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 스트리트 스냅 Yutaro Saito의 프로젝트

본인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데 어려움이 없으려면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심지어 옷무더기에 파묻혀 사는 이들조차 매일 아침 촉박한 시간을 쪼개어 고민에 빠지지 않나. 어쩌면 이 모두는 ‘옷’이라는 물질이 개인과 완전히 하나가 되지 못해 발생하는 필연적인 불상사일 수 있겠다. 허나 일본의 사진작가 유타로 사이토(Yutaro Saito)는 이를 가뿐히 초월한 이들을 거리에서 발견, 오랜 시간 그들의 카메라에 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

이에 관한 유타로의 첫 작업물은 2021년 발간된 사진집 ’20’s STREET STYLE JOURNAL’로,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일본 거리에서 쉬이 마주할 수 있는 이들을 과감한 색감으로 포착했다. 유타로의 작업물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단순 ‘노인 스트리트 패션 아카이빙’에 그치지 않고 ‘플라스틱 패션(Plastic Fashion)’을 꼬집는 데 초점을 뒀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패션을 단순히 플라스틱을 소재로 한 환경파괴적인 개념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의 정의에 따르면 전후 대량 소비 사회에서 가장 실용적인 소재로 대두된 플라스틱의 등장과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난 컬러링, 로고, 광고 등을 통해 가치 없는 물건을 가치 있는 물건으로 둔갑시키는 일종의 현상을 가리킨다. 이러한 현상 자체가 빈 껍데기뿐인 플라스틱과 일맥상통한 다는 것이 그의 주장. 플라스틱 패션을 따르는 이들은 지극히 ‘타자지향적’이며 해당 스타일은 착용하는 이의 개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와는 대척점에 있는 게 ‘자기지향적’ 패션인데, 이를 설명하는 그의 예시가 흥미롭다. 최근 수많은 협업 스니커를 출시하고 있는 아식스의 로고가 멋져 보여 러닝화를 구입하면 ‘타자지향적’인 반면, 단순 아침 조깅을 위해 구입한다면 ‘자기지향적’이라는 것.

이러한 그의 주장을 면밀히 뜯어보면 그가 왜 ’20’s STREET STYLE JOURNAL’을 통해 일본 거리의 노인들을 카메라에 담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7, 80년의 인생이 스타일에 고스란히 녹아든 그들이야말로 ‘자기지향적’ 스타일을 향유하는 궁극의 종족이니 말이다. 타인의 시선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10대부터 30대까지의 유스패션에서 벗어나 점점 자신의 취미, 라이프스타일, 성격이 반영되며 더욱 편하거나 독창적인 스타일이 탄생하게 되는 건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의 사진을 감상하는 일조차 어딘가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중후한 멋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중절모를 시작으로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에도 익숙한 낚시 베스트와 배바지, 그리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모자핏까지. 사진집은 가장 익숙하면서도 독창적인 모습을 담았다. 스니커를 예시로 든 유타로답게 마지막 페이지는 브레스톤(Breston) 스니커와 “dad sneaker is shoes for dad”라는 재치 있는 문구로 장식했다.

유타로 사이토의 길거리 고령 스트리트 패션 탐구는 사진집 발간에 멈추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2022년 11월에는 브랜드 비유티풀(b.Eautiful)과 함께 동일한 콘셉트의 화보를 선보이는가 하면, 새로운 프로젝트 ’72-CLUB-DIARY’를 통해 그들의 이미지뿐 아니라 이야기까지 풀어내고 있다. 동네를 산책하는 유타로의 짧은 감상 그리고 모델을 발견하기까지의 과정과 함께하는 블로그식 프로젝트는 어르신들의 스타일적 요소를 넘어 그들이 어떻게 옷을 고르고 어떤 사연이 있는지를 인터뷰 형식으로 발행한다. 22년 5월 프로젝트의 첫 시작을 알린 유타로는 지금까지 무려 23명의 인터뷰이를 마주했다. 그 내용이 퍽 흥미로워 부분 부분을 소개해 본다.

비니 위에 걸쳐 쓴 스탭용 모자가 인상적

’72-CLUB-DIARY’ 첫 화의 주인공은 미즈노(Mizuno)와 도쿄워킹협회의 협업 재킷을 입은 한 노인이다. 매일 10km를 걸어도 10년은 족히 걸어야 하는 거리, 40,000km. 그는 분명 스태프 모자를 쓸 자격이 있다. 무슨 뜻인지 알 수는 없으나 유타로는 노인을 OJ로 표기한다. 유타로와 그와의 대화는 아래에.

YT: 나도 사진 찍으며 많이 걸어온 편인데, 지금까지 얼마나 걸어왔나요?」
OJ: 협회 주최의 워킹은 참가하면 스탬프를 받을 수 있어. 40,000km! 대충 지구 한 바퀴.

YT: 모자도 워킹 협회의 것입니까?」
OJ: 응. 이건 스탭용이야. 나처럼 연장자는 이벤트의 운영자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나이 80이 넘어 세계일주를 시작 어느덧 87세. 지긋한 나이에도 숨길 수 없는 아우라를 뿜는 노인에게 유타로의 렌즈가 맞춰졌다. 유타로는 그의 은빛 재킷이 생로랑의 14 SS 시즌 재킷과 닮았으며 모자는 뎀나가 이끌던 베트멍의 파이어캡을 연상시킨다고 했으나(유타로 역시 패션에 꽤나 관심이 있는 사진작가임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 사실 그의 재킷은 낚시 브랜드 ‘SHIMANO’, 모자는 알래스카에 여행 가서 구매한 것이라고.

YT: 낚시가 취미군요! 옛날부터 입던 재킷인가요?
OJ: 낚시로 세계일주 하던 때부터 입던 것.

YT: 모자도 멋지네요! 이것도 낚시 여행에서 산 것입니까?
OJ: 알래스카에 두 번 갔었다. 오로라를 보러.


놀랍겠지만 청소일을 하는 한 노인의 복장이다. 유타로의 말마따나 베트멍의 MA-1 재킷이 생각나는 그의 포돗빛 점퍼와 그에 걸맞게 착용한 고글이 달린 모자 그리고 귀여운 인형 키링이 달린 메탈 박스까지. 장갑은 왜 한쪽만 꼈는지는 모른다. 단지 깔맞춤을 위한 것이었을 수도. “노동자의 유니폼의 철저히 타인에 대한 의식을 배제하는 성질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허리 밑의 카라비나나 고무장갑, 사이즈가 맞지 않고 허리 등이 멋지게 보일지도 모른다. ‘제복+받는 물건’이라고 하는 궁극의 NOT PLASTIC FASHION. 할아버지의 스타일링의 배경을 아는 것으로 메탈릭인 MA-1이 한층 더 눈부시고, 멋지게 보였다”라고 유타로는 전한다.

YT: 어떤 일을 하나요?
OJ: 청소 일! 지금도 일하고 귀가 중이다. 이 재킷도 청소처의 사람으로부터의 받는 물건. 모두가 여러 가지로 필요하면 말하라고 해준다. 모자도 고객에게 받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23명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유타로의 프로젝트 ’72-CLUB-DIARY’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여타 사진작가들 역시 스트리트 스냅이라는 방식을 통해 거리의 사실적인 모습을 전해왔지만, 이들과 소리 내어 대화를 이어감으로써 보다 인간 냄새나는 프로젝트로의 진화를 선보이고 있는 유타로. 한국 역시 초고령 사회가 멀지 않은 가운데, 유타로의 작업물은 할아버지들의 ‘낡은’ 모습에서 ‘새로움’을 포착하는 자극제가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구글 스프레드 시트에 올려둔 그의 우스꽝스러운 이력서를 첨부하니, 그의 거리의 할아버지들과 함께한 그의 작업이 궁금하다면 시트를 한줄한줄 뜯어보며 즐겨보자.

Yutaro Saito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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