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을 대표하는 도시라고 한다면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가 대표적인데, 조금은 식상해진 미식 클리셰에 눈을 돌려 스페인으로 향하니 이거 웬걸 처음 맛보는 재료들과 향 그리고 맛을 지닌 요리가 보이는 게 아니겠는가? 어느 관광 식당에서 맛본 가학적인 염도의 파에야(Paella)와는 차원이 다른 간이다. 먹어보지 않고 어떻게 알았냐고? 이는 바로 유럽의 실험 음악 신(Scene)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 유추했을 뿐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대표적인 미식의 나라인 것처럼 영국과 독일은 실험 음악 신에 두각을 보이는 대표적인 나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종주국이란 구름에 가려져 안 알려졌을 뿐이지 스페인 특히, 바스크(Basque) 지역과 카탈루냐(Catalunya) 지역 내 실험 음악 신은 유서 깊이 견고히 자생하는 중이다. 특히 오늘 소개할 두 뮤지션이 바스크 지역 출신들이 선보이는 지역 고급 요리를 맛본 뒤에는 그 견고함에 매료될 터.
아스페티아(Azpeitia) 출신의 호세바 아히레즈발라가(Joseba Agirrezabalaga)와 빌바오(Bilbao) 출신의 미켈 베가(Mikel Vega)가 바르셀로나를 기반한 레이블 우르파 이 무셀(Urpa i musell)을 통해 새 앨범 [Lepok]을 발표했다.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바스크 지방.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에 맞닿아 위치한 이곳은 고유의 민족 언어와 문화를 계승하며 이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동시에 카탈루냐 지방과 같이 분리 독립을 외치고 있는 지방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독자적인 정체성만큼 유럽의 다른 지역들과 확연히 대비되는 색을 띠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프로그레시브 록 펜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밴드 이또이즈(Itoiz)가 이 지역 출신이라고. 이처럼 타지역들과 다른 확고한 지역성을 지닌 바스크. 그리고 이 지역 언더그라운드 신에 오랫동안 발 담군 두 뮤지션은 이미 정평 난 배테랑.
한편 이번 [Lepok]은 5가지의 요리로 구성된 코스로도 훌륭하지만, 단품 요리로서 내어도 손색없을 만큼 훌륭한 트랙으로 구성되었다. 일전에 합을 맞춰본 적 없는 두 뮤지션의 즉흥 연주로만 구성된 이번 앨범은 정제된 소리가 복잡한 구조 안에서 얽히면서 긴장감을 유발하는데, 청자로 하여금 고급 요리와 같이 복합적인 감각의 감상을 균형 있게 불러일으킨다. 특이한 점은 그간 각자 구축해온 언어들이 무작위하고 조합되고 있지만 짜거나 자극적이지 아니하다. 미켈 베가의 전작 [Powndak Improv]에서도 보인 평면적인 온도와 습도 위에 호세바 아히레즈발라가의 입체적인 리프(Riffs)가 얹혀 바스크 지역의 전통과 풍경, 현재 환경을 조형적으로 담으려는 시도들이 엿보이는 것이 그 특징.
간혹 창작자 본인도 정립이 안 돼 보이는 미숙한 개념이 추상성으로 둔갑하는 것도 모자라 가학적일 만큼 짜고 매워 청자로 하여금 쉰 밥을 먹은 듯한 기분을 유발하는 경우가 실험 음악 신에서 목격되는바. 그리고 이번 호세바 아히레즈발라가와 미켈 베가가 우리에게 선보인 바스크식 ‘진짜’ 고급 요리는 이와 완벽히 대비된다. 고수 미식가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스페인에서 미각적인 미식뿐만 아니라 청각적인 미식을 즐겨보는 것은 어떤지. 때마침 300장 한정 바이닐로도 발표가 되었으니 화면과 이어폰 속 다이닝이 아닌 직접 만져보며 경험해보는 바스크 지역의 정통 파인 다이닝을 맛보고 싶다면 지금 바로 확인해보자.
Joseba Agirrezabalaga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Mikel Vega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Urpa I musell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이미지 출처 | Urpa i mus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