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7일, 연주자이자 프로듀서, 엔지니어로 활동한 스티브 알비니(Steve Albini)가 향년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음악 프로덕션 역사 전체를 둘러보아도, 스티브 알비니만큼 존경과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은 많지 않다. 비할 데 없는 능력과 비전을 가진 소리의 건축가 스티브 알비니는 녹음실이나 무대 안에서의 영향력을 아득히 뛰어넘어, 음악에 큰 유산을 남겼다.
그 유산은 40년가량 제작해 온 수많은 소리로 남아있다. 수십 년간 꾸준히 여러 모습으로 음악과 문화에 헌신했던 알비니를 기리고자, 그가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펑크 신(Scene)에서 활동했던 시기에서부터, 직접 설립한 일렉트리컬 오디오(Electrical Audio) 스튜디오의 프로듀서이자 엔지니어로 활약해 온 시기까지의 세월을 톺아보고자 한다.
목록은 알비니가 본격적으로 음악 작업을 시작한 1980년대부터, 올해까지의 음반을 모았다. 시기별로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앨범과, 프로듀서, 엔지니어로서 알비니의 유산을 대표하는 음반을 선정했다. 목록에 포함된 앨범의 표기 연도는 녹음 시기가 아닌 발매 시기를 기준으로 삼았고 발매 연도순으로 나열했다. 특정 아티스트의 앨범을 여럿 녹음하기도 하였지만, 한번 선정한 아티스트는 재선정하지 않았다.
1980′
Big Black [Atomizer] – 1986
스티브 알비니가 1982년도부터 1987년도까지 활동했던 밴드 빅 블랙(Big Black)의 첫 LP이자 대표작 [Atomizer]는 알비니가 펑크 밴드로서 추구했던 소리를 충실히 담아낸 수작이다. 수록곡 “Kerosene”은 알비니의 이상을 훌륭히 담아낸다. 쨍한 기타 소리와 거대한 짐승처럼 몰아치는 드럼, 그리고 기탄없는 가사는 80년대 미국 펑크 정신의 한 첨단을 보여준다. [Atomizer]와 1년 간격으로 발매된 2집 [Songs About Fucking]을 포함, 빅 블랙의 음반들은 음향적 측면과 장르적 측면에서 인디, 언더그라운드 록 음악의 변혁에 앞장섰다.
Pixies [Surfer Rosa] – 1988
알비니가 본격적으로 프로듀서, 엔지니어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앨범이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국 인디 록 밴드 픽시스(Pixies)의 데뷔 LP. 알비니가 제작을 도맡게 된 뒷배경에는 당시 픽시스의 매니저였던 캔 고스(Ken Goes)와 픽시스의 첫 미니 앨범을 제작했던 프로듀서 게리 스미스(Gary Smith)와의 갈등이 있었다. 그렇게 고스는 새로운 프로듀서를 찾던 중 알비니를 소개받게 된다. 알비니는 실험적인 녹음 방식을 통해 픽시스 특유의 너덜너덜한 드럼 소리와 보컬 소리를 만들었다. 일례로 “Where Is My Mind?”의 녹음 과정 중 스튜디오 화장실로 장비를 옮겨 보다 에코를 극대화했다는 일화가 있다.
Slint [Tweez] – 1989
포스트 록의 태동기, 슬린트(Slint)는 짧은 활동 시기에도 불구하고 록 역사에 새로운 반향을 불러일으킨 밴드로 알려져 있다. [Tweez]는 슬린트의 데뷔 앨범으로, 발매는 1989년이지만, 녹음은 1987년에 이루어졌다. 녹음 당시 밴드 맴버 모두 10대였고, 앨범 녹음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한다. 알비니 또한 픽시스의 앨범을 녹음하기 전이었기에 프로듀서로서의 유명세는 없었다. 그러나 슬린트 맴버가 알비니가 활동했던 빅 블랙의 팬이었기에 그를 찾아 녹음을 부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알비니는 수많은 밴드의 데뷔 앨범을 녹음했는데, 이는 그가 직접 참여한 밴드의 영향력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음악 산업을 바라보는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슬린트의 첫 앨범이 생겨났다.
1990′
The Breeders [Pod] – 1990
픽시스의 베이시스트 킴 딜(Kim Deal)이 1989년 결성한 밴드 브리더스(The Breeders)는 킴이 밴드에서 더욱 주체적인 역할을 맡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됐다. 알비니는 브리더스의 초기 맴버 결성에도 참여했다. 킴이 드러머를 구하던 중 알비니가 슬린트의 드러머였던 브릿 월포드(Britt Walford)를 추천했고, 그는 데뷔 앨범에 참여하게 된다. [Pod]는 픽시스에서부터 이어졌던 킴과 알비니의 협업이 더욱 날개를 펼친 앨범으로 평가된다. 앨범은 훗날 알비니가 자신이 엔지니어링한 최고의 앨범 중 하나라고 회상하기도 한다. 커트 코베인(Kurt Cobain) 또한 [Pod]를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 꼽았는데, 앨범은 이후 너바나(Nirvana)에 사운드를 만드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끼쳤다.
Whitehouse [Thank Your Lucky Stars] – 1990
화이트하우스(Whitehouse)는 노이즈, 실험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끈 2인조 그룹이다. [Thank Your Lucky Stars]는 그들의 10번째 정규 앨범으로, 파괴적인 소음과 논란거리를 서슴없이 주제로 삼는 가사를 포함, 앨범 내내 두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앨범은 1988년에 녹음되었는데, 이는 초기부터 알비니가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는 프로듀싱을 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알비니는 앨범의 수록곡이 각각 다른 헤비메탈 음악들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말하며, 전자 음악에 헤비메탈 음악의 프로듀싱을 더해 화이트하우스 특유의 괴기스러운 소리를 극대화했다.
The Jesus Lizard [Goat] – 1991
지저스 리저드(The Jesus Lizard)는 9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노이즈 록 밴드이다. 1987년부터 1999년까지 총 6장의 앨범을 발매했는데, 대부분의 앨범을 알비니와 함께 작업했다. 지저스 리저드는 보컬 데이비드 요우(David Yow)의 광적인 퍼포먼스가 특징적인데, 알비니는 이를 연주에 잘 녹여내기 위해 일반적인 녹음 방식보다 보컬의 소리를 작게 담아낸다. 재미있게도, 이러한 녹음 방식은 요우의 목소리에 입마개를 씌운 것처럼 들리게 만들어 사운드에 개성을 더했다. [Goat]는 지저스 리저드의 2집으로, 90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노이즈 록 앨범이기도 하다.
PJ Harvey [Rid of Me] – 1993
[Rid of Me]는 영국 싱어송라이터 PJ 하비(PJ Harvey)의 소포모어 앨범으로 데뷔 앨범 [Dry]에 이어 그를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반열에 오르게 한 시대의 역작이다. 하비는 초기에 얼터너티브 록에 영향을 받아 보다 거친 기타 소리를 추구했는데, [Rid of Me]에서는, 이미 거친 소리에 일가견이 있었던 알비니와의 협업으로 하비와 알비니 둘 다 결과물에 만족했던 앨범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앨범의 엄청난 비평적 성공과는 별개로, 앨범의 엔지니어링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렸다. 부정적인 의견은 대부분 하비의 보컬이 악기에 묻힌다는 것. 그러나 앞서 지저스 리저드의 데이비드 요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비의 보컬은 앨범에 걸쳐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그 매력을 배가했다.
Nirvana [In Utero] – 1993
[In Utero]는 너바나의 마지막 앨범 정규 앨범이다. 앨범을 제작하기에 앞서 프로듀서를 선정할 시, 너바나는 이전 앨범 [Nevermind]보다 복잡하고, 거친 소리를 찾고자 알비니를 고용한다. 알비니가 이전 픽시스, 브리더스 앨범을 제작하며 보여준 프로듀서, 엔지니어로서의 역량이 너바나 맴버들의 눈에 띄었던 것. 알비니의 녹음 철학은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었고, 이는 [Nevermind]의 성공 이후 따라온 주변 소음을 차단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밴드의 이름값과 역작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감 아래에서 알비니는 전작과는 전혀 다른 결의 엔지니어링을 보여주며 [Nevermind]를 잇는 또 하나의 역작을 완성했다. 밴드는 앨범 발매 이후 1년 뒤 커트 코베인의 죽음을 겪으며, 1996년 공식 해체하게 되었고, [Nevermind]와 [In Utero]는 시대를 대표하는 앨범으로 남게 된다.
Gastr del Sol [Mirror Repair] – 1994
[Mirror Repair]는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그럽스(David Grubbs)가 결성한 포스트 록 밴드 가스트르 델 소울(Gastr del Sol)이 1994년 발매한 EP이다. 1993년 밴드는 변혁기를 겪었다. 초기 맴버였던 번디 브라운(Bundy Brown)과 존 맥엔타이어(John McEntire)가 토터즈(Tortoise)로 떠나고, 인디 음악, 아방가르드 음악의 거물 짐 오루크(Jim O’Rourke)가 합류하게 된 것. [Mirror Repair]은 맴버 변동 이후 발매한 첫 음반으로, 오루크가 이름을 펼치기 시작한 기록적인 음반으로도 알려져 있다. 알비니는 프로듀서, 엔지니어로 참여했으며, 밴드가 맴버 교체 이후 보다 전통 록의 색깔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록의 다양한 장르를 이미 다뤄보았던 그의 경력이 도움을 줄 수 있었다.
Shellac [At Action Park] – 1994
셸락(Shellac)은 알비니가 빅 블랙 활동 이후 1992년 결성한 3인조 밴드다. [At Action Park]는 셸락의 첫 정규 음반으로,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으며 노이즈 록과 매스 록[1]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앨범은 역동적인 그루브, 빅 블랙 시절보다 다채로워진 알비니의 기타 연주, 그리고 시니컬한 보컬의 뛰어난 조합으로 록 사운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At Action Park]가 그 본격적인 시작으로, 셸락은 시간을 두고 여러 앨범을 발매했다. 그중 가장 최근 발매된 앨범은 지난 5월 17일 발매된 [To All Trains]였는데, 이는 10년 만의 정규 앨범이자, 앞선 5월 8일 알비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직후였기에 더욱 아쉬움을 더한다. 그렇게 30년 넘게 유지해 오던 3인 체제는 무너졌지만, 드러머 토드 트레이너(Todd Trainer)와 베이시스트 밥 웨스턴(Bob Weston)의 무대는 알비니의 영혼과 함께 계속될 것이다.
Silver Apples [Beacon] – 1997
실버 애플(Silver Apples)은 뉴욕의 일렉트로닉 록 그룹으로 1960년대 후반 전설적인 사이키델릭 앨범 [Silver Apples]을 발매한 이후 긴 휴지기를 가졌었다. 첫 활동 시기로부터 대략 30년이 지난 이후 복귀를 알린 앨범이 [Beacon]이다. 긴 휴지기에도 불구하고 “I Have Known Love”와 같은 곡은 여전히 60년대의 향수를 자극했고, 80년대 비디오 게임에 영향을 받은 소리는 알비니의 프로듀싱을 거쳐 위트를 더하게 된다. 또한 이 앨범은 알비니가 설립한 녹음 스튜디오인 일렉트리컬 오디오(Electrical Audio)에서 녹음된 최초의 앨범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1997년에 설립된 일렉트리컬 오디오는 이후 알비니가 대부분의 앨범을 녹음한 공간이자,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함께한 공간이다.
Jimmy Page & Robert Plant [Walking into Clarksdale] – 1998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Jimmy Page)와 보컬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가 1994년 결성한 페이지 & 플랜트는 1980년 드러머 존 본햄(John Bonham)의 죽음으로 레드 제플린이 해체된 이후 밴드 맴버가 공식적으로 모여 음반 활동을 재개한 첫 그룹이다. 1998년 발매된 [Walking into Clarksdale]은 페이지 & 플랜트 활동의 마지막 앨범으로, 플랜트가 너바나의 [In Utero]에서 알비니가 보여준 역량에 감명을 받아 알비니를 프로듀서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앨범의 모든 곡은 싱글 테이크[2]로 녹음되었고, 페이지의 연주와 플랜트의 보컬은 레드 제플린 팬의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Neurosis [Times of Grace] – 1999
뉴로시스(Neurosis)는 포스트 메탈 밴드로, 메탈 장르에서 가장 실험적인 도전을 이어간 밴드다. 1999년 발매한 [Time of Grace]는 알비니와 뉴로시스가 함께 작업한 첫 앨범으로, 큰 힘을 들이지 않은 연주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게감이 일품이다. 또한 이 앨범에서는 알비니의 강점이 잘 드러나는데, 보다 자연스럽고, 정제되지 않은 소리를 최대한 유지하며 고유성을 더했던 것. 이는 알비니가 아날로그적인 녹음 방식을 고수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알비니는 소리를 과하게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녹음 기술을 사용해 얻고자 하는 소리를 찾아내는 걸 추구했다. 이러한 녹음 방식은 알비니가 많은 밴드와 긴 시간 동안 합을 맞추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뉴로시스 또한 [Time of Grace]를 시작으로 다수의 앨범을 알비니와 함께 작업하게 된다.
2000′
Don Caballero [American Don] – 2000
돈 카바예로(Don Caballero)의 네 번째 정규 앨범 [American Don]은 매스 록의 클래식으로 남아있다. 드러머 데이몬 체(Damon Che)의 정교한 박자 계산을 필두로 다양하게 쪼개지는 드럼과 그 리듬을 물 흐르듯이 잇는 기타리스트 이안 윌리엄스(Ian Williams)의 연주는 [American Don]이 매스 록의 정점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내리기에 무리가 없다. 또한 해당 앨범은 기타리스트 윌리엄스와 당시 베이시스트를 맡았던 에릭 엠(Eric Emm)이 참여한 마지막 앨범으로 더욱 그 가치가 높다. 매스 록은 자주 바뀌는 박자 때문에 재즈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알비니가 스스로 재즈를 좋아해 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와닿는 게 없어 실패했다는 인터뷰를 남겼던 것과는 달리 매스 록의 프로듀싱에 있어서는 본인 밴드인 셸락과 돈 카바예로의 다른 앨범들도 훌륭히 작업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Low [Things We Lost in the Fire] – 2001
슬로우 코어[3]와 인디 록을 사랑한다면 지나칠 수 없는 밴드 로우(Low)의 걸작 [Things We Lost in the Fire]는 밴드의 다섯 번째 앨범으로, 1994년, 밴드 결성 이후 네 번의 앨범을 통해 보여주었던 색깔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다. 멜랑콜리하면서도 따뜻한 질감의 소리는 울창한 숲처럼 공간을 감싸고, 듣는 경험 자체로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알비니는 로우와 함께 이전 EP 1장과, LP 1장을 같이 작업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밴드의 강점을 사로잡는 동시에 결점 없는 프로듀싱을 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난 2022년, 밴드의 목소리이자 드러머, 로우의 전부였던 미미 파커(Mimi Parker)가 암 투병 끝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30년에 다다르는 세월 간 꾸준히 가슴을 울리는 음악을 세상에 나누어 준 그의 유산에 경의를 표한다.
Godspeed You! Black Emperor [Yanqui U.X.O.] – 2002
캐나다의 포스트 록 밴드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Godspeed You! Black Emperor)는 포스트 록 추종자에게는 전설적인 존재다. 2000년 앨범[Lift Your Skinny Fists Like Antennas to Heaven]은 발매 당시에도 찬사를 받았지만, 지금 돌아봐도 장르를 정의하는 명반에 반열에 오르기에 무리 없을 정도로, 밴드의 강한 지지층을 만들어 낸 앨범임이 틀림없다. 반면 후속 앨범인 [Yanqui U.X.O.]의 경우 평가가 갈렸는데, 부정적인 의견의 경우 밴드가 전작의 성공으로 더 도전적인 음악적 시도를 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의견의 경우, 그러한 모호함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이 훌륭했다고 평가했고, 알비니는 밴드 맴버들이 뿜어내는 실험적인 에너지에서 사납고 뾰족한 감정들을 짜내어 앨범에 녹여내는 데에 일조했다.
Songs: Ohia [The Magnolia Electric Co.] – 2003
[The Magnolia Electric Co.]는 인디 록, 아메리카나[4] 음악가 제이슨 몰리나(Jason Molina)의 프로젝트 송즈 오하이아(Songs: Ohia)의 7집이자 해당 활동명으로서의 마지막 앨범이다. 해당 앨범은 이전까지 송즈 오하이아가 보여주었던 사운드와는 다른 방향성을 보여주며, 해당 앨범 출시 이후부터 매그놀리아 일렉트릭 컴퍼니(Magnolia Electric Co.)로 활동명을 전환할 것의 암시가 되기도 했다. 송즈 오하이아는 몰리나의 팬에게 그의 최고작으로 기억되는데, 록에 기반을 둔 컨트리 음악의 변주와 아메리카나의 기묘한 조합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압도적인 것이 특징이다. 알비니는 해당 앨범 이후로도 몰리나와 꾸준히 작업해 왔으며, 컨트리, 아메리카나 음악에 있어도 수작을 만들어내는 그의 역량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Joanna Newsom [Ys] – 2006
하프 연주자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조애나 뉴섬(Joanna Newsom)의 소포모어 앨범 [Ys]는 시대를 관통하는 명반이다. 뉴섬의 하프 연주와 그의 보컬은 알비니에 의해 녹음됐으며, 이전 가스트르 델 소울의 맴버로 소개했던 짐 오루크에 의해 마스터링됐다. 두 거장의 손길과 뉴섬의 뛰어난 퍼포먼스가 합쳐진 결과는 환상적이었다. 뉴섬의 세밀한 연주와 감정의 뉘앙스는 가슴을 쓸고 지나가고, 잔잔하게 밀려오는 오케스트라 소리와 미로 같은 멜로디는 그만 길을 잃게 만든다. 해당 앨범은 뉴섬을 시대적인 보컬리스트, 연주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했고, 이후로도 꾸준히 역작을 만들며 포크, 바로크 음악 등지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뉴섬은 알비니의 죽음 이후 한 공연에서 그를 추모하는 하프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Mono [Hymn to the Immortal Wind] – 2009
모노(Mono)는 일본의 포스트 록 밴드로 잘 알려져 있다. 알비니는 커리어에 걸쳐 멜트 바나나(Melt-Banana) 등과 같은 많은 일본 밴드와도 작업을 해왔다. 모노 또한 그중 하나인데, 모노는 알비니와 가장 꾸준히 작업했던 밴드로, 알비니와 각별한 친분을 유지해 온 밴드이기도 하다. [Hymn to the Immortal Wind]는 모노의 5집으로, 알비니와 모노의 협업이 가장 빛난 앨범이다. 알비니와 모노가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게 된 배경에는 알비니가 테이프를 사용해 녹음하는 방식에 있었다. 알비니는 테이프를 사용한 녹음 방식에서 모노가 추구했던 진실한 감정을 잘 담아내었고, “Silent Flight, Sleeping Dawn”과 같은 곡에서 깊은 울림을 주기도 했다. 모노 역시 알비니의 죽음 이후 그를 기리는 헌사를 남겼으며, 그들의 추억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2010′
The Ex [Catch My Shoe] – 2010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언더그라운드 펑크 밴드 디 익스(The Ex)는 무정부주의를 주장하는 그들의 정치적 입장과 함께 그를 반영하는 진취적인 음악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디 익스 역시 오랜 시간 알비니와 함께 작업을 해온 밴드로서, 알비니의 전공 분야라 할 수 있는 펑크 정신의 진면모를 잘 보여준다. 1979년부터 현재까지 왕성한 작업을 해온 밴드는 1998년도에 알비니와의 작업을 시작으로 다수의 앨범을 녹음했다. [Catch My Shoe]는 밴드가 긴 세월 간 함께 작업해 왔던 소닉 유스(Sonic Youth)와 토터즈 같은 밴드의 개성을 녹여 구성한 흥미로운 앨범이다. 또한 밴드의 원년 보컬 G.W. 석(Sok)과의 이별 후 새로운 프런트맨 아놀드 드 보어(Arnold de Boer)가 참여한 첫 앨범으로 밴드의 긴 세월 중 전환기를 맞이하는 앨범으로서도 그 중요도가 있다.
Cloud Nothings [Attack on Memory] – 2012
클라우드 나띵스(Could Nothings)는 결성 초기엔 비교적 귀여운, 로 파이[5], 노이즈 팝 음악을 만들었지만, 2012년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딜런 발디(Dylan Baldi)를 영입한 이후 음악적 전환을 맞이했다. [Attack on Memory]는 밴드가 기존에 지녔던 팝, 이모[6] 성향과 함께 노이즈 록이 결합되며 중독성 있으면서도 속도감이 더해져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수작으로 남아있다. 밴드의 사운드적 전환에 있어서는 알비니의 프로듀싱도 한몫했는데, 알비니는 밴드가 새로운 소리를 찾게 최대한 자유도를 주면서도, 너무 눈에 띄는 소리는 잡아내는 방식으로 프로듀싱을 진행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앨범은 밴드의 훌륭한 전환기가 되었고, 이후 알비니와 협업하며 2020년 [The Black Hole Understands]과 같은 수작을 한 번 더 만들게 된다.
Ben Frost [The Centre Cannot Hold] – 2017
벤 프로스트(Ben Frost)는 호주의 전자음악가이자 실험 음악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알비니는 전자음악을 싫어한다는 오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2015년 알비니가 자신이 얼마나 클럽 음악을 혐오하는지에 대한 이메일을 써 이를 광고판에 붙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꾸로 알비니는 이후로 전자음악 애호가에게도 호감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싫어했던 전자음악의 종류와 이유가 전자음악을 진정으로 애호했던 사람들에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알비니가 이메일에 자신이 좋아하는 전자 음악가들은 함께 작업했던 화이트노이즈를 포함, 이아니스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와 같은 전자음악의 전설이라고 말했기 때문. 그 덕분인지, 알비니는 프로스트와의 실험적인 작업도 훌륭히 해냈다. 전자음악과 노이즈의 실험적인 결합이 담긴 앨범은 알비니가 참여했던 가장 실험적인 앨범 중 하나로 꼽힌다.
Sunn O))) [Life Metal] – 2019
썬 오(Sunn O))))는 미국의 메탈 밴드로, 드론[7]과 앰비언트 음악을 메탈에 접목해 느리지만 무거운 소리와 함께 독특한 비주얼로도 유명하다. 썬 오가 2019년에 발매한 [Life Metal]과 [Pyroclasts]는 모두 알비니와 함께했는데, 곡당 10분에서 20분을 달리는 긴 호흡을 가졌음에도 알비니가 고수했던 아날로그 테이프 녹음 방식으로 제작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는 이 앨범을 통해 알비니의 스펙트럼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다. 또한 1998년부터 활동해 온 밴드는, 당시 20주년을 맞이해 그들의 여정을 돌아보고 싶었던 마음과, 결혼 이후 아이를 가짐으로서 삶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난 이후의 심정을 앨범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알비니의 프로듀싱은 썬 오 음악의 질감과 구조를 잘 포착했고 이에 묻어나오는 감정을 훌륭한 방식으로 증폭해 냈다.
2020′
Black Midi [live at electric audio (Live Album)] – 2022
블랙 미디(Black Midi)는 혜성처럼 등장한 영국의 록 밴드로 2020년대에 들어와서는 뛰어난 음악성과 연주로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밴드 중 하나다. 해당 앨범은 블랙 미디의 첫 라이브 스튜디오 앨범으로 총 6개의 곡을 담고 있다. 알비니가 1997년 설립한 일렉트리컬 오디오 녹음 스튜디오는 25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앨범을 녹음하며 이젠 세계의 여타 전설적인 녹음실들, 뉴욕의 일렉트릭 레이디 스튜디오(Electric Lady)나 런던의 애비 로드 스튜디오(Abby Road)처럼 아티스트에게는 전설적인 장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당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블랙 미디의 첫 라이브 스튜디오 앨범 녹음 장소가 알비니의 스튜디오였다는 데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Liturgy [93696] – 2023
초월적 블랙 메탈[8]의 선두 주자 리터지(Liturgy)의 최신 발매작 [93696]은 밴드의 6번째 정규 앨범으로, 리터지가 자신들의 음악 철학을 가장 철저하게 반영한 앨범 기획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83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하엘라 헌트-헨드릭스(Haela Hunt-Hendrix)의 울부짖음은 시간을 밀도 있게 채우고, 2011년 [Aesthethica]의 발매부터 시작되었던 여정의 이정표를 찍는다. 밴드는 보다 실황 녹음과 같은 소리를 담기 위해 알비니와 함께 작업했다고 밝혔다. 앨범은 팬데믹 기간에 녹음되었는데, 덕분에 밴드는 많은 연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완성된 앨범의 완성도는 지금껏 리터지가 발매했던 그 어떤 앨범보다 훌륭한 형태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1962년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서 태어난 그는, 저널리즘을 공부하러 시카고로 떠난 이후,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펑크 신을 거쳐, 일렉트리컬 오디오를 설립하고, 1,000개의 음반을 녹음하기까지 수십 년간 꾸준히 그의 능력이 닿는 한 여러 모습으로 음악과 문화에 헌신했다. 또한, 그는 생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착취적인 음악 산업의 관행을 맹렬히 비판해 온 비평가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음반 산업의 규율과 기준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던져왔다. 그는 그가 일해온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과한 보수는 받지 않기도 했고, 이후 그가 직접 설립한 녹음 스튜디오인 일렉트리컬 오디오에서는 그의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낮은 녹음료를 책정하며 장르와 밴드의 유명세를 가리지 않는 작업 철학을 고수해 왔다.
2024년, 알비니의 여정은 마무리됐지만, 그의 유산은 또 다른 새로운 흐름을 만들며, 록 음악과 문화 안에서 울려 퍼질 것이다.
이미지 출처 │Apple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