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I can’t dance, I don’t want to be part of your revolution.”
엠마 골드만(Emma Goldman), 아나키스트 정치 활동가
내가 춤을 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2024년 12월 14일 토요일, 국회의원 204명의 찬성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2차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여의도 일대에는 “다시 만난 세계”, “Next Level”, “오리날다”, “나는 나비”, “그대에게” 등 모두가 따라 부를 수 있는 케이팝이 하루종일 시민들의 환호와 함께 메아리쳤다. 이처럼 음악은 사람들을 울고 웃게 만들면서 단결을 이끄는 강력한 도구였다.
표결을 앞두고 본격적인 집회가 시작하기 전, 이른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는 여의도공원 한쪽에는 디제이 덱 앞에 모여 춤을 추는 한 무리가 있었다. 아직 지지 않은 단풍잎 사이로 화난 애시드 스마일리가 그려진 ‘Rave Resistance’ 깃발이 힘차게 나부꼈다. 테크노를 비롯한 일렉트로, 브레이크비트, 노이즈 등 다양한 전자음악 장르와 “Killing in the Name of”, “Meet Her at Loveparade”, “Firestarter” 등 파워풀한 트랙이 울려 퍼졌다. 음악과 춤은 집회라는 새로운 형태로 저항과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그 속에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춤을 추었다. 한 손에는 피켓을 들고서 마치 널을 뛰는 것처럼 높고 가벼운 스텝을 밟았다. 함께 내뿜는 에너지가 공명하듯 디제이 덱 뒤로 지나가는 시민들과 마주 보며 춤을 이어갔다. 여의도공원을 통해 집회로 향하던 시민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호기심 어린 눈길로 현장을 살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미소를 짓는 사람부터, 관심을 보이며 다가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촬영해 가는 어르신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정치와 문화가 맞닿아 독특한 교차점을 만들어낸 “집회 형태: 레이브(Rave Resistance)”의 주최자, 문기(Moon Ki)와 함께 이 새로운 움직임의 의도와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연희동에 살고 있고 전자음악 관련하여 이것저것 만들고 있는 정문기라고 한다. VISLA FM에서 ‘Moon Ki의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쇼를 격월로 진행하고 있다.
“집회 형태: 레이브”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기획에 영향을 준 사례가 있는가.
12월 7일, 1차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날 집회에 방문했다. 그날 메인 무대의 공연 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참여를 보게 되었다. 퍼커션을 들고 온 분들이나 징을 치며 다니는 할아버지, 그리고 응원봉과 깃발이 가득한 집회를 보면서 영감을 받았다.
친구와 집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이런 것 하는 사람들인데 전자음악과 레이브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아이디어가 툭 던져졌다. 레퍼런스 조사를 하면서 예전에 읽었던 VISLA의 기사 중 ‘A100 Wegbassen!’과 ‘시위와 팬데믹, 디트로이트 테크노’를 참조했다. 이런 걸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재확인하며 실행할 용기를 얻었다. 빠르게 발전시켜서 바로 토요일에 진행했지.
KBS 본관 맞은편 여의도공원의 야트막한 공터에서 진행했다. 장소를 선정한 기준은 무엇이었나.
국회대로와 의사당대로는 메인 무대가 있기 때문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진행하고자 했다. 장비를 옮겨야 하니 교통도 고려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소리가 넘치지 않는 적절한 정도의 노이즈가 되기를 바랐다. 마침 1차 집회 당시 KBS 본관 앞에서 예술인 행동 집회가 열리고 있더라. 이곳은 접근성이 좋은 편이고, 배후에 광장을 두고 있어 혹여나 민원 문제로 이동해야 할 상황까지 고려하여 택했다.
행사 당일 구글 독스(Google Docs)로 상황을 공지하는 독특한 방식을 택했는데.
당일에 장비를 가지고 꾸리기까지 반신반의하는 면이 있었다. 위치도 바뀔 수 있었고 디제이명도 숨길까 생각했다. 본디 레이브는 불법과 비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매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번에는 굳이 흠집 잡힐 만한 구석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90년대의 일리걸 레이브(illegal rave)는 음성사서함을 들으며 어두운 길을 헤매어 찾아갔다고 하지 않나. 그런 비밀스러운 기믹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다. 진행하다 보니 우리가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을 숨길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구글 독스로 위치를 공지하고 디제이명은 플라이어 이미지에 함께 올렸다.
뜻을 함께 한 동료 디제이들은 누구이며, 이들은 어떻게 모였는가.
아렉시보(Arexibo), 님노이(NIMNOI), 파시아(Faacia), 노아(NOA), TMC가 나와 뜻을 함께 했다. 계엄령 이후 SNS에 정치적으로 활발하게 의견을 올려준 친구들이 먼저 생각나 섭외를 시작했다. “집회 형태: 레이브” 예고문을 올렸을 때 댓글로 참여 의사를 밝힌 친구도 있고, 이런 게 너무 필요했다고 DM을 주자마자 내가 낚아챈 친구도 있다.
인터내셔널(The Internatiiional)이 플라이어 이미지, 현수막, 깃발을 후원했는데 이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집회 형태: 레이브”만 적어 개인 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올리자마자, 2dfx 디제이 워크숍으로 알게 된 인터내셔널의 임솔님이 깃발을 후원해도 되냐고 DM을 주셨다. 그날 밤, 화난 애시드 스마일리가 그려진 강렬한 플라이어 이미지를 제작해 전송해 주셨고, 시위 전날에 깃발을 수령했다. 깃발은 예상보다 큰 사이즈로 제작되어 현장에서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임팩트가 확실한, 통 큰 지원이었다.
준비 과정 혹은 집회 도중에 애로사항이 있었나.
위치 선정에 관한 걱정은 진행하면서 자연스레 해결됐고 시간은 약간 변동이 있었다. 탄핵 표결 시간이 정확히 나오지 않아 본래는 17시에 끝내기로 했으나, 아렉시보가 3시부터 총궐기를 시작한다는 업데이트를 전해주며 15시에 일찍 종료하고 총궐기로 합세하는 방향을 제안했다. 우리는 동떨어진 레이브가 아니라 뜻을 같이 하는 의미였으니 이게 맞았다고 생각한다.
한편, 진행 중에 ‘탄핵 반대’라고 써 붙인 빨간색 복장의 남성 두 명이 덱 쪽으로 다가와 팔을 교차해 X 사인을 보내더라. 내가 빨간색 목도리와 신발을 착용했으니, 아마 같은 편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르지. 사실 빨강과 파랑은 보수와 진보 진영에서 색이 뒤바뀐 적도 있어서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치적 입장을 떠나 이런 무례한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해 바로 내보냈다. 그럼에도 정치적 차이가 이렇게 직접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는 모습을 처음 마주하니,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현장의 분위기는 어떠했는가. 또한 3시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
총궐기가 시작되는 3시가 가까워질수록 유동 인구가 많아졌다. 여의도공원 산책로를 지나가다가 유입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할아버지도 와서 춤추고 가시고, 아기도 구경하고 가고, 남녀노소 즐기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조성되어 좋았다. 요새 한국에서도 이색적인 장소에서 열리는 레이브와 파티가 많지만 이 또한 진귀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연령대와 성별, 취향이 다른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레이브의 중요한 기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날씨와 햇살이 좋았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디제이를 바라보며 섰을 때 디제이 뒤로 마치 후광처럼 여의도공원의 나무에 걸린 햇살이 내리쬐더라. 데이 레이브를 좋아해서 그런지 시각적으로 정말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음악적으로도 친구들이 진지하게 임하며 각자의 색깔을 순수하게 보여준 점이 인상 깊었다. 저항 정신을 담아 정치적 메시지가 확실한 록 음악 위주의 셋을 준비한 친구도 있었고, 다른 친구들 역시 뚝심 있게 자신이 추구하는 전자음악 장르를 선보였다. 그 음악들이 어우러져 레이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에게 전자음악의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고 싶었다. 쉽게 풀어내기보다는 누군가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는 깊이를 유지한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이번 “집회 형태: 레이브”가 사람들에게 전달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처음엔 개인적인 분노와 답답함을 해소하려는 목적이었기에 큰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거창한 생각까지는 미처 닿지 않았다. 끝나고 나서 되돌아보니 지나가면서 엄지를 날리거나, 플로어로 들어와 함께 춤을 춰주신 분들이 낯선 문화를 접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이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사회의 구성원이구나’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면 좋겠다.
한 번의 참여로 이 문화에 대한 이해가 단박에 깊어지거나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찾게 될 가능성은 적겠지만, 잠깐의 상호작용이었음에도 우리 또한 여기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면 만족한다. 전자음악이나 서브컬처를 즐기던 사람들이라면 내가 그냥 후다닥 실행에 옮겨서 가려운 부분을 잠깐 긁어준 정도의 역할이 아닐까. 어떤 프로파간다를 전하기보다는 내 한풀이를 위해 잠시 플랫폼만 제공한 셈이다. 이곳에서 얻어간 경험과 사유는 참가자들의 몫으로 맡기고 싶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나이를 먹으면서 결국 집단의 문제는 정치로 해결하는 것 외에는 현재 뚜렷한 대안이 없다고 느낀다. 서울 시민이나 지역 주민으로서도 내가 정치에 연관되어 있음을 체감한다. 직·간접적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할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어떻게’에 대한 부분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게 답답했던 부분을 “집회 형태: 레이브”를 통해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다. 앞으로 실질적인 정치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는 더 고민해 봐야겠지. 한편으로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치적 참여를 떠나서 개인적으로도 나 스스로에게 파고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고 만들어 나가며 노력과 실험을 거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와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동료들, 친구들, 그리고 직접 아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그날 레이브의 구성원이 되었던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결과까지 또 몇 달을 마음 졸이게 되지 않을까. 지켜봐야지.
Editor | 진영
Photographer | 윤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