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 음악의 한 갈래로서 구분된 리듬 게임 음악, 그중에서도 일본의 리듬 게임을 과거부터 즐겨온 독자라면 그것들이 옛 일렉트로니카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코나미(KONAMI)의 ‘비트마니아(Beatmania)’를 통해 발전된 건반형 리듬 게임 플랫폼은 플레이어가 중심이 되는 DIY 포맷 ‘Be-Music Script’를 거쳐 언더그라운드 댄스 뮤직 장르와 함께 그들은 옛 일렉트로니카가 붐이었던 시기인 9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고유한 색채에 초점을 맞추어 댄스 음악을 번역해 왔다.
그렇게 그들만의 다양성을 어필하던 리듬 게임 음악 신(Scene), 그리고 이 음악에 깊이 빠져든 한 서양의 프로듀서가 있었다. 그 이름은 바로 포터 로빈슨(Porter Robinson). 이전부터 일본의 리듬 게임 오타쿠임을 밝혀온 그는 2017년, 새로운 이름의 프로젝트 버추얼 셀프(Virtual Self)를 자신의 안티테제로 삼으며 첫 EP [Virtual Self]를 발매한다. 90년대 리듬 게임 음악 신을 주도하던 1세대 프로듀서, 오노켄(Onoken)의 스타일을 빌려 완성한 버추얼 셀프의 더치 트랜스는 ‘네오 트랜스(Neo Trance)’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그의 트랙 “EON BREAK”는 발매 이후 즉시 상업 리듬 게임에 수록된다.
“EON BREAK” 발매 이후 7년의 시간이 흐른 2024년, 인터넷 뮤직 아카이브 커뮤니티, ‘레이트 유어 뮤직(Rate Your Music, 이하 RYM)’의 음악 게시판에서 하나의 글이 업로드된다. ‘하이퍼트랜스(Hypertrance)’라는 제목의 이 글은 프로듀서 ‘누포리(nuphory)’를 통해 발족된 하이퍼트랜스를 하나의 경향으로 묶어 설명한다. 본 글에 따르면, 하이퍼트랜스란 Y2K의 유행과 함께 떠오른 과거의 일렉트로니카, 그중에서도 유포릭(Euphoric)한 색을 지닌 트랜스를 드럼 앤 베이스 등 댄스 뮤직 장르와 엮어 내어 아련한 그 시절 디지털 풍화를 겪은 비디오 게임의 비주얼과 연관을 짓는 개념이었다.
그 시점에 앞서, 2020년대에 들어 동인 음악 신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던 프로듀서, 크레이븐(crayvxn)이 하이퍼트랜스를 주제 삼아 개인 앨범 [Ether Drive]를 발매했다. 라이트 블루의 색을 모티브로 한 그의 개인 앨범 [Ether Drive]는 “미지의 지평을 비추는 빛의 여행”이라는 캐치 프레이즈와 함께, 과거의 리듬 게임 음악을 견인하던 더치 트랜스와 현재 트랜스의 대안점을 모색하는 긴 여정을 내포한다. 2024년 4월 발매된 크레이븐의 개인 앨범, [Ether Drive]. 트랜스의 미래를 바라보는 본 앨범을 조명하기 위해 프로듀서 크레이븐과 대화를 나눴다.
간략한 소개 부탁한다.
트랜스와 테크노를 포함한 2000년대 댄스 뮤직 장르에 빠져 있는 26세 일본 출생 프로듀서 크레이븐이라고 한다. 8년 동안 음악을 만들어 왔다. 더불어 ‘파리엔(Pharien)’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했다. 한국 친구들 만나서 반가워!
2010년대 중반, 몬스터캣(Monstercat) 등의 레이블에서 트랙을 제작하며 이력을 넓혔다. 이때 작업에 대해 알려줄 수 있을까.
나는 2017년부터 곡을 제작했다. 몬스터캣과의 작업 이후, 스피닝 레코즈(Spinning Records)와 전속 계약을 체결한 건 2019년이었는데, 그 시기 리빌드 레코딩스(Revealed Recordings)와 암스테르담의 아르마다(Armada)에서도 제안이 들어와 몇 개의 트랙을 제공했다. 그 시기는 내 인생에 있어 굉장히 자극을 많이 받은 때였다. 아르마다를 통해 활동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고, 더욱 새로운 음악을 접했다. 여러 나라를 돌면서 공연도 진행했지. 코로나가 창궐하기 이전 시기는 내게 있어 정말 즐겁고 작업에 환기가 많이 된 때였다.
하지만 코로나가 유행하며 나 자신과 내 커리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행사가 중단되어 파리엔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공연을 펼치기가 어려웠다. 그때 발매됐던 대부분의 음악이 다분히 상업적이었고, 그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게 너무 지루했고 우울했기에 그 상황을 환기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파리엔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crayvx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거다. 이 이름은 음악에 진심으로 임하고 싶던 때의 다짐이 녹아들어있다.
도쿄와 오사카를 거점으로 성장한 베뉴, ‘서커스(Circus)’에서 당신의 이름을 봤다. 여러 이벤트에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무슨 장르를 기반으로 공연을 진행하는지 궁금하다.
주로 트랜스와 하이퍼트랜스, 테크노, 하드 그루브를 메인 장르로 공연을 진행하지만 때로는 트랩, 신스웨이브 트랙을 큐에 올릴 때도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트랜스와 테크노의 그루브가 정말 마음에 든다. 서커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서커스는 훌륭한 댄스 음악을 듣기에 정말 최적화된 베뉴다. 강한 베이스와 심장을 울리는 킥 사운드. 정말 좋은 사운드 시스템을 가졌다. 가끔 사운드의 결이 거칠다고 느낄 때가 있지만 귀에 거슬릴 정도로 시끄럽지는 않다. 또 공연하러 가고 싶어.
지난 2023년 발매한 트랙 “yumemaboroshi”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청아한 음색이 특징인 본 곡을 중심으로 1년 간 트랜스 작업에 몰두했는데, 이 트랙은 향후 앨범에 있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yumemaboroshi”는 내가 시도해보고 싶었던 트랜스 트랙이다. 유포릭한 무드에 레이블 안주나(Anjuna)에서 발매됐던 클래식한 트랜스의 스타일을 입혔다. 이 트랙을 기반으로 한 아직 공개하지 않은 미공개 트랜스 트랙이 몇 개 더 있는데, 내 앨범 [Ether Drive]가 좀 더 인기를 얻고 나면 그것들을 조금씩 공개하고 싶다.
앨범의 스타터 트랙, “arrival.” 같은 경우 트랜스 위에 브레이크를 곁들인다. 본인이 생각하는 하이퍼트랜스란 무엇일지 궁금한데.
“arrival.”은 테크노를 기반으로 제작된 트랜스 트랙이다. 이 트랙을 제작할 때, 독특한 요소가 담긴 트랙을 서두에 배치해 청취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었다. ‘Roland JP-8000’으로 연주한 트랜시한 브레이크다운은 그 자체로 유포릭하지만, 드롭 구간에서 묵직한 럼블 베이스와 함께 하드 테크노의 형태로 전환된다.
이처럼, 트랜스는 테크노와 강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장르가 뒤섞이며 마침내 새로운 것으로서 이어지는 그 순간. 그것이 바로 하이퍼트랜스를 설명하는 좋은 지점이 될 것 같아 “arrival.”을 앨범의 첫 순서에 배치하여 앨범의 방향을 드러냈다.
본 장르의 핵심이 되는 프로듀서 누포리가 앨범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그와의 작업은 어떤 비하인드가 있었나.
누포리와는 몇 년 전부터 친구처럼 지내던 사이였는데, 종종 우리는 하이퍼트랜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머지않아 내 개인 앨범 제작이 결정됐고, 앨범의 첫 트랙을 만들었을 때 이 앨범의 한 트랙을 그와 같이 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바로 제안을 했더니 흔쾌히 응해주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앨범의 네 번째 트랙 “hyperReality”는 누포리가 초안을 짰는데, 그 초안이 너무 내 취향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 위에 드랍과 브레이크를 얹었지. 인상 깊은 작업이었고, 훌륭한 트랙으로 나왔기에 내게는 굉장히 뜻깊은 경험이었다.
라이트 블루 계열의 컬러를 모티브로 콘셉트를 전개한 [Ether Drive]. 본 앨범의 비주얼에 대한 자세한 내막이 듣고 싶다.
앨범의 비주얼은 디지털 아트의 기조인 ‘메탈하트(Metalheart)’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다. 하지만 내 개인 앨범을 이미 “Ether Drive”라는 이름으로 결정했기에, 나는 이 이름에 걸맞을 법한 커버 아트를 만들어줄 아티스트를 찾고 있었다. 에테르를 떠올리면 푸른색을 연상하지 않나. 그래서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디자이너 사이키(XAIQI)에게 앨범의 비주얼을 맡아주기를 부탁했고, 그는 나에게 정말 훌륭한 그래픽을 만들어서 보내줬다.
여담이지만, 사이키가 내게 아트 디렉션의 방향에 대해 물어봤을 때, 내가 말 그대로 “에테르가 달리는 것처럼 만들자”라며 말했던 것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최근 발매한 트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먼저 동크(Donk)[1]부터, 개러지 그리고 베이스까지. 프로듀서로서 장르를 가리지 않는 것 같다.
나는 항상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내가 다양한 장르를 원하는 것만큼 팬들도 내 곡을 들으며 즐거워하길 바란다.
본인이 생각하는 동인 음악 신의 매력이란.
동인 음악 신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건 그들이 돈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전부터 나는 상업적인 음악 신에 오래 활동했기에 그들이 돈과 같은 무언가에 묶여 있지 않고 오로지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그렇기에 내가 동인 음악 신을 좋아할 수 있었고 내가 만들었던 음악들, 이를테면 ‘NEOY2K’ 그리고 하이퍼트랜스 같은 장르를 선보이게 될 자리를 동인 음악 신으로 정했던 것 같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열심히 동인 음악을 통해 활동하고 있으니, 계속해서 이 신을 지켜봐 달라.
어느덧 2025년이 다가왔는데, 새해 목표가 있다면 알려 달라. 그리고 한국에서도 당신을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2025년에는 트랜스, 테크노를 기반으로 한 프로듀서로서 내 음악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음악 작업에 매진하고 싶다. 동시에 게임 오디오, 스트리머, 가수로서도 활동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기에 모든 것에 도전할 생각이다. 올해 봄에 발매할 새로운 트랙들이 있는데,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나만큼 기대를 많이 해주길 바라고 있어. 아직 한국 공연 계획은 없지만, 친구들이 많아 한 번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 내 공연을 보러 오거나 ‘코미케(Comiket)’ 와도 같은 행사를 통해 내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 꼭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