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성로는 일제강점기 시절, 식민지 사업을 바탕으로 근대화를 이룩한 대구의 발전상이 오롯이 담긴 곳이다. 1910년대 초, 북성로 인근 일본인 소유의 상점이 107곳이었는데 비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은 단 3곳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는 일제 수탈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는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지표다.
광복 이후에는 근처의 미군부대에서 버린 폐공구를 수집해 공구 영업을 하는 상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며 북성로 공구 골목이 형성되었다. 지금도 북성로에 즐비한 공업사, 공구사는 이때부터 비롯되었다. 60년이 넘는 역사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공구 거리는 여전히 업주들이 대를 이어 영업을 하고 있으며, 건물 역시 옛날의 모습 그대로다.
재미있는 점은 공구 골목이 형성될 무렵, 많은 예술가들 역시 북성로에 터를 잡았고 근처 다방에서 커피와 술을 마시며 서로의 작품을 논했다고 한다. 그 흔적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다방 간판과 불에 타버린 건물의 외벽에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혹은 다른 업소로 바뀌었거나). 그래도 그들의 정신은 아직 이어지는지, 최근 업주들의 노력에 힘입어 예전 근대화 문화를 재현해놓은 문화 공간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또한 북성로 골목골목 담벼락에서는 심심치 않게 젊은 예술가들의 거리 예술을 찾아볼 수 있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대구 스트릿 아티스트들은 주기적으로 동네 다리 밑, 건물 외벽에 다양한 그림과 메시지를 남기고 있으며 사람들을 모아 워크숍을 여는 등 꾸준한 활동으로 현재는 울산, 포항 등지에서도 이들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뜻을 함께 하고 있다고.
끊임없는 재개발로 인해 예전 모습이 거의 사라져버린 서울과는 달리 대구는 100년 가까이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골목 사이로 늘어선 오래된 여관과 이름을 알 수 없는 가게, 담벼락 하나하나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묻어 있는 듯했다. 근대화 시절의 일본식 가옥을 복원한 카페에서 만난 한 노신사는 옛 정취와 함께 차 한 잔을 음미하고 있었다.
사진 ㅣ 권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