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S #10 카니발 콥스 인 코리아

사무실 공기가 꽤나 따분해서였을까, 최근 필자는 심심한 기분을 환기하고자 메탈 밴드의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사실 메탈이란 장르에 거의 무지한지라 찾아 듣는다기보다 플레이리스트를 흘러나오는 대로 듣는 편이긴 하지만 말이다. 뭐 어느 쪽이건 잠시 볼륨을 키우고 귀를 찢는 샤우팅을 즐기다 보면 혼자 공연장에 온 착각마저 들어 퍽 즐겁다. 이렇게 메탈을 조금이나마 찍어먹던 와중 꽤나 흥미로운 지점에 도달했는데, 데스 메탈(Death Metal)계의 아버지 격 그룹, 카니발 콥스(Cannibal Corpse)의 앨범이 한국에서 발매됐다는, 그것도 한국 ‘특별판’으로 발매됐었다는 소식이다. 메탈 변방국 한국에 카니발 콥스라니, 유교 왕국에는 어떤 일이 었었던 걸까.

데스 메탈은 슬래셔 영화를 연상시키는 잔혹하고 폭력적인 주제를 바탕으로 짐승 같은 그로울링과 쉬지 않고 폭주하는 드럼 온갖 변주로 가득한 기타 리프가 특징인 장르다. 또한 카니발 콥스를 설명할 때 항상 따라다니는 ‘브루털(Brutal)’이라는 단어는 잔혹한 가사와 숨 가쁜 리듬으로 무장한 그들의 음악을 대변한다. 카니발 콥스의 3집 앨범 [Tomb of the Mutilated]에 수록된 “Entrails Ripped from a Virgin’s Cunt”는 그들의 색채를 여실히 드러낸다. ‘처녀의 성기에서 뜯어낸 내장’라는 타이틀부터 심히 마음이 괴로운 가운데, “파열된 창자, 잡아당겨”를 시작으로 피, 시체, 강간 등 입에 담기도 민망한 내용이 곡을 가득 채운다. 카니발 콥스는 음악만큼이나 앨범 커버 역시 극악무도하기로 악명 높은데, 피에 흠뻑 젖은 좀비와 칼을 든 남성 등이 등장해 공포감을 더한다.

그나마 양호한 커버의 정규 5집 [VILE]

안 그래도 마니아 장르인 헤비메탈에서 그로테스크한 방면으로 몇 걸음 더 나아간 카니발 콥스의 음악은 당연하게도 대중들의 반발을 샀다. 독일,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그들의 앨범 판매 금지한데 이어, 사전 심의제가 음악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던 당시 한국에서도 그들의 음악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하지 말라는 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욕망. 아무리 메탈 변방일지라도 취향을 숨길 수 없는 마니아 그리고 이들에게 물건을 팔 장사꾼은 필연적으로 생기기 마련이다.

1990년대 중반 한국은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 제도가 기승을 부리던 때로, 서태지의 “시대유감” 같은 나름 착한(?) 축에 속하는 곡마저 가사 수정을 거쳐야 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1996년 카니발 콥스의 정규 5집 앨범 [VILE]이 발매될 무렵, 한국의 유통사 록레코드가 기어코 일을 벌이고 만다. 수입서 위조 등을 통해 법망을 피한 록레코드는 앨범 [VILE]과 그전까지 정식 수입이 불가능했던 카니발 콥스의 앨범들을 엮은 한국 특별판 앨범 [Deadly Tracks]를 발매한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Deadly Tracks]가 단순히 이전 노래를 엮은 것을 넘어 한국 팬들을 위한 곡 “Special Message From Hell To Korea”를 1번 트랙으로 실었다는 점이다. 해당 트랙에서 밴드의 보컬 조지 ‘콥스그라인더’ 피셔(George ‘Corpsegrinder’ Fisher)가 한국말로 직접 전하는 인사말 “안녕하세요 코리아, 감사합니다아아악”은 아직까지도 한국 메탈 팬들에게 회자되는 전설적 순간으로 남아 있다.

“안녕하세요 코리아, 감사합니다아아악”

한국으로 유입된 카니발 콥스의 앨범은 당시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자극제로서 꽤나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안타깝게도 그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듬해 7월 록레코드의 수입서 위조가 발각되고 만 것.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청소년보호법으로 시끄러웠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그들의 음악은 ‘악마주의’로 칭해져 연일 언론의 뭇매를 맞으며 결국 앨범 전량 회수라는 씁쓸한 결말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카니발 콥스의 첫 한국 진출은 그들의 음악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을 법한 찝찝함만을 남겼다.

당시 9시 뉴스로 보도되었던 내용이 꽤나 흥미롭다. ‘어른’들은 카니발 콥스의 음악을 ‘악마의 부활’과 ‘죽음의 찬미’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청소년 비행을 비롯한 온갖 사회 악행의 욕받이로 카니발 콥스의 이름을 언급한다. 그러나 정작 카니발 콥스의 음반은 하루에 수십 장씩 팔려나갔으며,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 학생은 그들의 가사, 그러니까 살인을 어떻게 저지르는지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고 수줍게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당시 한국 음악계는 ‘나쁜 음악’에 대한 논쟁으로 뜨거웠다. 임진모를 비롯한 음악 평론가 그리고 메탈 팬들은 카니발 콥스 옹호, 공연윤리위원회를 필두로 한 대중 매체의 카니발 콥스 매도.

다행스럽게도 사전 심의제 폐지를 시작으로 문화 전반에 걸친 변화가 일어나며 이후 카니발 콥스의 음반은 한국에서 정식 발매될 수 있었다. 2002년에는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을 통해 한국을 찾기도 했는데, 당시 핫뮤직과의 인터뷰는 데스메탈 그리고 음악과 가사에 관한 그들의 생각을 또렷이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우리 음악은 픽션이다. 이것들이 사람에게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바보들이 너무 많다. 데쓰메탈에서 으르렁대는 가사를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같나? 나도 못 알아듣겠는데… 그런 음악을 듣고 가사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놈들은 이미 기본적으로 이상한 놈들이다. 인터넷을 뒤져서 가사를 구해 읽고, 거기서 뭔가 심오한 걸 찾아내려고 하는 놈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잔혹한 것을 가르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 단지,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 음악을 듣고 우리 라이브를 보고 즐겨주는 것이다. 우린 모든 사람들이 피가 낭자한 시체로 남길 바라는 변태들이 아니다. 이상한걸 하나 붙들고 거기 집착해서 물고 늘어지는 인종들은 우리 팬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편의점에서 사람을 죽이고 “난 카니발 콥스의 팬이다”라고 외치면 내가 사식이라도 넣어 줄줄 알았나? 정말 웃기는 놈들이다. (중략) 결국 기성세대들이 원하는 건 그들 앞에 굴종하는 양들을 만들어내자는 건데…

다사다난했던 카니발 콥스의 첫 한국 앨범 발매는 비록 웃픈 해프닝으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당시 사건은 음악계를 넘어 문화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더욱이 장르가 마니아 중의 마니아만이 찾아 듣던 데스 메탈인 걸 생각하면 꽤나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16집을 발매하며 어언 36년 차를 맞이한 카니발 콥스. 90년대 남몰래 메탈 음악을 찾아 듣던 이라면 카니발 콥스의 ‘한국 발매 사건’이 꽤나 반가울 것 같다. 그렇다면 간만에 귀를 찢는 그들의 음악과 함께 뜨거운 금요일을 보는 건 어떨지.


이미지 출처 | Discogs, 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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