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INSIDE : VISLA FM 오리지널 프로그램 ‘DEEP INSIDE’는 음악가, 레이블 또는 특정 장르나 경향의 음악을 심도 깊게 다루는 플레이리스트 시리즈다.
방대하고 깊은 음악 문화. 그중에서도 전자음악 신(Scene)은 기술의 발전과 다양한 음악 장르와의 교류를 거듭해 온 결과 각 국가의 지역성을 대표하는 장르로서 기반을 다져왔다. 전자음악의 다양한 갈래를 댄스 뮤직에 한정해 논하자면, 역시 하우스와 테크노와도 같은 굵직한 예시가 더욱 친숙할 것.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가 주창한 미니멀리즘 음악의 기조인 ‘최소한의 샘플과 비트’를 기반으로 시카고의 DJ 프랭키 너클스(Frankie Knuckles)는 디스코를 접목하여 하우스의 효시격 트랙을 만들었으며, 디트로이트의 데릭 메이(Derrick May)는 테크노의 뼈대를 닦았다.
미국의 경우 하우스와 테크노의 유산을 그들의 문화와 결합하여 독자적인 장르를 생산, 이후 그것에 기반한 레코드들을 꾸준히 선보였지만, 영국의 사정은 어떨까. 영국의 경우, ‘세상을 바꾼 10초’라 일컫는 아멘 브레이크의 탄생에 힘입어 등장한 정글, 그리고 드럼 앤 베이스가 성행한 결과 그들만의 고유한 신을 형성했다. 여기에 더해 앰비언트 테크노와 브레이크를 결합한 인텔리전스 댄스 뮤직(Intelligence Dance Music, 이하 IDM)이 새롭게 핵심 장르로 부흥하며 영국은 댄스 음악의 시초를 닦은 미국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전자음악의 다양성을 계속하여 실험해 왔다.
그리고 2024년인 현재. 여전히 수많은 국가의 음악들이 높은 퀄리티의 작업물을 계속해서 발매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독일 기반의 레이블 일리안 테이프(Ilian Tape)의 행보는 조금 심상치 않다. 2007년 설립자인 젠커 브라더스(Zenker Brothers)에 의해 설립된 일리안 테이프는 다양한 장르 기반의 레코드를 발매하면서 최근 들어 루즈한 경향이 있는 전자음악 신에 있어 감초 같은 음악을 선보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데, 일리안 테이프는 과연 어떤 작업물이 주목을 받아 신 내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가진 레이블이 되었을까? 우선, 레이블이 설립된 배경을 먼저 알아보도록 하자.
ILIAN TAPE
일리안 테이프는 많은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레이블이지만 영국의 웹 매거진인 팩트 매거진(Fact Magazine)과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영국의 아티스트인 스페이스에이프(The Spaceape)에게서 영감을 얻어 레이블의 이름을 정했다고 밝혔다.
“레이블 일리안 테이프의 작명은 아티스트 스페이스에이프에게 레퍼런스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UK 댄스 뮤직에 대한 어떤 영향이 당신의 작업물에 영향을 끼쳤는가?
Fact Magazine
마르코: 우리는 모든 장르에 열려 있다. UK 장르 또한 좋아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작업물 그리고 다른 일렉트로닉 음악이나 힙합과도 같은 다양한 장르 또한 좋아한다. (중략) 하지만 영국의 것이야말로 항상 음악에 대해 훌륭한 변주를 해 왔다.”
해당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리안 테이프는 영국의 ‘그것’을 중심으로 하지만, 이에 멈추지 않고 일렉트로니카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계속하여 발매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소속 아티스트의 색채에 맞게 음악의 장르를 달리 한다는 것. 스키 마스크(Skee Mask)와 안드레아(Andrea)의 경우 90년대 앰비언트 테크노를 바탕으로 한 IDM 장르의 현대적 복각을 주력 스타일로 삼고 있으며, ‘Rolrolrol’의 음악은 누 재즈와 웡키의 색이 진하게 묻어난다.
이번 ‘DEEP INSIDE’에서 다루게 될 일리안 테이프가 걸어온 이야기들을 하단 리스트 업으로 정리해 놓았으니, 하단의 큐레이팅 리스트와 함께 읽어본다면 일리안 테이프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CONTENTS
- Rolrolrol – [MUSIC]
- Laksa – [Delicates]
- Artist. re:ni
- Artist. Skee Mask
- Artist. Andrea
- Artist. Zenker Brothers
- Sustrapperazzi – [Return from Shibuya]
Rolrolrol – [MUSIC]
2023년, 일리안 테이프는 아티스트 제임스조(Jameszoo)와 녤스 부르스(Niels Broos)가 결성한 유닛 ‘Rolrolrol’의 LP [MUSIC]을 발매한다. 그간 다양한 장르를 다루었던 일리안 테이프지만 [MUSIC]은 레이블이 다루지 않았던 누 재즈와 그것의 크로스오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일리안 테이프의 디스코그래피에 있어 조금 특이한 포지션에 놓여 있다. ‘Rolrolrol’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이기도 한 [MUSIC]은 버블검 베이스와 웡키, 그 저변에 있는 댄스 뮤직 장르들을 주로 한다. 아티스트 이글루고스트(Iglooghost)의 음악이 떠오르는 스타일이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구성으로 완성했다. [MUSIC]은 통통 튀는 베이스와 기타 리프, 그리고 키보디스트이기도 한 녤스 부르스의 키보드 연주가 돋보이는 앨범으로, 앞서 언급하였던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 일리안 테이프의 기치에 있어 논하지 않을 수 없는 앨범이다.
Laksa – [Delicates]
근래 서울에서는, 볼노스트와 벌트 등의 베뉴에서 힙노틱한 테크노의 튠을 점차 취급하기 시작하며 그러한 음악에 대한 수요 또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점에 앞서 두 번째로 소개할 아티스트 락사(Laksa) 역시 일리안 테이프의 릴리즈에 있어 힙노틱한 튠의 테크노를 수록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락사는 크리에이티브 콜렉티브 더 인터내셔널(The Internatiiional)과 연이 깊은 DJ이자 프로듀서로, 그의 믹스셋에서 베이스 음악을 기반으로 한 하이브리드 사운드를 관찰할 수 있지만 일리안 테이프에 제공한 작업물은 테크노가 주인 모양새다. 그의 EP [Delicates]를 쭉 읊으면서 음악을 감상하다 보면, 조명이 어두운 베뉴에서 악마적 의식을 행하는 듯한 그의 색다른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을 것.
re:ni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DJ이자 프로듀서 레니(re:ni). 그 또한 마찬가지로 더 인터내셔널(The Internatiiional)과의 인연으로 지난 2023년 한국을 방문했다. 레니 또한 락사와 마찬가지로 탁월한 사운드 디자인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작업물을 전개하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녀가 일리안 테이프에 제공한 EP [Revenge Body]는 거친 오토메이션을 곁들인 테크노 위에 브레이크를 첨가한다.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장르와 장르 간의 믹스, 그 위로 전해지는 프로듀서만의 고유한 역량은 여타 다른 베테랑 디제이들과 견주어 봐도 전혀 꿇리지 않는다.
한편 그녀가 지난 2월 레이블 타임댄스(Timedance)를 통해 발매한 EP [BeautySick]은 그녀의 장기인 ‘레프트필드 베이스’를 다루었다. 일리안 테이프에서 발매된 앨범은 아니지만, [Revenge Body]과 비교하며 [BeautySick]을 청취한다면 그녀의 장기인 장르를 타지 않는 탁월한 사운드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어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Skee Mask
1993년 독일 뮌헨 출생 프로듀서 브라이언 뮐러(Bryan Muller). 스키 마스크와 예명 ‘SCNTST’가 보다 더 익숙한 그의 행적은 어쩐지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있다. 그가 작곡을 시작한 초기, ‘SCNTST’ 명의로 레이블 보이즈노이즈 레코즈(Boysnoise Records)와 계약하며 전도유망한 프로듀서로 주목받기도 했지만, 어린 나이에 자신의 작업물이 주목받는 것이 싫었던 그는 스키 마스크 명의를 내세워 음악을 제작, 2024년 현재 일리안 테이프에서 총 3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 이것이 그가 프로듀서 활동에 있어 적극적으로 프로모션을 내세우지 않은 이유다. 다만, ‘SCNTST’ 명의에서 스키 마스크로 옮겨 갈 때, 그는 역사에 남을 훌륭할 작업물을 연이어 배출했으며 지금도 많은 애호가, 프로듀서와 DJ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일리안 테이프를 다루는 본문에서는 과거 ‘SCNTST’의 레코드들보다는 스키 마스크 명의로 발매한 레코드들을 중점으로 하여 소개하도록 하겠다.
1. Shred
일리안 테이프와 계약 후 처음으로 발매한 정규 앨범 [Shred]. 스키 마스크 명의의 정규 1집인 [Shred]는 풍부한 앰비언스의 앰비언트 테크노를 중점으로 구성됐다. 많은 이들이 브라이언 뮐러가 브레이크비트를 주로 다루는 뮤지션으로 알고 있지만, 옛 명의 ‘SCNTST’부터 그는 꾸준히 앰비언트, 드론과도 같은 비트리스 장르를 제작했으며, 그러한 경험이 [Shred]에서 이어진 것이다. [Shred]에서 브레이크가 들어가 있기도 하지만 앞으로 후술할 개인 앨범들인 [Compro]와 [Pool]의 농도와 비교했을 때 조금은 옅게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Shred]는 브라이언 뮐러의 작업물에 있어 과도기적 위치에 놓여 있는 앨범으로, 스키 마스크를 위시한 그의 스타일을 파악하기 위한 초석을 닦는 앨범 정도로 이해하면 좋다.
2. Compro
[Shred]로부터 2년 뒤 발매한 두 번째 정규 앨범 [Compro]. 앨범에 대해 논하기 전에, 앨범에 대한 세간의 평가부터 언급하겠다. 전자음악에 박한 웹진 피치포크(Pitchfork)가 꽤 높은 점수인 8.6점을 부여하며 ‘베스트 뉴 뮤직(BNM)’에 선정했으며, 레지던트 어드바이저(Resident Advisor)는 한술 더 떠 2010년대 1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렸다. 미디어의 압도적인 호평이 장식한 만큼, 스키 마스크의 두 번째 앨범 [Compro]는 ‘SCNTST’부터 스키 마스크까지 이어지는 그동안의 스타일을 정립, 완성하며 퓨처 사운드 오브 런던을 비롯한 90년대 앰비언트 테크노와 선대 IDM의 유산을 훌륭한 완성도로 재가공한다.
본인이 애용하는 ‘Roland JP-8000’을 이용해 제작한 낙차 폭이 큰 멜로디, 로우패스 필터를 거칠게 먹여놓은 뒤 신디사이저를 재가공한 풍부한 앰비언스. 여기에 더해 킥 드럼 사이로 잘게 쪼개놓은 하이햇과 클랩이 정박의 킥과 맞물리며 가동하는 그의 비트 역학은 선대 IDM과 앰비언트 테크노를 완벽히 계승하며, 당대 스퀘어푸셔(Squarepusher)를 주로 한 ‘올드스쿨 복각’ 유행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결과는 수많은 미디어가 말해주는 대로 대성공.
이렇듯 스키 마스크의 2번째 정규 앨범 [Compro]는 이미 경전에 오른 90년대 IDM 신에 바치는 존중이었다. 다만 그의 헌사는 선대가 닦아 놓은 유산에 대한 도전이었고, 그렇기에 과거의 경전을 더욱 높게 평가하는 애호가들의 부정적 견해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브라이언 뮐러는 그 평가마저 3년 뒤 발매한 3번째 정규 앨범 [Pool]에서 완벽히 타파하며 신에 자신의 이름을 똑바로 새겼다.
3. Pool
2집 [Compro]의 대성공 이후, 3년 후인 2021년 발매한 스키 마스크의 3번째 정규 앨범 [Pool]. 그의 스타일은 이미 [Compro]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에 이후 앨범에서 어떤 향로를 모색할지에 대한 모두의 관심이 있었으나 세간의 기대는 금방 수그러들었다. 왜냐하면, 현재 모든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이 앨범을 감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브라이언 뮐러는 스트리밍의 수익 재분배 방식에 큰 불만을 표했으며, 그에 대한 소극적 대항으로 몇 개의 트윗을 올린 후 앞으로 발매될 3집 [Pool]은 모든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서비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튜브와 밴드캠프에서밖에 이 앨범을 못 듣는다는 사실은 정말 아쉬운 일이지만 그것을 제하고 봐도, 3집 [Pool]은 그의 음악적 진보가 이전 앨범에 비해 큰 성과를 거둔 앨범으로 2집인 [Compro]에 견줄 만한, 아니 그것을 능가할 성과를 보여준 앨범으로 남았다.
[Pool]이 걸작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첫 번째로, 그간 그가 제작했던 스타일인 앰비언트의 선형적 사운드 제작 방식을 탈피한 부분에 있다. [Pool]은 피부 조직을 보는 듯한 오밀조밀한 멜로디들이 숲을 이루며 앨범을 구성한다. 이 멜로디는 FSOL을 위시한 우주적인 사운드로 나아가기도 하며, 더욱 복잡하게 조직한 브레이크비트와 드럼 앤 베이스, 그리고 IDM과 풋워크를 혼합한 고유한 스타일로 변형되기도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난 앨범의 완성도를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틀 안에서 유기적인 변화를 꾀하며 장차 100분에 달하는 풀 렝스 앨범을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가는 그의 완급 조절 능력이다. [Pool]은 전체적으로 복잡한 드럼 라인을 위시한 브레이크비트와 풋워크, IDM을 주요한 장르로 내세우고 있지만, 과거 그가 자주 다루던 앰비언트 테크노를 간과하지 않고 의외성 높은 구간에 배치하며 앨범을 견인한다.
샘이 마르지 않는 듯한 그의 풀 렝스 앨범 완급 조절 능력, 그리고 이전 작품에 비해 더욱 밀도가 높아진 사운드 디자인이야말로 다른 앨범과 비교될 만한 [Pool]의 고유한 가치인 것이다. 이러한 평가 뒤에, [Pool] 역시 정전으로 남으며 향후 브라이언 뮐러의 작업물을 기대하게 하는 앨범으로 이어졌다.
Andrea
이탈리아 투린 출생 프로듀서 안드레아(Andrea). 그의 스타일 또한 과거 앰비언트 테크노의 복각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를 부분적으로 첨가하며 자신의 입지를 바로 새기고 있다. ‘올드스쿨 복각’에 있어 스키 마스크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그의 스타일은 더욱 현대적이다. 그는 브레이크비트를 웨어하우스 테크노에 접목한 음악을 주로 하지만, 필터를 진하게 먹인 베이스라인을 첨가한 스타일로 현대의 베이스 뮤직 신을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 등 보다 우리에게 익숙할 법한 방법론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일리안 테이프에는 두 개의 개인 앨범인 [Ritorno]와 [Due in Color]를 발매했으며, 두 앨범 모두 프로듀서의 탁월한 역량을 엿볼 수 있다.
2023년에 발매한 [Due in Color] 같은 경우, 리얼 드럼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브레이크비트의 컴퓨터 비트 방법론에서 벗어나 전체적인 음악의 분위기를 정립하는 앨범으로 이어졌다.
Zenker Brothers
일단 본문의 끝없는 스크롤 압박을 견디며, 여기까지 온 독자들을 위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시점에 앞서 일리안 테이프의 동향을 정리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일리안 테이프의 동향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 영국의 일렉트로닉 뮤직을 기반으로 하나, 국가에 얽매이지 않는 음악의 다양성
- 일렉트로닉 장르의 경우 ‘올드스쿨 복각’을 중심으로 현대적인 사운드의 탐구
그리고, 이 두 문단을 아우르는 일리안 테이프의 음악 동향을 정의하기 위해 파운더 듀오 젠커 브라더스의 족적은 필수적으로 언급해야 한다.
젠커 브라더스는 형인 다리오 젠커(Dario Zenker)와 동생인 마리오 젠커(Mario Zenker)로 이루어진 형제 음악 듀오다. 2006년, 열정적인 스케이트보더인 동생 마리오 젠커가 다리오 젠커의 힙합과 레게 음악 사랑에 동화되어, 여러 파티에 참가하며 클럽 문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경험이 모티브가 되어 1년 후인 2007년, 이 형제들은 레이블 일리안 테이프를 창립한다.
레이블 설립 후 2012년 그들은 서로 B2B 공연을 시작하게 되는 등 다방면으로 디제잉 경험을 쌓게 된다. 그들은 디트로이트 테크노, 하우스, 덥, 힙합과 브레이크비트를 주요 장르로 삼으며 믹스셋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일리안 테이프가 보여주었던 수많은 장르들의 집합은 결국 이 형제들의 B2B 디제잉 경험과 블록 파티들에 참가하며 얻었던 경험의 모티브였고, 그러한 경험이 위에 언급한 걸출한 아티스트들의 작업물로 이어지며 전자음악 신의 대들보로서 일리안 테이프가 입지를 다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음악은 어떨까. 젠커 브라더스의 작업물들은 일리안 테이프가 발매했던 모든 장르의 음악을 아우르지만, 전반적으로 덥 테크노와 그 저변에 있는 앰비언트 테크노를 기반으로 앨범을 전개하고 있다. 젠커 브라더스의 명의는 테크노를 주로 하고 있지만, 개인 작업물에 한해서 브레이크비트와 드럼 앤 베이스를 섞기도 하는 등 보다 다양한 방면으로 그들의 다양성을 어필하고 있다. 덥 테크노를 주요 장르로 삼은 영국의 레이블 모던 러브(Modern Love)가 떠오르는 스타일이지만, 아티스트 앤디 스톳(Andy Stott)을 위시한 레이블의 스타일에 비해 젠커 브라더스의 음악은 더욱 개인적이고 다양한 장르를 첨가하는 등 보수적이지 않은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일리안 테이프에서 LP 사양의 앨범 두 장을 드랍했으며, 개인의 활동으로는 동생 마르코 젠커가 2022년 발매한 [Channel Balance]가 있다.
Sustrapperazzi – [Return from Shibuya]
일리안 테이프는 의외로 정말 다양한 장르를 다루었던 레이블이다. 그중 하나로, 힙합을 주로 한 비트 시리즈 ‘ITBS’ 시리즈를 예로 들 수 있다. 3번째 비트 시리즈인 ‘Sustrapperazzi’의 앨범 [Return from Shibuya]는 드릴을 위시한 타입 비트를 기반으로 시카고의 정취를 품어낸다. 지금까지 영국의 그것이나, 영국을 위시한 일렉트로닉의 무언가와는 다르게 미국의 영향을 듬뿍 받은 해당 앨범은 일리안 테이프가 수없이 찾았던 장르의 다양성에 부합하는 진귀한 앨범으로 하단의 큐레이팅 리스트와 함께 해당 앨범을 돌려 들어보길 권장한다.
지금까지, 일리안 테이프의 아티스트와 그들이 발매한 작업물을 돌아보며 레이블의 아이덴티티와 동향, 그리고 음악까지 모든 것을 살펴보았다. 새로운 반향을 기다리고 있는 전자음악 신에 있어 그들의 행보는 향후 전자음악 신에 중요한 방아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일리안 테이프의 작업물을 아우르는 큐레이팅 리스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하단에 첨부된 일리안 테이프의 음악이 담긴 ‘VISLA FM DEEP INSIDE : ILIAN TAPE’의 플레이리스트를 청취하며, 그들이 남긴 ‘유산(Legacy)’에 젖어보도록 하자.
Editor│김성우
이미지 출처│Ilian Ta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