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거의 노래’ 시리즈는 디제이 신(Scene)에서 활동하는 바이닐 디거들이 즐겨듣는 레이블을 알아가는 게 첫 번째 목적이었다. 세계 각지의 숨은 레이블을 알아갈 수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매회 거듭하며 그 목적성이 흐려지니 난감하다. 레이블이란 주제가 제한적이라는 주변인과 디제이의 조언에도 공감하는 바.
카페의 텐션에 알맞게 음악을 재생하는 바리스타의 선곡 센스는 디제이들이 클럽에서 음악을 선곡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으리라. 장소가 클럽에서 커피 바로 뒤바뀐 것뿐. 그래서 2021년 첫 번째 디거의 노래 시리즈는 디제이 신이라는 노선을 이탈하여 망원동에서 레코즈 커피(Rekóz Coffee)를 운영하는 이상직을 찾았고, 커피 한 잔을 두고 그득한 커피 향에 제격인 음반을 부탁했다.
커피 향에는 응당 재즈가 재격이리라 싶었다. 그러나 이상직은 레코즈 커피가 재즈에 국한되는 것을 거부했고, 되려 록, 힙합, 소울 등 저마다의 그루브가 담긴 음반을 추천했다. 그의 바이닐 셀렉션, 그리고 최하단에 대화 중 오갔던 트랙을 위주로 애플 뮤직(Apple Music) 플레이리스트를 제작하여 첨부했으니, 대화와 함께 따라가 보자.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레코즈 커피를 운영하는 이상직이다. 청소년기 유학을 다녀와서 용돈 벌이로 서비스업을 시작했다. 원래는 음악이 너무 좋아서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을 생각하다 보니 서비스업에 몸담았고, 어느 순간 직업이 됐다.
유학은 음악을 배우러 간 것인가?
아니다. 그냥 간 거다. 중학교 2학년 올라갈 봄방학에, 어머니께 뉴질랜드 유학 권유를 받았다. 너무 좋아서 1초도 망설임 없이 가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가려고 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외국으로 나가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가족을 떠나 혼자 해외로 가야 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고 즐거웠다. 겁도 없이 유학을 1달 만에 일사천리로 준비해서 떠났다. 나름대로 적응을 잘했는데, 사정이 생겨 3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때가 18살. 검정고시 시험을 치렀는데, 신분이 고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니고 하니까, 그때부터 서비스업을 시작하게 된 거지.
레코즈 커피라는 숍의 이름은 커피만큼이나 레코드 또한 큰 지분을 차지하는 듯하다. 레코즈 커피라는 이름으로 개업한 계기에 관해서도 듣고 싶다.
음악이 큰 지분을 차지하는 숍이 맞다. 사실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뮤지션을 꿈꿨다. 그때 한창 듣던 음악이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에릭 클랩턴(Eric Clapton),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인데, 그전까지 듣던 R&B 팝 음악과 가요에 비교적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엔 음반도 몇 장 없어서 CD 한 장을 사면 한 달 동안은 구매한 음반만 꾸준하게 팠다. 그 음반 하나를 속속들이 알게 될 정도로. 그렇게 뮤지션의 꿈을 키워갔는데, 일단 돈은 벌어야 해야 해서 서비스업을 시작했다. 근데 어느 순간 음악을 업으로 삼고, 메인스트림으로 올라가서 유명해지는 일이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음악은 소소하게 할 수도 있으니까.
리스너의 생활도 너무 좋았다. 리스너는 비록 뮤지션으로의 뼈를 깎는 고통은 없지만, 그들의 고통을 들으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카페를 열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일을 하면서 음악도 들을 수 있고, 또 내가 좋아하는 음악, 내가 발견한 음악을 고객에게 소개해줄 수도 있으니 레코즈 커피를 시작했다.
음악이 중요한 공간인 만큼 커피가 맛있다는 칭찬만큼이나 플레이리스트를 물어보는 일에 보람을 느낄 것 같다. 실제로 어떠한가?
음악이 좋다는 얘기가 더 보람 있다. 어떻게 보면 오해할 수도 있겠는데, 커피가 맛있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음악이 좋다는 말이 더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2018년도에 오픈을 하고 지금까지 2년이 벌써 지났다. 음악을 즐겨듣는 손님들이 찾아와서 내가 선곡한 음악을 같이 들으며 대화를 나눈다. 나는 손님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꼭 음악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그런 장소가 된 것 같다. 내가 지향하던 커피숍의 이미지대로 잘 이어진 것 같다.
바이닐이나 CD를 비롯한 매체를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바이닐로 음악을 틀며 바쁠 때는 카페에 음악이 멈추는 순간도 있으리라 예상한다. 오늘 아인슈페너를 만들던 도중에도 음악이 끊겼는데, 이럴 때는 스트리밍 플랫폼을 이용하기도 하는가?
바쁘다 보면 음악이 끊기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바이닐로 음악을 트는 경우, 내가 직접 바늘을 올려야 하는데, 바쁘면 음악을 잠시 멈춘다. 약간의 공백이 채워주는 정적이 귀를 쉬게 해 주는 타이밍이 될 수도 있고, 음악을 계속 듣다가 잠시 쉬고 다시 듣는 음악이 또 신선하게 들릴 때도 있다. 따라서 숍의 BGM을 끊김 없이 틀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없다. 그리고 음악은 주로 레코드로 재생하지만,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음악을 재생하기도 한다. 바이닐, CD라는 플랫폼과 관계없이 난 단지 음악이 좋을 뿐이다. 솔직히 스트리밍이 가장 편한 수단이다. 음악을 최대한 많이 들을 수 있다면 어떠한 플랫폼으로 듣든 상관이 없다. 반면 바이닐과 CD에는 온라인에 담기지 못한 음원이 수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숨은 음악을 재생하기 위해 레코드를 구매해서 플레이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손님만큼이나 선곡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도 있었나?
난 디제이가 아니니까 음악을 체계적으로 트는 건 아니다. 단지 손님이 오면 멋있는 음악을 소개해주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내가 즐겨듣는 멋진 음악을 트는 편. 감사하게도 이를 좋아해 주는 손님이 있다. 반면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음악이 좋다고 물어보는 손님도 있다. 아무래도 흔하게 접할 수 없는 음악을 들어서 그렇게 물어보는 것 같았다.
그런 한편으로 요즘 코로나바이러스로 손님의 발걸음이 끊겨서 아쉽겠다.
모든 카페가 많은 피해를 받았다. 나는 SNS 광고 없이, 2018년에 오픈해서 묵묵하게 장사하는 입장인데, 신기하게도 입소문을 타고 다른 동네에서도 찾아주곤 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에 그렇게 찾아주던 손님의 발걸음이 끊겼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손님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카페 취식이 가능해진 지 일주일이 지났다. 지금은 어떠한가?
카페 취식이 가능해졌다고 해도 상황이 좋아지진 않는다. 코로나가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다.
이제 음반을 소개를 하나씩 받고자 한다. 소개에 앞서 오늘 소개될 음반의 공통점을 꼽아줄 수 있나?
음.. 특별한 것은 없는데, 또 개인적으로 보면 되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음반? 오늘 셀렉한 음반은 혈기왕성한 시기에 한창 들었던 추억의 음반들이다. 어린 나의 감정을 헤아리고, 일깨워준 음반들을 골라봤다. 그래서 엮어보자면 젊었을 때 많이 들었던 음반.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음반은?
음악 소개와 함께 아주 짤막한 추억을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소개할 음반은 저스티스 시스템(Justice System)의 [Rooftop Soundcheck]. 저스티스 시스템은 힙합 라이브 밴드다. 난 저스티스 시스템을 19살 무렵에 처음에 들었다. 앨범은 처음에 CD로 구매해서 들었는데, 너무 좋았다. 에릭 클랩턴을 비롯한 록 음악을 한창 접하다가 듣게 됐는데, ‘힙합이란 이런 것이다’, ‘그루브는 이런 것이다’라고 알려준 음반. 록 음악은 힙합 음악보다 비교적 그루브가 적은 편 아닌가?
쭉 들어본 바로도 그루브가 강한 음반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기타 연주도 출중하고, 랩도 잘하는 팀이다. 이렇게 잘하던 팀이 지금은 음반 활동을 하지 않아서 아쉽다. 한때는 [Rooftop Soundcheck] 같은 멋진 음반을 제작하던 사람들인데, 시간이 지나고 알게 모르게 사라지는 것이 아쉽더라.
다음으로 소개할 음반은?
다음은 록 밴드 켄트(kent)의 [Isola]. 밴드의 3집이다. 알려졌다시피 켄트는 스웨덴 밴드다. 특히 이 앨범을 발매하기 전까지는 스웨덴에서만 입지를 다지던 밴드였는데, 이 앨범 계기로 북미와 세계에 입지를 다진 밴드다.
영어 버전과 스웨덴어 버전이 따로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지금 들고 있는 음반은 어느 버전인가?
지금 들고 있는 판은 스웨덴어 버전이다. 여느 브릿팝 밴드처럼 메인스트림으로 진출하려고 영어 버전도 발매한 것으로 아는데, 아쉽게도 생각보다 인기가 없었다더라.
이 음반엔 어떤 추억이 있는가?
비행기 엔지니어를 꿈꾸던 어린 시절과 입대하기 직전, 심적으로 힘들고 앞으로 닥칠 미래에 관한 불안감을 켄트와 함께 달랬다. 그래서 추천하고 싶은 트랙은 마지막 트랙 “747”이다. 트랙 러닝도 7분 47초로 정확하게 맞춘 것이 인상 깊다. 트랙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피하자는 내용을 담은 곡. 만약 내일 내가 죽는다면 747을 듣고 싶다. 곡의 전개도 당시에는 너무 신선했다. 7분 47초 중 절반을 디스토션으로 내지르는 것이 절절하기도 하고.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음반이다.
켄트의 앨범이 오늘 앨범 중 가장 신선한 셀렉션이 아닐까 싶다. 이유는 카페와 전혀 매치가 안되는 음반인 것 같아서다. 스테레오 타입으로 커피에는 역시 편안한 음악이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후술될 스티브 레이 본과 요 라 탱고(Yo La Tengo) 역시 록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록 블루스와 조지아 허블리(Georgia Hubley)의 보컬은 커피 향과 맞닿은 지점이 있다. 한편으로 켄트와 같이 지글지글하고 내지르는 얼터너티브 록 음악이 커피 향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사실 혼자 있을 때 자주 듣는 음반이긴 하다. 그러나 레코즈 커피는 한 장르에 국한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주로 트는 곳이지. 카페엔 재즈가 어울리긴 하는데, 이는 고정관념일 뿐이니까. 레코즈 커피는 장르를 한정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다음으로 소개할 음반은?
블러드 스톤(Bloodstone)의 [Don’t Stop!]이다. 70년대 활동한 소울, 훵크 밴드인데, 21살에 3년 정도 소울을 찾아 헤맬 때 들었던 음반. 그중에 블러드 스톤은 내가 최초로 접했던 소울 음반이다. 블러드 스톤은 70년대 아주 유명했던 소울 팀이다. 특히 [Don’t Stop!]엔 내가 좋아하는 트랙이 많다. 커버가 멋지기도 하고.
추천하고 싶은 트랙이 있나?
“Don’t Stop!”을 추천하고 싶다. 신나는 것이 호불호 없이 누구나 즐겁게 들을 수 있는 곡이다. 또 음악을 많이 듣다 보면 좋아하는 코드 진행을 은연중 찾을 수 있다. 두 번째 트랙인 “I’m just doing my job”은 내가 좋아하는 코드 진행과 정확히 일치하는 소울 트랙이다. 그리고 이 곡 또한 질풍노도의 시기에 자주 찾아 듣던 최고의 사랑 노래라 많은 기억이 남는 음악이다. 특히 요즘과 같은 겨울에 들으면 좋은 음반이니 많이 들어봤으면 한다.
다음으로 소개할 음반은?
다음은 요 라 탱고의 [Painful]. 요 라 탱고는 이제 너무나도 유명한 인디 밴드다. 80년대 초중반부터 활동했으니까, 약 40년 동안 활동하며 큰 명성을 얻었고, 메인스트림 반열에 올랐으나, 여전히 언더그라운드 정신에 아이덴티티를 두는 것이 대단하다. 사실 40년간 밴드가 운영되는 것도 대단한 건데 그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 건 더 대단한 거지. 내가 소개하고 싶은 음반 [Painful]의 수록곡 “I Heard You Looking”은 켄트의 “747”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트랙이다. 다만 켄트에서 비교적 날 것 같은 소리가 난다. 록 음악이 익숙하지 않은 청자가 듣기엔 시끄러운 음악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아이라 카플란(Ira Kaplan)과 조지아 허블리는 부부다. 그래서 해체될 수가 없는 밴드인 것 같기도.
사랑으로 이루어진 밴드라 더 멋있는 팀이다. 요 라 탱고와 마찬가지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또한 아직도 활동하는 것이 대단하며 존경받을 만한 밴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 2010년대 음반을 좋아하진 않는다. 내 음악 취향도 변했지만, 밴드도 음악 소재가 고갈된 것 같았다. 그래서 요 라 탱고의 꾸준한 밴드 활동을 더욱 존경한다.
다음으로 소개할 바이닐은?
다음은 디제이 크러쉬(DJ Krush)의 셀프 타이틀 [Krush]. 디제이 크러쉬는 원래 야쿠자 출신이다. 그런데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뮤지션이 된 거지. [Krush]는 디제이 크러쉬가 북미로 처음 진출할 때 제작한 음반이다. 많은 장르적 요소를 샘플로 사용한 것이 구성이 알차기도 해서 꼽게 됐다. 또 앞서 언급된 저스티스 시스템이나,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 등의 힙합을 듣다가 디제이 크러쉬의 음악을 접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추상적인 것이 당시 내가 듣던 랩 음악과 전혀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같은 힙합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더라.
엡스트랙트(Abstract), 인스트루멘탈 힙합을 청취하는 팁이 있다면?
처음은 낯설지언정, 인내하면서 들으면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을 거다. 원래 딥한 음악은 그만큼 많이 듣고 인내하면서 듣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인내할 줄 알고, 인내 끝에 발견되는 진가들이 있는 법이다. 특히 디제이 크러쉬는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 비트의 질감이 존재해서 다들 들어봤으면 한다.
섀도우 레코드(Shadow Records)에서 발행된 앨범이라고 커버 뒷 면에 명시되어 있다. 레이블 이름만 보아선 디제이 섀도우(DJ Shadow)와 레이블 모 왁스(Mo’Wax)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전혀 연관이 없다. 그러나 디제이는 힙합 크루가 있지 않은가. 디제이 크러쉬는 디제이 섀도우와 후술될 디제이 캠(DJ Cam)을 비롯한 힙합 디제이들과 인연이 깊다. 크러쉬 역시 모 왁스에서 음반을 발표하기도 한 것으로 안다.
앨범 중 어떤 트랙을 추천하고 싶나?
트랙 “On The Dub-ble”을 추천한다. 홍대에서 술을 과하게 먹은 날, 술에 취해서 시야가 흐린데, 이어폰에서 이 음악이 나온 날이 기억난다. 건물의 네온사인과 지나가는 차의 불빛이 반짝이는데, 이 곡과 정확하게 매치되는 배경이었다. 그래서 도시의 야경 속에서 “On The Dub-ble”을 듣길 권한다. 이 외에도 앨범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다. 하하
다음으로 소개할 음반은?
프랑스 디제이 캠(DJ Cam)의 음반 세 장을 추천한다. 음침한 엡스트랙트 힙합으로 스타일이 확고한 디제이다. 또한 [Krush]를 들을 시기에 함께 듣던 앨범들이기도 하다. 특히 [Soulshine]은 과연 같은 사람이 만든 음반인가 싶을 정도로 색깔이 아주 다르다. 듣기 편안한 음악을 의도적으로 제작한 것 같달까. 이런 재능이 가끔은 질투 난다고 해야 하나? 나 또한 가끔 취미로 음악을 하는데, 디제이 캠은 너무 잘하니까.
[Underground Vibes]의 수록곡 “Mad Blunted Jazz”가 가장 인상 깊었다. 비트가 난데없이 끊기는데, 이를 들으며 귀 기울여 들을 수밖에 없는 음악이라 생각했다. 카페 BGM으로 깔았다가는 손님들 간의 대화가 끊길 우려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포인트를 좋아한다. 아까 말했듯 잠깐의 공백이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트랙이다. 근데 이렇게 추상적인 음악을 만들던 디제이가 [Soulshine]에서는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니 디제이 캠에 내가 빠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거지.
[Rebirth of Cool]은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어떤 음반인가? 실제 쿼탯 밴드를 차린 것인가?
[Rebirth of Cool]은 디제이 캠이 작정하고 재즈 음반을 내야겠다는 포부가 담긴 앨범이다. 쿼텟 밴드를 결성한 뒤 발매한 첫 번째 음반. 대단한 자신감이 담겼다. 디제이로 엡스트랙트한 힙합 음악을 제작하던 사람이 4인조 쿼텟 밴드를 꾸려서 활동하는 행위는 어떻게 보면 재즈계에 도전한다는 걸 의미하지 않나. 그런데 음악이 또 나쁘지 않다. 디제이 캠만이 지니고 있는 그루브를 그대로 담아내기도 했고. 욕심이 많이 담긴 앨범이기도 한데, 전곡 프로듀싱과 더불어 앨범 커버 사진도 본인이 찍은 사진이란다. 심지어 발매를 맡은 ‘인프램마블리(Inflamable)’도 디제이 캠 본인이 만든 레이블이다.
[Rebirth of Cool]에서 추천할 트랙이 있나?
마지막 트랙 “Tribute To J Dilla”을 추천한다. 제이 딜라(J Dilla)와 친구였던 디제이 캠이 딜라를 보내는 마음을 담은 트랙. 물론 이 곡은 짧고 그리 특별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친구를 생각한 음악은 언제나 특별하다. 그것도 제이 딜라를 기리는 것이니까 더 특별하지.
추천하는 트랙이 대부분 앨범의 아웃트로로 자리한 공통점이 있다. “747”, “I Heard You Looking”도 그렇고 “Tribute To J Dilla” 또한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다.
보통 음반을 듣다 보면 마지막 트랙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곡을 싣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그게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앨범의 의미를 마지막 트랙에서 많이 찾았다.
다음으로 소개할 바이닐은?
다음은 앞서 계속 언급된 스티비 레이 본의 [Couldn’t Stand The Weather]다. 이건 일본반 초판이다. 음악에 처음 관심을 가질 당시에 스티비 레이 본 같은 블루스 음악을 많이 들었다. 나에게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보다 더 강한 임팩트를 남긴 기타리스트로 [Couldn’t Stand The Weather]은 내가 10대일 때 음악을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 음반 중 하나다.
어떤 의미에서 지미 헨드릭스보다 더 강한 임팩트가 남았나?
스티비 레이 본의 기타 톤이나 주법, 그루브가 인상 깊었다. 또 지미 헨드릭스를 계승해서, 좀 더 세련된 스킬들이 합해진 듯한 음악 스타일에 큰 영향을 받았다. 지미 헨드릭스의 오리지널 “Voodoo Child”와 이 앨범에 담긴 “Voodoo Child”를 비교해서 들어보길 권한다.
원래는 기타리스트를 꿈꿨는가?
아니다. 록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
또 추천할만한 수록곡이 있나?
“Tin Pan Alley”도 추천하고 싶다. 블루스 발라드곡이다.
이제 인터뷰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남은 두 장은 재즈 음반인데, 먼저 소개하고 싶은 음반은?
쳇 베이커(Chet Baker)를 먼저 소개하고 싶다. 쳇 베이커의 연륜이 묻어나는 음반을 좋아한다. 쳇 베이커의 후기작은 인생이 느껴지는 트럼펫 같달까? 이 음반 같은 경우도 85년 발매니까, 늙고 나서 한 거다. 특히 가장 좋아하는 트랙은 “If I Should Lose You”. 아주 슬픈 곡이고 깊은 감정이 우러나는 트랙이다. 2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아프실 때 병문안 가려는 차 안에서 이 곡을 듣던 기억이 있다.
사실 쳇 베이커는 내가 처음 들은 재즈 뮤지션이기도 하다. 처음은 [Diane]가 아닌 [Chet]을 들었다. 어릴 때 레코드 숍에서 우연히 들었다. 난 CD를 고르고 있었는데 [Chet]을 구매한 손님이 들어와 바이닐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며 교환을 요구했다. 레코드 숍 주인이 바이닐 테스트로 트는 걸 옆에서 잠깐 들었던 것이 쳇 베이커와 첫 만남이다. 그 계기와 음악이 너무 인상 깊었다. 그전까지는 재즈를 캐니 지(Kenny G)로 대표되는 팝적인 이지 리스닝 정도로 인식했는데, 그 순간부터 재즈를 대하는 시선이 바뀌었다. 그래서 [Chet]을 CD로 곧바로 구매했다. 그렇게 전통적인 재즈에 가까운 재즈를 처음 들었던 것이 쳇 베이커. [Diane] 또한 비슷한 느낌의 음반이라고 생각된다. 또 쳇 베이커는 안타깝게 죽지 않았나. 그래서 더욱더 아쉬운 뮤지션이다.
[Diane]는 폴 블레이(Paul Bley)와 협연한 작품이다. 폴 블레이에 관해서도 아는가? 난 오히려 그 아내였던 칼라 블레이(Carla Bley)의 [Sextet]을 인상 깊게 들었다.
폴 블레이 음반도 몇 장 가지고 있는데, 사연과 함께 소개할 음반은 없다. 그리고 [Diane]는 쳇 베이커에 입각해서 들었던 음반이다. 폴 블레이 역시 유명한 피아니스트지만 약간 ECM스러운 연주로 유명한 아티스트라… 난 정통 재즈를 좋아한다.
[Diane]도 차분하긴 하지만 트럼펫과 피아노가 잘 주고받는 듯한 인상이다. 또한 ECM의 현대적인 느낌보다는 쿨의 느낌이 강했다.
맞다. 그래서 쳇 베이커와 서로 주고받는 것이 웰메이드 연주라 인상 깊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음반은?
마지막은 페퍼 아담스(Pepper Adams)의 [The Adams Effect]다. 오늘 소개한 음반 중 가장 최근에 알게 된 색소폰 주자. 자기 몸보다 큰 바리톤 색소폰을 부는 뮤지션이다. 그걸 보며 폐활량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연주 또한 너무 기가 막힌다. 페퍼 아담스는 초창기 도널드 버드(Donald Byrd)와 작업을 많이 했다. 근데 정작 페퍼 아담스는 블루노트(Blue Note)에서 앨범을 발매하지 못 했지. 페퍼 아담스는 도널드 버드가 소울 펑크로 전향할 때도 정통을 고수했다. [The Adams Effect]도 페퍼 아담스의 후반기 작품인데 음악 자체는 완전히 정통 재즈에 가까운 연주가 돋보인다. 추천할 트랙으로는 LP B 사이드 1번 곡 “How I Spent The Night”를 추천한다. 재즈 발라드 곡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음악이다.
오늘 선곡한 재즈 앨범 두 장이 모두 쿨 무드에 가까운 발라드 재즈인 듯하다. 반면 스윙감 있는 스윙이나 있는 비밥, 하드 밥은 잘 듣지 않는 편인지 궁금하다.
그런 거 없이 좋은 음악이면 그냥 튼다. 오늘 소개한 음반이 듣기 편안하고 약간 쿨적인 요소들이 많은 재즈 발라드지만, 블루노트 발매의 이스트코스트 재즈 음반도 좋아한다. 근데 인터뷰로 소개할 수 있는 음반이 한정적이라 고르지 못했지. 사실 더 뛰어난 음반도 많지만, 오늘은 개인적인 견해와 사연이 많이 담겨있다. 평소엔 58년부터 61년, 그 3년 동안 나온 재즈를 가장 좋아한다. 그때 발매된 블루노트의 이스트코스트 모던 재즈들.
또 힙합 앨범을 다수 추천받았으나, 저스티스 시스템을 제외하곤 모두 인스트루멘탈 힙합이다. 랩 가사가 없는 힙합을 좋아하는 편인지.
랩 가사가 있는 것도 좋아하지만 인스트루멘탈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재즈도 재즈 싱잉보다는 연주, 록도 록 블루스가 좀 더 취향이다. 혼자 소소하게 음악을 만들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악기들의 소리가 좋다.
요즘의 트랩이나 멈블랩 등의 힙합 음악도 듣나?
최근에 나오는 힙합은 잘 듣지 않는다. 90년대의 느낌을 좋아하다 보니까.
음악을 만든다고 언급됐는데, 안 그래도 카페 턴테이블 옆, 아카이(Akai)사의 ‘MPC 2500’이 놓여 있다. 또한 오늘 선곡한 음악 중 다수가 비트메이커의 음반이다. 비트 메이킹도 하나?
MPC로 시간 날 때 한번 씩 샘플을 따고 음악을 만들곤 한다. 주로 힙합을 제작한다.
비트를 찍고 손님들에게 들려준 적 있나?
가끔 플레이할 때도 있다. 근데 잘은 못한다. 가끔 랩 하는 아는 동생이 가게로 찾으면 비트 깔아주고, 랩도 해보라고 하고.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작은 공연을 열까 싶다. 내가 만든 곡을 기반으로 개최하는 작은 공연이다.
레코드를 구매하는 경로는 어떻게 되나?
요즘 레코드는 주로 인터넷으로 해외에서 주문하는 편이다. 그러나 코로나 전에는 외국 여행 중 레코드 숍을 방문해서 레코드를 구매하는 편이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레코드 숍이 있나?
방콕의 어느 레코드 숍이 기억이 난다. 입구 찾는 데 30분이 걸렸다. 계단도 원형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루프탑의 이상한 레코드 숍이었는데, 어렵게 찾은 보람이 있었다. 내가 다녀본 레코드 샵 중에 멋있는 음반들과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들이 구비되어 있던 레코드 숍. 디제이 캠의 [Soulshine]도 방콕에서 샀다.
마지막 질문. 레코즈 커피의 BPM은 몇인가?
음.. 95가 가장 적당한 거 같다. 완전 다운도 아니고 완전 하이도 아닌 템포. 스스로 음악을 만들면서 느낀 것 역시 92~95가 가장 적당한 듯하더라.
에디터 │ 황선웅
포토그래퍼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