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보드로 만들어낸 감정적 성취, Nike SB “QuickStrike”

파리 올림픽 개최와 함께 오랜 노력의 결실인 메달, 그리고 각종 스포츠 경기에 참여한 선수의 기록에 뇌가 절여지고 있을 무렵, 나이키 SB(Nike Skateboarding) 소속 수십 명의 팀 라이더들이 퐁피두 센터 앞에 모여 찍은 단체 샷이 눈길을 끌었다. 스케이트보드 브랜드의 모든 걸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는 ‘풀-렝스 필름’의 시사회를 올림픽 개최지 한복판에서 열다니. 올림픽 스케이트보딩에 대한 논란은 제쳐 두고서라도 어느덧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짐작케 하는 장면이었다. 같은 장소에서 그랜트 테일러(Grant Taylor), 오스키(Oski) 등의 데모도 진행되어 숫자로 치환되는 순위와 성적 너머 스케이트보딩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그들의 의지가 느껴졌다.

QuickStrike marcelveldman 03
Ph. Thrasher Magazine

이윽고 파리 올림픽은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Can’t Stop”과 함께 막을 내렸고, 다음 날 나이키 SB의 풀렝스 비디오 “QuickStrike”가 공개됐다. 제목대로 단 10개월 만에 만들어진 필름은 런던과 뉴욕에서 최고의 폼을 보여주고 있는 필르머 윌 마일스(Will Miles)와 조니 윌슨(Johnny Wilson)이 카메라를 잡았다. 특이한 점은 영상 소개 페이지에 송 크레딧을 나열해 본작에서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유추해 볼 수 있었다.

타이틀을 뚫고 등장하는 이는 뉴욕의 파워 하우스 안토니오 듀라오(Antonio Durao). 화창한 신스 사운드는 기분 좋은 에너지를 머금었으며, 이와 함께 펼쳐지는 시원한 팝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제멋대로의 기술이 막힌 숨을 트이게 하듯 시원하게 이어진다. 여기에 맥스 팔머(Max Palmer)가 진기한 창의성을 얹고, 노아 마히유(Noah Mahieu)는 멋을 더한다. 후반부 널리힐 다운, 트레 플립 뱅크 인은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밖에. 헤비한 D7 블락 널리 트레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한다.

두 번째 트랙의 제목은 “Lovers”로 사랑꾼들의 투쟁에 관한 가사가 흐른다. 전성기의 휴고 보세럽(Hugo Boserup)과 닉 메튜스(Nick Metthews)를 중심으로 BA, 스테판 야노스키(Stefan Janoski), 아린 레스터(Arin Lester) 등 남녀노소 + LGBTQ의 프로가 나와 사랑을 전한다. 닉 메튜스는 대형 쓰레기통 위에서 재빠르게, 휴고는 커브 렛지에 맛깔나게 5-O 그라인드를 드러낸다. 다숀 조단(Dashawn Jordan)의 스트리트 리그 레벨 스케이팅도 놀랍지만, 왠지 닉 메튜스의 심플한 팝이 좀 더 마음을 동하게 한다.

살아있는 쉬프티 맨 사이러스 베넷(Cyrus Bennett)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게스트 없이 혼자 파트를 채운다. 그의 속도만큼 맹렬하게 달리는 기타는 그의 상남자 스케이팅을 방해하는 법이 없고, 특히 플랫 바 보드 슬라이드 장면들과는 찰떡의 궁합을 이룬다. 레벨업된 페이키 매뉴얼도 볼만하지만, 그래도 백 스미스와 킥플립이 역시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말괄량이같은 제이크 앤더슨(Jake Anderson)으로부터 시작되는 네번째는 페이스 앤 더 뮤즈(Faith and the Muse)의 트랙 덕에 마녀의 기운이 물씬 풍긴다. 빌마 스탈(Vilma Stal)과 사라 뮬(Sarah Meule)은 가파른 뱅크와 언덕을 거침없이 타 내려가고, 그녀들의 속력을 이어받은 빌 웨스터(Ville Wester)의 페이키 알리는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카이론 데이비스(Kyron Davis), 캐스퍼 브루커(Casper Brooker)가 몬타지에 강인함을 더하며, 빈센트 후타(Vincent Huhta)와 닐스(Nils)가 섹시함을 맡았다. 그리고 클라이막스는 핀란드의 신성 이투(Eetu)가 장식하는데, 마치 여성의 섬세함과 남성의 힘을 적절히 배합한 듯, 스케이팅의 맛을 제대로 살리고 있다. 클래식한 기술로 개성 있게 스팟을 조지는데, 특히 나무를 타버리는 롤-인은 점차 고조하는 감정을 오르가닉하게 갈무리한다.

다섯 번째 섹션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몸동작을 가진 이들이 모였다. 블레이크 카펜터(Blake Carpenter)는 불필요함을 최소화한 유려한 모습으로 스탠스 구분 없이 랜딩 해낸다. 토이머신(Toy Machine)의 “Real Life Sucks”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조지아 마틴(Georgia Martin)은 여성임에도 과감하고 보드 소리는 경쾌하면서 힘이 있다. 아이쇼드(Ishod Wair)는 여기서 등장하는데, 과연 어느 시대에서도 멋진 포지션을 놓치지 않는다. 재능 넘치는 신예들이 그 뒤를 이어 나타나고, 힘을 빼고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모든 트릭을 만들어 내는 딜런 잽(Dylan Jaeb)의 교과서 같은 스타일은 경이롭다. 로버트 골(Robert Görl)의 미니멀한 사운드는 조용히 이들의 간결함을 극대화한다.

참아왔던 울분을 토해내듯 조셉 캄포스(Joseph Campos)의 FS 360과 함께 음악이 폭발한다. 트로이 깁슨(Troy Gibson), 세븐 스트롱(Seven Strong)이 분출의 의도를 더욱 드러내고, 캄포스는 끊임없어 높은 곳에서 몸을 던진다. 존 피츠제랄드(John Fitzsgerald)는 벽을 타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랑 위 뱅크에서 50-50를 타고 지나간다. 다시 캄포스는 핸드 레일, 월 라이드, 드롭인 등으로 끊임없이 떨어져 추락의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그 추락이 실패한다면 고통스럽겠지만 사뿐한 랜딩은 해소의 기분에 가깝다.

아저씨의 느긋함과 처연함 같은 것이 동시에 느껴지는 음악은 “Axe Victim”이다. 안티 히어로(Anti Hero)의 댄 반 더 린덴(Daan Van Der Linden)이 원숙한 모습으로 스케이팅을 시작, 더 이상 보울에만 머무르지 않고 가능한 모든 길거리에서 발전된 트릭을 시전한다. 허바 렛지 위에서 킥플립 노즈 블런트는 그야말로 넥스트 레벨 그 자체. 그와 동시에 두꺼운 원형 레일 위에 시전하는 노즈슬라이드 투 5050는 야망보다 재미에 무게를 둔 여유가 느껴진다. 이제는 큰 형님 위치에 있는 GT도 여전히 진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뉴욕의 길거리로 돌아간 카메라는 카림 캘린더(Karriem Callender) 특유의 그루브로 트릭을 믹스한다. 초반 빅 플립-알리-5050-킥플립 5050로 이어지는 시퀀스는 보는 이로 하여금 몸을 들썩이게 만들고, 일라이저 오돔(Elijah Odom)은 레일 위에서 스웩을 보여준다. 카림의 탄력과 유연함은 렛지나 레일 어디서든 맞아 들어가는데, 그 안에 펑키한 리듬감을 놓치지 않는다.

디드릭 갈라소(Didrik Galasso)의 등에 쓰인 ‘Leave me alone. I’m having a crisis.’는 엔조이(Enjoy)가 사라진 이후 새로운 팀 없이 방황하는 듯한 그의 상황을 상상하게 한다. 다시 음악은 심각하게 흐르며, 디드릭은 홀로 미친 듯한 스케이팅을 잇는다. 특유의 슬래피함과 잔재미를 주된 재료로 삼는 모습은 요즘 반항아답다. 그가 찾아낸 흥미로운 스팟은 그늘 탓에 다소 답답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곳은 알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센느 강 앞에서 블런트를 랜딩한 뒤 물에 빠지지 않게 코란 게일(Kohran Gayle)이 디드릭을 잡아주는 장면에서 알 수 없는 온기가 느껴지고, LA 하수구 스팟의 블런트 플립 아웃 라인에서 스케이트보드에 투영된 분노나 울분 등의 부정적 에너지가 멋진 트릭으로 완성되는 기적을 목격할 수 있다.

이미지 컷이나 풍경 같은 인서트를 빼고 오직 스케이트 클립으로만 45분짜리 필름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은 이러나저러나 대기업 나이키의 힘을 체감하게 되는 부분이다. 충분한 자본을 바탕으로 세계의 능력자들을 모아 긍정적인 에너지의 작품을 만든다는 건 박수받아 마땅하다. 소규모 스케이트 비즈니스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도 긍정적이다.

개인적으로 음악이 그렇게 취향에 맞지는 않았지만, 트렌디한 이모(Emo) 바이브를 가져와 다양한 방식으로 감정적인 파도를 일으킨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또한 40명의 스케이터와 10개의 섹션을 통해 스케이터라는 종족의 다양성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어떤 이는 심플해 보이기 위해 동작을 최소화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복잡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며 끊임없이 분출하고 가다듬기를 반복하는 이도 있고, 느긋하게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무거운 책임을 안고 가는 이도 있는 듯하다.

이 문화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은 카메라 뒤에서 그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기록하는 필르머들의 힘이 컸다고 본다. 그들이 스케이트 신(Scene)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체감상 10년 정도 된 것 같은데, 그들에게 점점 큰 힘을 실어 트릭의 나열만으로 이런 아름다운 서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Nike SB 공식 웹사이트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