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CLUB #NYAPI

도시의 낮은 삭막하다. 우리는 가정과 학교, 직장 등 각자 존재해야 하는 장소에서 주어진 의무와 역할을 수행한다. 밤이 되면 고단한 도시인의 숨통을 틔워줄 공간이 하나둘 문을 연다. 클럽은 밤이라는 시간과 맞물려 우리에게 비로소 자유와 해방을 선사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이 도시에는 클럽이 필요하다.

이태원 중심부에 위치한 클럽 ‘야피(Nyapi)’는 이러한 피난소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너울거리는 물결 모양의 유리 너머로 핑크색의 내부가 살짝 엿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디스코볼과 펑션원(Funktion One) 스피커의 가호 아래 댄스플로어가 펼쳐진다. 주말 낮의 햇볕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야피에서 이곳의 파운더이자 레지던트 디제이인 ffan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단에서 확인해 보자.


‘Nyapi’가 무슨 뜻인가.

야간피난소 야피(Nyapi). ‘야간피난소’는 한국 최초의 디제이인 아버지가 80년대 이태원에 차린 댄스 클럽의 별명이었다. 당시에는 자정 이후 영업이 불가능했기에 아버지는 이름 없는 클럽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야간피난소를 줄여서 ‘야피’라고 불렀던 거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존재했던 곳인지라 이야기만 전해 들었을 뿐이지만, 야피라는 이름만큼은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마음속에 오래 품고 있었다.

공간을 들어서자마자 핑크 컬러가 눈에 띈다. 클럽에서는 흔치 않은 핑크를 메인 컬러로 선정한 이유가 있을까.

우리의 늦은 밤에는 블랙 컬러가 빠질 수 없지만 어두운 클럽 대신 블랙과 밝은 클럽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합을 만들고 싶었다. 마젠타 핑크(Magenta Pink)와 시안(Cyan), 그리고 옐로우(Yellow)로 이루어진 빛의 삼원색을 활용했다. 야피의 댄스플로어와 바는 마젠타 핑크, 댄스플로어 우측의 룸은 시안, 조명은 옐로우. 세 가지 색을 섞으면 블랙이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밝은 클럽이며 내 바람대로 블랙을 칠할 필요도 없었다.

‘Home of the Free’라는 슬로건이 매력적이다. 야피의 입장 정책 혹은 지향하는 분위기와도 연관되는지.

클럽은 매일 밤 신(Scene) 내의 다양한 사람들이 섞이는 곳이다. 마치 옛날의 공원과 극장처럼 오늘날의 클럽은 낯선 사람과 만나고 소통하는 장소의 역할을 한다. 특히 서울 신의 지형은 더욱 독특한데, 우리는 하룻밤에 두세 군데의 클럽을 다니기도 하지 않나. ‘서울 신의 주말’이라는 시공간이 하나의 거대한 페스티벌이라면 야피는 도시와 융화되면서도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하나의 스테이지라고 할 수 있겠다.

야피는 랜덤한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섞이며 다양성을 포용하는 공간을 지향한다. 야피를 찾는 DJ와 오디언스에게 클럽의 정체성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방향성을 나타낼 슬로건이 필요했다. 다양한 아티스트의 고유한 음악 스타일, 유연하게 음악을 받아들이는 크라우드, 무엇보다 도시 안에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 나와는 다른 존재들에 대한 이해. 이처럼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추려서 지금의 슬로건이 탄생했다.

스페인 출신 디제이 카파블랑카(Capablanca)가 로고 및 아트워크 디자인을 담당했다. 야피에서 자주 플레잉하기도 하는데, 그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휴고 카파블랑카(Hugo Capablanca)와는 8년 전쯤 베를린에서 만났다. 베를린의 퀴어 파티 ‘칵테일 드 아모레(Cocktail D’amore)’에 함께 갔는데 그때 휴고의 집에서 지냈다. 멕시코에서 사 온 벌레를 부엌에서 먹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카파블랑카는 레이블 ‘Discos Capablanca’의 수장으로, 베를린 신에서 오감 천재라고 불리는 뛰어난 아티스트다. 그를 만나기도 전부터 그의 음악은 물론 그가 하는 모든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팬이었다. 시작은 첫 번째 파티 포스터만 부탁할 예정이었지만, 어느새 2년 넘게 함께 작업하고 있다. 슬로건에 맞춘 야피의 로고도 그의 작품인데, 어떻게 보면 눈 같기도 하고 사람이 무지개를 들고 있는 모양으로 보이기도 한다.

디제이 라인업에 섬세한 큐레이션이 돋보인다. 이전에 파티 레이블을 운영하며 인연을 맺은 아티스트가 많으리라 생각되는데.

2009년부터 몽키 비즈니스(Monkey Business)를 시작했다. 지금은 사라진 콘트라(Contra)에서 하던 파티 레이블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원칙은 변함없다. 디스코, 하우스, 테크노, 미니멀 등 어떤 장르로 나뉘는 카테고리를 뛰어넘어 그 이상으로 자신만의 특색과 색깔이 선명한 아티스트를 부킹할 것. 치다(CHIDA), 카파블랑카(Capablanca), 톰 오브 잉글랜드(Tom of England) 등, 오로지 이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사운드를 지닌 ‘원 앤 온리’ 아티스트 말이다.

야피는 빅 네임이 아니더라도 확실하게 포커스를 줘야 할 디제이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 어떤 디제이를 부킹하든 오디언스가 신뢰하고 올 수 있는 클럽이 되고 싶다. 그동안 서울의 그 어떤 클럽도 내가 지향하는 음악적 성향을 가진 곳이 나타나지 않아 답답하기도 했다. 이는 오히려 야피를 오픈하는 데에 큰 원동력이 되었다.

내부의 댄스플로어에는 거대한 펑션원 스피커가 있고, 음악을 즐기면서도 주변의 사람들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바, 루프탑 등 다양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사운드 세팅과 공간 조성의 포인트를 알려준다면.

팬데믹 동안 집에서 오디오를 사들이고 해외의 여러 포럼을 뒤지면서 사운드에 관해 공부했다. 그때 알게 된 그럴싸한 가설이 있다. 열 시간 이상 100dB이 넘는 볼륨을 유지하면서 적절한 음압으로 귀의 피로도를 낮추고 선명한 사운드를 낼 수 있는 공간 세팅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가설을 클럽에 적용해 보고 싶었던 것이 첫 번째다.

그래서 야피의 공간은 명확한 사운드를 전달하는 데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다. 음악을 듣다가 쉬고 싶거나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댄스플로어 우측의 룸을 사용하면 된다. 최근에는 바 맞은편에도 우드 소재로 앉을 공간을 만들었다. 이 공간은 빛의 삼원색 중 노란색이 될 예정이다.

루프탑은 ‘베란다(Veranda)’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는 페스티벌이 아닌 이상 야외에서 틀 일이 많이 없다. 베란다가 클럽 셀렉션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날씨가 좋을 때에는 베란다에서 아트 시네마를 진행할 예정이다.

야피에서 열리는 재미난 파티 시리즈를 소개해달라.

디제이 카이퍼(Kyper)가 진행하는 ‘롤 댓 비트(Roll That Beat)’라는 하우스 파티를 소개하고 싶다. 프레드 피(Fred P), 소냐 무니어(Sonja Moonear), 토모키 타무라(Tomoki Tamura), 사토시 오쓰키(Satoshi Otsuki), 이상순(Leesangsoon) 등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파티로, 특유의 매료되는 리듬과 고유한 바이브는 야피를 대표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또한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기보다는 야피의 지향성에 맞는 파티를 열고자 한다. 예를 들어 신예 로컬 디제이들이 만든 차차 맘보(Cha Cha Mambo)라는 디스코 파티를 야피에서 진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야피는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알려달라.

아무도 야피를 기억할 필요는 없다. 다만 십수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어느 밤, 어느 순간의 배경에는 짙은 핑크색이 깔려있기를.

NYAPI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 진영
Photographer | 전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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