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전국의 많은 이들이 바짓단 아래 날름거리는 덩크의 혀를 자랑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 같았던 덩크의 호시절이 지나고, 거리에서 덩크를 착용한 이를 보는 일 역시 쉽지 않아졌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의 영향이었을까. “The Ten” 시리즈에 불현듯 등장한 덩크 로우의 선풍적인 인기, 그리고 이에 박차를 가하는 나이키(Nike)의 공격적인 덩크 마케팅은 다시금 스니커 신(Scene) 내 덩크를 하입(Hype)의 주역으로 부활시켰다.
이런 덩크의 흥망성쇠 속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덩크를 수집해온 이가 있다. 고하드(@Go_____hard)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더욱 친숙한 차영렬은 나이키 덩크로는 국내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수준의 덩크 컬렉터로 정평 나 있다. 진성 덩크 컬렉터가 꼽는 20족의 덩크는 무엇일지. 아래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해보자.
Nike Dunk SB Low Supreme Black Cement (2002) / 304292-131
지금까지 발매된 나이키 협업 덩크 중에서 최고다. 나이키와 슈프림(Supreme)의 첫 협업 제품인 나이키 덩크 로우. 슈프림과 나이키, 여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에어 조던 3(Air Jordan 3)를 모티브로 한 코끼리 패턴이 인상적인 제품으로 레트로 모델까지 나왔지만, 역시 처음으로 등장한 화이트 시멘트와 블랙 시멘트 이 두 스니커를 최고의 컬러링으로 뽑고 싶다.
Nike Dunk Pro Low Viotech (2002) / 624044-571
소위 덩크 레인보우라고 불리는 제품으로 벌써 세 번이나 레트로된 모델이다. 그러나 첫 레트로는 실루엣이나 컬러링이 원판과 매우 다른 모습이었으며, 두 번째는 GS 제품만 발매했다. 그나마 최근 복각된 스니커가 원판과 가장 유사하지만, 역시 오리지널의 컬러링과 재질감을 따라갈 수는 없다. 원작을 넘어서는 속편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스니커가 아닐까.
Nike Dunk Low Pro Lightning (2001) / 124002-071
나이키 스케이트보드 라인의 원조격인 프로 B(Pro B)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 스니커로 현 SB 덩크 시리즈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먹구름 사이 번개를 연상케 하는, 라이트닝이라는 별칭의 이 스니커는 스케이트보드 브랜드인 알파뉴메릭(Alphanumeric)과의 협업으로 나왔던 덩크의 일반판 버전이다. 다소 밋밋할 수 있는 회색 바디의 어퍼에 노란 슈레이스로 포인트를 줬지만, 회색 슈레이스 또한 멋지다. 슈레이스를 바꿔 신기 귀찮아 세 족을 구매해버렸다.
Nike Dunk SB Low Heineken (2003) / 304292-302
유명 맥주 브랜드 하이네켄(Heineken)과의 정식 협업은 아니지만, 재질이나 컬러링, 그리고 빨간 별 로고까지, 누가 봐도 하이네켄을 모티브로 제작했다고 느껴지는 스니커다. 이 제품 외에도 맥주 브랜드를 소재로 한 컬러의 덩크가 몇 종류 있으니 이를 추적해 봐도 재밌지 않을까?
Nike Dunk Low Pro SB Futura (2003) / 304292-013
뉴욕의 전설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푸추라(Futura)가 제안한 컬러의 덩크 로우. 발매 당시 이 스니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여러 종류의 소재를 사용한 바디와 중창의 오묘한 컬러까지! 고등학생 시절 처음 구매한 덩크 로우 SB다. 지금까지 다섯 족 정도 구매했는데, 이제는 그 가격이 너무 비싸져 더는 구매하지 못할 것 같다.
Nike SB Dunk High Paul Brown (2002) / 305050-43
덩크 하이 메이플과 함께 SB 덩크 하이 1st 라인 중 하나다. 언뜻 칙칙해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조화롭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하이탑임에도 베로가 빵빵하게 차 있다. 중고와 신품 두 족을 보유하고 있는데, 신품은 시간이 지난 후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별로 좋아할 것 같지는 않지만.
Nike SB Dunk Low Orange Flash, Shark, Loden (2002) / 304292-801
발매 시기로 나누어 볼 때 3rd 덩크 로우의 대표적인 세 스니커다. 오렌지 플래쉬와 로덴, 샤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컬러링이나 발매 관련 이야기를 봤을 때 큰 연관성은 없다. 누구는 꼰대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 세 스니커를 보면 옛 신발의 월등한 퀄리티가 느껴진다. 실루엣 또한 최근의 덩크와는 다르다. 그래서인지 예전 덩크 모델에 더 정이 가고 눈이 간다. 절대 최근 나오는 덩크를 구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Nike Dunk Low SB Richard Mulder (2002) / 304292-141
2000년대 초반 왕성하게 활동한 리차드 멀더(Richard Mulder)라는 스케이터가 제안한 컬러의 덩크 로우다. 컬러웨이만 보면 너무 평범해 보이지만, 그 특유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스니커다. 보통 시간이 흐르면, 베로의 테두리 색이 노랗게 바래는데, 멀더는 이 인솔 컬러를 애초에 노란색으로 설정했다. 리차드 멀더는 현재 부동산 중개업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Nike Dunk SB Low Diamond Supply Co. “Tiffany” (2002) / 304292-402
아마 올드 SB 덩크 중 가장 유명한 제품이 아닐까.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다이아몬드 서플라이(Diamond Supply Co.)와의 협업 스니커로 유명 액세서리 브랜드 티파니(Tiffany & Co.)의 컬러링을 떠오르게 해 티파니 덩크로 불린다. 카시나(Kasina)에서 이 스니커와 스투시 덩크를 발매했는데, 이때 최초로 국내에 스니커 캠핑이라는 문화가 생겼다. 난 아쉽게도 외박이 어려워 구매하지 못했다. 2014년 덩크 하이 모델로도 레트로된 바 있다.
Nike Dunk High Fragment Design Beijing (2010) / 407920-025
2010년에 발매한 프라그먼트 디자인 (Fragment Design) 시티팩 덩크,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가 컬러웨이를 제안했으며, 뉴욕과 런던 베이징까지 세 도시의 컬러로 소량 선보였다. 보다시피 양쪽 컬러링을 다르게 설정했으며, 런던과 베이징 컬러는 리버스로, 뉴욕은 아예 다른 컬러로 완성했다. 최근 베이징 컬러를 레트로했고, 오리지널 모델과 다르게 양쪽 컬러를 통일했고, 힐컵 번개 로고의 크기를 키웠다.
Nike Dunk High Plus B Stussy (2001) / 302763-001, 302763-221
2001년 나이키는 여러 브랜드와 함께 협업 덩크를 선보였다. 사진의 덩크 하이 모델은 스투시(Stussy)와의 협업 모델이며, 총 두 컬러로 발매했다. 컬러와 소재의 특징을 꼽아 ‘흑뱀’과 ‘오스트리치’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그 퀄리티 또한 상당하다. 당시 다른 덩크와는 다른, 얇고 긴 슈레이스가 매력적인 스니커다. 특히, 끈을 꽉 조여 맸을 때 더욱 멋지다.
Nike Dunk High SB Unkle (2004) / 305050-013
이 역시 푸추라의 손길이 묻어나는 덩크, 모왁스 (Mo’wax)라는 음악 레이블 소속의 아티스트 엉클(UNKLE)의 마스코트인 외계인이 그려져 있고, 이는 엉클의 앨범 [Never,Never, Land]의 아트워크다. 덩크 로우 제품은 샘플로만 제작되었다. 바디의 핑크색 부분이 누벅인데 다른 제품들과 다르게 질 좋은 누벅을 사용했다. 너무 과하지 않은 핑크와 블랙의 매치가 멋진 제품이다. 남자의 컬러는 역시 핑크가 아닐까.
Nike SB Dunk Low Concepts Purple Lobster (2018) / BV1310-555
오늘 이야기하는 덩크 중 가장 최근에 나온 모델이다. 2018년에 발매했으며, 콘셉츠(Concepts)라는 미국 스니커 숍에서 제안한 랍스터 시리즈의 네 번째 컬러링이다. 이 또한 스페셜 버전과 노말 버전으로 발매, 이건 스페셜 버전으로 패키지를 아이스박스처럼 디자인했다. 랍스터의 집게를 묶는 고무 밴드와 여러 색상의 슈레이스, 식탁보를 연상케 하는 안감까지 그 디테일이 상당하다. 언젠가 발매된 모든 랍스터 시리즈를 전부 모으고 싶다.
Nike Dunk Low SB Mosquito (2008) / 313170-761
이 제품도 비교적 최근에 발매된 모델이다. 개인적으로 2008년부터 2012년까지를 덩크의 암흑기라고 생각하는데, 이 스니커는 그 시절 발매됐다. 이름 그대로 모기를 떠오르게 하는 컬러링으로 바디나 인솔의 디테일이 매우 재치 있다.
Nike Dunk High SB Iron (2003) / 305050-241
학창 시절 목동역에 애슬릿 풋(The Athlete’s Foot)이라는 스니커 숍이 있었다. 돈도 없으면서 신발을 구경하러 자주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막 SB 덩크의 유행이 시작되던 때였는데, 숍 스태프가 디키즈 874에 이 신발을 신은 모습이 너무 멋지더라. 가지고 있던 에어 맥스 95를 팔고 바로 구매했다. 국내에서는 피그 스킨이라고 불리며, 착용했을 때 정말 멋진 스니커다.
Nike Dunk Low Splatter (2002) / 305979-061
요즘 여러 브랜드에서 페인팅을 한 신발을 다수 선보이고 있다. 특히,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의 독일군 스니커가 유명한데, 나는 그보다 덩크 로우 스플래터가 더 좋다. 모든 개체의 패턴이 전부 달라 뽑기 운이 중요하게 작용한다(토 부분이 전부 하얀 모델도 있더라). 남성용과 여성용 두 컬러로 발매했고, 페인팅이 없는 논 스플래터 버전도 있다.
Nike Dunk Low Michael Desmond Laser Black (2003) / 308429-001
마이클 데스몬드(Michael Desmond)라는 아티스트가 제안한 컬러의 덩크 로우 모델이다. 어퍼 측면 레이저로 독특한 아트워크가 새겨져 있다. 덩크뿐 아니라 에어 포스 1(Air Force 1)과 코르테즈(Cortez) 등 다양한 모델이 발매되었는데, 실제로 보면 운동화답지 않게 매우 고급스럽다. 희소성과 퀄리티에 비해 큰 인기를 얻지 못한 비운의 모델. 신발 박스 또한 타 덩크 박스와는 달리 슬라이드 형태로 되어 있다.
Nike Dunk Low Cowboy(Sole Collector) (2005) / 312229-911
나이키 ID 모델로 세계적인 스니커 매거진 솔 컬렉터(Sole Collector)의 제안 컬러로 완성됐다. 제품마다 넘버링되어 있으며, 총 226족 한정이다.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내 사진첩에 드림 슈즈라고 게시물을 올렸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내 손에 들어왔다.
Nike Dunk High 1999
도대체 1999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이렇게나 많은 덩크가 발매되다니. 정말 다양한 컬러웨이의 덩크가 등장했고, 모두가 주옥같은 컬러링이다. 근래 덩크 유행과 함께 이 당시 발매한 컬러링의 덩크가 다수 레트로되었다. 30대 중반의 스니커 러버라면, 다들 혀를 쭉 뺀 채 덩크를 신어봤던 기억이 있을 것 같다.
Nike Dunk Low/High HAZE (2003) / 306793-101, 306799-011
에릭 헤이즈(Eric Haze)라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와 협업한 제품으로 스니커 어퍼에 스프레이를 분사한 듯한 느낌이 드는 스니커다. 스페셜 버전과 노말 버전으로 발매했으며, 스페셜 버전은 베로의 탭에 ‘Haze’의 그래피티 로고가 새겨져 있고, 박스에서도 그래피티 이미지를 찾을 수 있다. 아쉽게도 난 일반판 밖에 구하지 못했다.
Editor│오욱석
Photographer│이재훈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매거진 18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