같은 뮤지션에 빠져 휴가를 나와서도 종일 음악 CD만 사러 다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2007년도에 제대했고, 나에게 음악이라는 건 단순한 취미 그 이상으로 커져버렸다. 어느 날 홍대 입구역 근처에 있는 메타복스에서 디깅을 하던 중 FPM의 두 장짜리 [Beautiful] LP를 발견하고는 너무나 기뻤다. 구하기 힘든 앨범이기도 했거니와 이 음반이 LP로 발매됐다는 사실 또한 신기했다. 냉큼 집으로 가지고 와서 A면 두 번째 트랙 “Beautiful days”를 2년 만에 다시 들었을 때 그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이 노래를 들으며 나는 다짐을 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일본에 가게 된다면 이 노래를 들으며 일본 밤거리를 걸을 거야.’
그로부터 정확히 6년이 지난 2015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밴드 글렌체크(Glen Check)의 일본 공연이 잡혀서 함께 일본에 갔다. 왁자지껄 웃으며 오모테산도 거리를 걷던 친구들 뒤편으로 슬그머니 빠져서 나는 조용히 이어폰을 꽂고 이 노래를 들었다. 그 날 저녁, 오모테산도의 석양은 정말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