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거의 노래: Hasegawa Yohei

지금까지 진행된 ‘디거의 노래’ 시리즈에는 저마다 부제목이 있는데, 이는 모두 디거가 직접 선정한 테마다. 각 디거마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음악을 선곡했고, 선곡을 통해 자신의 세계와 사유를 공유한 것이다. 사실 필자는 대상 섭외 때 각 디거가 소개할 장르를 어느 정도 예상하며 연락한다(그만큼 특정 장르에 특화된 디거들이 언제나 섭외 물망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의 디거, 하세가와 요헤이(Yohei Hasegawa)도 특정 장르에 특화된 디거라고 의식했고 장르를 예상하며 섭외한 디제이, 디거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한국에서 누구보다도 빠르고 심도 깊게 일본의 시티팝을 전파했다. 또한 그가 최근 발간한 서적 ‘도쿄 레코드 100’에서도 시티팝에 관한 애정이 확인되기도. 때문에 하세가와 요헤이라면 시티팝 장르를 특색있게 잘 소개할 수 있겠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주제에 변주를 주었으니, 이번 주제는 ‘나의 사이키델릭’이 되었다.

‘나의 사이키델릭’이라는 부제로 셀렉된 다섯 장의 레코드를 통해 하세가와 요헤이는 자신의 사적인 레코드 디깅 이야기를 펼쳤다. 일본에서의 어린 시절과 옆길로 새어 공부보다도 레코드에 더 큰 열정을 쏟았던 재수 학원 시절, 한국에 첫발을 내디딜 당시의 이야기 등 그의 원점과 탐구 정신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사이키델릭’이라는 주제에 묶여 있었다. 또한 ‘디깅’이란 새롭거나 희귀한 음악을 쫓는 게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고 몸을 이끄는 음악의 발견임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이번 인터뷰는 연말 특집은 딱히 아니지만, 레코드 컬렉터들에게만큼은 연말 덕담처럼 유익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느껴지길 바란다. 하단에서 인터뷰를 확인하자.

평소 당신의 DJ 스타일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장르는 시티팝과 AOR이다. 그럼에도 이번 주제를 사이키델릭으로 선정하여 의외였는데, 사이키델릭에는 어떤 애정을 갖고 있는가?

내가 한국에 오게 된 이유였다. 그뿐만 아니라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 내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 계속 움직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게서 가장 먼저 시티팝을 떠올리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결국 내 몸을 움직이게 만든 음악 장르는 사이키델릭이니까. 또 이 기획의 이름이 ‘디거의 노래’지 않나. 사이키델릭이 ‘디거’라는 단어에 좀 더 어울리는 주제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선정했다.

사이키델릭이 당신의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음악이라는 표현이 인상 깊다. 레코드 디거로서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말처럼 들리는데, 그러한 사이키델릭은 어떤 매력을 갖고 있나?

요즘 많은 젊은 친구들이 90년대 음악에 빠져 있다.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시대에 대한 환상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나는 90년대 음악을 모두 직접 경험하고 체험했다. 그러나 사이키델릭의 황금기인 60년대 후반은 내가 태어나기 전이기에, 나 또한 이 음악을 동시대에 경험하지 못했다. 내가 사이키델릭에 빠져 있는 이유 또한 경험하지 못한 시대에 관한 동경과 환상 때문인 것 같다.

LP가 음악 매체로 대세였던 시절에 유년기를 보낸 당신의 첫 번째 바이닐 컬렉팅은 무엇이었나? 특히 바이닐 레코드 시장 규모가 컸던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더욱 궁금한데.

초등학교 3학년 때 비틀스 1집 [Please Please Me]를 산 게 처음이었다. 그때는 TV나 광고에 비틀스가 많이 등장했으니까 용돈을 모아서 앨범을 산 것이다. 당시에는 CD가 없었고 카세트테이프 아니면 LP였는데, 카세트와 LP의 가격이 같았고, 할아버지가 사용하던 턴테이블도 있어서 LP를 선택했다. 다만 그때는 ‘컬렉팅’을 위해, 즉 바이닐을 모으겠다는 생각으로 구매한 건 아니었다.

감상을 위해 레코드를 구매했던 반면, 지금 당신은 DJ로 레코드를 수집하지 않나. 현재 레코드를 구매할 때 어떤 요소를 고려하는가?

‘듣고 싶은 음악’과 ‘클럽에서 틀면 좋을 음악’으로 나뉘는 것 같다. DJ를 하다 보니까 집에서 듣는 것과 클럽에서 트는 음악을 구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구매하는 과정에서 많은 갈등을 겪는다. 더군다나 요즘 바이닐 레코드 가격은 대체로 비싸니까 구매에 더욱 신중해진다. 요즘은 7인치를 주로 수집하고 있기도 하다.

7인치의 매력은?

일단 클럽에 가져가기가 편하다. 그리고 일본 DJ들, 특히 나이가 많은 DJ들이 7인치를 매우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노안 때문에 보기가 편하다는 농담 섞인 의견도 있다.

다시 이번 주제인 사이키델릭 이야기로 넘어와, 요즘도 사이키델릭 레코드를 많이 구매하는지?

요즘의 사이키델릭 레코드는 마스터피스가 재판되는 경우가 많아서 자주 구매하지는 않는다. 사실 록이라는 음악 장르가 젊음과 자유를 노래한다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보수적인 음악이기도 하다. 기본 요소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 내가 원하는 음악은 기존 록의 형식을 벗어나 상상치도 못한 뭔가가 나오는 것인데, 지금 재판되는 마스터피스들은 예전에 거의 모두 들어본 음악이다. 하지만 태국 등 동남아시아의 사이키델릭은 여전히 흥미롭다. 생각지도 못한 음악 요소나 장르가 융합되어 나오니까. 내가 한국에 오게 된 계기도 한국의 사이키델릭에서 의외성을 발견했었기 때문이다.

사이키델릭이 한국에 오게 된 계기와 연관된 주제라는 게 흥미롭다. 좀 더 이야기해 줄 수 있나?

일본에 있을 때 사이키델릭은 록 음악과 영미권의 전유물로, 먼 나라에만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때도 유럽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의 사이키델릭을 들었는데, 한국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있어서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때는 인터넷도 없고 잡지에 소개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 음악에 관하여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매우 한정적이었다. 가끔 백화점 옥상에서 열리는 레코드 페어에서 한국 음악 레코드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 거기엔 트로트가 많았다. 국민가수 조용필 선생님도 NHK에 나와서 부르는 게 일본 엔카와 비슷한 트로트였으니, 당연히 한국에 록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레코드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어느 날 단골손님이 가게에 와서 한국이 최고라고 이야기하더라. 그러면서 카세트테이프를 건네며 한 번 들어보라고 했다. ‘신중현과 엽전들’과 ‘산울림’ 테이프를 녹음한 것이었다. 이를 듣고 바로 옆 나라인데도 몰랐던 사이키델릭의 존재에 깜짝 놀랐다. 특히 산울림의 경우는 엄청 사이키델릭한데 보컬의 목소리는 동요 같고 전자 오르간은 60년대 쓰던 것인데 녹음은 78년이라니. 인터넷이 없었으니까 레코드를 사지도 못하고 알아볼 수도 없어서, 무작정 한국을 방문해야 했다. 그래서 95년도에 왔다. 오직 디깅을 위해서였다.

그때 한국과 서울에서의 경험은 어땠나?

그때는 한국어도 못했고, 레코드숍이 어딨는지도 모르는데도 무작정 왔다. 당연히 스마트폰은 없었고, 지도에도 레코드숍 위치가 적혀있진 않아서, 그때 한국에서 경험한 모든 순간이 디깅이었던 것 같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김포공항에는 5호선이 없었고 비행기에 내리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왔다. 지금은 오는 길에 아파트와 고층 건물이 빼곡하지만, 그때는 전부 공터였다. 이런 도시에 과연 레코드 가게가 있을 것인가 싶었는데, 광화문을 지나니까 레코드 가게들이 하나씩 보였다. 그곳을 하나씩 돌면서 레코드를 훑었다. 내가 ‘산울림’을 찾는다고 하니까 엄청 많이 꺼내주던데, 가게 주인은 내가 왜 그런 음악을 찾는 건지 신기해했다. 그들은 오히려 ‘킹 크림슨(King Crimson)’이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를 높게 봤지, 도대체 왜 가요를 사느냐고 물었다.

이렇게 구매하다 보니까 한국 록이 어떤 형태인지 보일 듯 말 듯 했는데, ‘신중현’, ‘김정미’ 등 가장 중요한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그때도 희소했기 때문에 구매가 어려웠다. 그런데 그날 밤에 밴드 ‘곱창전골’을 같이 했던 사토 유키에가 양손 가득 바이닐 봉투를 가지고 왔다. 어디서 샀냐고 물으니 황학동에서 샀다고 했다. 바이닐이 무한으로 있다고, 뒤져도 뒤져도 계속 나온다고, 자신이 이만큼 샀는데도 이건 일부의 일부의 일부라고 말했다. 그래서 다음날 같이 갔는데 청계천 골목 바닥에 레코드가 쫙 깔려 있더라. 레코드가 무한으로 있다는 말이 진짜구나 싶었다. 여기는 하루에 다 볼 수가 없었다.

당시 레코드를 구매하는 데 나름의 기준이 있었는데, 바로 레코드당 1만 원 이상은 절대로 구매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기준이 청계천을 둘러보면서 한계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김정미’와 ‘에드훠’ 레코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냐고 물으니까, ‘김정미’는 3만 원, ‘에드훠’는 5만 원은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때 물가로 3만 원이면 엄청나게 비싼 레코드였지만, 이걸 언제 보겠냐는 마음으로 3만 원을 줬다. 거기서 한국의 사이키델릭 명반을 아주 많이 구했다. 그런데 파는 사람에게서조차 한국 사이키델릭을 3만 원, 5만 원에 산다며 바보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들한테는 딱히 귀한 레코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나에게 ‘킹 크림슨’ 1집, ‘지미 헨드릭스’ 앨범 등을 맞교환하자고 했다. 그것들은 일본에 널려있는 판이라, 그다음에 한국 올 때 몇 장 구해다 주니까 가요 판을 박스째로 주더라.

Alex Spence – [Oar]

이제 오늘 주제에 걸맞은 바이닐을 한 장씩 소개받고자 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바이닐은?

‘알렉스 스펜스(Alex Spence)’의 [Oar]. 스펜스는 샌프란시스코의 주요한 사이키델릭 밴드들인 ‘퀵실버 메신저 서비스(Quicksilver Messenger Service)’,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 ‘모비 그레이프(Moby Grape)’ 등을 거쳐 간 인물이다. 이 앨범은 ‘콜롬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를 통해 발매되었음에도 홍보도 없었고, 녹음도 신경 써주지 않은, 거의 자주반에 가까운 앨범이다.

사이키델릭 뮤지션들에게는 ‘현타’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틀스’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녹음 후 다시 로큰롤로 회귀한 점, 그리고 ‘롤링 스톤스’도 사이키델릭에서 다시 블루스와 컨트리에 가까운 음악을 했던 것을 보았을 때 사이키델릭 뮤지션들에게 일종의 현타 시기가 느껴진다. 알렉스 스펜스도 마찬가지로, 이 앨범은 현타 시기에 만든 것이라고 추측한다. 현타보다도 더한 허탈의 느낌이다. 커버 아트에서도 눈이 완전히 풀려 있는데, 이 앨범을 녹음한 이후에는 활동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심지어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앨범임에도 이 앨범에 관한 트리뷰트 앨범도 존재한다. 그만큼 뮤지션들은 알아본다는 것이다.

이 음반은 언제 어떻게 알고 구매했나?

재수 학원 다니던 시절에 샀다. 그때 사이키델릭에 빠져서 학원으로 가다가 자꾸 옆길로 샜다. 대학 준비는 안 하고 레코드숍에만 갔는데, 하필 그 가게가 사이키델릭 마스터가 운영하는 전설적인 가게였던 거다. 그래서 계속 사이키델릭만 추천받았다. 결국 대학은 못 갔다.

바비와 그의 고고보이스 – [Wild Amp Guitar Go Go]

두 번째로 소개할 앨범은?

‘바비’와 그의 ‘고고보이스’의 [Wild Amp Guitar Go Go]. 곡들의 엔딩이 인상적인 앨범이다. 마치 노래가 끝나고 “자, 다음 노래”라는 말과 함께 곧바로 녹음을 시작했을 것만 같은 엔딩. 실제로 아마 하루 만에 모두 녹음한 앨범일 듯하다. ‘고고보이스’의 기타리스트가 정말 대단한 연주자였다. 그 당시에 굉장히 모던한 연주를 했고, 또 경음악 기타리스트는 대체로 멜로디만 연주하는데 반드시 애드리브를 넣는다. 그 당시 잘 보이지 않던 스타일이라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이걸 왜 사이키델릭이라고 추천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굉장히 거칠고 날아다니는 연주 때문이다. 들어보면 알 거다.

이 음반은 어떻게 알고 구매했는가?

95년에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청계천 뽕짝 코너에서 찾았다. 내가 뽕짝 코너에서 찾은 앨범 중 가장 기뻤던 앨범 중 하나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기 때문에 어렴풋이 정보를 찾아볼 수 있겠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러한 정보도 없이 구매했을 텐데.

정보가 전혀 없었다. 심지어 앨범 자켓에도 크레딧이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바비’라는 분이 원래 ‘김치스’라는 그룹사운드를 하셨더라. 이 앨범은 ‘김치스’를 그만두고 만든 것으로 추측하는데, 아무튼 대단한 앨범이다. 경음악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다.

Mij – [Color By The Number]

세 번째로 소개할 앨범은?

‘밋지(Mij)’의 [Color By The Number]. 뉴욕에서 아방가르드, 애시드 포크 장르 앨범을 주요하게 발매한 레이블 ‘ESP’에서 발매된 그의 유일한 앨범이다. 밋지는 길거리에서 노래하다가 픽업되었다고 한다. 사실은 이 앨범을 소개할지, ESP에서 발매된 또 다른 앨범을 소개할지 많이 고민했다. 다섯 장만 소개해야 하는 ‘디거의 노래’ 시스템이 너무 잔인한 것 같았다. 나는 다른 디거들보다 오래 살았는데… 아무튼 결국 그를 소개하기로 결정했다.

밋지의 음악은 정말 드물게 나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사막의 밤에 누워서 하늘을 보면 이런 음악이 어울리겠다는 상상. 음악 초반부에 에코가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끊긴다. 마치 알렉스 스펜스가 현타를 느꼈을 때처럼. 어떤 의도가 담겼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상상되는 지점들이 너무 즐거운 앨범이다.

이 음반은 어떻게 구매했는가?

이 앨범은 재판이다. 오리지널도 있는데 상태가 너무 안 좋다. 그건 재수 학원 시절 레코드숍에서 구매했다.

당신의 재수 시절이 흥미롭다.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다른 의미로 음악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대학에 갔으면 지금 한국에 없었을 것이다. 한국어도 이만큼 못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좋은 길을 택했었던 것 같다. 만약 그때 안전한 길로 대학을 입학해서 취직을 했으면 나의 세상은 매우 좁았을 것 같다. 인생의 공부로서는 그때 레코드숍에서 판을 샀던 것이 성공적이었다.

생각해둔 진로는 있었나?

없었다. 대학 입학은 부모님을 위한 최소한의 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대학을 준비했기 때문에 어디든 들어가면 된다는 생각이었고, 그래서인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예술 학부에 추천을 받아 응시했는데도 떨어지고 그랬으니까…

Various Artist – [Acid Dreams]

네 번째로 소개할 음반은?

[Acid Dreams]라는 제목의 부틀렉 레코드다. 60년대에 한 곡만 내고 사라진 아마추어 밴드들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그런 밴드 중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고 사라진 밴드의 음악을 부틀렉으로 컴파일링 해서 만든 앨범이다. 그야말로 ‘Acid Dream’인데, 이건 2014년에 다시 찍은 버전이다. 최초에는 70년대 후반에 동명의 제목으로 부틀렉 옴니버스로 나온 것이고, 그걸 세 장짜리로 늘여 만든 게 내가 소장한 버전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틱톡을 통해 인플루언서가 되네 마네 하면서 자아를 강하게 표출하지 않나. 반면에 SNS가 없던 옛날에는 이러한 레코드로 그러한 자아를 표현했던 것 같다. [Acid Dreams]에 수록된 밴드들의 곡에도 그러한 자아가 굉장히 강하게 드러난다. 어떤 밴드는 브레이크에 재채기를 넣기도 하고, ‘짐 모리슨(Jim Morrison)’, ‘도어즈(The Doors)’가 되고 싶어서 아예 도어즈에 빙의된 밴드도 있다.

이 컴필레이션에서 추천할 곡은?

‘화이트 라이트닝(White Lightning)’의 “William”이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리터(The Litter)’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해체 후 만든 하드록 밴드가 ‘화이트 라이트닝’인데, 2분의 짧은 러닝 타임 안에 기타가 모든 것을 하는 게 인상 깊다. 폭풍처럼 와서 폭풍처럼 사라지는 그런 노래다. 아쉽게도 컴필레이션은 부틀렉이기 때문에 소리가 좋지 않아서 별도로 7인치를 구매했다.

부틀렉은 어떻게 알고 구매했나? 공식적으로 발매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발매 소식을 접하거나 유통 방식도 특이할 점이 있을 것 같다.

옛날에는 부틀렉이 도매상에 섞여 있었다. 공식적인 스튜디오 앨범이 아닌, 오픈 릴 테이프로 라이브를 녹음한 것 같은 소리가 담긴 레코드들은 전부 비공식 판이었던 것이다.

Les Rallizes Dénudés – [Baus ‘93]

마지막으로 소개할 레코드는?

‘하다카노 라리즈(Les Rallizes Dénudés)’의 [Baus ‘93]. ‘하다카노 라리즈’는 67년에 결성되어 2019년까지 활동한 일본 언더그라운드 사이키델릭 밴드 계의 전설이지만, 동시에 어떻게 나타나서 어떻게 사라지는지도 알 수 없는 일본 최대의 수수께끼 밴드이기도 하다. 내가 60년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일본 사이키델릭 신(scene)의 현장에서 몸소 느끼지는 못했지만, 이 밴드를 들으면서 간접적으로 사이키델릭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93년도에 ‘바우스씨어터’라는 곳에서 공연을 한다길래 보러 갔었는데, 그때의 라이브가 2023년에 레코드로 발매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앨범 안에는 내가 있다. 관객으로 참여한 것이다. 이 앨범을 들으니 그 당시가 생생히 떠오른다. 향이 피워져 있었고 미러볼이 돌아가고 있었다. 시작 예정 시간 30분이 지나도 밴드는 등장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기타가 연주되면서 공연이 시작됐다. 또 한 가지 전설적인 이유는 밴드의 원년 멤버가 ‘요도호 사건’ 때 북한으로 망명해 지금까지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다카노 라리즈의 다른 라이브와 달리 이 앨범이 바이닐로 제작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 의미가 깊은 라이브였나?

그렇다. 당시 5년 만에 개최된 라이브 공연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깊었다. 90년대에 처음으로 개최한 라이브이기도 하다. 쉬는 동안에 일본 록 음악에 관한 관심이 생겨서 라리즈에 대한 리스펙이 점점 더 커져가던 시점이기도 했다. 그리고 밴드의 리더 미즈타니 타카시(Takashi Mizutani)가 2019년에 세상을 떠난 게 가장 큰 계기가 아닐까 싶다. 미즈타니가 살아 있었다면 이 음반은 나오지 못했을 거다. 그는 매우 까다로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연히 발매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과거에 라리즈는 스튜디오에서도 수없이 앨범 녹음을 했는데, 미즈타니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서 전부 포기했다고 들었다.

사이키델릭은 영혼이나 정신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신에게 사이키델릭은 영혼과 정신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나?

나의 모든 힘을 쏟아내어 알고 싶어질 정도의 에너지를 지녔다. 나의 인생 테마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지만, 그만큼 빠져 있기도 하다.

레코드 컬렉션은 삶의 궤적과 경험을 담고 있기 때문에 컬렉터의 취향과 더불어 성향 또한 파악할 수 있는 매개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레코드 컬렉션을 통해 어떤 디거로 비춰질 것 같은지 예상이 가는가?

글쎄, 컬렉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다양한 장르를 소유하고 있다. 내가 생각할 때 정말 대단한 컬렉터는 한 장르를 깊이 파는 사람인 것 같다. 근데 보통의 DJ들은 그렇지 못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신 없는 사람으로 비춰질 것도 같지만, 수집하는 장르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다음에는 어떤 음악을 들려줄까 라는 기대감도 심어주는 것 같다.

Yohei Hasegawa 인스타그램 계정


Editor │황선웅
Photographer │장지원
Special Thanks │ Echo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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