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 이어 2015년 스니커 게임(Sneaker Game) 결산을 다뤄본다. 올해는 특히 각 브랜드에서 스니커 산업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와 같은 영화에서만 일어난 법한 일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그러한 것들이다. 쓰레기를 재활용해 제품을 만들고, 내 발에 꼭 맞는 제품을 집에서 편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면 믿어지는가?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확인해보자.
1. adidas x Parley for the Oceans Ultra Boost
21세기에 들어 거대 기업들의 주요 화두는 ‘환경’이다. 그들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면서 환경 문제 해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고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기술 개발과 더불어 기업 브랜드 이미지 재고에 이처럼 확실한 방법도 없으리라. 특히 패션 산업은 석유에 이어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꼽힌다. 전 세계 화학제품의 1/4이 섬유 제조에 사용된다고 알려졌으며, 농업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양의 물을 소비하는 만큼 시장에 몸담은 브랜드 어느 하나 이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아디다스(adidas)는 이전부터 다양한 시도를 통해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2008년에는 친환경 소재와 재생용품을 활용한 컬렉션 아디그룬(adiGrun)을 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여름, 아디다스는 또 하나의 친환경 콘셉트 제품을 공개했다. 환경 보호 단체 팔리(Parley For The Oceans)와의 협업을 통해 바다 생태계를 보호한다는 주제로, 세계 최초 ‘해양 폐기물’로 만들어진 울트라 부스트(Ultra Boost)를 선보인 것. 제품이 독특한 외형을 갖게 된 이유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갑피를 감싸고 있는 가느다란 섬유는 어선들이 불법으로 설치하거나 버리고 간 어망에서 추출했다. 역시 환경 보호 단체인 시 셰퍼드(Sea Shepherd)가 110일에 걸쳐 서 아프리카 해안을 돌며 해양 쓰레기를 수거했고, 이것이 최첨단 기술을 통해 하나의 온전한 신발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들이 공개한 사진만 보더라도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어망)가 바닷속에 잠겨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해양 오염이 심각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직은 시제품에 불과하고, 구체적인 판매 계획을 내놓은 것이 아니기에 실제 눈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 조금 아쉽지만, 아디다스에서 “This is not a plan, this is an action(이것은 사업이 아니라 행동이다.)”이라고 밝힌 것처럼 일련의 활동이 타 기업에 본보기가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추가로 내년 초, 플라스틱 재생 기술을 이용한 스니커를 선보인다고 하니 더욱 기대되는 바가 크다. 패션 산업이 환경 오염의 주범이라는 불명예를 아디다스가 정면 돌파할 수 있을지 유심히 지켜보자.
2. Converse Chuck II
컨버스 척 테일러(Converse Chuck Taylor)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나열해보자. 우선 척 테일러(올 스타)가 탄생한 연도인 1917년, 그리고 세계 최초의 기능성 농구화라는 타이틀, 수억 켤레가 넘는 판매량, 척 테일러를 신고 무대를 거니는 커트 코베인(Kurt Cobain)과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스니커 게임 파트 1에 소개되었던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척 테일러를 신고 스크린을 누비던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 등. 척 테일러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무수히 많다.
이것을 묶어보자면 ‘문화’라는 하나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스니커가 문화 흐름에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컨버스 척 테일러는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드러냈다. 긴 머리, 가죽 재킷과 찢어진 청바지, 그리고 컨버스로 마무리되는 스타일링은 60·70년대 락 앤 롤과 펑크 문화를 대변하는 젊음과 자유의 상징이었고, 80년대로 넘어가면서 힙합, 갱스터 문화의 상승세에 맞물려 남성성의 이미지까지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올해 마침내 컨버스가 척 테일러의 후속작을 발표했다. 원작과 후속작의 간격이 무려 98년이다. 100년 만에 후속작을 출시한다는 컨버스의 결정에 감탄을 금할 길 없는데, 살아생전 이것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물은 기대치보다 만족스럽지 못하다. 물론 제품이 ‘구리다’라는 의미가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전작의 거추장스러운 부분을 다 떼어버린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루나론과 약간의 쿠셔닝, 혀를 잡아주기 위한 밴드가 추가되었을 뿐, 반쯤 스케이트보드 스니커로 바꿔 놓고 이것을 후속작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아쉽다. 루나론을 삽입한 척 테일러는 이미 ‘Chuck Taylor All Star Pro Skate Shoes’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지 않았나. 기존 제품을 답습하는 방식이 아니라, 더욱 과감한 디자인을 채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3. adidas Futurecraft 3D
초창기 스니커는 고무로된 밑창에 천이나 가죽을 덧대어 만들었다. 지금도 초기 형태를 지닌 제품이 꾸준히 출시되고 있지만, 한 세기가 지난 만큼 신발에 쓰이는 소재도 다양해졌고, 소재가 다양해진 만큼 신발을 제조하는 기술이나 공정도 함께 발전했다. 특히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브랜드는 최신 기술에 민감하다. 두 브랜드 모두 스포츠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지 부스트건, 슈프림이건 0.1초를 단축시키고, 0.1g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 주요 목적일테니 말이다. 또 하나는 이들이 ‘기업’이라는 점이다. 아디다스가 팔리와 진행한 프로젝트처럼 글로벌 브랜드로서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과 내부적으로 생산 공정을 단순화하고,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 다각도로 요구된다.
후자를 이유로 들어, 이쯤에서 아디다스가 발표한 ‘퓨처크래프트(Futurecraft 3D)’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지난달 아디다스에서 3D 프린팅 기술로 중창을 제조하는 퓨처크래프트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사출 금형과 같은 전통적인 스니커 제조 방식을 개념부터 탈피한 시도로서, 그간 의료나 건축 부분 위주인 3D 프린팅 기술을 스포츠 영역으로 확장했다. 아디다스는 물론이고, 나이키, 뉴발란스까지 이 사업에 뛰어들 정도로 글로벌 스포츠웨어 브랜드 모두가 눈독 들이는 분야다. 특히 가장 먼저 제품을 발표한 아디다스의 경우, 1년이라는 준비 기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결과물을 내놓았다. 잠시 그 모습을 감상해보자.
3D 프린트 기술을 끌어들인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 이유(핵심)는 브랜드에서 지금까지 축적한 빅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에게 가장 적합한 제품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탑재했다고 해도, 기성품은 결국 기성품. 수십억 인구의 발에 모두 들어맞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제 이 프로젝트가 더욱 구체화되면 될수록 앞으로 똑같은 신발이라도 개개인의 발 특성을 분석해 이를 3D 프린터로 제조함으로써 보다 만족감 높은 제품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쉽게 말해 매장에서 테스트를 받고 디자인만 선택하면 나에게 가장 알맞은 제품이 되어 돌아온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생산 공정을 아예 소비자 쪽으로 돌릴 좋은 기회라는 점이다. 3D 프린터가 일반 프린터처럼 대다수 가정에 보급됐다고 가정했을 때,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설계와 제조 권한만을 제공하고, ‘실제 제조’는 소비자의 개인이 처리하는 방식이다. 만약 3D 프린터가 가정용으로 보급된다고 하더라도 전문적인 설비를 갖춘 기업과의 간극은 극복해야 할 숙제다. 하지만 실현될 경우에 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한 물자와 인력,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퓨쳐크래프트 스니커는 시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지지력, 반발력, 안정성, 이번 프로젝트에 가장 핵심인 중창은 벨기에 기반의 3D 프린팅 솔루션 기업, 머티리얼라이즈(Materialise)와의 제휴를 통해 이루어졌다. 아디다스는 앞으로 이 과정을 오픈 소스화 시켜서 다른 업체들과도 지속적인 협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과정으로 신발을 갖게 될지 상상이 가는가? 집에서 편하게 신발을 고르고, ‘출력’해서 기다리기만 하면 자신의 스니커가 탄생할 날도 멀지 않았다.