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스케이터 엘빈, 포토그래퍼 심우빈 그리고 디자이너 이현승이 3인 프로젝트 팀 형태로 진행하는 스케이트보드 프로젝트 클로즈 더 도어(Close The Door, 이하 CD)가 약 15분 남짓한 스케이트 필름, “Lockpick”의 프리미어를 지난 10월 22일 이태원 퀘스트(QUEST)에서 진행했다. 오래간만에 로컬 스케이터가 만들어낸 독자적인 결과물을 두고 국내 스케이터들이 한 데 모여 상영회를 즐기고 사진을 감상한 뜻깊은 자리. VISLA 매거진은 국내 스케이터 양성준의 짤막한 감상평과 함께 디렉터 엘빈과 나눈 간단한 인터뷰를 실었다. 하단에서 확인하자.
국내 스케이트보드 영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앨범을 안 내는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팬과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새로운 결과물이 너무 반가운 그런 팬의 마음. 특히 영상이 고유의 색을 가지고 있고, 존나 멋진 스케이팅이 나오고, 다 보자마자 다시 보고 싶다면, 더욱 반갑고 소중하다.
“Lockpick”의 필르머도 친구들과 스케이팅한 순간을 그렇게 느꼈기 때문에, 시청자에게도 그게 전해진 게 아닐까. 친구와 밤에 다운힐을 하는 건 진짜 세계 최고의 기분이기 때문에 배를 깔고 넘어지는 것도 마땅히 영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 실패의 순간도 다른 트릭만큼 중요하게 표현된 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또한, 내 친구가 6분 45초에 나오는 테일 드롭을 했다면, 나 같아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홉 계단을 하드 플립, 널리 플립으로 다운하는 순간도 당연히 그렇다. 이런 일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걸 기록해서 영상을 만들고 퍼뜨려야 한다. 당연히 사진을 찍는 친구를 두어야 한다. 그걸 감상하는 나는 고마울 뿐이다. 다음 앨범을 기다리는 팬의 마음. 하던 일을 멈추고 지켜볼 만큼의 관심. 그런 마음이다.
양성준
Small Talk with Elvin
1. 영상을 위해 촬영한 푸티지가 많을 텐데, 그중 영상에 실린 클립은 어떤 기준으로 뽑혔는지 궁금하다. 단순히 성공한 클립의 모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보통 스케이터에게 장소와 트릭을 정하게 한 다음 촬영을 진행한다. 다만 100% 스케이터의 계획대로는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스케이터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촬영 경험이나 이해도가 풍부한 친구들은 별로 터치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에게는 기술이나 스팟의 수정을 제시한다. 스케이터 대부분이 자기 주관이 강할 터인데, 내 의견을 수렴해주고 촬영에 임한 친구들이 너무나도 고맙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스케이트 필름은 콘티나 각본을 짜고 진행하지는 않는 편이다. 다만 스케이트 필름도 영상이라고 느끼기에 영상미, 감동을 주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렇게 완성되었다. 하지만 아직 만족스럽지 않아서 다음에는 더욱더 신경 써서 만들어보고 싶다.
2. 카메라 장비가 궁금하다. 롱 렌즈와 어안 렌즈 세팅이 각각 어떤 것인지.
현재 가지고 있는 카메라 장비는 총 4대다. 이번 프로젝트 때 주로 사용한 장비는 파나소닉(Panasonic)사의 HPX170. 스케이트보딩 신(Scene)에서 HVX200과 함께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장비일 것이다. 여기에 어안은 Opteka 72mm 0.3x를 장착했다. 이미지용으로 사용한 서브 캠은 단종된 시네마캠 바디를 사용했으며, 그 외에 6mm 소니 핸디캠도 장난감처럼 가지고 다닌다.
아직 나에게 완벽하게 잘 맞는 카메라를 못 찾았다. 계속 찾는 중이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바디와 어안 그리고 마이크까지 직접 납땜질하고 3D 프린팅하면서 커스터마이징했으니, 이 친구로 영상을 완성했을 때 어떤 놈이 나올지 기대된다.
3. “Lockpick”을 위해 계획하고 찍은 클립이 많은가? 아니면 일상적으로 계속 필르밍하면서 푸티지를 모으는 편인가?
나는 아쉽게도 부지런한 편은 아니다, 매일매일 찍으면서 클립을 쌓아놓고 푸티지를 선택해서 편집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영상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이 들면 대략적인 영상의 길이와 마감일을 스스로 정하는 등 나름의 계획을 세워 진행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정신적인 압박감이 심하더라. 이제는 틈틈이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4. “Spirit Quest”를 만든 콜린 리드(Colin Read)는 시사회를 열기 위해 필르밍을 하는 거라고 말할 정도로 시사회를 사랑한다. “Lockpick”의 시사회는 어땠는지 소감과 분위기를 이야기해 달라.
시사회를 진행하는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일종의 보상받기 위함이다. 나는 속앓이를 하는 타입이다. 영상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더 많이 힘들었으며, 회의감도 많이 들었다. 개인적인 자금을 투자했고, 스케이터들의 부상이나 주변의 기대감에 대한 부담도 컸다.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있다 보니 스스로 잘하고 있는지 가늠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몇 개월간 집 밖에도 잘 나가지 않고 해 뜰 때까지 편집하면서 좌절하기도 했다.
이렇게 혼자 속앓이하고 힘들어하다 보니 그에 따른 보상이 필요했다. 시사회를 열면 사람들의 응원을 통해 지금까지의 좌절감이 사라지는 희열과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끼는 감정 같은 것들이 교차한다. 그와 동시에 끝난 뒤의 허탈감도 있으니, 나는 또 다음 시사회를 위한 영상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5. 시대의 흐름은 갈수록 풀렝스 필름이 나오기 어려운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필르머에게 풀렝스 비디오가 다른 푸티지들과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것들이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지 않은가. 앉아서 지긋하게 긴 영상을 보기엔 다들 짧고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다들 그러한 시대에 맞추어 짧은 푸티지나 파트 등을 내보낸다. 심지어 인스타 클립에서 더 나아가 릴스나 쇼츠와 같은 것들에 더욱더 심혈을 기울이는 요즘이다. 스케이터들은 자신을 쉽게 어필할 수 있는 매개체가 생긴 만큼 지속성 있게 보여주기를 원할 것이고, 그것이 곧 스폰서십과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풀렝스를 만들기에는 필르머나 스케이터나 서로 부담된다. 스케이터는 부상의 위험까지 안아가며 몸을 날리고, 만약 촬영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영상이 공개되기 전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고통스러울 테니까. 멋진 모습은 누구나 다 빨리 보여주고 싶지 않은가. 필르머도 그런 스케이터들의 마음을 알기에 시간적인 압박이나 더욱 멋진 영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 또한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그 장면을 각인시키기 위해 인상적으로 편집해야 한다는 압박도 심할 것이다. 그리고 풀렝스라는 분량의 압박감이 막 촬영에 눈을 뜬 필르머들에게는 먼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어서 시도 자체가 버거울 수 있다.
그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그냥 주변 친구들과 멋진 추억을 남긴다고 생각하자. 대신 열심히 촬영하고 편집하고 완성해서 감상할 때 다 함께 희열을 느끼는 거다. 그러면 다음에는 모두 더 좋은 영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6. “Lockpick”을 완성하기까지 너에게 영향을 준 미학적인 영감들을 알려 달라.
엄청 다양하다. 스케이트 비디오나 영화, 작가들의 작업물 등 엄청 많은 것에서 영감을 받는데 그중에서 뮤직비디오와 작가들의 개인 작업을 제일 많이 디깅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그곳이 가장 실험적인 작업이 가능한 필드라 생각하고 다양한 기법과 소재로 영상물이 나오는 것 같다. 제일 최근에 인상 깊게 봤던 두 가지 영상을 알려주자면 “Marcus Mumford – Better Off High”, 이건 ‘Julian Klincewicz’가 만든 영상이다. 그냥 느낌이 좋다. 다른 건 컨버스 컨스(Converse CONS)에서 제작한 “Time Web”. 콜린 리드가 디렉팅했는데 메이킹 필름부터 보면 노가다에 결과물까지 다 미쳤다. 추가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좋다고 느끼는 것을 서로 이야기하고 정보를 교류하는 영향도 크다고 느낀다. 내가 보는 시각이 아닌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세상을 접하는 느낌이랄까. 그러한 부분도 최대한 나에게 맞게 필터링하면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시야를 갖기까지 일본 유학과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디자이너, 이현승 형의 영향도 정말 많이 받았다. 좋은 거 많이 봐야지.
7. 시사회에서 “Lockpick”의 비디오와 함께 필름 제작 일정을 함께한 심우빈 포토그래퍼의 사진 전시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간 스케이트 포토 크레딧에서 자주 볼 수 없던 이름인데,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나?
그를 알게 된 건 꽤 오래전인데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예전부터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2018년도 신사동에 팀버샵이 있던 시절에 주말마다 일했는데, 그때부터 종종 봤다. 그 이후 일본에 유학을 다녀온 후로 혼자 CD를 만들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그때 심우빈 형도 프로젝트에 관심 있었고 서로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 같다. CD를 함께하면서 좋은 것들을 남기자고 해서 찍은 사진이 형의 포트폴리오가 되어서 지금은 사진 쪽으로 일하고 있다.
8. CD의 다음 계획을 알려 달라.
나는 CD를 스케이트보더에게만 보여주고 싶지 않다. 오히려 보드를 타지 않아도 스케이트보드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더 보여주고 싶다. 장벽의 높이를 낮추고 싶다. CD는 현재 3인 체제다. 나와 포토그래퍼 심우빈 형 그리고 그래픽 디자이너 이현승 형. 지금까지는 프로젝트로 뜸하게 활동하면서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방향성에 관해 셋이서 계속 논의하지 않을까 한다. 변하지 않는 건 ‘우리가 좋다고 느끼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