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중학생이었을 때만 해도 ‘오타쿠’라는 단어는 분명 특정 형태의 인간을 떠올리게 했다. 이는 본인뿐만 아니라 친구들 사이에서도 공유되던 공통된 이미지로, 혹여 쉬는 시간에 귀여운 소녀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보는 게 발각되기라도 하면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허나 언제부턴가 패션, 음악 그리고 문화 전반에서 ‘오타쿠’가 일종의 ‘멋’의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분명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 예(Ye) 등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들의 영감의 원천이 애니메이션임이 꾸준히 노출돼 온 덕도 있겠지만, ‘디깅’이 멋쟁이들의 생활 필수 요소로 자리 잡으며 그 끝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오타쿠들의 입지 역시 자연스레 올라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만화, 애니메이션에 파묻혀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이들 중 일부는 그들의 상상을 현실로 끌어오기도 하는데, 오랜 세월 갈고닦은 덕력만큼 그 결과물도 강력하다. 뉴욕 차이나타운의 한 딤섬집 위에 작업실을 꾸리고 2017년부터 작업을 이어온 하유민 역시 그들 중 하나.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볼법한 얼굴들이 대문짝만 하게 전사된 수많은 티셔츠와 온갖 아이템들은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이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 충분하다. 부틀렉을 넘어 이제는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함께해 보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뉴욕에서 티셔츠 찍고 있는 하유민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9살 때 상하이로 옮겨가 고등학교까지 지내고, 대학을 미국 뉴욕으로 갔다. 항상 영화감독을 꿈꿔왔고, 어찌 보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티셔츠를 찍고 있는 중이다.
“헌터x헌터”, “에반게리온”, “카이바” 등의 일본 애니메이션은 물론, 왕페이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 이미지를 프린트한 부틀렉 의류를 만들고 있다. 어떻게 이런 작업을 시작하게 됐나.
패션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던 상태에서 대학 입학을 위해 뉴욕에 처음 도착했을 때, 상해에서 유년기를 보내온 나에겐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옷들을 걸치고 다니는 뉴요커들의 패션이 충격적이었다. 한눈에 반해버린 거다. 그렇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패션에 관심이 생겼고, 정신을 차려보니 목요일 오전 11시만 되면 수업 중에도 온라인 슈프림 드랍을 기다리거나, 구제 명품들에 눈을 뜬 후 일본이나 말레이시아에서 좋은 가격에 구매해 미친 듯이 거래하고 있더라. 다만, 내가 정말로 구매하고 싶던 희귀한 요지 야마모토 제품들과 90년대 슈프림/페이프 티셔츠들은 가격대가 보통 50만 원을 훌쩍 넘겼다. 돈이 많지 않은 학생이었던지라 결국 내가 원하는 그래픽들을 직접 찍는 게 낫다고 판단해 프린팅을 시작하게 됐다.
주로 90년대 혹은 2000년대 초 중반의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홍콩의 영화가 프린트 이미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본인에게 영감을 주는 애니메이션, 영화는 보통 과거의 것인가?
그건 아니다. 최근의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도 영감을 굉장히 많이 받는다. 다만, 셀 애니메이션과, 필름 영화가 ‘더 낫다’라기보다는, 그 시절 매체에 담겨있는 ‘낭만’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 시절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뭔가 조금 더 손으로 매만졌다는 느낌이 난다는 거에 큰 매력을 느낀다. 물론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판매하는 대부분의 제품들이 공장에서 제작되지만, 그래도 소량의 제품들은 아직까지 나와 내 직원 둘이서 뉴욕 차이나타운에 딤섬 집 위 사무실에서 자그마한 열전사 프레스기로 찍어가며 만들고 있다.
현재의 것 중 프린트로 이식하고 싶은 작품도 있는지.
‘현재의 것’이라고 한다면 산리오(Sanrio)나 현존하는 거대 애니메이션 IP를 라이센싱하고 싶은 욕심은 넘쳐나지만, 지금은 그걸 위해 노력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욕망만큼은 가득하다. 그 외엔 조금 더 규모가 작은, 자기 자신의 세계관을 이미 구축한 뛰어난 아티스트들이 많이 존재한다. 아직 누군지는 밝힐 수 없지만, 그들과의 콜라보 제품들이 곧 출시될 예정이니 많은 기대 바란다.
언제부터 애니메이션, 영화에 빠져 지냈나. 한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자랐고 현재는 뉴욕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지낸 경험이 현재의 배경에 영향을 끼쳤을까?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폐업하는 만화방들에서 대량으로 구매한 만화 컬렉션을 자주 읽었다. 한국에 지내던 시절엔 만화방과 dvd방도 많이 다녔다. 아마 5-6살 때부터 쉬지 않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본 같다. 2004년 방영 중이던 “사무라이 참프루”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마찬가지로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 손잡고 영화관을 다녔지만, 제대로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중1 때 아버지와 함께 “The Deer Hunter”를 봤을 때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에 심취해 고전영화들을 많게는 일주일에 15편까지 본 것 같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뉴욕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었다.
주로 중국에 지내면서 얻은 영향이라면 홍콩/중국 남부 문화에 대한 관심과 노출. 그런데 왕페이라던지, 홍콩 액션 영화들은 전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오히려 뉴욕에서 동양영화사를 공부하고 차이나타운에 지내며 더 중화권 문화에 애착이 생겼다. 집을 나설 때 들려오는 소리가 영어가 아닌 광둥어나 유럽 관광객들의 말뿐이라 유년기 시절부터 지속된 타지에서의 어떤 묘한 이방인의 시선으로 주변을 관찰해 온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다루는 그래픽들의 스펙트럼이 애니메이션에 국한되지 않고 가끔 이상한 것들이 끼는 거다.
최근 한국, 특히 서울에서도 그렇고 전 세계적으로 ‘오타쿠’가 하나의 ‘멋’의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다.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 그 차이를 실감하고 있나?
확실히 2020년도 정도부터 오타쿠는 더 이상 오타쿠들의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이젠 홍대 어딜 가든 ‘씹덕’ 티셔츠 입거나 토트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엄청 많다. 뉴욕이나 상해도 매한가지 – 현재 애니메이션이 스트리밍 등을 통해 접근성이 훨씬 좋아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무언가를 당당히 사랑해도 되는 시대에 가까워졌다는 것이 가장 감동스럽다. 오타쿠에 대한 대중의 반감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가장 큰 차이를 실감한 건 군대에서 애니라곤 1도 모르던 당직사관이 점호 때 ‘신조오 사사게요’를 외치며 가슴에 주먹을 올려놨을 때 느꼈던 웅장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드디어 ‘우리’ 시대가 왔구나 그리고 세상에 씹덕은 많구나”하며 흐뭇해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직접 옷을 제작하는 건 쉽지 않을 텐데.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무엇을 했나. 패션 관련 지식 혹은 경험이 있었나?
사실 졸업 후 영화쪽으로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결과가 영 탐탁지 않았다. 그래서 취미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생존을 위해 이쪽에 몰빵하기로 결심하게 됐다. 영화를 전공하고 영화만을 바라보며 일해왔기에, 패션 관련 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에는 주로 구제옷에 프린트를 했지만, 새 컬렉션들은 옷 자체를 처음부터 공장에서 제작해야 해서 골치 아픈 게 한둘이 아니다. 아직도 많이 미숙하기에 여러 가지 샘플들을 패턴부터 제작까지 열심히 배워나가고 있다.
처음 프린팅했던 제품을 기억하는지. 첫 제품에 관해 이야기해 달라.
처음으로 티셔츠를 직접 찍기 전, 미국의 마플(Marpple) 같은 프린트 대행업체에 맡겼다가 퀄리티에 크게 실망하고 구글링 후 여러 가지 전사용지를 구매했던 게 기억난다. 아마 2017년도였을 거다. 첫 전사는 여기저기 들러붙고, 전사가 깨끗하게 되지 않아 엄청 좌절했었다. 그 당시 아마 한참 6-70년대 가요 LP판을 모으는 것에 심취해 있던 때라, 처음 성공적으로 전사한 그래픽은 김정미 선생님 앨범을 여러 모양으로 오려 티셔츠에 전사하던 기억이 희미하게 있다. 그 티셔츠들은 사진도 안 찍어놔서, 오래전 잃어버렸지만 언젠가 꼭 되찾아 공유하고 싶다.
디자인을 의상에 프린트하는 일련의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해 줄 수 있을까.
원래는 싸게 도매로 구매한 길단(Gildan) 셔츠들, 또는 면적이 넓은 구제옷들을 사서 마구잡이로 프린트를 했었다. 면적이 넓고 평평해야 하는 이유는 마치 도형 맞추기처럼 전사한 그래픽을 이리저리 옷에 대보며 어디에 붙히는 게 가장 이쁜가 가 중요했기 때문. 그리고 전사 용지로는 한계가 있는 사이즈를 여러 전사용지를 이어 붙혀 평균 티셔츠들 그래픽보다 더 큰 그래픽을, 그것도 내가 원하는 그래픽을 붙이는 게 가장 중요했다. 지금 같은 경우 샘플을 비슷한 방식으로 제작하고, 필요에 따라 패턴작업을 하여 공장에 맡기고 있다.
비니, 장갑, 모자, 티셔츠, 다마고치, 라이터 등 티셔츠 외에도 다양한 제품에 이미지를 이식하고 있는데,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제품군이 있는지.
최근 들어 접시 같은 하얀 도자기에 프린트하는데 취미를 들었다. 도자기를 처음부터 굽는 게 아닌, 기존 세라믹 제품들에 전사 방식을 연구해 스스로 거의 만족스러운 단계까지 왔다. 그 외에 장난감, 인형 그리고 이상한 잡화들을 모으는 걸 좋아하는 만큼 공장들과 열심히 머리를 맞대고 씩씩대며 노력 중이다. 올해 안으로 더 완성도가 높은 액세사리들과 장난감들을 여러 제품 출시하려고 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본인은 얼마나 마니악한 사람인 것 같나. 점수를 매겨 본다면?(1-10)
6-7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대학교 시절 한 학기에 수업을 목요일에 몽땅 욱여넣어 6일짜리 주말을 즐기던 말도 안 되는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집에서 하루 종일 만화만 읽었다. 그 당시 가장 재밌게 봤던 만화들은 “권법소년”, “베가본드” 그리고 “마스터 키튼”. 또 여름방학에 학원 강사 알바를 갓 마친 후,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하루 종일 만화만 보던 시절이 기억난다. 아마 3일 동안 쉬지 않고 읽어 원피스를 800화 정도까지 다시 정주행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 시절이 9점에 가깝다면, 요즘은 옷 만드는데 정신없어 아마 6점 정도로 내려온 것 같다. 뉴욕에는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난감들이나 컬렉터블을 파는 곳도 잘 없기에, 한국과 일본을 다시 들릴 때만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흥미롭게 보고 있는 시리즈, 만화, 영화가 있다면 한 가지 소개해 달라.
만화라면 “블루 자이언트”. 이시즈카 선생님의 ‘산’ 시리즈를 무척 좋아했기에, 기대가 컸음에도 작가의 요즘 보기 힘든 돌직구 소년만화 스타일, 만화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적적인 작화. 칭찬을 아끼기 어려운 작품이다. 영화라면 최근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우연과 상상”과 장초치 감독의 “어둠 속의 빛”. 만화 원작도 강추이지만, 애니메이션이라면 어김없이 “핑퐁”을 추천하고 싶다.
언젠가 한국의 영화, 일러스트 등도 피드에서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한다. 그럴 계획이 있다면 귀띔해 주길.
한국 영화나 일러스트 또한 예전부터 드믄드믐 올려왔지만, 아마도 이제 부틀렉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기도 하고. 오피셜 라이센싱에 열두 중이기에, 아마 곧 흥미로운 한국 IP 또한 제품으로 출시해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Yumin Ha, Office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